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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24화 (24/221)

< 『국내편 - 024』 >

『국내편 - 024』

각각 7월과 8월에 있었던 80회 청룡기, 59회 대통령배 전국대회에서 일석 고등학교 야구부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무난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일석 고등학교 야구부의 모든 선수들이 타 학교보다 우수한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손쉬운 우승을 이끈 3명의 수훈 선수를 꼽는다면 그건 일석 고등학교 야구부의 막강 원투 펀치라 불리는 나와 박주천, 리그 홈런왕을 싹쓸이 하며 대형 거포의 계보를 잇는 장형수였다.

박주천은 고교 2인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흔하게 쓰는 말로 고교 리그를 씹어 먹는 나로 인해 크게 빛을 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박주천 역시 고교 리그에서 충분히 에이스급의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고교 최고의 투수라는 명성과 함께 화려하게 프로 리그로 진출을 했겠지만, 아쉽게도 고교 2인자라는 썩 좋지 못한 타이틀을 얻고야 말았다.

투수에는 차지혁이라는 이름이 항상 거론된다면, 타자에서는 장형수라는 이름이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었다.

황금사자기부터 시작된 청룡기, 대통령배까지 3연속 홈런왕이라는 타이틀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장형수가 다음 전국대회에서도 홈런왕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깊었다.

하지만, 9월에 있을 봉황기에서도 홈런왕이 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분명 실력만 놓고 본다면 장형수는 충분히 홈런왕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저번에 봤지? 무슨 고교 리그에서 정면 승부를 피하는 거야!”

압도적인 파워와 타격 능력을 선보이며 황금사자기와 청룡기에서 홈런왕을 차지한 장형수를 슬슬 피하기 시작한 투수들이었다.

대통령배에서도 겨우 하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홈런왕이 될 수 있었다.

전 대회 홈런왕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 장형수로서는 봉황기에서 자신을 피할 투수들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하루, 하루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가서 쳐버릴까?”

고의 사구를 쫓아가서 배트를 휘두를 생각을 하는 장형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해봐. 계약 조건 깎이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니까.”

“젠장! 이러다간 내 꿈이 깨지고 말겠어!”

신경질을 부리며 장형수는 애꿎은 포수 미트만 주먹으로 쳐댔다.

“저번에 나왔던 말은 어떻게 됐어?”

내 물음에 장형수가 날 바라보며 웃었다.

“죽어도 포지션 변경은 하지 않을 거라고 대못 박아놨지. 흐흐!”

“그냥 전향하는 게 낫질 않나?”

“부모님하고도 신중하게 고민을 해보긴 했는데, 솔직히 난 투수의 공을 잡을 때의 그 쾌감을 버릴 수가 없더라고.”

“쾌감?”

“너랑 비슷해. 투수가 삼진으로 타자를 잡을 때만큼이나 포수도 비슷한 쾌감을 느끼거든. 특히, 내가 투수를 리드해서 타자를 잡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타구를 보내 범타 처리 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끝내주거든! 흐흐!”

장형수는 대형 포수 유망주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실제로 녀석의 에이전시와 접촉하는 프로 구단들은 포수로서의 능력이 아닌 타자로서의 타격 능력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장형수는 포수를 보기에 체격이 너무 컸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유격수 다음으로 수비 부담이 심한 포지션이고, 장비를 주렁주렁 착용하고 한 경기에 수백 번을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는 중노동으로 인해 체격이 너무 크면 부상의 위험을 항상 달고 살아야만 했다.

학창 시절 포수 유망주로 평가를 받던 선수들 중 타격에 재능이 있어 1루나, 외야수로 전향하는 일이 워낙 많았기에 장형수 또한 그런 제안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선수 생활 오래 하려면 잘 판단해. 내가 보기에도 넌 너무 크니까.”

저번에 있었던 신체검사에서 장형수의 키가 197cm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포수로서는 너무나도 큰 신장이다.

물론, 장형수처럼 큰 신장의 포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오랜 기간 포수 자리를 지키진 못했다는 사실이다.

부상으로 인해 마스크를 벗어야했고, 포지션을 변경한다 하더라도 이미 부상 당한 신체가 제대로 된 타격 능력을 유지시킬 수준이 되지 못했기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성적은 꾸준히 하락하고 결국은 은퇴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게 된다.

프로 구단에서는 타격 재능이 뛰어난 포수 유망주들 중 체격이 큰 선수는 거의 반 강제적으로 포지션 변경을 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선수 본인으로서도 체력 부담이 큰 포수보다는 1루나, 외야로 나가 타격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여러모로 편한 일이니 구단의 권고 사항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편견을 깨부숴버리겠어. 나처럼 거구의 포수도 얼마든지 롱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겠어!”

주먹까지 쥐며 각오를 다지는 장형수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내 개인적인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장형수처럼 신장이 큰 포수는 반대로 신장이 작은 투수가 롱런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만약, 내가 장형수였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포지션을 변경했을 거다.

남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타격 재능이 있는데 구태여 포수라는 포지션에 집착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나저나 언제 한 번 네가 던지는 공도 한 번 시원하게 날려줘야 할 텐데! 흐흐!”

장형수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나 역시 리그 최고의 타자이자, 홈런왕인 장형수를 상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럴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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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고등학교 에이스 차지혁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고 있습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고교 선수로 역대 가장 대단한 고교 선수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차지혁 선수는 올해 열린 고교 전국대회에서 모두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이번 봉황기까지 상을 싹쓸이 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아야, 오빠는 여자 친구 없어?”

지아는 단짝 친구인 수연의 물음에 가볍게 혀를 찼다.

“저 야구 바보는 여자가 뭔지도 모를걸?”

“인기 엄청 많을 것 같은데?”

“인기야 뭐, 없지는 않지만…….”

지아는 중학교 시절부터 오빠가 학교에서 받아왔던 많은 편지와 선물들을 자랑처럼 늘어놨다.

“역시 인기가 많구나. 그런데 왜 여자 친구가 없어?”

“야구 밖에 모르는데 여자 친구가 어떻게 있겠어? 너 같으면 저런 야구 바보를 남친하고 싶겠어?”

“나는 뭐…….”

작게 중얼거리며 대답을 회피하는 수연을 지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친이 생겨도 얼마 못가서 백퍼센트 깨질 거야.”

“왜?”

“저 야구 바보는 하루 종일 야구 밖에 머릿속에 없으니까! 연습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아? 매일 아침 눈뜨면 스트레칭만 30분 가까이 하고, 런닝도 하루에 두 시간씩 뛰는데 아주 인간이 아니야. 학교에서 그렇게 야구 연습을 하고 집에 와서도 쉐도우 피칭이라고 수건 들고 공 던지는 연습을 수백 번씩 하는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질릴 정도라니까. 저러니 여자 친구가 있어도 만날 시간이나 있겠어?”

지아의 말에 수연이는 대단하다는 듯 TV화면 속에서 멋지게 공을 던지며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지혁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는 남자로서 대단히 좋은 체격이었다.

거기에 지혁은 조각처럼 미남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봐줄만할 정도로 괜찮은 얼굴인데 운동 선수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있으니 여자들로서는 절로 호감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덤으로 연일 고교 최고의 투수, 대한민국 미래의 에이스, 예비 메이저리거 등등 온갖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며 엄청난 돈을 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격도 지아의 입에서 부정적으로 말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만 하더라도 지아는 자신의 오빠가 여자 친구를 절대 만날 수 없다는 등, 금방 깨진 다는 등 악담에 가까운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성격이 더럽다거나, 잘난 척이 심해 꼴사나울 정도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작은 꼬투리라도 놓치지 않는 지아의 성격으로 봤을 때, 지혁의 성격은 상당히 좋은 편이라는 반증이었다.

외모, 능력, 성격까지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차지혁은 수연의 눈에 분명 가장 이상적인 남자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지아는 야구 밖에 모르는 바보다, 연습 벌레다 고개를 내젓고 있었지만, 그 정도의 노력이야 당연하다 여겼기에 수연에게는 단점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삼진! 차지혁 선수 또 다시 삼진으로 화영 고교의 타자를 돌려세웁니다!

“어휴! 저 바보들! 똑같이 야구하는데 왜 치질 못하는 거야? 저럴 거면 왜 야구를 하는지 모르겠네!”

지아는 손에 들린 치킨을 뜯으며 혀를 찼다.

“오빠가 너무 잘 던지니까 그렇잖아.”

수연의 말에 지아가 입가에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만큼 연습을 해야지! 저렇게 헛스윙을 한다는 건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일찌감치 야구 그만두고 공부를 하던가, 기술을 배우던가 해야하질 않겠어?”

“…….”

지아의 냉정한 비난에 수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노력했기 때문에 학교를 대표로 대회에 나왔는데…….’

이런 말을 해봐야 지아가 받아줄 리가 없다는 걸 알기에 수연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또 삼진이네! 아유 재미없어! 어떻게 오빠가 하는 경기는 재미가 없어! 다른 경기는 점수도 팍팍 나고, 투수도 계속 바뀌니까 재미있던데! 오빠가 선발로 나가는 경기는 혼자만 공 던지니까 지겨워 죽겠네! 매번 같은 곳으로만 던지는데 왜 그걸 못 치는 거야!”

지아는 정말로 재미없다는 듯, 지겹다는 듯 손에 리모컨을 꽉 쥐고 있었다.

“그래도 오빠 경기잖아.”

수연의 말에 지아가 안 그래도 억지로 참고 있는 거라며 푸념을 했다.

“지아야, 오빠가 저렇게 유명한 야구 선수니까 어때?”

“당연히 좋지! 돈 많이 벌 테니까! 히히!”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그럼 뭐? 다른 이유가 있어야 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되물어오자 수연도 할 말이 없었다.

“저번에 이렇게 말했다가 엄마한테 엄청 혼났지만, 그래도 난 생각이 변하지 않았어! 수연이 넌 모를 거야. 가족 중 한 사람이 꽤 유명하다는 건 실제로 엄청 짜증나는 일이거든!”

“짜증난다고?”

“당연하지! 오빠 때문에 기자들도 많이 찾아오고, 기자들이 우리 가족들 사진도 함부로 막 찍고! 거기다 오빠가 유명하니까 괜히 어딜 가더라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신경 쓰이는 줄 알아? 엄마랑, 아빠도 오빠를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얼마나 잔소리를 하는데! 또 내가 용돈 모아서 돈 쓰는 걸 가지고 사람들은 오빠가 운동해서 번 돈을 함부로 쓴다는 헛소리를 해대는데 내가 짜증이 안 나게 생겼어? 그러니까 이런 내 사춘기를 망쳐버린 오빠니까 돈이라도 많이 벌어서 나한테 다 보상을 해야하질 않겠어?”

지아의 말에 수연은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함께 하교를 하던 길에 어떤 남자가 지아에게 접근해서 오빠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모른다, 할 말 없다, 오빠에게 직접 물어라 등 지아가 완강하게 거절을 표현했음에도 남자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온갖 질문을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수연이 다 질려버릴 정도였다.

돈 문제도 그랬다.

수연이 아는 지아는 부모님이 주는 용돈을 착실하게 모아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사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지아의 본모습을 모르는 주변 친구들은 오빠가 유명 야구 선수고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에 혹해서 지아가 사치를 하고 다닌다고 손가락질을 하며 욕하기에 바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억울할 수밖에 없는 지아였다.

-차지혁 선수 굉장합니다! 화영 고교의 타선을 3회까지 완벽하게 막아내며 이닝을 종료합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놀라운 선수입니다! 저런 굉장한 선수가 대한민국의 선수라는 사실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흥분해서 소리치는 캐스터와 다르게 담담하게 마운드 위에서 내려오는 차지혁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수연의 얼굴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지아가 아무리 지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한다 하더라도 수연에게 공감대를 얻기란 힘든 일이었다.

“너무 멋지다…….”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

그 대상이 친구의 오빠가 되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다.

< 『국내편 - 024』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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