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23화 (23/221)

< 『국내편 - 023』 >

『국내편 - 023』

-마운드 위에서 차지혁 선수가 왼손을 번쩍 치켜듭니다! 제79회 황금사자기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일석 고등학교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8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과 함께 이번 대회 역시 최우수선수상이 확실시되는 차지혁 선수입니다.

-작년 대회에 이어 2년 연속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할 것으로 확신하니, 대회 2연패의 위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종도 해설위원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이번 대회 4게임에 등판해서 24이닝 1실점 1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0.37이라는 대단한 기록과 5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동안 단 하나의 볼넷만을 허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완벽 그 자체라 불러도 모자람이 전혀 없을 피칭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대단한 점은 8강에서 화석 고교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는 사실이죠. 이번 대회 차지혁 선수가 유일하게 허용한 볼넷으로 만약, 심판 판정만 정확했다면 그 경기 역시 퍼펙트로 대회 2연속 퍼펙트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렇습니다. 꽤 논란이 되었던 판정이었고, 일부에선 오심이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차지혁 선수 본인이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고 이미 지나가버린 판정이니 승복하겠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참 여러모로 대단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기록을 찾아보니 황금사자기에서 2년 연속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것이 1983년과 1984년 중성 고교의 강영준 선수이후, 무려 41년 만에 기록입니다. 여러모로 차지혁 선수는 고교리그에서 많은 기록들을 달성하는 것 같습니다.

-참 대단한 선수입니다.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지 않고 항상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인성 또한 바르다고 하니 참으로 대한민국 야구계의 보석이라 부를 만합니다. 저런 선수가 있기에 대한민국 야구가 한층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년도 역시 모든 대회 우승은 일석 고교가 차지할 것이고, 무엇보다 모든 대회 최우수선수상 후보 0순위로 차지혁 선수를 지목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상, 현재 고교 선수 중 차지혁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따낼 고교 팀은 전무하다고 봐도 좋습니다. 설령, 차지혁 선수에게 2점, 3점을 어렵게 따낸다 하더라도 일석 고교의 타석은 말 그대로 고교 최강의 타선이라 차지혁 선수가 선발로 등판한 경기라면 상대팀은 어느 곳이든 패배를 머릿속에 두고 있을 겁니다.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일석 고교의 타선은 어느 투수가 올라온다 하더라도 무섭게 화력을 뽐냈습니다. 차지혁 선수의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4게임에 등판했음에도 고작 24이닝 밖에 소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경기를 6이닝 만에 콜드 승을 챙겼다는 소리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일석 고교의 폭발적인 타선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석 고교의 평균 득점력이 13점이고, 그 중심에는 팀의 4번 타자이자 포수인 장형수 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형수 선수도 굉장히 기대가 큰 선수입니다. 포수로서의 리드에 대해선 아직 확실하게 평가를 내릴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타격 재능하나 만큼은 포수로서 역대급이라 불러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 기록만 놓고 봐도 대단합니다. 0.423의 타율에 0.743의 장타율과 14개의 홈런은 대형 거포의 신호탄이라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사실, 현대 야구에 들어서면서 어느 리그든 포수 기근 현상은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포수라는 포지션이 워낙 힘들다는 점 때문입니다. 장형수 선수가 지금과 같은 타격 능력에 포수로서의 수비력만 입증한다면 이번 신인 드래프트 시장에서 굉장히 좋은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말씀하시는 사이 예상대로 차지혁 선수가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것으로 41년 만에 대회 2연속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더불어 일석 고교는 8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고교 3학년이 되고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작년에 이어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이번 대회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교 리그는 내 수준에 맞질 않았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최상호 코치와 나는 그걸로 축하 인사를 끝냈다.

남들에게는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최상호 코치와 나는 처음부터 대회 우승과 최우수선수상을 확신하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대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구속 156Km, 평균 구속 150~153Km의 패스트볼.

135Km의 파워 커브와 153Km의 컷 패스트볼.

현재 대한민국의 그 어떤 고교생과도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단순히 스피드만 놓고 본다면 국내에도 몇 명 비교 대상이 존재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면 오히려 나보다 훨씬 더 빠른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꽤 있다.

하지만, 내가 그들보다 자신 있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내가 던질 수 있는 구속의 최고 스피드의 모든 공이 제구가 된다는 사실이다.

컷 패스트볼 또한 이제는 확실하게 제구가 잡혀 있는 상태였다.

“내가 본 그 어떤 투수보다 넌 완벽하다.”

최상호 코치의 극찬이었다.

“국내라면 모를까, 해외에선 아직 제 기량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올해 드래프트 시장에 나오는 국내 투수들 중 나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없다.

그렇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당장 몇 명의 이름이 바로 떠오른다.

케이티 지코, 알렉스 코트로나, 스티븐 펠리키, 앤드류 폴은 빅4라 불리는 특급 투수 유망주들이다.

역대급 재능을 갖춘 드래프트 순위 톱3의 타자들보다는 실력이나 재능이 떨어진다는 평가지만, 투수라는 포지션만 놓고 봤을 때 이들 네 명의 투수들은 굉장한 실력과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었다.

여기에 아시아 넘버 원 투수로는 일본의 니노마에 류지 또한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을 때, 은근슬쩍 국내 수준을 들먹이며 나에게 하는 말이 바로 국내용 투수라는 평가였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렇다 할 전적이 없는 나로서는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소리였다.

“ESPN과 BA의 드래프트 순위 때문에 그렇다면 신경 쓸 것 없다. 내가 구단주라면 그 누구보다 널 무조건 1순위로 뽑는다.”

최상호 코치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거짓말이라고 생각 하는 거냐?”

“아닙니다.”

나 역시 내가 구단주라면 날 1순위로 뽑는다.

국내 고교 리그의 수준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평가로 인해 덩달아 나에 대한 실력도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을 뿐, 지금까지 빅4라 불리는 투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널 저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에 대해 쏟아지는 기사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이었으니까.

“위기 관리 능력과 체력, 내구성입니다.”

최상호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지금까지 상대를 압도하는 피칭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국내 고교 리그에서는 네 공을 제대로 칠 수 있는 타자들이 거의 없기에 쉽게 너만의 투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 하지만, 프로라면 다르다. 경우에 따라선 너 역시 난타를 당하는 일이 발생할 테고, 자연스럽게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도 과연 너만의 공을 던질 수 있느냐? 실점을 하지 않고 위기를 넘길 수 있느냐? 이것에 대한 확신이 아직까지는 없다.”

투수에게 위기 관리 능력은 굉장히 중요한 지표다.

세상 그 어떤 투수도 위기를 맞지 않을 수 없고, 실점을 또한 피할 수 없다.

단지, 얼마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최소한으로 실점을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최상의 코치의 말대로 지금까지의 내 경기 내용들을 살펴보면 딱히 위기 상황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기에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물음표가 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3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160경기 이상을 뛰어야 하는 메이저리그의 살인적인 일정은 웬만한 체력으로는 절대 버틸 수가 없다. 더욱이 선발 투수라면 이닝 소화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그 역시 넌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내구성 문제는 아시아 선수 모두에게 적용되니 그 역시도 네 가치를 하락시키는 이유 중 하나다.”

선발 투수라면 줄 점수는 깨끗하게 주고, 주지 말아야 할 점수는 지키면서 선발 투수로서의 이닝 소화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나에 대한 평가가 부족했다.

지금까지 난 콜드 승 규정으로 인해 6이닝 이상 던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얼마나 이닝 소화 능력이 뛰어난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난 탈삼진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3구 삼진도 제법 많았지만, 그건 상대적으로 타자들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프로에 올라서면 3구 삼진은 쉽지 않은 일이고, 최소 4~5구를 던져야 하는데 아무리 내가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 이닝 당 던지는 투구수가 12~15구로 늘어나면 6이닝 동안 72~90구의 공을 던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런 단순 계산이 실제 게임에서 그대로 발생할 일은 확률적으로 그리 높지 않았다.

커트에 능한 타자거나, 선구안이 좋은 타자를 만나게 되면 더 많은 공을 던져야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초구에 배트가 잘 나오는 타자를 만나면 1~2구만에도 아웃 카운트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현재 내 투구 스타일이 삼진을 잡는 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평가가 많다는 점이고 보편적으로 탈삼진 비율이 높다는 건 맞춰 잡는 스타일의 투수에 비해 한 이닝 동안 많은 공을 던진다는 뜻이기에 프로에서 정상급 타자들을 상대하게 된다면 이런 내 투구 스타일이 투구수 관리에 약점을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한 경기에 많은 삼진을 잡으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내는 선발 투수와 삼진은 거의 없어도 적은 수의 투구수로 땅볼과 뜬공으로 이닝을 막아내는 선발 투수의 가치는 분명 다르다.

탈삼진이 많은 투수는 임팩트가 크기에 관중들에게 환호를 받고 많은 팬층을 거느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환호를 받고, 많은 팬을 거느려도 투구수 부담으로 인해 7이닝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선발 투수보다는 효율적인 투구수로 8이닝, 혹은 완투까지 가는 투수가 구단 입장에서는 더 선호를 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하나, 하나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들이 모두 약점으로 부각된 셈이다.

“이 부분에선 진지하게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네게 견제와 수비 훈련을 시작할까 한다.”

“네.”

견제와 수비 훈련 또한 투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견제를 잘하는 투수는 도루 저지율이 높기에 당연히 실점과도 연관이 컸다.

수비 역시도 마찬가지다.

마운드 위에서 투구를 마친 투수는 곧바로 내야수가 되어야 한다.

자신 앞으로 날아오는 공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좋아야만 한다.

특히 번트에 대한 수비력과 베이스 커버 등은 습관이 될 정도로 몸에 익혀야 했다.

학교에서 견제와 수비 훈련을 받고 있었지만,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기에 최상호 코치에게 따로 훈련을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또 하나는 파워 커브를 던질 때 느껴지는 미묘한 차이를 없애야 한다. 타자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는 투구 동작의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패스트볼과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다. 심하진 않지만, 너 역시 파워 커브를 던질 때 약간의 차이가 있으니 그 점을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세트포지션을 조금 더 빠르게 가져가는 훈련도 필요하다.”

세트포지션은 보통 주자를 둔 상태에서 타자를 향해 빠르게 공을 던지는 투구 자세다.

느긋하게 와인드업을 해서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제구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연습을 많이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은 있다 여겼는데 최상호 코치의 눈에는 아직까지도 부족한 모양이었다.

“네. 앞으로도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자세를 바로 잡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자 최상호 코치가 됐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네 몸값이 높아지면 그만큼 나에게도 이익금이 떨어지는 일이니 그렇게 고마워할 건 없다. 다 내 돈 벌자고 하는 일이니까.”

말을 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버리는 최상호 코치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최상호 코치가 날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았기에 빙긋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에이전시 계약으로 맺어진 레슨 코치라는 관계였지만, 내 인생에 가장 고마운 스승이 바로 최상호 코치라는 사실에는 단 한 번도 부정해 본 적이 없다.

< 『국내편 - 023』 > 끝

ⓒ 독고진

작가의 말

실제로 황금사자기 역사에 대회 2연속 MVP를 차지한 선수는 광주일고 박준태 선수입니다. 연도는 1983~1984년으로 같습니다. 현재는 LG 트윈스 2군 작전코치로 있다고 합니다.

#

주인공의 성적이 너무 뛰어나다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까 싶어, 100마일을 쓰면서 기준으로 잡은 실제 선수의 성적을 알려드릴께요~!

2013년 황금사자기에서 상원고 이수민 선수의 기록입니다.

5게임, 5승(4게임 완투), 43 2/3이닝, 23피안타, 67탈삼진, 3자책, 0.61평균자책점.

대단하죠? 이수민 선수 이름인 낯설지 않으시죠? 10이닝 26탈삼진의 선수입니다.

오해하실까봐 말하지만, 차지혁의 모티브가 이수민 선수는 아닙니다.

차지혁의 성적을 설정하다보니 자료를 찾아보니 이수민 선수가 눈에 띄었을 뿐입니다. 이수민 선수는 1차 지명으로 삼성으로 갔습니다. 앞으로 기대가 되는 선수네요. ^^

#

작중 메이저리그 일정을 3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설정했지만,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3월 말이나 4월 초부터 9월 말까지입니다.

작중 경기수 대비 일정이 늘어난 이유는 챔피언리그(가제)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