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21화 (21/221)

< 『국내편 - 021』 >

『국내편 - 021』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5월의 마지막을 뜨겁게 달궜던 황금사자기 MVP 수상 논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 뇌리에서 지워졌고, 7월에 있었던 청룡기에선 수많은 취재진과 국내외 스카우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속 10탈삼진과 함께 7이닝 1피안타 무실점이라는 훌륭한 성적표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뒀다.

8월에 열린 대통령배 전국대회와 9월의 봉황기에서는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에 계약을 해야만 하는 3학년 선배들로 인해 마운드 위에 설 수가 없었다.

3학년 선배들이 봉황기까지 쉬지 않고 전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내년엔 나도 저렇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더욱더 훈련을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10월이 되자, 해외 신인 드래프트 시장이 열렸고, 1년 중 마지막 전국대회 규모의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11회가 되는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황금사자기부터 봉황기까지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한 예비 고졸 선수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다.

전국 고교야구 선수 랭킹에서 상위권에 들어가는 유망주들은 대부분 해외 드래프트 시장으로 나가거나 어느 정도 조건을 맞춘 프로 팀과의 사전 접촉을 통해 미래를 보장받기 때문에 대회 출전에 관심이 없어 비주전 선수들이 그 동안 쌓인 설움을 마음껏 폭발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간혹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통해 깜짝 스타가 탄생하기도 했으니 뚜렷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고교 3학년 선수들에게는 희망의 대회였다.

“이번 주 경기 선발은 송종섭이다.”

감독의 깜짝 선발 발표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특히, 내가 출전하지 않기로 해서 무조건 선발 출전할 거라 기대를 갖고 있던 박주천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선발 명단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감독에게 정면으로 대들어봐야 좋을 것 없기에 참고 있었지만, 마음이 단단히 상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다른 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 3학년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지만, 일석 고교는 달랐다.

애초부터 최고의 유망주들만 모여든 야구부였기에 모든 3학년들은 에이전트를 통해 국내외 프로 구단과 어느 정도 사전 접촉을 통해 갈 길을 찾아놓은 상태였다.

졸업 후 미래가 보장되어 있으니 굳이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까지 나갈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일석 고교에서는 전원 2학년이 대회를 치르며 일찌감치 내년을 준비하는 대회일 뿐이었다.

일석 고교의 에이스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나였다.

겉으로는 3학년 재석 선배가 일석 고교 야구부 에이스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외부 관계자들을 비롯한 감독과 코치, 심지어 재석 선배마저도 날 에이스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였다.

재석 선배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실력의 차이가 명확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전국 고교야구 선수 랭킹은 매년 3월과 9월에 발표가 되는데, 놀랍게도 3월까지만 하더라도 투수 부문 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내가 1위로 단번에 치고 올라갔으며, 전체 유망주 부문에서도 30위권 밖에서 맴돌던 순위가 1위를 차지해버려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아버지와 에이전시, 학교 측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주변에서는 한 번 반짝이고 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솔직히 난 자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우려를 깨끗하게 종식시키고, 기대를 환호로 만들어 낼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는 불참을 선언했다.

이유라면 최상호 코치의 조언에 따라 집중적으로 몸 관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년이면 줄기차게 공을 던져야만 하니 올해 완벽하게 몸을 만들어 놓아 부상을 방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역시 최상호 코치의 말대로 하라며 반 협박했고, 나 또한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을 가장 조심해야 할 적이라 여겼기에 군소리 없이 따르기로 했다.

물론, 황금사자기에서 달성한 대기록과 대회 MVP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면 생각을 다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야구부 감독도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무엇보다 이미 고교에선 상대가 없다 평가를 받는 나보다는 박주천이나 송종섭 등을 등판시키며 그들의 가치를 올려야 했기에 오히려 내 결정을 반기기까지 할 정도였다.

사실 나에게 가려 2인자에 머물고 있는 박주천도 제대로 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가 됐다.

하지만, 감독이 우선적으로 선택한 건 송종섭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송종섭이었기에 잘만 다듬으면 분명 대단한 투수가 될 수 있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 동의했다.

재능 하나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국내에서는 비교 대상자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송종섭도 여름부터는 꽤나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특히, 제구력을 잡기 위해 집중적으로 외삼촌인 정해용 코치와 훈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훈련 시간 외에도 항상 운동장에서 롱토스를 하는 모습이 단단하게 마음을 먹은 것 같기는 했다.

그 결과인지 현재 송종섭은 그럭저럭 괜찮은 제구력을 갖춘 상태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인적인 내 의견으로는 송종섭보다는 박주천이 우선이었다.

박주천은 130Km 중후반의 패스트볼을 안정된 제구력으로 던질 줄 알았고, 고속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기에 일석 고교가 아니었다면 어디서든 에이스로 마운드에 오를 실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약점이라면 정신적으로 한 번 흔들리면 좀처럼 본래의 페이스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흔히들 말하는 멘탈 붕괴의 표본과도 같은 타입이 박주천이다.

오죽하면 장형수가 박주천을 가리켜 두부 멘탈이라고 놀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송종섭은 멘탈 하나 만큼은 독보적이라 불러도 좋았다.

충분히 위협적인 강속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대면서도 타자가 맞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고, 안타를 맞든, 홈런을 맞든 그것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승부사 기질인지, 타고난 싸움꾼 스타일인지 안타를 맞거나 홈런을 맞으면 오히려 더 무식하게 달려들어 상대 타자를 압박했는데 그때 보여주는 집중력은 상당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난 놈이었다.

“주천아, 네가 이해해라. 너야 어차피 내년에 쉬지 않고 등판해야 하지만, 종섭이는 다르잖아? 종섭이한테는 이번 경기가 최후의 시험대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알겠지?”

투수 코치가 실망한 표정으로 시무룩해있는 박주천을 위로했다.

그런 말로 위로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최후의 시험대.

이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송종섭에게 내년은 아주 힘든 시간이 될지도 몰랐다.

“역시 랭킹 1위는 여유만만이군!”

장형수가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무슨 여유?”

“사실대로 말해봐? 너 어깨 아픈 거 아니지? 이번 대회에서 건질게 없으니까 태업거는 거 아냐?”

“태업은 무슨.”

태업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내 실속을 챙기는 행위였기에 대화가 길어져서 좋을 것 없다 판단이 들었기에 짐을 챙겨 야구부를 빠져나왔다.

붉은 노을이 온 세상을 주황빛으로 물들여 놓고 있었다.

이번 대한야구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만 마치면 공식적인 전국대회가 끝난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면 고교 3학년의 생활이 시작된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독보적인 커리어를 만들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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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각!

조각난 헬멧이 홈베이스 위에 떨어졌고, 타석에 서 있던 타자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포수를 보고 있던 장형수와 심판이 다급하게 타자의 상태를 살폈고, 상대팀 더그아웃에서 감독, 코치, 선수까지 모두 달려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들것과 함께 쓰러진 타자에게로 다가갔으며, 곧바로 소란스러운 음성이 터지며 의식을 잃은 타자가 들것에 실려 경기장 밖으로 향했다.

마운드 위엔 송종섭이 흥건하게 땀을 흘린 모습으로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몇 명의 상대팀 선수들이 송종섭을 향해 붉어진 얼굴로 달려들었고, 뒤늦게 우리 팀에서도 선수들이 마운드로 달려 나갔다.

감독과 코치의 고성이 오갔고, 심판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조금씩 흥분된 감정이 가라앉자 경기 진행 요원들이 홈베이스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붉은 핏자국을 닦거나, 흙을 골라내는 동안 송종섭은 정해용 코치의 손에 이끌려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경기장을 벗어났다.

“괜찮겠지?”

1학년 후배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두 똑똑히 봤다.

송종섭이 던진 공은 상대 선수의 얼굴로 향했고,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관자놀이 쪽을 강타하면서 귀 보호구 쪽이 박살났고 타자는 그대로 쓰러졌다.

들것에 실려 나갈 때가지도 타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해 모든 이들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글쎄, 심각할 것 같던데…….”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가라앉은 더그아웃 분위기로 인해 1학년들이 속삭이듯 대화를 한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또렷하게 들렸다.

“설마 잘 못 되는 건 아니겠지? 선수 생활에 지장이…….”

“거기 1학년! 시합에 집중 안 할래!”

동기 중 한 명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그제야 1학년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번 데드볼은 굉장히 위험했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이 무려 157Km였다.

오늘 송종섭의 투구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5이닝 동안 1실점.

피안타는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5개의 볼넷과 1개의 사구만으로 내준 점수였다.

여전히 제구력에 문제가 있었기에 풀카운트 승부가 잦았지만, 제대로 들어가는 공에 대해서는 상대팀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삼진을 당했다.

그러던 것이 체력이 떨어지면서 릴리스 포인트가 흔들렸고, 그 결과 타자의 머리에 직격하는 데드볼이 발생한 것이다.

명백한 실투였다.

고의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실투에서 발생한 데드볼.

그렇지만 그 결과가 굉장히 치명적이다.

들것에 실려 나가던 타자의 상태가 분명 가볍게 해결될 문제 같지 않았다.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경기에선 승리를 했다.

승리했음에도 딱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망.

송종섭의 공에 머리를 맞은 타자가 병원으로 호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사망을 하고 말았다는 연락이 왔다.

야구부 전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에 빠졌고, 감독과 코치들도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며칠 후, 학교 차원에서 야구부에 이번 대회 포기를 권고 받았다.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일석 고교의 명성이 하루가 다르게 짓밟혔고, 송종섭의 경우 살인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악플과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학교와 일부 언론에선 경기 중 발생한 사고라 어린 선수를 너무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냐는 동정론으로 여론 몰이를 하려고 했지만, 사태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송종섭이 과거 불량 학생 소위 일진으로 불렸던 시절과 제주도에서 길거리 패싸움을 한 사실이 밝혀지며 그를 향한 비난의 수위가 더욱더 높아져만 갔다.

“들었어?”

글러브를 손질하던 내게 장형수가 급하게 달려왔다.

“뭘?”

“종섭이 자식 자퇴했다고 하네.”

“자퇴?”

경기 이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송종섭이었다.

스스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테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느 정도 자퇴를 예상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딱히 놀랄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정해용 코치도 그만뒀다고 하더라. 송종섭을 감싸는 게 좀 꼴사납긴 했어도 실력은 좋았잖아?”

송종섭과 정해용 코치가 그렇게 학교를 떠났다.

이후, 그들의 소식을 들을 순 없었다.

어수선 한 분위기 속에서 2학기 학교생활이 끝났고, 곧바로 동계 훈련을 떠났다.

다시 찾아온 따뜻한 봄과 함께 마지막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 『국내편 - 021』 > 끝

ⓒ 독고진

작가의 말

자료를 찾다보니 재밌는 전설과도 같은 기록이 있어서 말을 해볼까 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썰 좀 풀어볼게요~!

우선 기록부터 적겠습니다. 절~ 대 놀라지 마세요!

리그 2천승.

한시즌 최다 승 104승(총 게임 105게임).

시즌 방어율 0.02.

709이닝 2100탈삼진.

시범경기 기간 32승 1패. 289이닝 1자책. 59피안타. 8사사구. 868탈삼진.

메이저리그 올스타 시범 경기 7.1이닝 22탈삼진.

놀라셨나요? 아직 놀라지 마세요~!

조 디마지오 - 33타수 1안타.

지미 팍스 - 28타수 4안타. 24타수 연속 삼진.

조지 깁슨 - 8타수 8삼진.

알 시몬스 - 23타수 23삼진.

루 게릭 - 19타수 19삼진.

루크 애플링 - 10연속 삼진.

벅 레오나드 - 29타수 3안타. 25타수 연속 삼진.

마틴 디히고 - 39타수 4안타. 35삼진.

아키 본 - 49타수 4안타. 45삼진.

테드 윌리암스 - 40타수 40삼진.

모르는 이름도 있겠지만, 꽤 익숙한 이름도 있으시죠?

메이저리그에서 위대했던 타자들입니다.

이 위대했던 타자들이 저런 말도 안되는 성적표를 단 한 명의 투수에게 받았습니다.

투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시죠?

그 전에 이 투수의 쇼맨쉽에 대해서도 알려드리죠~!

50타자 연속 삼진.

외야수 모두 내야로 불러들여 앉혀놓고 홀로 타자들을 삼진으로 이닝 종료.

세 타자 연속 볼넷으로 만루 만들어 놓고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이닝 종료.

워밍업으로 성냥갑을 홈 플레이트 삼아 스트라이크 던지기.

9명 타자 차례대로 삼진 잡기.

믿겨지시나요?

전 처음에 이게 무슨 허황된 소린가 했습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이고, 도무지 이해하지도, 인정할 수도 없는 기록이니까요.

하지만, 이 기록의 투수는 실존 인물입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샤첼 페이지(Satchel Paige)’ 라는 선수입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록이 제대로 남았는지는 확실하게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몇몇 기록들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몇몇 기록들조차 믿겨지지 않는 기록들이라는 사실이죠.

샤첼 페이지는 1948년 42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합니다.

본래 활동하던 니그로리그, 멕시칸 리그에서 활동했고, 6번째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입니다. 저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하고서도 무려 5시즌 동안 28승 31패 4세이브 방어율 3.29의 괴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은퇴를 하죠. 더 놀라운 건 은퇴를 하고 59세에 연금을 받기에 3이닝이 부족하다는 걸 알곤 켄자스시티 선수로 등록해 보스턴을 상대로 3이닝 1피안타라는 기록을 남긴다는... ㅎㄷㄷ.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강속구 투수 중 하나였던 밥 펠러는 "내 직구는 샤첼 페이지의 직구에 비하면 체인지업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혀를 내둘렀고, 당대 제일의 투수였던 명예의 전당 헌액자 디지 딘은 "내가 페이지와 함께 뛰면 7월 초에는 리그 우승을 확정하고 남은 세 달은 낚시나 다녀도 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이건 뭐....... 별그대 도민준도 아니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런 위대한 투수도 존재했는데 우리 지혁이는..... 아직 멀었죠? ^^

그렇다고 저런 말도 안되는 기록의 주인공을 만들 생각은 전~ 혀 없습니다.

시대가 틀리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다소 과장된 기록일 것 같으니깐요.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투수는 되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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