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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20화 (20/221)

< 『국내편 - 020』 >

『국내편 - 020』

《한 경기만으로 최우수선수상 수상이 과연 적합한가?》

『지난 5월 25일 토요일에 열린 제78회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일석 고등학교는 진영 고등학교를 상대로 6회 콜드 승(10:0)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전국 최강 고교 넘버 원이라 불리는 일석 고등학교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한 이들은 거의 없었고, 일석 고등학교는 수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또 하나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날의 우승으로 일석 고등학교는 7년 연속 황금사자기를 제패하였고, 다음 달에 열리는 청룡기 대회에서도 막강한 우승후보로서…중략…이날 결승전에서는 오직 한 선수만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일석 고등학교 투수 차지혁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1년 만에 일석 고등학교에서 3학년이 아닌 2학년 선수가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차지혁 선수는 17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6이닝 동안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으며 고교리그 사상 2번째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지난 2008년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나온 대기록으로 모든 관계자들을 흥분케 했다.

140Km 후반의 빠른 포심 패스트볼과 120Km 초중반의 파워 커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차지혁 선수는 고교 선수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이끌어냈다.

고교 리그에서 차지혁 선수만큼이나 압도적인 피칭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야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결승전에 단 한 번 등판한 차지혁 선수에게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줬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대회 규정상 4강 진출 팀의 경우 투수는 5이닝만 소화해도 개인 순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기에 차지혁 선수가 최우수선수상을 받는다 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연속 17탈삼진이라는 세계 최고의 대기록과 16년 만에 달성된 퍼펙트 게임으로 인해 차지혁 선수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에게도 최우수선수상을 줄 수 없다는 뜻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경기만으로 최우수선수상이라는 대회 최고의 영예를 안기는 것이 과연 형평성상 맞는가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 되고 있기에 이 문제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차지혁 선수가 세운 대기록을 생각하면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단 한 경기만 출전했다는 점이 그의 발목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논란이 어떤 식으로 해결될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직 한창 성장 중인 차지혁 선수가 이번 논란으로 인해 성장에 방해를 받거나,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우뚝 서고, 세계 무대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줘야 할 어린 선수이기에 조금은 더 완화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봐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이번 논란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문제일 뿐, 차지혁 선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차지혁 선수는 오랜 시간 열심히 훈련을 하며 갈고 닦은 자신의 실력을 숨김없이 발휘했을 뿐이므로 모두가 차지혁 선수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쳐주어야만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누구도 차지혁 선수에게 비난의 시선이나, 날선 반응을 보여선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 한국 스포츠 송대업 기자. 작성일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기분이 어떻습니까?”

“솔직히 좋지는 않습니다.”

“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규정을 어기는 일은 아니었으니 주변 소란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논란을 조장한 이들도 일부일 뿐이지,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계적인 대기록을 달성한 차지혁 선수가 당연히 대회 MVP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좋게 생각하도록 하세요.”

싱글벙글 웃고 있는 눈앞의 남자는 황병익으로 내가 계약한 YJ에이전시의 대표다.

프로 스포츠 선수 출신이 아닌 알아주는 명문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며, 해외 유학파이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서 스포츠 에이전시를 운영하는지 모르지만, 그의 경영 능력은 꽤 유능한 편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아버지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에게 항상 존대를 해주고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요즘 황병익 대표는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바로 내 존재 때문이다.

나에 대한 가치는 국내에서는 일찌감치 초유망주로 모든 프로 구단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었지만, 해외에서는 그저 괜찮은 유망주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번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보여준 내 피칭으로 인해 해외에서도 집중적으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다.

아직까지 초특급유망주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괜찮은 유망주 후보로 이름을 알리고 있으니 날 팔아먹어야 하는 황병익 대표로서는 당연히 귀에 입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달에 열릴 청룡기 대회에서도 좋은 피칭 부탁드립니다. 벌써부터 문의가 끊이질 않고 있고, 차지혁 선수가 등판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몰려들 겁니다. 차지혁 선수도 잘 알고 있겠지만, 선수의 가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선수 본인이 증명을 해야만 합니다. 주변 시선 때문에 부담이 많을 경기겠지만, 그것 또한 차지혁 선수가 스스로 이겨내야만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자신만의 피칭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황병익 대표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가 대답을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야구부 내부 사정으로 인해 2학년인 제가 어쩔 수 없이 결승전에 등판을 한 것뿐입니다. 제가 아무리 잘 던진다 하더라도 올해가 아니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가 없는 3학년 선배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만 합니다. 맥 빠진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제가 등판할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3학년 선수들에게 대부분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차지혁 선수가 많은 경기에 등판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딱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차지혁 선수의 에이전트인 제가 할 일입니다.”

“예?”

“스카우트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입니다. 대기록을 달성한 차지혁 선수의 실제 피칭을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겁니다. 이미 차지혁 선수에 대한 실력에는 크게 의심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에이전시에서 준비해 놓은 영상 자료들만으로도 충분히 프로 구단들은 차지혁 선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제 등판을 보려는 이유는 느낌을 받기 위함입니다.”

느낌이라니?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황병익 대표가 빙긋 웃으며 날 바라봤다.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와 웃음이었다.

“같은 구종의 공을 같은 구속으로 던지는 투수라 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가 있는 반면, 타자에게 오히려 쩔쩔 매는 투수가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말로 설명을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스카우트들은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라는 걸 선수의 실제 피칭을 통해 받는다고 합니다. 좀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런 느낌이 스카우트들에게는 꽤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습니다.”

마운드 위에서 타자를 마주대할 때 내가 받는 느낌과 같을 것 같았다.

일종의 기세다.

투수는 타자를, 타자는 투수를 잡아먹을 정도로 강력한 기세를 뿜어내는 경우를 말하는 것 같았다.

똑같은 150Km의 공을 던진다 하더라도 어떤 투수가 던지는 공은 타자의 배트를 부러트릴 것처럼 포수의 미트로 파고드는 반면, 어떤 투수의 공은 속절없이 타자의 배트에 유린을 당한다.

구위의 차이도 존재하겠지만, 진짜 중요한 건 타자를 압도하겠다는 자신감에서부터 시작된다.

넌 절대 내 공을 못 쳐! 라는 심정으로 자신 있게 공을 던지는 투수.

내 공을 치는 건 아닐까? 라는 심정으로 공을 던지는 투수.

두 투수는 확연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맹수와 같은 타자는 본능적으로 투수의 약점을 파고들 줄 안다.

그런 맹수를 상대로 이겨낼 줄 아는 투수와 그렇지 못한 투수는 분명히 그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경기가 아니라면 한 경기 정도는 차지혁 선수를 선발로 등판하게끔 일석 고교 야구부와 조율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한 경기뿐입니다.”

선수의 선발 기용은 전적으로 감독만의 권한이다.

그럼에도 외부 에이전시트인 황병익 대표가 이토록 자신을 하는 이유는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에이전시의 거래는 의외로 잦았다.

거기다 일석 고등학교 입장에서도 2학년인 내가 메이저리그와 연결이 되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학교의 명성을 더 끌어 올릴 훌륭한 수단이 된다.

이미 최고의 명성을 쌓고 있는 일석 고등학교라 하더라도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3학년 선배들을 빛나게 해줄 중요한 경기가 아니라면 한 경기 정도는 등판을 할 기회가 있을 수 있었다.

“솔직하게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차지혁 선수는 내년 드래프트 시장에서 국내를 선택할 겁니까, 해외를 선택할 겁니까?”

황병익 대표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매섭게 번뜩였다.

YJ에이전시의 경우 내가 어떤 시장을 노리던 내 선택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과 같은 성장 속도만 유지해도 내년 해외 드래프트 시장에서 대단히 큰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국내와 해외는 기본적으로 선수 계약금부터 시작해서 연봉 등 돈의 단위 자체가 달라져버린다.

지금까지 국내 드래프트 시장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받은 고졸 선수는 5년 계약에 계약금 20억, 연봉총액 5억이다.

이런 저런 옵션 계약까지 따지면 금액이 조금 더 올라가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30억 미만이다.

반면, 해외 드래프트 시장에서 최고로 잘 받은 고졸 선수는 계약금 포함 120억이다.

옵션 계약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금액이 더 올라가니 국내 시장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유한석 선배가 작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했었지.’

언론에 알려진 바로 유한석 선배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6년 계약에 계약금 300만 달러, 연봉총액 60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이런 저런 옵션까지 더하면 대략 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졸 루키 선수가 6년 계약에 천만 달러를 벌게 되었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실력에 자신이 있다 싶으면 해외 드래프트 시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거다.

‘지금 상태라면 내년에 유한석 선배보다는 더 받을 수 있겠지.’

자신이나 자만이 아니라 현실이다.

나날이 구속이 증가하는 직구에 덩달아 위력이 더해가는 파워 커브만 하더라도 훌륭한데, 커터까지 제구력을 잡게 되면 메이저 어느 구단이라도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물론, 신인 드래프트 특성상 리그 순위 최하위권 팀부터 우선 지명권과 계약권을 갖게 된다.

선수는 최대 3개의 구단 중 하나와 계약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에 구단에서 제대로 된 계약을 제시하지 않으면 남은 다른 구단과 계약을 해버리면 그만이니 웬만해선 구단의 장난질 따위가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야구 선수는 20대 중반까지 기량이 성장한다.

그렇기에 구단에서는 유망주와 계약을 할 경우 최소 5년에서 장기 7년까지 계약으로 선수를 묶어두고 성장을 시킨다.

이후, 유망주가 제대로 성장만 해준다면 돈 많은 구단으로 큰 이적을 시키면서 큰 돈을 이적료로 챙길 수 있게 되니 구단으로서도 손해 볼 것 없는 계약이었다.

그러다보니 소위 초특급 유망주라 불리는 루키 선수들은 웬만한 중견 선수들보다 계약 금액이 큰 경우가 종종 있었다.

황병익 대표는 그런 계약을 노리고 있는 거다.

하지만, 선택은 온전히 나만의 몫이다.

국내와 해외.

어느 곳을 선택하든 그건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결정권이다.

< 『국내편 - 020』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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