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8화 (18/221)

< 『국내편 - 018』 >

『국내편 - 018』

부웅-!

퍼엉!

“헛스윙! 삼진 아웃!”

-또 다시 한 번 헛스윙을 이끌어내며 삼진으로 타자를 돌려 세웁니다!

-이번에도 파워 커브였습니다. 고교 선수가 저 정도의 파워 커브를 구사할 줄 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실, 파워 커브라는 구종 자체가 일반적인 커브와는 다르게 손목을 틀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손가락 힘만으로는 던질 수가 없는 구종입니다. 설령, 던질 수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아주 밋밋한 직구가 될 수 있기에 실투의 확률도 높고, 제구력에 어려움을 겪는 구종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김종도 해설위원께서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차지혁 선수가 지금까지 던진 파워 커브는 모두 제대로 구사가 되며, 단 하나의 실투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연 파워 커브가 생각만큼 던지기 힘든 구종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더 놀랍다는 사실입니다. 프로 선수라 하더라도 종종 실투를 던지거나, 제구력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고교 2학년 선수가 저 정도 완벽한 파워 커브를 구사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보셨다시피 현재 진영 고등학교의 타자들은 차지혁 선수의 파워 커브에 속수무책으로 삼진을 당하고 있질 않습니까?

-말씀하시는 순간, 루킹 삼진! 또 다시 차지혁 선수가 진영 고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습니다! 이번에는 148Km의 빠른 패스트볼이 타자의 몸 쪽을 꽉차게 들어오며 꼼짝도 못하고 삼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이닝 역시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것으로 4이닝 12탈삼진으로 퍼펙트의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고교 야구에서 최다 탈삼진 신기록은 대구 명원고 ‘장성민 선수’가 기록한 10이닝 26탈삼진입니다. 차지혁 선수의 경우 일석 고교의 타선이 워낙 막강해서 7이닝까지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12연속 탈삼진 기록은 국내외 모든 기록을 통틀어 최초입니다. 그리고 아직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기에 오늘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기록이 나올 것은 확실합니다!

-차지혁 선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저 정도로 훌륭한 선수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많은 고교 야구를 봐왔지만, 저렇게 압도적인 피칭을 해나가는 선수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차지혁 선수는 이제 고교 2학년 선수지만, 빠른 패스트볼과 파워 커브만으로 진영 고교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마치 차지혁 선수의 피칭을 보고 있으니, 프로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와 고교 선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오늘 황금사자기 결승 명단을 보고 놀란 면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고교 최강 넘버 원이라 불리는 일석 고교는 언제나 3학년 투수가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 2학년 차지혁 선수가 선발 투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조금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차지혁 선수 스스로 대단한 피칭을 보여주며 김황석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차지혁 선수가 던지고 있는 140Km 후반의 빠른 패스트볼과 120Km 초중반의 파워 커브는 아마 오늘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진영 고교 타자들이 공략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석 고교에서 2학년 선수가 선발로 대회 결승에 오른 건 21년 만이라고 합니다. 아! 일석 고교 3번타자 주형민 선수의 타구가 크게 날아갑니다. 큽니다! 큽니다! 우익수 뒤로 달려가다 펜스를 확인하고는 멈춰 섰습니다! 넘어갔습니다! 홈런입니다!

“어깨는 어때?”

투수 코치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좋습니다.”

“오늘 정말 잘 던져주고 있다. 너무 무리할 필요 없으니까 수비 믿고 쉽게 가도록 해라.”

“네.”

대답과 다르게 나는 절대 쉽게 갈 생각이 없었다.

수비를 못 믿는 건 아니다.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야수들은 일석 고교 3학년 선수들이다.

그 어떤 학교보다 수비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니 이런 야수들을 믿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최악의 선수들이 수비를 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투구를 할 작정이었다.

퍼펙트.

머릿속에 담겨 있는 단 하나의 단어다.

처음에는 내 공이 고교 리그에서 어느 정도나 통할까 싶은 호기심과 투지만 있었다.

자신감도 있었지만, 명색이 전국대회 결승까지 올라온 상대였으니 쉽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4이닝 동안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워버렸다.

구석구석 송곳처럼 찌르고 들어가는 빠른 직구와 베스트라 불러도 좋을 파워 커브의 제구력은 흔한 말로 완벽하게 긁히는 날이다.

이런 날은 세상 그 어떤 투수라도 욕심을 부릴만하다.

무엇보다 12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삼진 기록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이유도 없었다.

이 정도 던졌으니 충분하다?

그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이 정도 던졌으면 그 이상도 던질 수 있다는 의미다.

고교리그 역사에 남을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어떤 선수도 뛰어넘을 수 없는 불멸의 기록!

현재 고민 중인 건 커터를 던지느냐, 마느냐였다.

아직 배움의 시간이 짧았다.

무브먼트는 배운 시간에 비해 제법 훌륭하다 칭찬을 받을 만했지만, 문제는 제구력이다.

아직까지 커터를 원하는 곳에 찔러 넣을 제구력이 없었다.

그 말은 실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고, 결정구로서의 효용 가치가 없다는 소리다.

‘초구에 한 번씩만 던져서 타자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자.’

초구에 커터를 던진다.

직구와 파워 커브만을 생각하고 있는 타자들에게 커터까지 있다는 점을 노출시켜서 수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간다.

진영 고교 측에서도 어차피 직구를 노리라고 주문 할 게 뻔했다.

현재 내가 던지는 파워 커브는 오늘 경기에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결국 노리고 칠 수 있는 건 직구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선배님.”

“으, 응?”

내가 말을 걸자 오늘 경기에서 나와 배터리를 맞추고 있는 황찬 선배가 당황한 모습으로 날 바라봤다.

현재 12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말 같지 않은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 더그아웃에서 후배와 동기는 물론, 선배들까지도 내 주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완벽한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는 투수에 대한 배려심이다.

경기만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니 고마웠다.

“이게 커터 사인 맞습니까?”

선배들이 사용하던 커터 사인을 표시하자 황찬 선배가 가만히 날 바라봤다.

“너 커터도 던져?”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제구력이 좋질 못해서 선배님께서 잘 잡아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황찬 선배는 걱정말라는 듯 대답했다.

“어차피 투수가 던지는 공 잡아주는 사람이 포수인데 부탁까지 할 건 없지. 그보다 제구가 안 잡히는 공이면 던지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어? 지금 페이스에서 괜히…….”

말끝을 흐렸다.

안 좋은 소리를 했다가 그대로 이뤄지면 원망을 들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정구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초구에 한 번씩 던져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초구?”

“네.”

황찬 선배는 내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곧바로 깨달았는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중견수 플라이로 잡히면서 공수 교대가 이뤄졌다.

마운드 흙은 고른 후에 로진백을 손에 묻혔다.

경기를 시작하라는 심판의 사인에 타자 박스에 선 진영 고교 4번 타자를 바라봤다.

체격이 상당히 좋았다.

대기 타석에서 스윙하는 폼을 봤을 때, 전형적인 파워 히터로 걸리면 넘어가는 위험한 타자다.

컨택 능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날 잡아 먹을 듯 노려보고 있는 두 눈동자와 배트를 쥔 손을 연신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성급해 보였다.

몸 쪽 직구를 던져달라는 황찬 선배의 사인을 거부하며 곧바로 커터 사인을 보냈다.

두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황찬 선배는 살짝 미트를 타자 몸 쪽 아래로 향했다.

호흡을 고르며 와인드업을 하고 커터를 던졌다.

쇄애애액-!

직구에 준하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커터에 진영 고교 4번 타자가 입가를 꿈틀거리며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이걸로 연속 12타자 12삼진의 기록은 물론, 굴욕의 퍼펙트까지 깨버린다는 의지가 마운드까지 전해졌다.

아무리 직구 구위가 좋다 하더라도 한복판으로 날아오는 직구를 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타자는 아니라는 듯 벼락처럼 튀어 나오는 배트는 당장이라도 공을 담장 너머로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가운데 한복판으로 날아가던 공이 돌연 타자 몸 쪽 아래로 살짝 떨어졌다.

딱!

“악!”

배트 타격면에서 손잡이 부분으로 이어지는 얇은 부분 아래에 공이 맞았다.

타구는 곧바로 타자의 왼쪽 정강이를 가격했고, 그대로 타자가 타자 박스에서 주저앉았다.

내 예상보다 떨어지는 각도가 부족해서 배트에 맞고 말았다.

역시 커터는 제구력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친 타구를 맞은 타자는 한참 만에 일어났다.

아직까지 고통이 남아 있는지 얼굴을 찌푸린 모습에서 제대로 된 타격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고통을 참고 타석에 서려는 모습을 보니 고교 3학년의 치열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다고 상대를 동정할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두 번째 공은 타자 몸 쪽 아래를 파고 들어가는 직구.

“스트라이크!”

타자는 꼼짝도 못하고 스트라이크를 내주고 말았다.

왼쪽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된 타격을 하기도 힘들었고, 한다 하더라도 파울이나 치는 게 최선임을 알기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날 노려보기만 했다.

2스트라이크 노볼.

이제 타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공은 하나 밖에 없다.

파워 커브.

오늘 경기에서 단 한 명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파워 커브였기에 타자는 자연스럽게 내가 파워 커브로 삼진을 잡아 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게 뻔했다.

황찬 선배도 결정구로 파워 커브 사인을 냈다.

누가 봐도 결정구로 파워 커브를 선택할 거라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투수는 예측이 가능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포지션.

나는 황천 선배에게 직구 높은 볼을 던지겠다고 사인을 줬다.

굳이 볼을 던져 투구수를 늘릴 필요가 없다 여기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대다수의 타자들은 카운트가 몰리면 의외로 눈에 쏙 들어오는 높은 볼에 배트가 쉽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프로들도 조차 허다하게 속는 볼이니 아직 성장 중인 고교 선수라면 두 말 할 것도 없다.

처음과는 다르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타자는 파워 커브를 어떻게든 쳐보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 타자의 눈높이에 수박 만하게 보이는 높은 직구를 던졌다.

부웅-!

“스윙! 삼진 아웃!”

안쓰러울 정도로 헛방망이질을 하며 타자가 삼진으로 아웃되자 그는 분한 듯 배트로 땅바닥을 두어 차례 내려치고는 더그아웃으로 힘없이 걸어 들어갔다.

이걸로 13연속 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이어나갔고, 퍼펙트 게임 역시 진행중이다.

< 『국내편 - 018』 > 끝

ⓒ 독고진

작가의 말

작중 고교 탈삼진 최고 기록은 대구 상원고 이수민 선수며, 실제로 10이닝 26탈삼진을 했습니다.

연속 탈삼진 기록은 MLB 톰 시버 선수와 KBO 이대진 선수가 10타자 연속 삼진으로 타이기록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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