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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6화 (16/221)

< 『국내편 - 016』 >

『국내편 - 016』

제주도에서 받은 동계 훈련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3학년 선배들이 일궈놓은 6년 연속 전 대회 우승이라는 영광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2학년 선배들은 물론, 1학년들까지도 지옥에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하아~ 시원하다!”

팬티만 걸치고 욕실에서 나온 장형수는 침대에 걸터앉아 손가락 악력기로 운동을 하고 있는 날 바라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정말 지독하네. 웬만하면 좀 쉬어라. 넌 힘들지도 않냐?”

“할만 해.”

간단하게 대꾸하곤 검지와 중지를 집중적으로 손가락 악력기를 눌렀다.

최상호 코치의 말대로 손가락 근력과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 중이었다.

손가락 악력기를 누르거나, 손가락마다 고무 밴드를 연결해 늘리거나, 탱탱한 고무공을 검지와 중지로 누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손가락 스트레칭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쉬지 않고 해주고 있었는데 이런 날 동기들은 물론, 선배들까지도 지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정말 지독한 걸까?

동의할 수 없었다.

야구 선수가 되기로 다짐을 한 그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니까.

정말 훌륭한 야구 선수를 꿈꾼다면 이정도의 노력은 당연했다.

고통 없는 영광은 없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을 항상 하셨다.

어렸을 때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6학년 선배보다 내가 더 공을 잘 던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중학교 2학년생으로 전국 중학 선수 랭킹 투수와 유망주 부문 1위를 차지했을 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훈련들이 지금의 순간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노력하지 않고도 남들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월등히 뛰어난 재능과 신체적 능력을 타고난 이들이다.

그 어떤 천재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타격 능력과 체격을 갖고 있는 장형수와 타고난 강견으로 남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던질 수 없는 강속구를 던지는 송종섭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두 사람과 비교하면 난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보다 뛰어나다 평가를 받는 건 그들이 하지 않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힘든 건 한 순간이다.

그나마도 하루, 이틀이 지나 일주일, 한 달이 되어버리면 습관이 되어 힘들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도 않는다.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훈련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습관이 되기 전에 모두 힘들어 포기하거나, 자기 자신과 타협을 한다.

그저 난 남들과는 다르게 포기하지도 않았고, 타협하지도 않았을 뿐이다.

“기계처럼 훈련하는 너도 대단하고, 송종섭 그놈도 참 대단하다.”

“그 녀석하고 날 왜 같은 선상에 놓는 거야?”

기분이 나쁘다는 듯 장형수를 바라봤지만, 그는 예의 익살스럽게 웃기만 했다.

송종섭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였다.

제주도 동계 훈련이 시작되고 열흘 정도는 제법 열심히 훈련을 하는 것 같더니 보름이 넘어가자 아무런 말도 없이 숙소를 빠져나가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감독과 코치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고, 2학년 선배들도 나타나기만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이었다.

1학년들 중 몇몇은 괜한 불똥이 튈까 싶어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나와 장형수는 별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송종섭은 야구부에서 내놨다 싶을 정도로 꼴통으로 분류가 되어 있었기에 그가 어떤 사고를 친다 하더라도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1학년 전체가 단체 기합을 받을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이번엔 정 코치도 어쩔 수 없을 거야? 그치?”

“무단이탈이니까.”

정해용 코치.

여름이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송종섭의 외삼촌이 정해용 투수 코치였다.

송종섭이 중학 선수로 이름을 전혀 알리지 못했음에도 어떻게 일석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풀렸다.

정해용 코치는 자신의 조카인 송종섭이 남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있다는 걸 감독에게 알렸고, 감독은 송종섭을 직접 만나 확인한 이후에 그의 가능성만을 보고 입학을 허락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갔다.

송종섭의 재능은 확실히 국내에선 보기 드물었으니까.

하지만, 송종섭은 재능 외에 모든 부분에서 부족했다.

게을렀고, 나태했으며, 거만했고, 중학 시절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는지 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삐뚤어져 있었다.

동기들은 물론, 선배들조차 자신보다 아래라 여겼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거칠었다.

데드볼 사건 이후로 조금 자숙하는 듯 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동기들과는 어울리지 못해 항상 홀로 다녔고, 선배들 역시도 삐딱하고 야구부의 분위기를 흐리는 송종섭을 후배로 인정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버린 송종섭을 정해용 코치는 어떻게든 부원들과 어울리게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당사자가 변하지 않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1학년 생활이 끝나가고 있었고, 마지막을 장식할 동계 훈련에서 기어코 송종섭이 대형 사고를 쳐버렸다.

“하루, 하루 정 코치 얼굴 썩어가는 거 봤어? 보는 내가 다 안쓰럽더라. 그런 것도 조카라고 감싸야 하니 참.”

장형수는 자신에게 만약 송종섭과 같은 조카가 있었으면 벌써 다리를 부러트려 버릇을 고쳤을 거라며 주절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가락 악력기로 운동을 마친 나는 옷을 하나, 둘 벗고 욕실로 향했다.

“좋아! 좋아! 정말 내가 본 그 어떤 근육보다 완벽해! 부럽다! 흐흐!”

장형수의 말에 픽 웃었다.

“나 따라서 운동하면 너도 반 년 안에 이렇게 돼. 할래?”

“미쳤냐! 내가 기계랑 운동을 하게!”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치는 장형수의 모습에 나는 대꾸 없이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슬쩍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연예인처럼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어디서 못 생겼다는 말은 듣지 않는 외모였다.

몸짱이라며 TV에 출연해서 자랑하는 근육질의 남자들과는 다른 자잘한 근육들이 균형있게 잡혀 있는 몸매는 확실히 탄력적으로 보였다.

“3kg이라…….”

별 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살이 찌면 분명 지금까지 잘 가꿔놓은 몸의 균형이 깨지는 건 확실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상호 코치의 말대로 구위가 올라갈 수 있다면 조각 같은 몸 따윈 백 번이라도 버릴 수 있었다.

동계 훈련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송종섭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해용 코치는 얼굴이 완전 말라비틀어진 사람마냥 감독과 다른 코치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기들 중 일부는 이번 일로 인해 송종섭이 야구부에서 제명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동계 훈련이 끝나고 나는 곧바로 가족이 머물고 있는 리조트로 향했다.

부모님은 지아를 설득해서 제주도로 내려온 지 일주일이 지나 있었고, 훈련이 끝나는 나와 함께 3일을 더 제주도에서 보내다가 집으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제주도에서 생활한지 한 달이 넘었지만, 제대로 된 관광을 해보지 못했기에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구경 시켜 주었다.

웬일인지 지아가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싶었더니 집으로 돌아가면 최신 휴대폰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여행은 꽤 재밌었다.

훈련만 할 때는 몰랐는데 여기저기 구경을 하니 굉장히 좋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관광 마지막 날, 오후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공항으로 향하던 중 뜻밖에도 길거리에서 송종섭을 볼 수 있었다.

4명의 남자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던 송종섭은 짧은 까까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상태로 길거리에서 담배까지 펴대며 큰 소리로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송종섭은 잠시 멈칫 거렸지만, 이내 무슨 상관이냐는 듯 날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녀석의 시선을 뒤로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하나 같이 불량스러운 친구들뿐이었다.

저런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야구부 훈련을 빼먹었다 생각하니 괜히 화가 났다.

녀석은 도대체 야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어떤 생각이기에 길거리에서 저런 불량스러운 녀석들과 어울리는 걸 더 우선으로 여겼던 걸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이내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묻는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을 거다.

괜한 시비에 휘말려 원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무시하고 지나치는 게 좋다 여겼다.

“저 새끼들이야!”

거친 고함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송종섭과 그의 친구들을 향해 십여 명의 청년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고함과 함께 싸움이 벌어졌다.

송종섭은 거침없이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며 싸움을 했다.

무엇보다 투구를 하는 오른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저런 녀석을 같은 야구부로 생각하기조차 싫어졌다.

“가요.”

갑자기 벌어진 패싸움에 부모님과 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는 걸 억지로 이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송종섭을 더 이상 나와 같은 야구를 하는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은 머저리일 뿐이었다.

3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겨울 동안 내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쇄애액- 퍼- 엉!

삐빅!

투구를 마치고 곧바로 한쪽에 서 있던 아버지를 바라봤다.

내 공을 받은 최상호 코치 역시도 몸을 일으키고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에도 아버지는 손에 들린 스피드 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

내 음성에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입술이 열리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오십이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마운드 위에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야아아아-!”

드디어 최고 구속이 150Km에 진입을 했다.

최상호 코치는 이미 미트에 박히는 내 공을 받는 순간 직감을 하고 있었다는 듯 놀란 표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은근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이 상당히 뿌듯해 하는 것 같았다.

겨울 동안 몸무게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더니 키가 2cm나 더 커서 이제는 188cm가 되었고, 몸무게도 6kg이 늘어서 83kg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어서 걱정을 하는 날 최상호 코치와 아버지는 절대 많이 나가는 체중이 아니라면서 프로 선수가 되면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몸무게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늘려야 한다고 했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어난 것보다 날 기쁘게 한 건 바로 146Km에서 도통 늘지 않던 구속이 드디어 150Km까지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키가 커지고, 체중이 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번 동계 훈련과 병행하며 꾸준히 운동을 한 손가락 운동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구위가 훨씬 더 좋아졌다. 볼 끝이 상당히 묵직해졌고, 회전력도 확실히 더 늘어났다. 무브먼트가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이만하면 고교 선수들 중엔 네 공을 정면으로 승부해서 힘으로 이기는 놈이 찾기 쉽지 않을 거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 겨울 방학이 끝났고, 고교 2학년이 되었다.

< 『국내편 - 016』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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