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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4화 (14/221)

< 『국내편 - 014』 >

『국내편 - 014』

따- 악!

맞는 순간 직감을 했다.

아주 경쾌한 소리는 공을 쪼개버릴 것 같았다.

타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소리였지만, 투수들은 가장 듣기 싫은 소리다.

깔끔하게 팔로우 스윙까지 완벽하게 가져간 후에야 배트를 뒤로 내던지는 모습이 꽤 멋지게 보였다.

한쪽 팔을 들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베이스를 도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야구 경기 중 가장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는 건 타자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홈플레이트를 밟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녀석이 날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역전포 작렬!”

익살스럽게 웃는 장형수의 모습에 나 역시 피식 웃고 말았다.

친선 시합이 벌어졌다.

상대는 광한 고등학교로 전국대회 16강이 최고 성적으로 소위 말하는 명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광한 고등학교와 전국 최강 넘버 원 우리 일석 고교가 친선 시합을 벌인 건 이번에 광한 고교 야구부 감독으로 우리 야구부 감독의 후배가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이다.

친분을 이용한 친선 시합이란 소리다.

어느덧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이 시작된 상태였다.

7월에 있었던 청룡기, 8월에 있었던 대통령배 전국대회, 9월에 있었던 봉황기까지 일석 고교는 모든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일각에서는 일석 고교가 너무 모든 대회를 우승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그게 벌써 6년 전부터 있었던 걱정이다.

즉, 일석 고교 야구부는 어느덧 6년째 모든 대회의 우승 트로피를 싹 쓸고 있는 중이다.

일석 고교 야구부가 모든 전국 대회를 휩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로 일석 고교 야구부의 선수층은 타 학교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두터웠다.

중학 졸업생 중 대부분의 포지션에서 전국 랭킹 1, 2위를 다투는 이들이 모여드는 학교가 일석 고교 야구부다.

모든 포지션에서 1, 2위를 다투는 유망주가 우글거리는 일석 고교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학년이 올라갈수록 운동을 그만두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운동을 못하게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1학년 정원인 15명이 2학년, 3학년까지 꾸준히 남아 운동을 하니 다른 학교들에 비해 선수층이 몇 배나 두터웠다.

두 번째로 일석 고교 선발 라인업의 무한 경쟁 시스템이 야구부 전체의 실력을 엄청나게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일석 고교는 다른 학교와 다르게 선수층이 너무 두터웠기에 팀 에이스를 제외하면 모든 포지션이 무한 경쟁을 하며 그때그때 경기에 출전을 한다.

다시 말하면 일석 고교에 고정 선발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모든 선수들이 선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땀을 흘렸고, 그 결과는 당연히 실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 그 어느 학교보다도 풍족한 지원 시스템이다.

보통의 야구부는 야수 코치 1명, 투수 코치 1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일석 고교는 야수, 투수 코치가 각각 4명이었고,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인스트럭터의 존재다.

인스트럭터는 간단하게 초청 코치라 보면 된다.

특정 선수만을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사람으로 기존 팀 내 코치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존재로, 코치들은 인스트럭터의 존재를 딱히 달가워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석 고교에는 매년 3~4명의 인스트럭터를 초청해서 집중적으로 필요한 선수를 코칭하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외에 전력 분석관도 있었고, 전문 트레이너와 팀 닥터까지 있었기에 웬만한 프로 구단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도저히 고등학교 야구부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었는데 거기엔 졸업생들이 매년 야구부 발전과 선수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하는 금액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석 고교가 전국 넘버 원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입학생들 전원에게 모든 야구 장비와 유니폼 등을 무제한으로 지원하는 것부터가 스케일이 다르지.’

야구 선수로 키워지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돈이 든다.

야구 선수뿐만이 아니라 모든 운동선수들은 매년 많은 돈이 들어간다.

재능이 있고, 실력이 좋아도 집안 형편에 의해 운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돈 때문이다.

나 역시 야구 선수로 키워지면서 우리 집 가계 상황을 상당히 축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석 고교에 입학하면서 그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유니폼, 스파이크, 글러브, 각종 소모품까지 매년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은데 그것들을 일석 고교 야구부에서 모두 지원을 해주니 선수들은 아무 걱정 없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너도 타격 한 번 해봐.”

장형수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별로.”

어렸을 때부터 투수가 꿈이었고, 타격 연습을 별로 해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중학 시절부터 타격에는 재미를 못 느꼈다.

그래서 고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타격을 전혀 하질 않았다.

어차피 지명타자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는데 굳이 나까지 배트를 들고 타석에 설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시원스럽게 때릴 때의 통쾌한 기분을 몰라서야. 흐흐!”

“나 투수다.”

“알지. 언젠가 반드시 네가 던지는 공을 담장 밖으로 날려 버리고 말겠어. 흐흐!”

“선풍기나 되지 마라.”

장형수는 당장이라도 한 번 붙어보자며 깐죽거렸다.

그러는 사이 공수 교대가 되었고, 감독님이 날 마운드로 올려 보냈다.

“친선이지만 우린 일석 고교 야구부다.”

뼈가 있는 말이었다.

특히, 선발로 등판한 2학년 선배가 제구력 난조로 3회 동안 4점이나 주면서 감독님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2학년 선배를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은 건 최대한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끌려 다니던 타선이 3회에 터져주면서 1점차로 역전을 했고, 기다렸다는 듯 감독님은 날 올린 것이다.

다른 2학년 선배들도 있었지만, 1학년인 내가 마운드에 오른 이유는 애초부터 오늘 경기는 1학년 위주로 시합을 하겠다고 말을 해놨기 때문이다.

상대팀인 광한 고등학교는 2학년이 주력이었지만, 우리 일석고는 2학년 보다는 1학년이 대부분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상대 학교를 존중하는 의미로 2학년 선배를 선발로 내보냈을 뿐이었다.

“실점해도 내가 또 한 방 때려줄 테니까 걱정 말고 마음껏 던져!”

마운드 위에서 그렇게 응원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장형수는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몇 개의 연습구를 던지고 난 후에야 심판이 콜을 했고, 타자가 타자 박스에 들어섰다.

키는 작았지만, 날렵한 몸매에 어울리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주루 플레이가 능한 타자였다.

타자는 상체를 마운드 쪽으로 열어두는 오픈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정말 힘이 좋지 않고서야 장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타격 자세로 밀어치기와 커트에 능한 자세였다.

하지만, 오픈 스탠스는 몸 쪽에 강한 면을 보이는 반면,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에 대해선 쉽게 대응을 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장형수는 몸 쪽을 요구했다.

거기에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벗어나는 볼이었다.

무슨 의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밀어내자는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와인드업을 하고 원하는 코스로 정확하게 공을 던졌다.

“……!”

몸 쪽으로 파고드는 빠른 직구에 타자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프로도 그렇지만, 고교 야구는 특히 타자가 투수의 공에 물러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한 번 물러나면 속수무책으로 상대방에게 당하기 때문에 투수든, 타자든 물러나면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볼.”

누가 봐도 확연하게 빠지는 볼이었기에 심판은 무미건조하게 볼을 선언했다.

타자는 잠시 배트를 두어 번 휘두르고는 다시 타자 박스에 섰고, 장형수는 타자가 물러나지 않은 모습에 다시 한 번 같은 코스로 공을 요구했다.

공 반개 정도 더 안쪽으로 요구했기에 제구력에 자신이 없는 투수라면 쉽게 던질 수 없는 공이었다.

완전히 타자의 기를 죽여 놓겠다는 뜻이고, 그만큼 내 제구력을 믿는다는 소리다.

처음부터 볼을 2개씩이나 주고 시작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우선은 포수의 리드를 따라가기로 하곤 곧바로 공을 던졌다.

“헉!”

조금 전보다 더 놀라며 타자가 뒤로 황급히 물러났고, 장형수는 자신이 요구한 코스보다 더 깊게 타자 몸 쪽으로 공이 들어오자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제구가 안 되는 거야?

장형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글러브를 내밀었고, 장형수가 공을 던져주자 다시 피처 플레이트에 발을 올려놓았다.

타자의 발 위치가 살짝 바깥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야구 선수라고 투수가 던지는 공이 아프지 않다거나, 공포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훈련이 되었기에 견뎌낼 수 있을 뿐, 세상 그 어떤 타자도 제구력이 흔들리는 투수를 상대로 홈플레이트에 바짝 다가서진 않는다.

타자가 옆으로 바깥쪽으로 물러선 것을 확인하고 장형수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을 요구했다.

벌써 바깥쪽을 던져달라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복판으로 던지겠다고 사인을 줬고, 장형수는 살짝 눈을 찌푸리는 것 같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미트를 내밀었다.

쇄애액- 퍼엉!

여름을 기점으로 직구 구속이 다시 한 번 상승했다.

지금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 구속은 146Km.

그 빠른 공을 한복판으로 집어넣었지만, 타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제구가 흔들리는 것 같으니 공 하나 정도는 봐두자는 심산이었겠지만, 치겠다 마음을 먹었더라도 쉽게 칠 수가 없었을 거다.

다음 공으로는 타자의 입장에서 볼이라 느껴질 정도의 바깥쪽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직구를 던졌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선언에 타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판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볼 2개를 주고 시작했지만, 어느덧 투 스트라이크.

여유로웠던 타자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점이다.

투수에겐 공 하나의 여유가 있다지만, 여기서 볼을 던져버리면 그땐 타자와 투수의 심적 부담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볼!”

헛스윙을 유도할 작정으로 타자의 배트가 가장 잘 나오는 높은 볼을 던졌지만, 아쉽게도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이제 타자는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스트라이크 존을 좁혀놓고 좀 애매하다 싶으면 커트, 아니다 싶으면 볼넷으로 걸어나갈 수 있으니까.

장형수는 타자의 성향에 맞춰서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걸칠 수 있는 공을 요구했다.

고개를 저었다.

7개월 동안이나 부단히 노력해서 제구력을 잡은 새로운 구종을 던질 때가 왔다.

2, 3학년 선배들의 파워 커브 사인을 줬다.

장형수가 깜짝 놀라며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는 마운드로 올라왔다.

“파워 커브 던질 줄 알아?”

“던지지도 못하는 걸 던질 것 같아?”

“그건 아니지만… 제구는? 볼넷이 나올 수도 있어.”

“걱정 마.”

단호한 내 음성 때문인지 장형수는 잠시 날 바라보다 마음대로 던지라는 듯 투덜거리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나는 곳을 코스로 잡고 천천히 와인드업을 했다.

무려 7개월 동안 연습을 해온 내 첫 번째 변화구다.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 처음으로 실전에 써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온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연습한 대로, 최상호 코치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칭찬을 해주었던 파워 커브를 던졌다.

쇄애애액.

한복판으로 날아가는 공에 타자가 눈을 번뜩이며 배트를 휘둘렀다.

공은 여전히 이렇다 할 변화 없이 날아갔고, 타자의 배트가 벼락처럼 허공을 쪼개며 나오자 마스크 너머로 장형수의 눈동자가 불안할 정도로 흔들렸다.

맞는다!

타자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걸렸다.

때린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오른쪽 무릎을 스치고 지나가는 왼손을 와락 움켜쥐었다.

부웅!

펑!

“헛스윙! 삼진 아웃!”

완벽해.

어느 누구의 파워 커브도 부럽지 않았다.

< 『국내편 - 014』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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