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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3화 (13/221)

< 『국내편 - 013』 >

『국내편 - 013』

허공에서 부서진 헬멧 파편이 튀었다.

타자 박스에 서 있던 2학년 효준 선배가 쓰러졌고, 동시에 코치와 감독은 물론, 모든 선수들이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포수를 보고 있던 장형수와 심판이 깜짝 놀라 효준 선배의 상태를 체크하는 동안에도 마운드 위에서 직접적으로 공을 던진 송종섭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나, 둘 자신에게 시선이 옮겨지자 살짝 당황한 얼굴로 송종섭이 더듬거렸다.

“시, 실투야, 공이 손가락에서 빠졌단 말이야…….”

2학년 선배들이 화가 난 얼굴로 마운드로 향하자 코치가 재빨리 막아버렸다.

코치로 인해 멈춰선 2학년 선배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 모습을 보고 몇몇 동기들이 1학년 전체 기합 받겠다며 아주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다급하게 효준 선배를 병원으로 옮기고, 연습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효준 선배는 가벼운 뇌진탕 진상만이 있을 뿐, 딱히 문제가 생길 정도로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일이 확대되진 않았다.

학교에서 발생한 일이다보니 학교 차원에서도 성심성의껏 이런저런 정밀 검사를 하고 나서야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의사 소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데드볼.

말 그대로 선수가 공에 맞아 사망을 함으로써 생겨난 이름이다.

당시엔 헬멧도 없었고, 야구공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했다고 한다.

헬멧을 착용하면서부터는 직접적으로 머리에 공을 맞고 며칠 이내로 사망하는 일은 생겨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데드볼의 위험성은 높았다.

150Km가 넘는 공이 타자의 머리를 그대로 강타하면 어떤 식으로든 후유증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실질적으로 데드볼을 맞고 몸에 이상 징후를 발견한 선수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런 선수들이 평균 수명보다 일찍 죽거나, 병에 걸리면 데드볼 때문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는 건 사실이었다.

효준 선배가 송종섭의 공에 맞고 며칠 후에야 1학년들이 전체 기합을 받았다.

일석 고교 야구부의 전통과도 같은 일이기에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지만, 동기들은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송종섭 때문이라며 이를 갈아댔고, 그에 대한 불만과 노골적인 비난이 생각보다 심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송종섭을 따돌리자고 의견을 내지 않았음에도 그는 어느새 모든 동기들에게서 따돌림을 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굳이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송종섭이 예전과 달라진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었고, 송종섭 스스로도 동기들, 선배들과의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의지가 조금도 없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비딱한 외톨이가 되어갔다.

외톨이 송종섭만 제외하면 일석 고교 야구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선후배 규율이 엄격했지만, 선배들은 후배들을 자상하게 챙겨줬고, 후배들 또한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선배들을 깍듯하게 대하니 언제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팀워크 또한 상당히 좋았다.

확실하게 다져져 있는 기강 속에서 선배와 후배가 제 몫을 다하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 생활과 야구부 생활에 적응이 되어갈 무렵이 되자 본격적으로 야구 대회가 시작되었다.

고교 3학년 선배들에게 있어 5월, 7월, 8월, 9월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5월 달에 열리는 황금사자기, 7월 달의 청룡기, 8월의 대통령배 전국대회, 9월의 봉황기는 10월에 열리는 해외 신인드래프트 시장과 11월에 열리는 국내 신인드래프트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끌어 올리느냐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3학년 선배들은 5월부터 시작되는 야구 대회에 항상 선발로 출전을 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1학년들 기강을 잡고, 연습과 훈련을 함께 하는 건 당연히 2학년 선배들의 차지다.

5월에 열린 77회 황금사자기에서 일석 고교 야구부는 전국 넘버 원이라는 명성대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초고교급이라 불리며 전체 유망주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한석 선배가 투수의 모든 부분을 석권하며 당당하게 대회 MVP를 차지했다.

“네가 생각하는 유한석의 장점이 무엇이냐?”

갑작스런 최상호 코치의 질문에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황금사자기에서 보여주었던 유한석 선배의 투구 내용을 벤치에서 꾸준히 봤기 때문에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단점인지를 개인적으로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선배의 장점이라면 기본적으로 고교생이라고 보기가 힘들 정도로 구위가 뛰어납니다. 타자에게 코스를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배트를 밀어버릴 정도로 다른 투수들에 비해 구위가 압도적입니다. 더불어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으로 다양하게 타자를 공략하는 투구 패턴도 상당히 영리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위.

말 그대로 투수가 던지는 공의 위력을 말하는 이것은 투수에게 있어 절대적이라 부를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구위에는 스피드, 무게감, 초속과 중속의 차이, 공의 회전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브먼트 등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타자의 배트 스피드보다 빠른 공, 타자의 힘을 이겨내는 공, 타자의 히팅 포인트를 흔들어 놓는 공 등등. 구위는 단순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결코 단순한 것도 아니다.

정말 쉽게 말하면 타자가 치기 힘들거나, 쳐도 안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공 정도라고 보면 된다.

“유한석의 공은 확실히 당장 국내 프로 구단에서도 통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하지만, 제구력을 더 가다듬지 못하면 국내에서 조차도 1년 안에 공략을 당하기 좋다. 구속이 늘면 좋겠지만, 제구력을 우선으로 여긴다면 지금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공이 지금보다 더 무겁지 않으면 프로에서 활약하는 타자들의 힘을 견뎌낼 수가 없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경우에도 지금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특히, 프로의 상위 타선에게 몇 번 난타를 당해보면 결정구로서의 자신감도 급락해서 구위가 더욱 떨어지겠지.”

그 정도인가?

내가 본 선배의 공은 분명 위력적이었다.

내가 던지는 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선배의 공이 프로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최상호 코치의 말에 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말에 놀란 거냐?”

“…예.”

“네 공과 비교를 했겠지?”

최상호 코치가 피식 웃으며 날 바라봤다.

딱히 대답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기분이 바닥을 친 것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는, 내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 사실은 별것 아니라는 사실은 날 처참하게 짓밟는 기분이었다.

“넌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일 뿐이다.”

그런 말이 위로가 될 리가 없다.

따지고 보면 내게 남은 시간은 2년뿐이었으니까.

2년 안에 유한석 선배보다 훨씬 더 뛰어난 투수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쉬울까 하는 의문만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한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석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와 비교하면 넌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투수다. 고교 2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2년 후에 네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하거나,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

내 기분을 맞춰줄 정도로 자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기에 복잡했던 머리가 다시금 맑아졌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그 어떤 중학선수도 나보다 많은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

유한석 선배 역시 중학시절 투수 부문 랭킹 1위를 차지했었지만, 중학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를 꼽을 때면 열에 여섯은 내 이름을 거론했다.

전설의 반열에 오른 최상호 코치가 직접 관심을 갖고, 실제로도 코칭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도 유한석 선배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야구계의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빗발치는 최상호 코치가 나를 직접 가르치는 일 또한 없었을 거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저번 주에 내가 준 숙제는 다 했나?”

파워 커브의 제구력을 가다듬는 숙제였다.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보면 알겠지.”

최상호 코치는 직접 포수 미트를 들고 홈플레이트로 걸어갔다.

2달 전, 에이전시의 배려로 인해 우리 가족은 마당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에이전시의 도움을 웬만해선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최상호 코치가 나를 가르침에 있어 환경적인 부분이 너무 열악하며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상으로 임대를 해주겠다고 설득을 하는 바람에 넓은 마당이 딸린 전원 주택으로 이사를 올 수 있었다.

당연히 넓은 마당은 남들처럼 정원을 가꾸거나, 멋진 조경을 조성하는 용도로 쓰이질 않았다.

오직 나를 위해 투구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 역시 에이전시의 이사인 최상호 코치의 독단적인 구조 변경이었고, 이에 대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만족을 하거나, 크게 개의치 않는 반면, 지아는 아름다워야 할 정원이 칙칙하다며 꽤나 불만스러워했다.

“열 개 중 여섯 개다. 완벽하길 바라진 않겠지만, 노력하지 않았다는 모습이 보이면 각오해야만 한다.”

포수 위치에 앉아서 미트를 벌리고 있는 최상호 코치를 바라보며 천천히 와인드업을 했다.

< 『국내편 - 013』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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