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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2화 (12/221)

< 『국내편 - 012』 >

『국내편 - 012』

“사람마다 모두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직구와 커브의 구속 차이는 20마일, 즉 32Km내외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커브의 구속 차이이고, 오늘부터 네가 배울 파워 커브는 15마일, 즉 24Km이하의 구속 차이를 보여야만 한다. 물론, 이것보다 더 구속 차이를 줄일 수 있다면 더 좋다. 내가 네게 파워 커브를 먼저 가르치는 이유는 아직 성장기인 네게 팔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구종이 파워 커브라 여기기 때문이다.”

변화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직구 구속이 140Km를 찍는 순간부터 최상호 코치는 서서히 변화구를 익혀도 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무엇보다 최상호 코치가 날 높게 평가하는 건 직구 평균 구속과 최고 구속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최고 구속 143Km, 평균 구속 138~140Km.

평균적으로 최고구속보다 2~3마일 차이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좋은 현상으로 모든 투수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투구라고 칭찬했다.

최상호 코치가 꼽은 내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자, 강점은 부드러운 투구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직구 구속이라고 했다.

나 역시 그 부분에 있어서는 같은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장점이야 말로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일지도 몰랐다.

억지로 쥐어짜내듯이 구속을 올리는 투수들을 보면 항상 불안한 느낌이 든다.

분명 스스로도 자신의 몸에 엄청난 학대를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다.

그건 곧,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빠른 공을 던지려고 하는 건 투수라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자, 습성이다.

예전에는 나 역시 그런 본능과 습성에 무리해서 공을 던진 적이 있었고, 그걸 본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혼나야만 했다.

당시 아버지는 공 몇 개 던지고 선수 생활 그만두고 싶냐는 말로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다.

그 이후,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무리해서 공을 던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커브를 배웠다고 해서 그것을 통해 억지로 삼진을 잡으려는 생각 따윈 버려라. 네가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은 직구여야 한다. 네 직구가 타자들에게 위력을 발휘하면 덩달아 커브를 주의하게 될 테니까. 요즘 네 직구의 회전수가 정체기에 빠진 것 같으니 그 부분에 있어서도 항상 고민을 해라. 혹시 모르지, 네 녀석이 지금 상태에서 조금만 더 직구의 회전수를 늘리면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지게 될지도.”

라이징 패스트볼.

장난식으로 툭 내뱉은 최상호 코치의 말이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꿈꿔오던 최고의 패스트볼이었다.

물리학적으로 직구가 떠오를 수 없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간혹 설명하기 힘든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렸을 적에 찾아본 라이징 패스트볼에 대한 자료에는 엄청난 백스핀(공의 진행 방향과 반대의 회전)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백스핀의 수를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었지만, 결국 라이징 패스트볼은 단 한 번도 던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 인해 직구의 구속이 늘어났고, 구위 또한 상승했기에 결코 무의미한 일만으로 끝나진 않았다.

오히려, 보다 위력적인 직구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에 백스핀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한 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라이징 패스트볼에 대한 동경과 도전은 확고했다.

마운드 위에 설 수 있을 때까지는 반드시 한 번은 던져보고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도 했다.

“오늘은 파워 커브의 그립을 손에 익히는 일부터 배우도록 한다. 손가락 감각이 유독 좋은 편이니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손 쉽게 파워 커브를 던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주 1회.

최상호 코치에게 받는 레슨은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최상호 코치는 야구에 관해선 무엇이든 나에게 가르쳤다.

마운드 위에서 투수가 지니고 있어야 하는 마음가짐부터 투수에게 필요하다 싶은 조언은 시도 때도 없이 해주었다.

또, 투수가 가장 주의해야 하는 부상 부위, 상황, 몸의 이상 징후 등 부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주의는 매번 듣는 소리였다.

주 1회 레슨이었지만, 시간 제한은 없었기에 어떤 때는 훈련을 마치고 동영상을 함께 보며 타자의 자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버릇이나, 볼 배합, 투수의 투구폼에 대한 설명 등으로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대화를 나누기는 일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역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함께 자리했다.

여전히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아버지였고, 야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기에 최상호 코치와의 대화를 은근히 기다리는 날이 많을 정도였다.

“지아야, 오늘 오빠랑 영화 보러 갈래?”

일주일 중 일요일은 유일하게 야구를 하지 않는 날이다.

꾸준한 훈련만큼이나 규칙적인 휴식이 있어야만 했기에 일요일에는 야구공만 만지작거릴 뿐, 절대 투구를 할 수 없었다.

기초 체력 훈련인 런닝과 스트레칭 등은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하는 습관인지라 빼놓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저번 주까지만 하더라도 에이전시에서 붙여 준 영어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영어 선생님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에이전시에서 새롭게 영어 선생님을 붙여준다고 해서 다음 주에 새로 만나기로 한 상태라, 오늘만큼은 완벽한 자유의 몸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히어로 영화가 재밌다고 소문이…….”

“나 남친이랑 데이트 갈 건데?”

“…남친?”

충격을 먹은 얼굴로 지아를 바라봤다.

엄마를 닮아서 얼굴이 꽤 예쁘장했지만, 그래봐야 내 눈엔 초등학교 5학년짜리 꼬마 여자애였다.

그런 지아에게 남자친구라니.

“꼬맹이가 무슨 남자친구를 사겨? 어머니랑, 아버지는 알고 계신거야? 뭐하는 놈이야?”

“누가 꼬맹이라는 거야! 그리고 여자친구도 하나 없는 오빠가 바보지! 엄마랑 아빠도 다 알아! 뭐하는 놈? 당연히 학교 다니는 놈이지! 으이구!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 멍청이!”

지아는 한심하다는 듯 날 바라보고는 현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지아가 나가버린 공간에서 나는 너무 황당해서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한참을 소파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여자친구라…….”

여자친구라는 존재가 과연 야구에 도움이 될까?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고,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부질 없는 일이야.”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야동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음란한 야동이 아닌 건전한 야구 동영상.

고작 야구 동영상 하나 찾아보는데도 온갖 팝업 창이 우후죽순처럼 뜨며 옷을 헐벗은 여자들의 사진이 튀어나왔다.

“온 세상이 음란함에 물들었어.”

아… 근데 왜 창을 지울 수가 없는 거지?

@

퍼엉!

“스트라이크!”

2학년 선배는 몸 쪽을 꽉 채우며 들어오는 직구에 휘파람을 불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2스트라이크를 잡힌 상황에서도 2학년 선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두 눈동자는 굉장히 침착하면서도 투지에 불타올라 당장이라도 마운드 위로 달려들 것 같았다.

“공 좋다! 이대로만 가자!”

장형수는 나에게 공을 던져주며 그렇게 소리쳤고, 난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1학년 대 2학년의 연습 시합이다.

1학년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실하게 감독과 코치에게 어필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나 같이 중학 시절 천재라 불리며 각 학교의 핵심 멤버였던 만큼 자신감 하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실제로도 1회 초, 2회 초 공격에서 1학년들은 2학년 선배의 공을 난타 수준으로 두드리며 5점이나 뽑아놓은 상태였다.

반면, 3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나는 2학년 선배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4회 말, 타순이 한 바퀴 돌아 1번 타자와의 승부 중이다.

내가 가장 즐겨 던지는 몸 쪽 꽉 찬 스트라이크로 2스트라이크를 만들어 놓고 포수인 장형수를 바라보자 그는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공을 요구해왔다.

방금 몸 쪽 공으로 인해 2학년 선배가 살짝 뒤로 빠져 있었기에 매뉴얼과도 같은 투구 패턴이었다.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천천히 와인드 업을 한 상태에서 바깥쪽 살짝 빠지는 공을 던졌다.

“볼!”

살짝 움찔하는 것 같으면서도 끝내 배트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장형수는 똑같은 코스로 공을 요구했고, 그대로 공을 던져줬다.

이번에도 역시나 어깨를 움찔할 뿐, 배트가 돌아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몸 쪽 높은 공이다!’

장형수의 미트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공을 던졌다.

웬만해선 배트가 나올 수밖에 없는 코스였고, 예상대로 배트가 나왔다.

따악!

아슬아슬하게 커트해내며 삼진을 면한 2학년 선배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높은 공을 보여줬으니 역시 정석대로 낮은 공.

스트라이크 존을 확실하게 찌르고 들어가면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딱!

다시 한 번 커트를 해버렸다.

1회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4개나 되는 공을 커트하고, 하나의 공이 볼이 되면서 풀카운트가 됐다.

장형수는 어느 코스로 공을 유도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고, 그런 녀석에게 나는 한가운데를 던지겠다고 사인을 보냈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다 장형수가 피식 웃으며 미트를 팡팡 치며 소리쳤다.

“자자! 결정구 한 번 가자!”

확실히 녀석은 좋은 포수다.

센스가 있었다.

한 가운데 공을 던질 건데도 녀석은 티가 나도록 몸을 움직이며 타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고, 난 크게 와인드업을 하고는 힘껏 공을 내던졌다.

쇄애애액- 부웅!

파앙!

“헛스윙! 아웃!”

배트 스피드가 따라오지도 못했고, 설마하니 한 가운데를 공격적으로 넣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듯 2학년 선배가 헛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봤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3루 쪽 더그아웃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2번 타자와도 9개나 공을 던져야 했고, 3번 타자에게는 기어코 안타를 얻어맞고 말았다.

4번 타자에게는 딱 1개의 공만 던졌고, 그것이 펜스를 맞으면서 처음으로 실점을 하고 말았다.

이후 5번 타자는 뜬공으로 잡으며 이닝을 마쳤다.

3이닝을 던진 것보다 방금 1이닝을 던진 것이 훨씬 더 피로감이 심했다.

무엇보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2학년 선배들의 타격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에 우리를 상대로 장난을 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삼진 아웃!”

타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난타에 가까운 타격 능력을 보여 줬다는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 속수무책으로 삼진을 당하거나, 그라운드 볼에 휘말려선 손쉽게 아웃 카운트를 내줬고, 공격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다시 수비를 위해 마운드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선배들 진심으로 하기 시작했으니까 좀 어렵게 가자.”

장형수가 마운드로 향하는 나에게 말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투구를 시작했다.

2개의 피안타를 허용했지만, 실점을 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며 5회를 마쳤다.

“지혁이 수고했다. 아이싱 시작하고, 주천이가 올라가라.”

5이닝 1실점.

2학년 선배들을 상대로 상당한 호투를 벌였다며 3학년 선배들이 칭찬을 해주었지만, 실질적으로 3이닝은 무의미한 이닝이었으니, 2이닝 1실점이라고 봐야 옳았다.

만약, 1이닝부터 2학년 선배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면 6이닝 3실점이라는 괜찮은 성적표를 받음에도 투구수가 한계에 몰려 7이닝을 채울 수가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것조차 현재의 수치로 따졌을 가능한 이야기지, 실제로 6이닝 동안 3실점만 했을까? 하는 의문에는 자신이 없었다.

강했다.

전국 최강 고교 넘버 원이라 불리는 일석 고교의 야구부는 확실히 강했다.

“완전 난타 당하네. 주천이는 안되겠다.”

내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박주천은 1이닝 동안 4실점을 하며 완전히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결국,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 수고했다며 주천이를 위로하고는 투수를 교체했다.

“송종섭!”

선배들의 눈을 피해가며 벤치 구석에서 하품을 하고 있던 송종섭이 느릿느릿 글러브를 챙겨들고는 마운드로 향했다.

“너 안 뛰어?”

2학년 선배 중 한 명이 눈을 부라리자 그제야 송종섭의 걸음이 약간 빨라졌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찌푸리는 모습이 전형적인 불량아의 느낌이 풍겼다.

“저 자식 진짜 마음에 안 드네!”

“그러니까! 선배들이 벌써 벼르고 있더라고. 저 새끼 때문에 우리까지 단체 기합 받는 거 아니야?”

“씨발, 짜증나네.”

동기들도 송종섭을 딱히 달가워하지 않고 있었다.

훈련을 할 때에도 항상 대충대충 했고, 선배들의 눈을 살살 피해 다니면서 궂은 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뺀질거림도 동기들 사이에선 유명해져 있었다.

거기에 같은 동기들에게는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몇 번이나 싸움이 날 뻔했을 정도였다.

나 역시 녀석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내 주변을 알짱거리면서 얼마나 깐죽거리는지 보는 눈만 없으면 진심으로 한 대 후려쳤을지도 몰랐다.

“저 새끼 제구 안 되는 거 봐라.”

“공만 빠르면 뭐해. 제구가 안 되는데.”

“저런 새끼는 투수 시켜놓으면 사람 죽일 놈이라니까.”

동기들의 조롱 속에서도 건성건성 연습투구를 마친 송종섭은 심판이 경기를 재개시키자 조금은 달라진 눈동자로 자세를 잡더니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강력하고 빠른 강속구를 내던졌다.

콰작!

송종섭이 던진 공이 2학년 선배의 헬멧을 그대로 강타했다.

< 『국내편 - 012』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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