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11』 >
『국내편 - 011』
쇄애애액- 퍼엉!
포수 미트 가죽이 터질 것처럼 포구음이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뭐가 저렇게 빨라?”
“쟤가 걔야?”
“장난 아닌데!”
“우리랑 같은 나이인데 어떻게 저런 빠른 공을 던지지?”
“미치겠다! 안 그래도 투수 자리 빡빡한데 저런 괴물까지 있을 줄이야!”
놀라웠다.
내가 던지는 공이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마운드 위에 서서 거만하게 턱을 들고 있는 녀석의 이름은 송종섭.
장형수의 말대로 정말 굉장히 빠른 공을 던졌다.
최소한 방금 공은 150Km 중반은 되어 보였다.
“저런 공은 노력한다고 던질 수 있는 공이 아니야. 타고 나야해.”
누군가의 말에 나 역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야구를 하기 위한 몸으로 다듬어진 나였지만, 솔직히 말해 송종섭과의 재능 차이는 굉장히 컸다.
17살에 150Km의 공을 저렇게 쉽게 던진다는 건 남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몸을 가졌다는 증거다.
“어때? 굉장하지?”
장형수가 곁에서 나를 툭 쳤다.
장난끼 가득한 익살스런 웃음을 머금고 날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전혀 달랐다.
이 녀석도 맹수다.
송종섭의 공을 보는 순간 그 공을 치고 싶다는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증거다.
“굉장하네.”
솔직하게 시인했다.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필요가 없으니까.
거만하게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송종섭의 모습이 약간은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10구를 던져서 겨우 4구만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그것도 포수를 보고 있는 2학년 선배가 요구한 방향과는 일치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투수로서의 재능은 엄청나지만, 자질은 미달이다.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원하는 곳으로 던지질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저런 난폭한 그저 폭력에 불가한 공으로는 절대 투수가 될 수 없다.
아니, 되선 안 된다.
저런 공이 자칫 잘못해서 타자의 몸으로 향한다면 그땐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투수는 제구가 되는 공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송종섭은 내 경쟁 상대로서 가차 없이 탈락이다.
만약 저 난폭한 공을 다스리게 된다면?
끔찍한 경쟁자가 생기게 되는 거다.
“차지혁.”
코치의 부름에 천천히 마운드로 향했다.
마운드에 오만하게 서 있던 송종섭이 내려오며 나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전국 랭킹 1위의 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해볼까?”
살짝 비틀려진 웃음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이 표정이 꽤 불쾌했지만, 저런 치기어린 도발에 흥분하는 게 더 우습게 보인다는 걸 알기에 담담한 얼굴로 마운드에 올라 흙부터 다듬었다.
탁탁탁.
마운드의 흙을 다듬으며 달라붙은 스파이크 바닥의 흙들을 피처 플레이트 위에 털어내고는 로진백을 집어 들었다.
하얗게 달라붙은 송진 가루를 입으로 불어 일부 털어내고 포수를 바라보니 공을 던져줬다.
손가락으로 공을 가볍게 돌리며 실밥을 잡았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컸던 야구공이 이제는 손바닥 안에 폭 감싸여 있었다.
작게 호흡을 가다듬고 피처 플레이트 위에 왼발을 올리곤 포수를 바라봤다.
한복판 스트라이크 존에 미트를 벌리고 있었다.
준비 운동으로 몸도 충분히 풀어뒀고, 캐치볼로 어깨도 적당히 달궈놓은 상태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에 적당한 구속으로 공을 던졌다.
펑!
“구속이 너무 느린 거 아냐?”
“차지혁이면 그래도 강속구 투수잖아?”
“종섭이 뒤에 공 던지니까 차지혁 공도 별거 아닌 것 같다.”
“그러게. 역시 투수는 공이 빨라야 한다니까.”
떠들어대는 소리를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 공을 던졌다.
이번에는 몸 쪽이었고, 여지없이 요구한 곳으로 공을 꽂아 넣었다.
세 번, 네 번, 그리고 다섯 번, 여섯 번까지 포수가 원하는 방향에 정확하게 공을 던지자 그제야 날 물어뜯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녀석들이 이빨을 감추기 시작했다.
“이야, 제구는 확실하네!”
“쟤 원래 제구력으로 넘버 원 소리 들었던 애야.”
“아닌 말로 공 아무리 빠르면 뭐하냐? 제구가 되야지!”
“나도 수비할 때, 볼넷 남발하는 새끼들 보면 아주 마운드에서 끌어내리고 싶다니까.”
“당연하지! 볼넷이 제일 짜증나.”
“볼넷은 그나마 양반이지. 난 타석에서 데드볼 맞을 때마다 진심으로 마운드로 달려가 옆차기 날리고 싶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야.”
“하긴, 데드볼 맞으면 투수 새끼 죽여 버리고 싶어지지.”
시끌시끌 신입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떠들어대자 선배 중 한 명이 조용하라고 눈을 부라렸다.
조용해지자 더욱더 집중해서 투구를 할 수 있었다.
신입생 실력 테스트 겸, 시범투구에서 완벽한 제구력을 보여주는 대신 140Km에 이르는 강속구는 단 1구도 던지지 않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어디 이상 있는 건 아니지?”
코치의 물음에 나는 절대 아니라고 대답하곤 신입생 자리로 돌아왔다.
장형수는 역시 넘버 원 투수의 제구력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워줬지만, 송종섭은 다시 한 번 날 자극시켜는 듯 건방지게 말을 해왔다.
“고작 그런 지루한 공 밖에 못 던지는 거야? 나 참, 난 또 랭킹 1위라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별 거 없네. 그런 소녀 어깨로 랭킹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겠어? 하긴, 고만고만한 놈들 사이에서 랭킹 1위네 어쩌네 하는 게 더 우습지.”
송종섭의 도발에 주변에 있던 동기들은 물론, 선배들까지도 흥미롭게 나와 송종섭을 쳐다보고 있었다.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나와는 다르게 약간 통통하게 보이는 송종섭은 얼굴만 봐서는 꽤나 놀아본 느낌이 났다.
꼭 예전에 내 앞을 막고 시비를 걸었던 이름도 모를 녀석의 냄새가 풍겼다.
내가 물렁하게 보였을까?
한 번 참아주면 계속해서 도발을 해올 것 같았기에 확실하게 해두겠다는 마음으로 대꾸했다.
“투수는 무법자가 아니야. 지금은 네가 다른 애들보다 빠른 공을 던지니까 우쭐한 모양인데, 과연 졸업할 때에도 네가 가장 빠른 공을 던질까? 프로에 가서도 네가 최고일 것 같아? 착각 하지마. 네가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너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는 분명 있고, 설령 네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다 하더라도 그런 형편없는 제구력을 가진 투수를 마운드 위에 올려 줄 감독은 없어. 고만고만한 놈들? 그러는 넌 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 네가 살던 곳은 어디 외계냐? 그리고 내가 소녀 어깨면 넌 아저씨 어깨냐?”
아, 마지막 말은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하다 보니 너무 유치한 말을 하고 말았다.
내 말에 송종섭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해갔고, 당장이라도 날 향해 주먹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폭력 사태를 일으켜 선배들과 코치, 감독의 눈에 찍히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 송종섭이 제 성질을 참아주기만을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송종섭도 눈치라는 게 있는지 주먹을 휘두르는 최악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날 노려보는 모습이 언제고 터질 시한폭탄처럼 느껴져서 앞으로 귀찮은 일이 한 번은 벌어질 것만 같았다.
“신입생들! 집중 안 할래?”
선배의 고함 소리에 나와 송종섭의 기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동기들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날 노려보는 녀석의 눈길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지만,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투수들의 투구 테스트가 끝나자 타자들의 타격 테스트가 벌어졌다.
일석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건 이미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였기에 타자들의 타격 능력은 상당했다.
중학교 시절 각 학교마다 3번, 4번을 치던 중심 타자들이라 그런지 실력만큼 자존심도 셌기에 서로 경쟁을 하듯 타격 실력을 뽐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녀석이 있었다.
까앙!
“또 넘겼어!”
“저 자식 힘이 완전 괴물이야!”
“도대체 몇 개를 넘기는 거야!”
“역시 홈런왕답네!”
장형수였다.
신입생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가장 커다란 체격에 어울리는 무지막지한 파워로 치는 족족 홈런을 때려댔다.
어차피 마음껏 휘두르라고 던져주는 배팅볼이라고 하지만, 저렇게까지 홈런을 잘 때려내는 걸 보면 타격 재능 하나는 신이 내려준 선물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번 일석 고등학교 야구부 신입생들 중 최고의 재능을 가진 녀석들은 투수에선 송종섭이었고, 타자에선 장형수였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전국 랭킹 1위까지 차지한 나였지만, 아쉽게도 타고난 재능에서는 저 두 녀석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내가 더욱더 노력해야만 한다는 가장 확실한 채찍질이었다.
< 『국내편 - 0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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