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10』 >
『국내편 - 010』
전국 최강 넘버원 고교 야구부.
1990년도에 야구부가 설립된 일석 고등학교는 7년 동안 이름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야구부였다.
1997년도에 들어서 야구부가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전설이 되어버린 투수 황종연이 있었다.
프로 생활 15년 동안 무려 255승이라는 경이적인 승수를 쌓은 이 위대한 투수가 바로 일석 고등학교 출신이다.
황종연을 시작으로 권준혁, 이정범, 양천일, 석지환, 오영, 구영수 등등 대스타가 되는 선수들이 모조리 일석 고등학교에서 배출되었다.
7년 동안 무명의 야구부였던 일석 고등학교는 황종연을 시작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 유명세로 인해 중학 야구 유망주들을 하나, 둘 영입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고교 넘버 원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명문의 반열에 올라서자 일석 고등학교는 더욱더 많은 유망주를 싹쓸이하며 고교 야구 절대 강자로 군림을 하고 있었다.
“너! 왜 머리 안 밀었어?”
“죄송합니다!”
“내일까지 머리 밀어.”
“네!”
일석 고교 야구부에는 실력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극도로 짧은 헤어 스타일, 푸르스름하게 두피가 보일 정도의 삭발이었다.
더불어 요즘은 보기 드물다는 선후배 서열 역시 상당히 엄격했다.
운동부에서 선후배 서열이 엄격한 건 당연한 소리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강도가 줄어들거나, 거의 퇴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석 고교 야구부는 아직까지도 굉장히 엄격한 선후배 서열 관계로 인해 일부에선 시대를 역행하는 꼴통 집단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그런 조롱에 흔들릴 정도로 일석 고교 야구부는 가볍지 않았고, 오히려 선후배 관계가 끈끈하기로 유명했기에 모든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규율과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차지혁?”
“네.”
“잘 부탁한다.”
3학년 선배이자, 일석 고교 야구부 주장 유한석은 초고교급이라 불리며 전국 고교야구 선수 랭킹 투수 부문 1위이자, 전체 유망주 부문 1위인 선수다.
최고 구속 154Km의 묵직한 직구에 당장 프로에서도 써먹을 수 있다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는 유한석은 내가 이루고 싶은 고등학생으로서의 커리어를 모두 이뤄놓은 선배였다.
소문에 의하면 유한석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해외 신인 드래프트 시장에 나간다고 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곧바로 프로 선수 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다.
“작년에 에이전시 계약 했다면서?”
“네.”
이어서 유한석은 다른 1학년 신입생들에게도 에이전시 계약을 했거나, 계약을 진행 중인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고,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열 두 명이나 되는 동기들이 손을 들었다.
“팀의 주장이자, 선배로서 미리 충고하는데 에이전시라는 방패를 믿고 철없이 행동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일석 야구부에서 에이전시 계약 하지 못할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여긴 일석 야구부다. 한 지역에서 최고라 평가를 받지 않으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나만 잘났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다른 학교로 가라. 우리는 일석 야구부다! 최고의 재능을 가진 최고의 유망주만이 모여 있는 전국 최강 넘버 원 고교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묘한 간질거림이 심장에서 느껴졌다.
명성 중학교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묘한 소속감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중학 시절과는 분명 아주 크게 다른 야구부 생활을 할 것만 같았다.
“반갑다! 차지혁! 난 장형수라고 한다!”
도대체 키가 몇이야?
어느덧 182cm를 넘겨버린 나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녀석이 큼지막한 손을 내밀었다.
“네 소문은 정말 많이 들었다. 네가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진다면서? 벌써부터 네 공을 받을 생각하니까 괜히 두근거린다. 흐흐!”
생각났다.
작년 전국 중학야구 선수 랭킹 포수 부문 1위를 차지한 장형수.
강한 어깨와 포수 블로킹 능력이 굉장히 빼어나고, 무엇보다도 타격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포수 기근 현상이 심각한 국내외 모든 프로 구단의 갈증을 단박에 풀어 줄 포수 유망주로 꽤나 기대감을 받고 있는 녀석이었다.
190cm를 훌쩍 넘길 것 같은 큰 키에 얼마나 웨이트를 했는지 절대 고등학교 1학년 생으로 보이지 않는 체격은 확실히 피지컬적인 측면에서는 모든 감독들이 침을 흘릴만했다.
전국 대회에서는 만난 적이 없지만, 녀석의 이름은 제법 자주 들을 수 있었다.
“3연타석 홈런왕?”
“내가 좀 유명하긴 하지! 흐흐!”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익살스러운 웃음이었다.
장형수는 작년 전국 대회에서 소속 야구부가 8강전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홈런왕 타이틀을 따냈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기록은 3연타석 홈런을 터트렸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홈런왕을 차지할 정도의 파워에다 정교함까지 갖추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어? 박주천이다! 어이! 박주천~!”
장형수는 운동장 한쪽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신입생을 가리키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상대는 장형수를 발견하자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고는 아예 몸을 돌려버렸다.
“저 녀석이야.”
무슨 소리냐는 듯 장형수를 바라보자 녀석이 예의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3연타석 홈런 맞은 투수. 흐흐!”
그래서 저런 반응이었구나.
박주천이라는 이름도 낯설지 않았다.
곧바로 기억을 해냈다.
백석 중학교 에이스 박주천.
아쉽게도 나와는 붙어보질 못했다.
작년 KBO중학야구대전 4강에서 백석 중학교와 만났지만, 8강 전에서 박주천이 완투를 하고 몸에 이상 신호가 와서 4강 경기에는 출전을 하지 못했던 거다.
무엇보다 박주천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역시 일석 고교 야구부에 들어오니까 긴장감이 팍팍 드네. 중학 랭킹 1, 2위의 투수가 모조리 우리팀 투수가 될 줄이야! 너희들 공 받을 생각을 하니까 진짜 흥분된다. 흐흐흐!”
여전히 스트레칭을 묵묵히 하고 있는 박주천을 바라봤다.
항상 내 이름 뒤에 가려져 있는 박주천을 사람들은 2인자라고 불렀다.
그래서였을까?
신입생 첫 모임 때, 날 바라보는 박주천의 시선이 꽤 사납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너도 긴장 좀 해야 할 거다.”
“왜?”
“송종섭이라고 우리 동기 중에 투수 하나가 있거든. 그런데 걔가 진짜 엄청 빠른 공을 던진다고 하더라고. 동기 중 유일하게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우리 야구부에 입부를 했기에 좀 궁금해서 알아봤거든. 흐흐!”
“빠른 공? 얼마나 빠른 공?”
“대충 듣기로는 150Km를 넘긴다고 하던데?”
17살에 150Km의 공을 던진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굉장히 드문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제구가 전혀 안 되나봐. 하긴, 그런 무지막지한 강속구를 제구까지 잡으면서 던지면 그게 괴물이지.”
맞는 말이다.
아직 한창 성장 중인 고교생이 제구까지 잡히는 150Km의 공을 던진다?
솔직히 아주 희박한 일이다.
프로 선수들도 150Km대의 빠른 공을 던지면서 제구를 잡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니까.
“그러고 보면 내 눈앞에 진짜 괴물이 서 있었네. 흐흐!”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는 장형수였다.
“내가 괴물이라는 거야?”
“당연하지! 140Km에 근접하는 직구를 제구까지 제대로 잡으면서 던지면 그게 괴물이 아니고 뭐겠어? 솔직히 타자의 입장에서 150Km의 공을 던지는 투수하고, 140Km의 공을 제구까지 잡아가면서 던지는 투수 중 누가 더 상대하기 힘들 것 같아?”
“타자마다 다르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안다.
“다르긴! 너야! 너! 100명한테 물어보면 100명 전부 후자를 선택한다고!”
녀석에게 얼마 전 142Km까지 구속이 올랐다는 말을 해서 더 놀라게 해줄까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유치한 짓이었으니까.
그보다 나랑 같은 나이임에도 150Km의 공을 던지는 녀석이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오기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제구를 배제하고 던진다면 나 역시 거의 근접하게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공을 던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제구를 완벽하게 잡고 던지는 강속구다.
고교 졸업 때, 누가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있을까?
은근히 경쟁심이 생겨났다.
< 『국내편 - 01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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