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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9화 (9/221)

< 『국내편 - 009』 >

『국내편 - 009』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운동장을 뛰는 건 굉장한 고역이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런닝을 하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니지 않고서야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에 2시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빼놓지 않고 뛰었다.

런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30분을 뛰었고, 서서히 시간을 늘려나갔다.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은 2시간을 뛰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2시간 이상 런닝 시간이 늘어날 확률이 없었다.

2시간 이상의 런닝은 오히려 하루 일과를 망칠 수 있었으니까.

선발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체력이다.

아무리 위력적인 강속구를 던지고, 마구 수준의 변화구를 던질 줄 안다 하더라도 긴 이닝을 책임지며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려면 체력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현대 야구에서 선발 투수의 한계 투구수는 대략 100구를 기준으로 잡는다.

사람에 따라 더 많은 공을 던지기도 하고, 적게 던지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선발로 등판한 투수가 한 경기에서 충분히 던졌다 싶은 투구수는 100구 정도다.

많은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서 9이닝을 완투할 수도 있고, 5이닝도 책임지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와야 할 수도 있다.

산술적으로 따져 삼진으로 모든 타자를 잡는다 하더라도 9이닝 동안 던진 투구수가 81개다.

이건 한 타자당 3구만 던졌을 때의 일이고, 실제로 볼을 던지거나, 타자가 파울을 치거나, 고의적으로 커트하는 공까지 따지면 선발 투수가 던지는 100개의 공은 절대 여유 있는 투구수가 아니다.

세상 그 어떤 투수도 첫 번째 공과 백 번째 공을 같은 위력으로 던질 순 없다.

투구수가 많아질수록 공의 구위가 하락하는 건 절대 막을 수 없는 문제다.

그렇기에 모든 투수들은 체력을 길러 최대한 구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또 하나, 체력을 길러야 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투수는 자연적으로 본래의 구위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무리해서 공을 던지게 되는데, 그때 가장 많은 부상을 입게 된다.

또 체력이 떨어지면 투구시 몸의 밸런스가 깨지며 부상을 입는 경우도 아주 흔한 일이라, 투수에게 체력 트레이닝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하아, 하아…….”

슬쩍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니 2시간 런닝이 끝나 있었다.

서서히 달리던 속도를 줄여나갔고, 끝내는 천천히 운동장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어깨를 풀었고, 팔꿈치와 손목도 부드럽게 회전시키며 근육을 풀어줬다.

마지막으로 그늘진 나무 아래에 서서 스트레칭으로 런닝의 마무리 운동을 마쳤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그대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어느덧 중학교 3학년 생활도 절반 가까이 지나가고 있었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명성 중학교의 에이스로 전국중학야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했고, 팀 우승과 최우수선수상을 다시 한 번 받음으로써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나 지나 있었다.

작년보다 빠르게 발표된 전국 중학야구 선수 랭킹에서 투수 부문과 유망주 부문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냈다.

그 때문인지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고교, 국내외 프로 구단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고교 입학이고, 그 대상 학교는 고교 최강이라 불리는 일석 고등학교였다.

아버지와 날 3개월 째 가르치고 있는 최상호 코치 역시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처음에는 고교 넘버원인 일석 고등학교가 아닌 전국 대회나 겨우 나갈 수 있을 팀을 선택할까 싶기도 했다.

단순한 치기였다.

실력 없는 학교에 입학해서 내 힘으로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성취감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단순한 치기일 뿐이었다.

야구는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는 운동이다.

아무리 리그를 씹어 먹을 수 있는 최강의 에이스 투수가 있다 하더라도 타선이 약한 팀, 기본 수비가 안 되는 팀은 절대 우승 언저리에도 갈 수 없다.

투수는 최전방에서 상대팀의 공격을 방어해내는 방패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막기만 해선 승리를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완벽하게 막아낸다 하더라도 최상의 결과는 무승부일 뿐이다.

공격을 이끌어 나가는 타선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평생 무승부로 끝이 나고 만다.

어정쩡한 실력을 지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간 화려한 중학교 시절과는 다르게 고등학교 3년 내내 변변한 커리어 하나 쌓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컸다.

그러느니 아예 고교 넘버원이라 불리는 최강 일석 고등학교에 진학해 당당히 에이스로 우뚝 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엘리트 코스의 전형이었고, 누구나가 바라는 인생의 비단길이다.

세상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정상에 선 사람을 존경스럽게 바라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정상에 선 사람을 더욱 동경한다.

딱히 동경을 바라는 건 아니고, 그저 누구나가 감탄할 만큼의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완성시켜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 다음 달에 열리는 한국프로야구 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가 우선이다.

전국중학야구선수권 대회처럼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팀 우승과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중학 야구의 역사를 새로 쓸 작정이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모든 학교에서 명성 중학교와 날 견제할 것이 분명했고, 무엇보다 다른 학교의 에이스들처럼 변화구를 전혀 던지질 않는 나였기에 예상외로 난타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변화구에 대한 갈망은 조금도 없었다.

“올해까지만.”

직구다.

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쳐보라는 식으로 강력한 직구를 던져 줄 거다.

난타를 당하면 내 직구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또래들 중 어느 누구도 제대로 칠 수 없는 직구를 던진다는 걸 확인할 뿐이다.

@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대회 2연패였다.

동기와 후배들이 마운드로 달려오며 환호성을 내질렀고, 감독과 코치 역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대단합니다. 이것으로 명성 중학교는 사상 첫 한국프로야구 협회에서 주관하는 ‘KBO중학야구대전’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명실상부 명성 중학교가 중학 야구 최강임을 입증하는 날입니다. 명성 중학교 대단합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중학 야구 1, 2위를 다투는 동학 중학교와 백석 중학교를 8강과 4강에서 모두 격파하면서 손쉽게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작년 대회에 이어 올해 대회에서도 최우수선수상이 확실시 되는 차지혁 선수입니다. 사실상 차지혁 선수가 선발로 등판해서 마운드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과연 명성 중학교가 대회 2연패를 달성했을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워낙 투수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는 경향이 큽니다. 특히 중고교 야구는 그 편차가 더욱 심한 편이라 올해를 마지막으로 졸업을 하게 되는 차지혁 선수가 없는 명성 중학교가 내년에 어떤 성적을 거둘지가 중요합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만큼 차지혁 선수가 차지하는 명성 중학교의 전력이 대단히 크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보았다시피 차지혁 선수는 중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피칭으로 말 그대로 대회를 초토화 시켰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차지혁 선수는 아직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피칭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과 오직 직구 단 하나의 구종만을 던진다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바람직한 상황은 아닙니다만, 워낙 요즘은 중학교 때부터 팀의 에이스라 불리는 선발 투수들이라면 2가지 이상의 변화구나 변형 패스트볼을 구사하지 않습니까? 그에 반면 차지혁 선수는 오직 직구라는 단 하나의 구종만으로 타자를 상대하면서도 평균자책점 1점대를 유지했습니다.

-굉장한 일이지요.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차지혁 선수의 재능이 대단한 것도 있겠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시피 차지혁 선수의 평소 운동량이 대단하다고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이걸 생각해본다면 많은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더불어 차지혁 선수는 본능적으로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밖에 볼 수 없으니 투수로의 재능은 타고 났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차지혁 선수는 야구 선수로서의 성장 과정의 정석이라 할 정도로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차지혁 선수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 더욱더 기대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기대가 되는 선수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차지혁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로 성장하게 될지 흥분이 될 정도입니다. 지금처럼 위력적인 직구를 더욱 가다듬고 거기에 변화구까지 더한다면 굉장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조금은 이른 말일지 모르지만, 향후 메이저리그를 평정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투수를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현재 차지혁 선수의 전담 코치로 있는 최상호 씨의 경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면 메이저리그 마운드 위에 우뚝 서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하는 차지혁 선수의 모습도 결코 상상만은 아닐 겁니다.

-박인수 해설위원께서 말하신 최상호 씨라면 메이저리거였던 토종 에이스 최상호 선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올해부터 차지혁 선수를 개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상호 선수라면 정말 대단한 투수였죠. 차지혁 선수에겐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차지혁 선수라면 분명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야구 관계자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전국중학야구선수권 대회에 이어 KBO중학야구대전에서도 우승과 동시에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함으로써 중학생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작년보다 높아진 평균자책점 때문이었다.

중학생으로서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기록적이긴 했으나, 확실히 직구 하나만으로는 완벽한 투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이번 대회에서 최고 구속이 139Km까지 나오면서 140Km를 목전에 뒀다는 점이다.

지금의 발전 속도라면 고교 입학 전에 140Km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커브를 익히면 확실히 한 단계 더 발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언제 지났다 싶을 때 어느덧 눈발이 거세게 휘날리는 겨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고, 봄이 되자 전국 최강이라 불리는 일석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 『국내편 - 009』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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