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07』 >
『국내편 - 007』
화려하게 등장하며 이름을 알린 중학교 2학년 생활이 끝나고 3학년이 되자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전화를 해오거나,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 본업마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남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이 있다거나,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게 아니었기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금씩 불안감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직장을 다니질 않았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남들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홀로 자립을 해온 아버지는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에 입학해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하는 일은 인터넷 작가다.
인터넷에 글을 연재하면서 수입을 내는데 한 때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보다도 많은 연봉을 벌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그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입으로 우리 집 가계 상황은 매년 예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들쑥날쑥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작가 생활을 해온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어 착실하게 돈을 모으는 성격이라 어머니와 결혼을 할 때 작은 아파트라고 하지만 본인 소유로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알뜰하게 살림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딱히 우리 집이 남들보다 못 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 부족하지 않게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그 동안 알뜰하게 모아둔 돈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주무셨어요?”
밤중에 목이 말라 방을 나오니 컴컴한 거실 구석에서 아버지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낮에 시간이 없으니 가족들이 잠을 자는 한 밤중에 일을 하고 있었던 거다.
“왜 나왔어?”
목이 마르다는 말과 함께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셨다.
그 동안에도 아버지는 열심히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과 저녁 운동을 했던 아버지다.
그 덕분인지 170cm로 작은 키였지만, 꾸준한 운동으로 몸은 탄탄한 아버지였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저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아침, 저녁으로 나와 함께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걱정이 들었다.
“아버지, 이제부터 저 혼자 아침 운동 할게요.”
“왜?”
노트북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던 아버지의 눈이 나를 향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엔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다.
왜 몰랐을까?
예전에는 그렇게 크게 보였던 아버지가 지금은 너무 작고 왜소해 보였다.
“이제는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아버지가 피곤해 보인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은근히 자존심이 센 아버지였기에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아버지를 물로 보냐며 득달스럽게 달려와 볼을 잡아당길 것이 뻔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이제는 굳이 아버지가 옆에서 날 도와줄 필요가 거의 없었다.
물론, 투구폼을 봐준다거나, 몇 가지 자세를 지켜봐줘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지만 얼마 전 구입한 비싼 카메라가 그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야.”
엉뚱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아버지는 노트북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맞는 말이다.
야구는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카메라가 투구폼이나 몇 가지 자세를 봐줄 수는 있어도 내가 던지는 공을 받아줄 순 없다.
실제로 아버지와 함께 가볍게 캐치볼을 하는 건 아침, 저녁마다 꼭 하는 운동 중 하나였으며,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었다.
단호한 아버지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여기 왜 앉아? 들어가서 자. 운동 선수는 몸에 피로가 누적되면 부상으로 직결돼. 꾸준히 운동을 해주는 것만큼 규칙적인 휴식을 꼭 취해야 하는 거다.”
“예. 그보다 아버지, 저 에이전시랑 계약하시는 게 어떨까요?”
갑작스런 말이었을까?
아버지가 키보드를 두드리다 날 가만히 바라봤다.
“마음에 드는 에이전트라도 있는 거냐?”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나도 알고, 아버지도 안다.
내가 에이전시 계약 이야기를 꺼낸 것이 우리 집 가계 상황을 조금 더 넉넉하게 만들기 위한 소리라는 걸.
며칠 전 아버지가 어머니와 단 둘이서 대출을 받을까, 말까 고민했던 모습을 나에게 들켰던 걸 머릿속에 그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나 아버지는 그걸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알아보니까 에이전시랑 계약을 하면 제 몸 관리도 체계적으로 해주고 좋겠더라고요. 솔직히 아버지도 이제는 제 공 받아주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한 번씩 전력으로 공 던지면 아버지 표정이 돌처럼 딱딱해지는 거 모르시죠?”
히죽 웃으며 말을 하자 아버지가 ‘큼큼’거리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사실, 정식으로 야구를 배우지도 않은 아버지가 130Km가 넘는 공을 받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선수가 아닌 이상에야 편안하게 공을 받아주기란 어려웠다.
“네 공 받는 건 아직 너끈해. 엉뚱한 소리 마.”
“제가 진짜 전력으로 던지면 아버지 못 받아요.”
이건 진심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 구속은 어디까지나 제구가 되는 공의 최고 스피드일 뿐이다.
제구력을 배재하고 있는 힘껏 공을 던지면 솔직히 나도 얼마나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런 공을 받는다?
위험한 일이다.
구속을 떠나서 제구가 되지 않는 공을 아버지가 받아내기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네가 벌써 그렇게 됐구나.”
아버지의 음성이 묘했다.
허탈한 것 같기도 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얼굴 표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야구를 가르쳐 준 스승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스승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으니 나나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말이 기어코 터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에이전시 계약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생각해보자. 지금 계약을 말하긴 너무 일러.”
“알죠. 그래도 에이전시와 미리 계약을 해두면 편하잖아요? 물어보니까 에이전시 소속 코치를 개인 코치로 붙여준다고도 하던데요? 고등학교에 가면 제대로 된 변화구도 배워야 하는데 아무래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개인 코치를 두고 배우는 게 낫질 않겠어요?”
학교 코치나 감독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실력이나 역량도 충분하다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여러 사람을 가르치는 건 분명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배움이라는 건 여러 사람에게 배울수록 좋다는 걸 초등학교 때 알았기에 에이전시에서 개인 코치를 붙여주겠다는 제안은 꽤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전담 코치를 붙여준다면야 좋은 거지만…….”
처음으로 아버지의 음성이 흔들렸다.
에이전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지금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어디와 계약을 하든 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지금처럼 꾸준히 실력이 늘어난다면 2년 정도 후엔 계약금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조건이 더 좋아질 수 있기에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뿐이다.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고, 정말 좋은 에이전시가 어느 곳인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아버지는 온전히 나를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전담 코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 하나에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전담 코치가 아니었다면 당장 형편이 어려워진다 하더라도 날 헐값에 계약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예.”
아버지와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슬쩍 아버지를 돌아봤다.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어두컴컴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편해질 바라는 마음에서 꺼낸 에이전시 계약 이야기가 고민을 던져 주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언제고 한 번은 꼭 겪어야 할 일이었기에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이전시 계약 문제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이곳저곳으로 수소문하며 알아보고 다녔지만, 딱히 어느 한 곳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결국, 아버지는 어느 날 저녁 날 불러놓고 선택을 강요하셨다.
“TR에이전시에서는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주 2회 전담 코치를 붙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조건으로는 국내 신인 드래프트 시장이 아닌 해외 신인 드래프트 시장에 나가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대신, 아메리칸 리그의 최고팀들과 연결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 네가 해외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계약과 동시에 영어 선생님도 보내준다고 했다. 계약 기간은 5년이고, 계약금은 3억을 제시했다. 에이전시 수수료로는 계약금의 10%, 연봉 총액의 15%다. 다른 조건은 모두 좋지만, 해외 신인 드래프트 시장에만 나가야 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네 생각은 어떠냐?”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에요. TR에이전시는 왜 해외 드래프트를 고집하는 거죠?”
내 물음이 너무 순진했기 때문인지,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국내 팀과 해외 특히 메이저리그 팀과는 계약 규모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니까 그렇지. 널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아먹어야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
“아…….”
에이전시도 결국은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니 딱히 그 부분이 나쁘다고 비난을 할 순 없었다.
“두 번째로 아버지가 고른 곳은 YJ에이전시다. 전담 코치는 고교 졸업 때까지 주 1회 밖에 붙여줄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대단한 사람을 코치로 붙여주겠다고 자신했다. 계약 기간은 마찬가지로 5년이지만, 계약금은 1억 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대신, 국내든 해외든 어느 곳이든 네가 원하는 드래프트 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다고 했고, 수수료도 계약금, 연봉 총액 모두 10%로 합의를 봤다.”
“계약금이 TR보다 적네요?”
“계약금은 신경 쓸 것 없다. 중요한 건 네게 붙여줄 수 있는 전담 코치가 누구며, 얼마나 성심성의껏 널 신경 써주느냐니까. YJ에이전시도 네가 원하면 개인 영어 선생님을 보내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는 끄덕였지만, 당장 계약금이 많길 바라는 내 입장에서는 YJ에이전시에서 조금만 더 계약금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면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었기에 그저 속으로만 불만을 터트릴 뿐이었다.
“많은 곳들 중 네가 해외로 진출했을 경우를 따져봤을 때, 네가 운동에만 전념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곳이 이곳 두 곳이라 판단됐다. 평판도 나쁘지 않았기에 굳이 에이전시 계약을 해야 한다면 이 두 곳 중 한 곳과 했으면 한다. 결정을 네가 직접 내리도록 해라.”
꽤 두툼한 서류를 내 앞으로 내밀고 아버지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결정하기 힘든 선택권을 내게로 던져놓은 아버지의 모습이 한 편으로는 야속하게 보였지만, 그 많은 곳들 중 두 곳으로 압축한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고생했을지를 생각하면 마지막 최종 결정은 내가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내게 이런 선택을 강요한 이유를 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시작할 것인가.
해외에서 시작할 것인가.
아버지는 나에게서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다.
< 『국내편 - 00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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