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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편 - 006』 >

『국내편 - 006』

누군가 그랬다.

눈을 떠보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고.

내가 그랬다.

전국대회를 마치고 우승을 했다는 기쁨에 야구부는 많은 학부모들과 함께 뻑적지근하게 회식을 했다.

나 역시 부모님 곁에서 배가 부르도록 음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마무리 운동을 한 후에야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더니 어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날 맞이했다.

가장 먼저 인터넷과 신문에서 내 이름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인터넷의 경우엔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 있었으니까.

고작 중학교 야구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라갔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어쨌든 명성 중학교, 대회 최우수 선수, 강속구 투수 등 다양한 검색어가 지속적으로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웬만한 일에 쉽게 놀라지 않는 나조차 놀란 검색어가 딱 하나 존재했다.

차지혁 뉴욕 메츠.

내 이름 연관 검색어로 뉴욕 메츠라는 단어가 자석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황당하게도 뉴욕 메츠에서 날 주목하고 있다는 몇 개의 기사들 때문이었다.

야구를 하는 선수라면 그 누구라도 소원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거다.

나 역시 야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최대 프로 리그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길 꿈꾸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꿈만 꾼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루도 빼놓지 않고 훈련을 소화하는 거였다.

몇 명의 기자들이 뉴욕 메츠에서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 올렸다.

어떻게 된 사실인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기사의 내용이 정말 사실이라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야구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받는 일이라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인터넷에서는 온통 날 사기 캐릭터라고 불렀다.

중학 2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실력과 성적을 냈다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름만 치면 사진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누가 올렸는지 모를 대회 동영상도 곳곳으로 퍼져 있었다.

대한민국 미래의 에이스라는 말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고교 졸업과 동시에 메이저리그로 직행을 할 거란 소리도 있었다.

더불어 계약금으로 얼마를 받을 수 있네, 연봉이 얼마네, 어느 구단과 계약을 할 것이네, 앞으로 시속 몇 Km의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등 온갖 추측과 루머가 나돌아 나를 웃게 만들었다.

세상은 날 달라진 시선으로 맞이했지만, 우리 가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해왔던 아침 운동은 여전했고, 어머니 역시 떠들썩한 세상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없다는 듯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으며, 여동생 지아는 언제나처럼 나에게 매달려 애교를 부렸다.

마지막은 인터넷을 검색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날 학교 늦는다며 등짝까지 후려쳐 집에서 쫓아내는 어머니의 잔소리였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건 우리 가족과 나 뿐이었다.

“한국 미래의 에이스!”

“너 메이저리그에 간다면서?”

“정말 계약금으로 500만 달러를 받는 거야?”

“학교 중퇴하고 미국으로 바로 가기로 했어?”

“뉴욕 메츠에서 너희 집에 찾아왔다면서?”

나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날 잘 알지도 못하는 학교 후배, 동기, 선배들까지 일부러 우리 반으로 찾아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미리미리 사인을 받아둬야 한다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있지도 않는 사인을 요청해서 날 귀찮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도 수업 중에 나에 대한 루머를 물어보며 확인을 해왔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들은 각 지역마다 스카우트를 파견하거나, 유망주 발굴을 위해 정보원들을 둔다. 당연히 어제도 스카우트와 정보원들이 경기를 봤고, 그렇지 않아도 네 실력에 관심을 두고 있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모양이다.”

서대호 코치의 말에 난 그제야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변 소란에 흔들리지 말고 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운동에만 전념해라. 네 성격상 이런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넌 아직 중학교 2학년이라 우려심에 하는 말이다. 운동 선수는 자기 운동만 묵묵히 하면 언제든 그 결과를 보상 받는다. 갑작스런 관심에 더 무리할 필요도 없고, 자만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몸 관리는 본인 스스로 잘 해야 하는 거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나나 감독님, 아니면 아버지에게라도 꼭 말씀을 드려라. 운동 선수는 절대 이러다 괜찮겠거니 하는 생각을 가져선 안 된다. 알겠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충고였다.

유망주라며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화려하게 날아오를 날만 기다리던 사람이 부상으로 날개 짓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추락했으니 그것에 대한 한이 얼마나 클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 후부터는 야구부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해왔다.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 고교 야구부 코치와 감독은 물론, 스포츠 에이전시 관계자, 프로 구단 스카우트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중심으로 떠도는 루머나 소문들이 결코 허황된 것들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이번 전국대회에서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그렇게만 해준다면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에이스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의 네 인생을 위해서라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은 반드시 따야 한다.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반드시 마련해 둬야만 한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국내 신인 드래프트에 등록을 할 생각이겠지? 설마하니 해외 신인 드래프트에 등록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겉으로 보기에 해외 드래프트 시장의 규모가 워낙 커서 많은 선수들이 욕심을 내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이나, 미국으로 진출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언어의 문제도 그렇고, 최소 25세까지는 더 가다듬으며 성장을 해야 하는 시기인만큼 반드시 국내 프로팀에 입단해서 야구를 배워는 걸 추천한다. 어차피 실력만 좋다면 얼마든지 일본이든, 미국이든 자유롭게 이적이 가능하니 우선은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길 조언한다.”

“알고 계시겠지만, 내년 1월 1일이면 차지혁 선수의 나이가 만14세가 되기 때문에 정식으로 에이전시 계약이 가능해집니다. 부모님이나, 감독, 코치들에게 에이전시에 대해서 얼마나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프로 선수에게 에이전트란 반드시 필요한 조언자이자 함께 프로 생활을 해나갈 가장 가까운 동반자입니다. 에이전시가 하는 일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특히 고교 시절때부터 에이전시가 있는 선수들은 절대 혹사를 당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지 않습니다. 아주 강력한 보호자, 그것이 우리 에이전시의 역할입니다.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 시장에 나온다면 담당 에이전트가 알아서 모든 구단들의 정보를 제공해드립니다. 이건 에이전시가 없는 선수들보다 몇 발자국이나 앞서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당연히 계약을 할 시에도 최대한 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드래프트 시장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기본적인 언어 문제부터 시작해서 해외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적극적인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차지혁 선수가 마음만 먹는다면 저희는 내년에 당장 계약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많은 메이저리거들 중 중고등학교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체계적으로 야구를 배운 이들이 상당수 존재하네. 어차피 야구 선수로 성공을 하겠다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네. 남들보다 일찍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일생일대의 기회니까. 부상 염려도 훨씬 줄어들고, 무엇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하면 그만큼 일찍 남들보다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내가 하는 말을 잘 생각해보고 부모님과도 상의를 해보도록 하게.”

나를 만나고자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달랐다.

유일하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자신이 속한 학교, 에이전시, 팀으로 오라는 거였다.

명문 고등학교, 크고 작은 에이전시, 한국 프로구단, 일본과 미국의 팀까지 서로 자신들에게 오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들의 권유를 받아들이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맞지만, 적어도 난 아버지나 어머니와 뜻을 함께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날 키워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 여겼다.

날 만나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귀찮기도 했지만, 내가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수 있었기에 마냥 무의미한 시간들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달이 조금 지나자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로 내 시간을 빼앗으려고 하니, 운동에 방해가 되었다.

아버지에게 슬쩍 이야기를 흘리자 곧바로 아버지가 나서서 더 이상 귀찮게 구는 곳과는 절대 진학이나, 계약 등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고, 이후 거짓말처럼 날 귀찮게 하는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전국대회 이후, 한국프로야구 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출전을 했다.

전국대회만큼이나 중요한 대회고, 그곳에서도 난 말도 안 되는 성적으로 명성 중학교를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해 2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덕분에 전국 중학야구 선수 랭킹에서 투수 부문 1위, 전체 유망주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다시 한 번 야구 관계자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어머? 우리 아들 팬카페가 생겼네?”

어머니의 말에 슬쩍 모니터를 바라보니 진짜로 ‘미래의 에이스 차지혁’이라는 이름의 팬카페가 개설되어 있었다.

개설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음에도 회원수가 무려 만 명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나를 위해 팬카페를 만들었나 싶어 알아보니 놀랍게도 카페 개설자의 이름이 차경석이었다.

“알고 계셨죠?”

“글쎄.”

슬쩍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 『국내편 - 006』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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