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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편 - 003』 >

『국내편 - 003』

“어서 와라. 중학생이 된 걸 축하한다. 더불어 우리 명성 중학교의 야구부원이 된 것 역시도 축하하며, 환영한다. 앞으로 잘 지내보도록 하자.”

명성 중학교 야구부 코치 서대호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버지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서대호 코치는 고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프로 구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망주로 그 미래가 아주 밝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아쉽게도 고교 시절 혹사를 당해 수술을 받고, 재활에 실패를 하면서 프로 생활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선수 생활을 끝냈단다.

아픈 과거를 지닌 사람치고는 상당히 인간성이 밝았다.

더불어 한때나마 유망주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실력 또한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부상과 재활이라는 모진 고통의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인지 몸 관리의 중요성과 부상 방지와 재활 치료에 대한 지식만큼은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사람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야구와 중학교에서 배우는 야구는 달랐다.

비싼 돈을 들여 프로 선수로까지 활약했던 사람들에게 배웠던 야구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다시 여러 사람들과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너 투수라면서?”

같은 1학년 신입생 부원 중 한 명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또래에 비해 상당히 크다는 소리를 듣는 나만큼이나 키가 크고, 체격도 좋았다.

자신을 장근호라고 소개한 녀석은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해주었다.

“선배님들이 그러는데 서 코치님이 5학년 때부터 널 스카웃하려고 집까지 찾아갔었다고 하더라? 너희 집 서울이라면서? 서울이면 동학 중학교랑 백석 중학교가 전국 투 탑이잖아? 거길 가지 왜 전주까지 내려온 거야? 서 코치님이 5학년인 널 집까지 찾아가서 스카웃 할 정도면 동학 중이랑 백석 중에서도 분명 널 눈여겨보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우리 학교가 전국 4강 실력이라 하더라도 동학, 백석이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

근호의 말대로 동학 중학교와 백석 중학교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전국 투 탑이다.

전국중등야구대회에서 항상 1, 2위를 다투는 라이벌이었는데, 동학 중학교나 백석 중학교에 비한다면 명성 중학교는 아무래도 조금 부족했다.

서대호 코치의 말처럼 전국 대회에서 4강에 들어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동학과 백석이 워낙 강하다보니 항상 4강까지가 명성의 전부였다.

“5학년 때까지만 야구부에 있었어. 아마 동학 중이랑 백석 중에서는 나에 대해 모를걸?”

확신 할 순 없지만, 아주 가끔 후보로 마운드에 올라갔던 날 중등부 1, 2위를 다투는 동학 중이랑 백석 중에서 알고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서대호 코치가 어떻게 날 눈여겨 봤는지도 솔직히 조금 의문스러울 때가 없잖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니더라도 이미 동학, 백석 두 학교는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초등부 선수들이 서로 입학을 하겠다고 할 테니 그들 중 신입생을 선별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5학년? 그럼 너 6학년 때는 야구 안했어?”

“안한 건 아니고…….”

굳이 프로 선수 출신들에게 레슨을 받았다는 말을 해서 좋을 것 없을 것 같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야! 거기 신입 둘! 잡담 그만하고 빨리 와서 장비 정리해!”

2학년 선배의 험악한 목소리에 우리는 서둘러 장비를 정리했다.

근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새처럼 종알종알 이야기를 해댔고,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장비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중학교 생활은 단조로웠다.

야구를 하더라도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뜻이 있었기에 수업 시간에는 다른 운동부 학생들과는 다르게 항상 수업에 집중을 해야만 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활동적인 운동부 생활은 많은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만 되면 자연스럽게 눈꺼풀이 감겨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내 의지와는 다르게 간혹 수업 시간에 졸거나 대놓고 잠을 자는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최대한 공부를 하려고 했기에 다행스럽게도 1학기 내내 중간 정도의 성적은 유지할 수 있었다.

“넌 야구가 왜 좋아?”

주변에서 단짝이라 부를 만큼 근호와 친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근호는 포수를 지망하고 있었기에 투수인 내게 있어선 최적의 조합이었다.

야구가 왜 좋냐고?

문득, 근호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니, 당연스럽게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야구를 했다.

야구공, 글러브, 배트는 장난감이었고, 아버지와 하는 놀이는 온통 야구뿐이었고, 내가 가장 많이 본 TV 프로도 야구 중계나 야구 관련 영상들뿐이었다.

나에게 있어 야구는 그냥 나 자신이었다.

좋다, 싫다의 감정적인 판단을 내린 적이 없었다.

“난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포수가 될 거야!”

근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선 양팔을 높이 들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 모습이 우습게 보이기도 했지만, 워낙 진지한 얼굴로 외치는 말이었기에 차마 소리 내서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왜 포수를 하려는 지 알아?”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현대 야구에서 포수는 모든 걸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이야. 어때 멋지지?”

그걸로 끝?

근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건지, 할 필요가 없는 건지 의기양양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흔히들 포수를 안방마님이라고 부른다.

가장 기본적으로 투수를 리드하고, 수비수를 지휘한다.

사실상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가장 머리가 복잡한 포지션이 포수고, 가장 힘들고 어려운 포지션 역시도 포수다.

특히 한 여름에 포수 장비를 주렁주렁 착용하고, 마스크까지 쓰고 쭈그려 앉아서 투수 공을 받아야만 하는 포수의 모습은 정말이지 존경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안쓰럽기까지 했다.

에이스, 야구의 꽃, 게임을 지배하는 자 등등 온갖 화려하고 멋있는 수식어는 모두 투수의 몫이다.

하지만, 진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격려를 받아야 하는 포지션은 포수였다.

막말로 공은 아무나 던질 수 있다.

다만,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던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공은 아무나 받을 수 없다.

특히 타자를 앞에 세워두고 ‘부웅, 부웅’소리를 내는 배트까지 휘두르는 타자의 뒤에서 투수의 공을 받는 일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 포수는 포지션 경쟁이 야수나 투수에 비해 좀 편하다고 했어. 그런데 더 중요한 건 포수라는 포지션이 워낙 힘들어서 연봉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히힛!”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야구 선수들 중 가장 기피하는 포지션이 포수인건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쟁자 역시 다른 포지션에 비해 적은 편이다.

거기다 근호의 말대로 포수로 성공했다 불리는 선수들은 굉장히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연봉을 많이 주는 건 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똑똑히 알고 있어야만 한다.

“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투수가 돼! 난 그런 네 공을 받아주는 위대한 포수, 아니 전설적인 포수가 될 테니까!”

나는 위대한 투수고, 자기는 전설적인 포수?

유치하게 따지고 들기보다는 그냥 근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하자는 근호의 치기어린 행동을 거부하려고 했지만, 위대한 투수가 될 자신이 없냐는 소리에 하는 수 없이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런 우리의 약속이 무의미하게 그해 겨울 근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어깨를 심하게 다치면서 야구를 그만둬야만 했고, 마지막 인사를 온 근호는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아주 서럽게 엉엉 울면서 야구부를 떠났다.

그런 근호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한 참이나 울며 서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난 단짝을 잃었다.

< 『국내편 - 003』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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