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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편 - 001』 >

『국내편 - 001』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직 하나다.

야구.

그 하나만의 기억 밖에 머릿속에 남아 있질 않는다.

기억나지 않지만, 내 첫 장난감은 단단한 경식 야구공이었고, 두 번째 장난감은 글러브였으며, 세 번째 장난감은 나무 배트였다.

고작 돌이 지난 아이에게 경식 야구공은 돌덩이, 쇳덩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장난감이었고, 글러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였으며, 나무 배트는 온 집안 살림을 다 부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흉기일 뿐이었다.

남들처럼 유행하는 로봇 장난감이나, 인형, 자동차 등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야구공, 글러브, 배트, 야구 모자, 야구 잠바, 야구 바지, 야구 유니폼, 선수 피규어 등등 오로지 야구와 관련된 것들로 내 방을 채우고 있었다.

집에서 하는 놀이라고는 아버지와 함께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면서 야구공을 던지고 노는 것이었고, 밖에서 하는 놀이라고는 조금 더 먼 거리에서 야구공을 던지고 노는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야구광이다.

야구와는 인연도 없이 25년을 살다가 우연찮게 대학 동아리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였다.

남들보다 작은 체격에 딱히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않은 아버지였지만, 야구 센스만큼은 제법 괜찮았는지 사회인 야구팀에서도 투수와 유격수를 오가는 팀내 핵심 맴버로 항상 콧대가 높은 편이었다.

순수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3부 팀이었고, 팀 성적도 중하위권이었기에 우승 후보의 3부 상위팀이나, 2부의 팀이었다면 주전으로 유격수나 1선발로 투수 포지션을 꿰차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는 그렇게 사회인 야구에 푹 빠져 어머니와 연애를 할 때에도 토요일, 일요일만큼은 야구를 해야 한다며 데이트조차 하질 않으셨다.

만약, 아버지의 직업이 요일에 구애받지 않은 프리랜서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절대 결혼을 하지 않았을 테고, 나 역시 태어나는 일이 없었을 거다.

그렇게 아버지는 주말마다 야구만을 기다리며 주중에는 비싼 레슨비를 지불하면서까지 야구를 배우는 열정으로 이십대를 보냈고, 서른한 살에 5년 연애를 한 어머니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결혼 후에도 아버지는 주말마다 야구를 했고, 종종 레슨도 받아가며 어떻게든 팀내 핵심 맴버로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셨다.

노력의 대가인지 사회인 야구 선수로서는 성적도 썩 괜찮았던 것 같다.

팀이 패배를 해도 아버지는 오늘 자기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를 즐겁게 이야기 하며 주말마다 어머니 앞에서 자랑을 하며 맥주 한 잔 즐기는 걸 낙으로 사셨다.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야구를 시킬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했고, 아들인 내가 태어나자 정말 야구를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날 야구와 한 덩어리로 취급하셨다.

“야구 선수는 손아귀 힘하고 손목 힘이 좋아야해!”

항상 매달렸다.

돌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아버지는 날 자신의 엄지손가락에 매달리게 했으며, 2살 때부터는 집에 설치되어 있는 철봉에 매달리는 놀이를 빙자한 훈련을 해왔다.

“야구 선수는 유연해야해!”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부터 시작했고, 잠을 자기 전에도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야구 선수는 하체가 튼튼해야해!”

달리기부터 시작해서 앉았다 일어나는 훈련, 전문 용어로 스쿼트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라며 스트레칭 다음으로 많이 했는데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남다른 허벅지와 엉덩이, 종아리 근육으로 인해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아야만 했다.

“팔굽혀펴기는 야구 선수에게 기본이다!”

스쿼트 만큼이나 많이 했던 팔굽혀펴기.

“허리는 하체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다!”

허리 근육을 유연하게 하는 운동과 강화 하는 운동 역시 매주 했다.

“야구 선수한테 어깨는 생명이야!”

스트레칭 중 어깨 스트레칭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어깨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했다.

“손가락 감각을 잊지 않으려면 야구공을 항상 들고 다녀!”

친구들은 손에 장난감을 들고 다닐 때부터 나는 야구공을 놓질 않았다.

“바른 자세로 잠을 자! 한쪽으로 기울어서 잠을 자면 어깨가 눌리잖아!”

어렸을 때부터 양쪽에 두꺼운 베개를 놓고 자야만 했기에 남들처럼 편하게 옆으로 누워서 자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레슨을 받는 야구 선수 출신의 코치들에게 이것저것 배워서 날 가르쳤고, 때론 인터넷 검색으로 야구 선수에게 좋다는 운동법은 모조리 나에게 주입시켰다.

솔직히 고된 훈련이었지만, 훈련을 하고 나면 항상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으며 날 힘껏 안아주셨고, 맛있는 것들을 사주셨기에 언제 부턴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 역시 이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딱히 불평불만을 하거나, 아버지의 훈련에 반항을 할 생각조차 갖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내가 비정상적으로 길러졌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훈련과 습관들이 몸에 박혀 있었기 때문인지 그만둘 필요성이 없었다.

초등학교도 당연히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입학을 했고, 3학년이 되자 야구부에 입부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은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내가 야구부에 입부하고 처음으로 야구공을 던졌을 때, 턱이 빠져라 놀라던 감독과 코치들의 모습이다.

“쟤, 쟤가 3학년이라고?”

“호, 호영이보다 빠른 것 같은데요?”

코치가 말한 호영이는 6학년 선배로 당시 야구부 주장이면서 1선발 투수였다.

그렇게 입부한 야구부 생활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훈련이랍시고 하는 운동들이 아버지와 둘이 할 때보다 강도가 약해서 설렁설렁해도 5학년 선배들 수준을 맞출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단 둘이 하던 야구를 여럿이서 한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재밌는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야구부 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3학년 주제에 5학년은 물론, 6학년까지 넘보는 야구 실력은 확실히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박 감독!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쟤 3학년이라면서? 어떻게 3학년을 선발로 출전시킬 수 있어! 이번에는 우리 민식이가 선발 차례였잖아! 아무리 친선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지! 3학년 따위를 선발로 올린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5학년 민식 선배의 아버지는 한창 훈련 중이던 때에 운동장으로 난입해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민식 아버님, 내일 경기는 새로 야구부가 만들어진 신생 야구부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시합입니다. 상대팀에서도 이왕이면 4학년을 위주로 상대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5학년인 민식이나 굳이 선발로 등판 할 필요가 없는 경기라서 제외를 시킨 것뿐입니다. 진정하시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아무리 상대가 초짜라도 그렇지 어떻게 3학년 따위를 선발로 올릴 생각을 하는 거야! 테스트? 정말 테스트를 할 생각이라면 중간이나, 마지막에 올려보면 되는 거잖아! 내가 병신으로 보여?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내가 지금까지 야구부에 쓴 돈이 얼만데! 어디서 호구 취급이야! 학교장 만나서 담판을 지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민식 아버님!”

씩씩거리며 교장실로 걸어가는 민식 선배의 아버지를 감독님이 득달스럽게 달려가 붙잡았다.

“우리 아빠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그랬지?”

민식 선배가 으스대듯 말했다.

솔직히 실력은 별로 없는 듯 보였지만, 야구부 내에서는 꽤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야구부 내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실력도 없고 5학년인 주제에 호영 선배 다음으로 마운드에 올라가는 일은 거의 없었을 거다.

어쨌든 그렇게 민식 선배가 결국 다음날 경기에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초짜를 상대하면서도 점수를 펑펑 내주면서 완전히 개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뒤이어 감독님은 날 마운드에 올렸다.

< 『국내편 - 001』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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