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21 막장 연인들 (21/49)
  • 00021  막장 연인들  =========================================================================

    *

    근우와 예희 , 또 다시 셋이서 술집에서 만났다. 

    불과 며칠 안된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시 모이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내겐 몇주간의 특집 드라마같았다. 처음엔 에로틱 3류 드라마였지만, 점점 나 혼자 16부작 미니시리즈를 찍은 느낌이다. 술집에는 다른 많은 여자 손님들도 있었지만 유독 예희는 눈에 띄었다. 단지 치마가 짧아서만은 아니다. 

    그리고 주관적으로 애뜻한 느낌이 강해서도 아니다. 예희는 정말 뭔가 분위기가 다른 여자랑 남다르다.  옅은 브라운으로 긴 머리에 , 무표정하면 시크하지만 웃으면 이효리같이 초승같은 눈웃음을 만들어낸다. 오늘 따라 짙은 아이라인이 예희의 눈웃음마저 더 섹시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화장이 연할때는 눈웃음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특히 , 예희는 짧은 치마가 너무 잘 어울리는게 골반과 엉덩이가 대박이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입술은 더 붉고 윤기가 흘렀고 , 얇은 핑크색 봄코트에 상의는 흰색 셔츠, 치마는 베이지색 치마. 그렇게 짧디 짧은 투피스를 입었다. 스타킹은 안 신었는데, 오히려 맨살이 다 드러나서 굉장히 야해보였다. 

    오히려 키가 아담한 편이라 모든 유전자가 엉덩이와 골반,허벅지에 집중된 건가 싶을정도로 예희의 하체는 너무 예쁘다. 척봐도 섹시하게 벌어진 골반과 잘록하게 빠진 허리라인, 그에 명확히 대비되는 풍만하고 탄력있어보이는 힙 라인 . 그리고 꿀이 줄줄 흐를거 같은 허벅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귀엽고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이다. 가슴은 크지 않지만 꽉찬 A컵의 탄력적 모양을 갖고 있어서 왠만큼 큰 가슴보다 섹시한 아이다. 

    휴우. 대체 이 아이 왜 이렇게 20살을 대책없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휘둘리며 사는 걸까? 지금 그 모습이 방황이라면 방황을 멈추게 하고 싶다. 내 이 간절한 순정으로 방황을 멈추게 하고 싶다. 그런데, 그녀는 내 마음을 지난번에 거절했다. 이제는 저 아이의 방황을 말릴수 조차 없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오랜만에 만난 예희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건넸다. 

    "그냥,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예뻐보이네"

    "오랜만이라뇨, 오빠 저 본지 일주일도 안 됐어요"

    "그랬나?"

    "오! 형, 예희랑 따로 만났었어요?"

    아 깜빡했다. 선혜랑 예희랑 셋이서 며칠전 클럽에 간 사실을 근우는 모르고 있을터였다. 내가 생각없이 말을 해서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오빠, 말했잖아. 선혜 소개시켜주는 날."

    "아 그게 선혜를 준오형한테 소개해준다는 거였어?"

    "아 오빠, 좀 귓구멍 좀 열고 살아! 맨날 내 얘기 헛으로 듣고"

    "난 니가 그 가슴 큰애 소개팅 해달라곤 한 건 들었는데, 준오형을 해줄줄은 몰랐지"

    "가슴 큰 애라니, 아 오빠두 참."

    "걔가 가슴은 겁나 크던데 , D컵 정도 되지 않나?"

    "와아, 오빠 선혜 이름두 잘 기억 못 하면서 그런 건 잘 기억하네?"

    "내가 여자 이름은 기억 못해도 쓰리 사이즈는 잘 기억하거든, 형 걔 가슴 진짜 컸죠?"

    "무슨 뜻이야? 가슴 크기를 내가 어떻게 알아?"

    차마 선혜랑 자봤다는 얘기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침에 예희랑 있었던 일까지 얘기를 해야 할거 같았다. 그날 셋이 본 건 알지만, 내가 선혜랑 예희랑 번갈아 잔 건 근우도 모를꺼 같았다. 설마 예희가 그것까지 얘기 했을까? 

    "아뇨, 오빠. 그때 엄청 가슴 파인 나시티를 선혜가 입고 왔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예희는 혹시 내가 또 말 실수를 할까봐, 옷위로 봤던 가슴에 대해 얘기하라고 방어를 쳐주는 거 같았다. 아무리 서로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이라곤 하지만 예희도 근우에게 나랑 잔 이야기는 하지 않은듯 하다. 나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말을 이어갔다. 

    "아, 크긴 엄청 크더라"

    "근데, 준오형 귀여운 타입 좋아하지 않아요? 선혜는 좀 섹시하지 않나?"

    "아냐, 나 뭐 선혜도 귀엽던데"

    "오빠, 그럼 선혜 계속 만나요?"

    예희가 말을 자르며 , 토끼같이 눈이 동그래져서 내게 질문을 해왔다. 뭔가 살짝 예민해진 모습이었다. 뭐 설마 나한테 그런 감정이 있을리 없지만. 기분이 묘했다. 혹시라도 내가 선혜랑 사귀면 예희가 질투를 할까? 질투라도 해줄려나? 그날 그 문자로 봤을때는 나같은 스타일에는 관심이 딱 잘라 없는듯 했다. 

    "계속 한번 만나봐야지"

    "와아, 형 대박이다. 졸라 좋겠네요. 그렇게 거유인 애랑 자고"

    "?"

    "..."

    에? 선혜랑 잤다는 걸 아는 건가? 예희나 나나 둘 다 멈칫하며 근우의 눈치를 봤다. 어색해질까봐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무...슨 소리야?"

    "아니, 곧 잘꺼 같다구요. 저두 2번밖에 안 봤는데, 걔도 섹기가 장난 아니어서, 형이 먼저 따먹히실요. 헤헤헤"      

    "어이없는 소리 하지말구 술이나 마셔"

    "네에 형! 예희두 짠"

    "응. 짠!"

    우리끼리 몇잔 더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근우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그리고 전화를 받더니 근우는 무척 기다렸다는 듯이 수화기에 대꾸를 했다. 

    "와아! 형 어디예요? 이제 오심 어떡해요? 네? XX마당 사거리요? 제가 거기로 갈께요. 여기 좀 구석진 술집이라 찾기 어려우실 듯요. 네, 금방 갈께요"

    아마도 럭비맨 정호형이 온듯 했다. 근우는 예희랑 내게 눈짓을 하며 술집 밖으로 나갔다. 예희랑 둘이 남게 되었다. 순식간에 공기가 어색해졌다. 

    "예희야, 너 정말 오늘 그 정호형인가 하는 사람하고 같이 놀...기로 한거야?"

    "재밌는 오빠라고 해서요. 근우 오빠가 같이 놀자고 해서. "

    "재밌다라? 뭐가 재밌는데?"

    "그냥 느낌인데요. 왜요?"

    "난 별로 재미없니?"

    "에이, 무슨 소리세요? 오빠두 재밌쪄"

    "그러면 나랑...놀면 되지 않아?"

    지난번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았나보다. 찌질하게도 예희한테 그 남자랑 꼭 놀아야 겠냐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빠는, 선혜 만나기로 하셨잖아요. 와, 오빠 착하고 순진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바람둥이예요? 선혜랑도 사귀고 저랑도 노시려구요?"

    뭐든지 해벌레하고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것만 같던 예희가 어울리지 않게 똑부러지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또박또박 얘기하니까 되려 내가 꿀먹은 병아리가 됐다. 

    "뭐 논다는 게 여러가지잖아? 그냥 영화를 봐도 되고, 공원을 가도 되고, ..."

    "흠, 뭐 데이트요? 오빠 저랑 데이트 해주게요?"

    "꼭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또 자려구요?"

    직설적인 예희. 대답이 참 어렵다. 여기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결국 내 평소 성격대로 대답이 나와버렸다. 

    "아니, 그건 아니구, 좋은 선후배같이..."

    "흠, 오빤 역시 너무 착해요. 전 선배 많아요. 흐으 재미없다! 술이나 한잔해요! 짜안!"

    "예희야... 내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제대로 다 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문란하게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여자애를 내가 진심을 다해 사귄다고 해도 과연 좋기만 할까? 이성과 감정은 계속해서 어긋나면서 나는 단 한마디로 내 진심을 예희한테 말하지 못 하고 있다. 

    '드르륵'

    말을 채 이어나가지도 못 하고, 룸식 술집의 문이 열리면서 싱글생글한 근우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 정호형이 들어오고 있었다. 

    "야! 이거 늦어서 미안하네. 약속이 오늘 따라 여러개 잡혀서! 아! 반가워요?"

    "네, 안녕하세요. 김예희라고 합니다"

    "난 최정호라고 해요. 반가워요. 어! 친구는 XX학과 권준오지? 근우한테 많이 들었어. 전에 교양때 한번 봤던거 같은데."

    "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래! 그래! 앉아."

    "자아! 술 잔들 새로 받아요"

    늑대같은 남자 셋에 저 토끼같은 가여운 여자애 하나. 쪽수라도 맞추던지. 뭐하자는 수작일까? 근우녀석은. 한편으로 답답한게 노골적으로 정호 선배의 눈길이 예희의 짧은 치마와 허벅지로 향했다. 은근 가슴도 훑는 거 같았다. 누가봐도 노골적으로 몸매 스캔인데, 예희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연신 던지는 정호 선배의 조크에 빵빵 터지고 있었다. 

    덩치만 근돼에 말주변은 없을줄 알았는데, 정호 형의 입담이 제법이었다. 근우는 초반부터 짠을 연달아 제안하고, 정호형도 별시답지도 않은 농담인데도 예희와 근우를 웃게 만들었다. 저런 입담은 참 배우고 싶었다. 

    "아, 좀 취한다. 오빠!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꼐"

    예희가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테이블과 좌석 틈을 나와서 약간 비틀거리며 가는데, 치마가 어느새 더 올라와서 살짝 살짝 팬티 끝단과 엉접살이 보이고 있었다. 워낙 힙이 풍만해서 저런 짧은 치마를 입다보니 엉덩이가 안 삐져나올수가 없었다. 예희가 화장실로 가자, 정호형이 므훗하게 보면서 근우에게 말했다. 

    "와! 쩔긴 쩐다. 뒤치기 하면 바로 싸겠는데. 명품 엉덩이구먼, 쟤 맨날 저러고 입고 다니냐?"                

    "좀 애가 백치끼가 있고, 섹시한 옷차림 잘 입고 다녀요. 키는 아담한데 벗겨놓으면 몸비율이 쩐다니까요"

    "뭐 옷차림이 저런다고 침대에서까지 그럴꺼 같진 않은데"

    "와아! 형 제가 얼마나 말해야 믿어요. 쟤 침대에서가 진짜 대박이라니까요. 물이 줄줄 흘러요"

    이게 무슨 웨이터 삐끼와 손님의 대화같다. 열심히 근우는 정호에게 예희를 어필시키고 있고 , 뭔지 모르게 눈높은 척 정호선배라는 놈은 까탈스럽게 예희를 보는 척 한다. 아까부터 침 존나 흘려댔으면서. 

    "그럼 오늘 내가 쟤 따도 되냐?"

    이 인간들은 죄다 직설적이다. 정호선배는 근우에게 대놓고 오늘 예희를 건드려도 되냐고 묻고 있었다. 근우 녀석은 당연히 괜찮다고 하려나? 근데 참 아이러니한건 이게 짜증이 난다기보다는 과연 저 근육질의 최정호는 음기의 덩어리인 김예희를 어떻게 다룰지가 3자입장에서 궁금해졌다. 내가 예희를 좋아하는 건 아닌걸까? 아니면 관전자에 익숙해진걸까?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