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20 막장 연인들 (20/49)
  • 00020  막장 연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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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년, 걸레같은 년, 못된 년 ...

    머릿속으로 온갖 욕을 다해봤다. 내가 애초부터 눈깔이 삐었던거다. 내가 본 것만 두 남자다. 게다가 나랑도 그런 감정없는 섹스를 아무렇지 않게 AV모델마냥 해댔다. 내가 그런 애를 잠시라도 좋아했다는 건 내가 진짜 일시적으로 미쳤기 때문이다. 예희에게 그런 거절의 문자를 받고 며칠정도는 밖에 나가지를 않았다. 때떄로 근우 녀석의 시답지 않은 문자가 오고, 선혜의 안부문자가 왔지만 근우 녀석 문자는 단답으로 대답해서 보내고 선혜에겐 좀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며 답장을 이어갔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게 불편하고 쓰잘데기 없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이상으로 예희에게 몸과 마음을 준거 같았다. 애초부터 금사빠 스타일이라서 여자애를 잘 만나기가 힘든 성격이다. 

    며칠을 그렇게 방콕에서만 뒹굴뒹굴 하다가 근우 녀석의 '방구석 폐인 짓거리 좀 그만하고 좀 나와요' 라는 문자에 욱해서 밖으로 나와버렸다. 

    ** 

    교문앞에 쓰레빠를 끌고 서성이고 있는데, 멀리서 근우가 왠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성숙미 넘치는 묘령의 여인과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X벌 어느 새 예희를 제끼고 저런 여자랑 다니는 거지? 바람둥이 새끼, 저러고 다니니 여자친구가 다른 놈들에게 따먹히구 다니지. 나쁜 새끼. 괜히 욱해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옆에 같이 오던 여자가 내게도 손을 흔들었다. 

    어라? 구면인가?

    "너 은지니? 이은지 맞니?"

    "어이 군바리, 그 새 내 얼굴도 까먹은거야? 엠티 CC끼리 너무하네"

    이은지... 

    내 새내기 시절 , 동기녀이다. 어떻게 보면 내게는 20살때의 ‘예희’같은 아이다. 첫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그때 은지말고도 좋아했던 여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까지 마음에 아련하게 남은 건 은지다. 원래 내가 처음 좋아했던 여자애가 다른 애가 있었는데, 걔에 대해 어떻게 고백할지 상담하면서 친해진 아이다. 그 후에 은지의 매력에 더 빠져서 6개월 넘게 혼자 좋아하다가 결국 고백도 못 하고 다른 남자아이에게 스틸당했다. 

    내가 군대간 이후에도 학교의 다른 선배랑도 사귀었던 걸로 안다. 최정호라는 럭비부의 우락부락한 부주장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주장이 된 듯 하다. 

    “아 그래, 오랜만이다. 스타일이 상당히 달라졌네?”

    원래 좀 보이슈한 스타일이었는데, 치마를 입는 걸 본적도 없고. 그 흔한 청바지도 잘 입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하체에 딱 붙는 청바지만 해도 확 달라보였다. 머리도 생머리였는데 웨이브펌을 해서 뭔가 성숙하고 섹시한 이미지를 풍겼다. 이것이 여선배의 품격인가? 구질구질한 군전역 복학 남학생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이었다. 

    “으이그! 좀 이뻐졌다고 하면 어디 X꼬에 털이라두 나냐?”

    예전처럼 입담이 거침없는 아이다. 조금은 편해진다. 은지는 원래 남자보다 더 과격한 입담으로 동기들 사이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았다. 

    “두 분 사이가 좋네요. 누나, 금요일 저녁에 오실꺼죠?”

    “응, 세미나 모임 있는거 정리되면 바로 전화할게”

    근우는 은지와 만날 약속을 잡은 듯 했다. 은지가 나를 보면서도 얘기했다. 

    “금욜에 너두 오니?”

    “어? 나? 무슨 약속인...”

    “아, 형도 올거예요. 간만에 다 같이 모여서 술 한잔 해요”

    “그래. 좋아, 준오야! 모레 봐!”

    “어... 어 그래. 잘가!”

    얼떨결에 금요일 술자리 멤버에 끼기로 했다. 근우는 해맑게 손을 흔들며 은지를 배웅했다. 난 녀석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어보았다. 

    “너 또 무슨 꿍꿍이냐?”

    “에이, 다 형 생각해서 이러는거 아니예요. 자아! 가볍게 술이나 한잔하러 가요”

    **

    난 학교앞에 자주 가는 술집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룸식은 아니지만 커튼이 쳐서 외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절묘한 자리였다. 일단 레몬 소주와 안주 1개를 시켜서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또 예희와의 일을 얘기했다. 

    “형! 진짜 예희랑 안 할거예요?

    “아 진짜! 너 포주냐? 왜케 여자친구를 못 팔아먹어서 안달이야?”

    “에에, 형은 믿으니까 이런 얘기 하는거죠. 예희는 저 군대가면 또 남자 만나야 하는 팔자예요. 딴놈한테 뺏길빠에야 제가 좋아하는 형이 만나는게 낫죠”

    “그게 무슨 개소리야? 군대가면 너 기다리면 되는거지”

    “예희는 체질적으로 그게 안돼요”

    “체질?”

    “워낙 남자를 밝히는 애라, 남자랑 3일이상 섹스만 못 해도 클럽가서 남자 찾을 아이거든요”

    “야아! 걔 그런 애 아니거든!”

    난 괜히 욱해서 예희를 옹호하며 술 잔을 들이켰다. 

    “에이, 저도 예희 좋아해요. 제가 예희 어떻게 사귀었는지 아세요?”

    녀석은 오늘따라 장난끼보다는 진지하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자꾸 짜증내지 말고 일단 녀석을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 에희랑 예희 고딩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 자식이 있었거든요. 무슨 클럽에서 일하고 졸라 노안인데. 저도 클럽가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새끼가 진짜 쓰레기더라구요. 여자 때리기도 하고. 예희가 직접 맞은 걸 본 건 아니지만. 소문도 존나 안 좋은 새끼고. ”

    클럽 남자라... 그 태현 이사라는 남자가 진짜 예희의 남자친구였던 건가? 

    “글구 나이도 30이나 넘게 먹은 남자가 10살이상 어린 애를 고딩때부터 사귀면서 뭔 짓거리를 했겠어요. 사실 예희가 좀 불쌍해서 제가 꼬셨죠. 그 새끼 예희를 얼마나 조교를 시켜놨는지 저도 예희랑 처음 할 때 죽을뻔 했어요. 너무 잘해서. 헤헤.”

    “근데?”

    “아, 씨 좀 불안해요. 저 군대 가버리면 예희 다시 그 새끼 찾아갈까 걱정도 되고. 제가 보기엔 진짜 질이 안 좋은 새끼거든요”

    너한 할까?라고 되받아치려다가 의외로 예희를 걱정하는 녀석의 마음이 느껴져서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래서, 형이 예희를 맡아줬으면 어떨까 했죠”

    “맡아줘? 뭔 소리?”

    “형이 사귀던지, 예희랑 자주 자던지...”

    “너 참 개쿨하다”

    “에이, 전 형 좋아해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여자애도 맡길수 있는 거죠”

    “이 새끼...”

    가끔은 이 자식이 날 왜 이렇게까지 좋게 보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난 이미 이 녀석에게 말도 안하고 예희랑 해버렸다. 그 사실을 아직도 말하지 못 하고 있었다. 나도 쓰레기 같은 놈인데 이녀석은 선배로써 날 정말 좋아하는 듯 했다. 괜히 근우녀석에게 미안해졌다. 녀석과 짠을 하면서 일단 반정도 솔직한 얘기를 꺼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

    “왜요? 예희 별로예요!?”

    “내가 감당할 아이가 아닐 듯 싶다. 별로 날 좋아하는 거 같지도 않고”

    “아닌데, 저랑 둘이 있을때도 형 얘기 무지 많이 했는데, 형 착하고 좋은 사람 같다고...”

    그놈의 착하다는 인상떄문에 까였다라고 말할까 했지만, 그러면 잤다는 얘기도 해야 돼서 그 말까지는 할 수 없었다. 애써 돌려 말했다. 

    “암튼, 나랑 안 맞아. 그냥 다른 사람 알아봐라”

    “흠, 형이 계속 그럴줄 알고 다른 사람 물색하긴 했죠”

    난 그 얘기에 마시던 술이 거꾸로 솟구칠뻔 했다. 

    “쿨럭...무슨 소리야? 벌써 물색을 했다니?”

    “헤에, 다른게 아니구요. 형 아까 은지 누나 있잖아요”

    은밀한 일도 아닌데, 녀석은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뭐어!? 미친거 아냐?”

    난 근우가 소곤거리는 얘기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정호형도 오케이 했는데요, 그 형도 은근 예희에 대해 관심 많았나봐요. 은지 누나같이 쭉쭉빵빵한 스타일 사귀는데 예희같이 아담한 체형에도 관심이 많은지 몰랐다는...”

    “야! 그 두 사람은 커플인데, 예희를 어떻게 맡겨?”

    “정호형 돈도 많고, 의외로 클럽,나이트 같은데도 안 다녀요. 글구 예희가 몰래 바람피는거 잘해요. 은지 누나 눈치 피해서 정호형이랑 잘 지낼거 같아요”

    이게 무슨 또 개소리인가 싶었다. 한참 지 여자친구 위한다더니만 지 여자친구를 다른 남자, 그것도 애인이 있는 남자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너 왜그래? 진짜? 여자친구가 물건이냐?”

    “뭐 예희도 오케이 했는데...”

    “???”

    “정호형 사진 보여주니까 좋아하더라구요. 원래 예희도 대놓고 말했어요. 나 군대가면 다른 남자 만나고 싶은데 어쩌지? 하면서요. 그래서 제가 소개해준다고 한거구요”

    정말이지 4차원같은 커플이었다. 도통 이해불가 그 자체였다. 이것들의 어처구니없는 성도덕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가 너무 보수적인 걸까 자책할 정도였다. 녀석은 더 뜬금없는 소리를 이어갔다. 

    “좀 있으면 예희랑, 정호형 올거예요”

    “내일 모레 만나기로 한거 아냐?”

    “아 그건 은지 누나까지 보기로 한게 모레고 , 오늘은 일단 우리 넷이 볼거예요”

    “나참, 너 진짜 알다가도 모를 뇌구조를 갖고 있다”

    “왜요? 재밌잖아요 ㅎ” 

    결국, 현재 보이프렌드가 여자친구를 다른 남자에게 소개시켜준다는 얘긴가? 이런 황당한 얘기는 영화로도 안 나올듯 하다.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내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오빠도 오셨네요. 잘 지냈어요?"

    어느 떄보다 진한 화장에 정말 짦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섹시한 모습의 예희가 내 등 뒤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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