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부- (40/40)

-40부-

“사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별고 없으셨습니까?”

“별고?...... 허허...... 별고 많았지.”

“네?......”

“하하,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군, 그래.”

“네, 사장님 덕분입니다.”

“쉴 새도 없이 추진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그간 자네가 없어서 미뤄뒀던 일인데......”

기찬은 지영의 레스토랑에서 한 실장을 만나 토지 매입 건을 의논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한 실장이 일찍 돌아올 줄 알았다면 구태여 애경의 전 남편 패거리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었는데, 공연한 짓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삼백오십억 원이요?”

“물론 그런 돈을 쓸 이유는 없겠지.”

“그, 그러면......”

“건축허가며 사업승인 서류 등은 이미 애경이를 통해서 연결된 친구에게 준비시켜뒀어. 현직 공무원이라서 일머리가 빠른 편이지. 계약할 명의자만 준비되면 바로 허가는 떨어질 거야.”

“아! 그러면 이번에도 노숙자 중에서 한 명을...... 그건 그렇다고 해도 돈은 어떻게 마련하실 생각이신가요?”

기찬은 한 실장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아니, 아니야...... 이번에는 노숙자를 쓰지 말고, 고 의원 아들놈을 내세우자고......”

“고 위원장인가 그 사람이요?”

“으응, 이놈이 내게 아주 고약한 짓을 저질렀어. 상황을 봐 가면서 아주 매장을 시켜버릴 생각이니까...... 하지만, 아직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 일단은 한 십억 정도만 인출해서 노숙자 명의로 가계약만 해 둬. 정식 계약은 추후 한 달 정도 있다가 하자고 하고......”

“아! 그러니까 나중의 상황을 봐서 고 위원장을 내세우실 계획이신가요?”

“그렇지. 그 때 정식계약을 하면서 한 이십억 원 정도를 더 걸어주면 계약하는 데는 무리 없을 거야. 중도금은 한 육 개월 뒤로 미루고...... 기간이 너무 멀다고 하면 사 개월 정도까지는 줄여줘도 되겠지만, 그렇게 될 것 같으면 금액을 대폭 낮춰서 여러 차례로 중도금을 나눠야 해. 알아들었지?”

“네, 네...... 그러면......”

“그래, 일단 토지 가계약만 따내면, 허가와 승인이 바로 떨어질 거니까 바로 광고를 들어가야지. 이미 애경이를 통해서 로비가 끝난 상태거든. 그리고 일반분양을 시작하면 분양대금이 들어오기 시작할 테니까...... 중도금 정도는 어쩌면 그 돈으로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거야.”

“아!...... 잘 하면 십억만 투자하고도 손 안 대고 코 풀 수도 있겠군요.”

“그래, 그 계통은 애경이가 전문가니까 손발 맞춰서 잘 풀어 봐. 내 허락도 없이 배꼽은 맞추지 말고......”

“네? 아! 참, 사장님도...... 하하하......”

“하하하, 한 실장이 이렇게 미남자가 돼서 돌아오니까 은근히 불안해지는데......”

“그럼 공사는 어떻게 하실 건지......”

“지금 내 생각으로는 영진을 끌어들일까 생각 중이야. 어차피 고 의원의 아들놈을 앞세운다면 영진에서도 거절하진 못할 거고...... 제 놈들도 돈을 버는 일인데 거절할 이유도 없겠지.”

“그 사람은 사장님과 끝내 악연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도급계약을 마무리하고 나면 분양금 들어온 것으로 공사대금을 일부 지원해 주고, 그 뒤로는 계속 장기 어음으로 돌리면 될 거야. 그리곤 판이 무르익었다 싶을 때, 분양금 들고 잠수해 버리면 고 의원 아들은 공중분해, 영진은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

“아!......”

“일단은 생각만 그럴 뿐이야.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만, 정말 사업성이 있겠다 싶으면 제대로 꾸려나갈 수도 있는 일이고......”

“네, 그렇다면 일단 대안은 서 있는 거니까 거칠 것 없이 한 번 추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마침 애경이 주변에 있는 부동산업자들을 바람잡이로 끌어들여 뒀으니까, 그 친구들을 잘 이용해서 분양 팀을 여러 개로 분산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봐. 나도 이게 잘 돼서 더 이상은 사기 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 한 실장은 어때?”

“하하, 저도 물론 그게 좋지요.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됐든지 사장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기꺼이 동참하겠습니다.”

“그래, 고맙군. 자, 그럼...... 일단 애경이를 만나서 빠른 시간 안에 추진할 수 있도록 입을 맞춰 봐.”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한 실장이 떠난 자리로 지영이 다가와 앉으며 뒤를 돌아본다. 가는 허리 밑으로 부풀어 오른 엉덩이와 그 아래로 늘어뜨려 찰랑거리는 드레스는 언제 봐도 세련된 모습이었다.

“어머! 저 사람이 한 실장이야?”

“후훗! 그래......”

“어머! 나도 하고 싶다.”

“여자들이란...... 아! 누님이 고칠 곳이 어디 있어? 죄다 하는 소리들하곤...... 저 친구야 할 수 없이 뜯어고친 거지만......”

“피...... 아니면 말지. 왜 소리는 치고 그런담...... 어머! 자기, 전화 온 모양이다.”

한 실장과의 대화를 위해 진동으로 조정해 둔 전화기가 테이블 위를 울리고 있었다.

김성진...... 안기부의 중년 사내, 뭔지 모를 불안감은 또 다시 기찬을 엄습하고, 마른 침을 삼키며 전화를 받아든다.

“네, 강기찬입니다.”

“아! 날세...... 일단 자네 형은 무사히 빼돌려서 안전한 곳에 입원을 시켰네만, 한국으로 후송을 시키기에는 상세가 심한 편이라......”

“아! 그 정도로 심합니까?”

“자동차가 몇 바퀴씩 구를 정도의 큰 사고였으니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그, 그럼 지금이라도 제가 일본으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자네, 고 의원에게 청탁해 둔 일도 있다면서 지금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게다가 그 아들놈마저 행방이 묘연한 것을 알게 되면 바짝 긴장을 할 텐데......”

“아! 그렇겠군요. 참, 그렇다면 그 이태원에 있는 모텔도 다시 가서 입막음 을 해야 할 텐데......”

“그건 이미 우리 요원들을 보내 검토했네. 직원들 입막음도 해 뒀고, 기록도 정상적으로 체크아웃을 한 것으로 해 뒀으니 문제될 일은 없을 걸세. 나도 그 자의 위치를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뭔가 자네에게 연락을 할 거라는 기대만으로 기다렸던 것인데, 아마도 녀석은 자네 형의 상세가 심각하다보니 그렇게 세월만 보냈던 모양이지.”

“네, 제 짐작도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저의 형은 그렇게 두는 수밖에...... 아! 그렇다면 제가 지인을 보내서 형의 상세라도 확인을 하고 싶은데...... 이곳의 가족들이 마음고생이 심하니 편지라도 전할 수 있다면......”

“그래, 자네가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면 그 정도야 문제 될 일이 없겠지. 출발을 시킬 때 다시 연락을 주게. 공항에 마중을 나가도록 지시해 둘 테니까....... 그리고 이제 자네 가족에게 더 이상 나쁜 일은 없을 테니 자네는 안심하고 고 의원과의 일이나 잘 풀어 보게나. 그게 급선무야.”

“네,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찬은 이제 비로소 한시름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회복한다. 계속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는 무작정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인파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 기찬 뒤로 지영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차는...... 두고 갈 거예요?”

“아! 참......”

“호호호, 아유 참,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예요?”

“하하하...... 그럴 일이 있어. 나중에 봐.”

남영동 보라의 가구점 근처, 기찬은 적당한 주차장에 차를 집어넣고, 지하다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곳은 아닌 듯 그다지 어둡지 않은 실내에는 군데군데 영감님들이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곳곳에 진열된 어항들은 어쩐지 낯 설은 모습들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기찬의 모습에 일행을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것인지 마담은 더 이상 채근하지 않고 엽차를 내려둔 채 다시 좌석으로 돌아간다. 

담배를 절반 쯤 태울 무렵, 계단을 내려오는 하이힐 소리가 들려오고, 마담의 인사소리 뒤로 윤정과 그녀의 동생이 들어선다.

쭈뼛거리는 그녀의 모습,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니 반갑기도 했지만, 어쩐지 불편해 보이기도 하는 것은 기찬과 자신의 언니,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 어서 와...... 윤미라고 했지?”

“네, 안녕...... 하셨어요?”

“어머! 얘는...... 뭘 이렇게 어렵게 대해? 편하게 대하라니까......”

기찬을 어렵게 생각하는지 어색하기까지 한 동생의 태도를 보다 못한 윤정이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하하하, 낯이 설어서 그럴 테니 뭐...... 차차 익숙해지겠지. 그래, 윤미...... 여권은 있나?” 

“아, 아니요.”

“그러면 우선 여권부터 만들어야 되겠군. 그리고 윤정 씨...... 형수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

“네, 잠깐 나갔다가 온다고만 말하고 나왔어요.”

“자, 그럼 바로 일어설까?”

“피...... 나는 이제 찬밥이니까 떼어놓고, 처제만 데리고 가겠다는 말씀이죠?”

“어머! 언니......”

순간, 처제라는 말에 당황하는 윤미의 모습에 정작 놀라는 것은 기찬과 윤정이었다.

“으응?...... 하하하......”

“얘가, 얘가...... 우스갯소리도 못하니? 자, 그럼...... 나가죠? 기찬 씨.”

“하하하, 그래, 자, 그럼,,,,,, 우리 처제도 나갈까?” 

“네?...... 아! 네, 네......”

다시 가구점으로 향하는 윤정을 뒤로 하고, 기찬은 그녀의 동생 윤미를 차에 태운다. 운전석으로 오르며 지갑을 꺼내 수표를 꺼내 윤미에게 건네주자, 윤미는 바로 도리질을 치며 사양을 하지만, 기찬은 끝내 그녀의 손에 그것을 쥐어주고야 만다.

“언니에게 들었겠지만, 일본에 건너가면 돈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갖고 있어.”

“그, 그래도 이렇게 많이...... 매번 학비에 생활비까지 보내주시면서......”

“그러면 나를 그저 후견인이라고 생각해. 언니하고 내가 애인 사이라니까 혼란스러웠겠지만, 굳이 애인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일이지. 남녀 관계라는 건 서로 구속하지만 않는다면 그냥 그렇게 자연스러운 거야.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사람들이 괜히 목숨 매달고 사는 건지도 몰라. 언니가 어려운 입장에 처했을 때, 내가 도울 수 있었으니 그건 그로써 다행스러운 일일 뿐이고, 앞으로는 윤미와 나는 언니와 상관없이 한 배를 타야 될 것 같은데......”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 일본 여행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를 도와서 일을 해 보면 어떨까? 뭐랄까?...... 비서라고 생각해도 좋고...... 물론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정식으로 채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

“언니는 내가 윤미를 맡아서 뒤를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모양이던데......”

알듯 모를 듯 장황하게 이어지는 기찬의 말에 윤미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매만지고, 차는 어느덧 삼각지에 도착해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차창을 쓸고 지나가는 천막은 이곳이 모텔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는 일이고, 그것은 어린아이가 아닌 바에야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는 일이었다.

“자, 내리지?”

“네......”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 이미 두 사람은 묵언으로 약속을 이끌어 낸 것이었고, 한 사람은 후견인으로서, 또 한 사람은 그의 조력자로서 서로에게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저...... 그렇더라도 언니에겐 비밀로 해 주시면 좋겠어요.”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뜻밖에 윤미가 먼저 입술을 뗀다. 고개를 숙여 발끝을 바라보는 그녀의 목덜미가 빨갛게 물들어온다.

“그건 왜지?”

“그냥 언니가 행복해 하던데...... 제가 그 환상을 깰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사장님과 언니 사이에 저까지 개입돼서...... 언니가 불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후훗,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 뭐, 그거야 어쨌든 윤미가 바라는 대로 하지. 자, 들어갈까?”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기찬은 윤미의 허리에 손을 얹어 에스코트를 하고, 윤미는 더듬거리는 걸음으로 객실로 들어선다.

마음의 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쑥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 마치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처럼 창가로 다가가 커튼 사이로 밖을 내다본다.

어쩌면 윤미에게는 중차대한 마음의 결정을 해야 했던 순간인지도 모를 일, 기찬은 여유를 주려는 듯,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내고 있었다.

“자, 윤미...... 이리 와서 앉아. 우선 목이라도 좀 축이지?”

“네......”

“윤미는 남자친구가 있나?”

“아, 아니요.”

“그럼...... 남자 경험은......”

“없...... 어요.”

부끄러운 질문을 거침없이 하는 것이 낯설다는 듯이 슬쩍 기찬의 얼굴을 바라본 윤미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어렵게 대답을 한다.

“자, 한 잔 마시지.”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기찬도 술만을 권할 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는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부담은 갖지 마세요.”

“으응? 그건 왜?......”

“언니도 그렇고...... 주변에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그런 마음이 드는 모양이에요. 그나마 언니도 고통스러워하다가 사장님을 만난 뒤 오히려 행복해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닐 텐데, 결혼을 포기할 것까지야......”

“모르지요. 나중에 다시 마음이 바뀔지는...... 현재 생각은 그럴 뿐이에요.”

“흐음......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 윤미의 마음이 바뀌지만 않는다면 평생을 내 개인비서로 일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와의 은밀한 관계는 뒤로 접어두더라도 생활은 그렇게 보장 받아야 할 일 아닌가?...... 어때?”

“어머! 제가 늙더라도 말씀이세요?”

“하하, 그야 물론이지. 어차피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면 윤미도 내 사업을 도우면서 한 세월을 나와 같이 늙어가게 될 텐데, 혼인신고만 하지 않을 뿐이지, 결국 그게 마누라와 다를 게 뭣이 있겠어? 반평생을 집에서 마누라와 지낸다면, 나머지 반평생은 회사에서 윤미와 지내게 될 테니...... 그 대신 지금은 공부 열심히 해서 나를 잘 보좌해야 돼. 특히 내가 취약한 외국어를 집중적으로...... 필요하다면 학원도 등록하고......”

“......”

“그렇게 약속하겠다면 계약을 하는 의미로 지금이라도 당장 윤미 부모님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사실 수 있도록 집을 한 채 장만해서 모실 테니까......”

“저, 정말이세요?”

“물론, 그 대신 윤미에게는 질이 좋지 않은 형부가 있으니까 명의는 윤미 앞으로 하되 팔아치우지 못하도록 내가 가압류는 걸어놓을 거야.”

“고, 고마워요. 사장님......”

“자, 그럼...... 윤미가 일본으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서두르면 이사를 하실 수 있을 테니까 이젠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볼까?”

“네, 네?...... 흐읍...... 흐으음......”

일으켜 세우며 끌어안은 윤미의 부드러움은 물빛 청바지의 거친 촉감마저도 투명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미 수혜나 연경이 같은 여고생들과도 관계를 맺어온 터였지만, 그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그래서 순결한 이미지까지 느낄 수 있는 청초한 분위기의 윤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기찬 스스로의 말대로 사업을 영위하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배우자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니 그 평생을 약속하는 자리에 걸맞은 의식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었다.

번쩍 들어 안은 윤미를 침대에 뉘어두고 옷을 벗는다. 근육질의 잘게 부서진 기찬의 몸매가 드러나고, 뜻밖에 윤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기찬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아!......”

밀고 당기는 쇼맨십은 필요 없는 일, 그녀 또한 나름의 의미를 두고 있는 자리일 테니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찬의 손에 의해 티셔츠가 벗겨지고, 청바지와 속옷들이 떨어져 나갈 때에도 그렇게 기찬을 눈에 담고 있었다.

“사, 사장님...... 하악......”

고개가 꺾이며 비로소 기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차마 고개를 들어 살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비경을 찾아 들이닥친 때문이었다.

기찬 역시 윤미를 배려하는 듯, 조심스럽게 분홍빛 속살을 음미하고 있었으니 혀를 내밀어 간질이고 물어주는 그 느낌은 윤미로서는 단 한 순간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것이었다.

어디서 배운 바도 아니겠지만, 한껏 벌어진 두 다리로는 기찬을 유혹하고 몰려오는 쾌감에 진저리를 칠 것이다. 그 머리칼 속에 손을 꽂아 넣고 기찬의 얼굴을 숨이 막히도록 짓누를 것이다.

“윤미야, 사랑해......”

“사장님, 저도 사랑해요.”

“이제 조금만 참아. 힘들지도 몰라.”

“네...... 참을게요. 전 괜찮아요.”

흥분에 겨워 잔뜩 도드라진 젖꼭지가 파르르 떨리고, 조심스럽게 갖다 댄 음순에는 긴장이 흐른다. 파과의 고통을 기다리는 윤미는 미간을 찌푸려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후욱......”

조금씩 미끄러지며 틈을 만들어가던 기찬의 상징은 한 순간 힘을 얻으며 비경을 가로지른다.

“하악......!”

“차, 참아...... 조금만 참아.”

“네에...... 흐윽......”

윤미는 사력을 다해 기찬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오는 힘인지 가녀린 팔과 다리로 기찬을 결박하듯이 매달려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많이 아파? 이렇게 매달리면 내가 움직일 수가 없잖아?”

“어, 어머! 죄송해요......”

“후훗, 조금만 참으면 곧 괜찮아질 거야. 살살 움직여 볼게......”

“네...... 아흑......”

고개를 숙여 내려다본 그곳은 이미 파과의 흔적이 역력하였다. 그나마 윤활 역할을 해 줄 테니 그것에 기대를 싣고 천천히 허리를 놀려본다.

“후욱......”

이제는 핏물에 어린 속살마저도 기찬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주인을 맞아들인다.

“아악...... 하악.......”

윤미는 팔을 들어 점점 속도를 더해 가는 기찬의 가슴을 두들기지만, 그로써 멈춰질 일이 아니었다. 이미 기찬은 흥분상태에 빠져들었고, 잠시 후면 윤미의 고통도 수그러질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놀릴 뿐이었다.

뽀얀 담배 연기 아래 윤미는 기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달뜬 호흡은 그녀의 가슴기복을 심하게 일렁이고, 그 등을 어루만지는 기찬의 손은 그녀의 기쁨을 이어주고 있었다.

온몸으로 기찬을 받아들이고, 이젠 그의 땀 냄새며, 심장의 박동까지도 담아두려는 듯 떨어질 줄 모르던 윤미가 입술을 오므린다.

“오빠......”

“으응?...... 왜?”

“형부......”

“으응? 뭐하는 거야?”

“아이 차암...... 어서 대답해 보세요.”

“후훗, 그래, 왜......”

“아니에요. 그냥 한 번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어요. 이젠 됐어요. 호호......”

“싱겁긴...... 왜 여보라고는 안하는 거지?”

“어머! 징그럽게...... 후훗...... 앞으로는 사장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