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부-
“엄마, 저 왔어요. 기찬이......”
“오냐, 그래. 어서 와라. 회사에서 일한다고 고생 많지?”
“고생은요? 무슨...... 기숙사에서 밥 잘 나오겠다. 찬 물, 뜨거운 물 펑펑 나오겠다.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형수 보라가 사기를 당해 집을 날리게 되었을 당시, 회사에 취직을 해 기숙사로 들어가야 한다고 속였기 때문에 아직도 기찬의 어머니는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었고,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기찬의 형과 형수도 그에 동조했던 일이었다. 물론 타고 난 성격 상, 그 후 기찬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기찬의 형은 한마디 물어 온 적도 없었지만, 기찬은 오히려 그것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으응, 기찬이...... 일찍 왔구나.”
“어서오세요. 도련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기찬이 비교적 이른 시간에 왔음에도, 형과 형수는 모두 집에 와 있었으니, 손님이 온다고 해서 모두들 일찍 용무들을 마치고 귀가한 모양이었다. 한껏 애틋한 시선을 보내오는 보라였으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는 일이니 기찬은 자연스레 상 곁으로 내려앉는다.
“아! 네, 소라는 아직 안 온 모양이지요?”
“자식이...... 너도 이젠 말 좀 조심해. 처제도 이제 곧 시집을 갈 텐데, 그렇게 함부로 이름을 불러 대서야 되겠어? 게다가 오늘은 신랑감도 함께 올 텐데 기분 나빠 할지도 모르잖아?”
인사 삼아 무심결에 뱉은 말에 기찬의 형이 일침을 가하고, 그것이 틀린 말도 아니니 기찬은 목을 길게 빼고 앉아 딴전을 부릴 뿐이었다.
“어머! 당신은...... 도련님하고 소라하고 뭐, 하루 이틀 그랬어요? 그리고 둘이 동갑내기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랬던 건데 뭘 그걸 가지고 그래요? 이제 결혼해서 그 집 사람 되면 만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은근히 보라는 기찬의 역성을 들어주고 있었고, 그로써 상황이 정리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날려버린 집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머지않아 기찬도 결혼을 하게 될 것이며, 어머니는 이미 자신들이 모시고 있으니 기찬의 새 살림은 자연스레 노량진 본가에 둥지를 트게 될 것인데, 조만간 닥칠지도 모르는 일에 또 기찬의 협조를 받아 무마시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찬을 몰아세워서도 안 될 일이라는 공통분모가 기찬의 형에게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하, 뭐, 신경쓰지 마세요. 형하고 나는 그게 인사니까......”
기찬과 첫정을 나누던 날, 강변에 앉아 지나간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보라는 비로소 기찬이 얼마나 가족들을 배려하는 지 알 수 있었으니, 그만큼 무심했던 자신과 자신의 남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었다. 이제 아무 일도 아닌 듯 버릇처럼 기찬을 무시하는 남편에게 흰 눈을 들이대는 것도 두 사람이 살가운 사이로 변해 버려서만은 아닐 것이니, 오히려 속 깊어 어른스러운 기찬에게 그런 저런 미안함도 있을 것이었다.
잠시 후, 소라 커플이 도착하자, 기찬의 어머니는 인사만 받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젊은이들끼리 있는 자리에 당신이 앉아있으면 행여 사돈처녀가 불편해 할 것을 우려해서 그럴 테니 그것 역시 사려 깊은 모습이었다.
기찬과 소라 역시 데면데면 말없이 앉아있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었다. 평소 개구쟁이처럼 심한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이긴 했지만, 한 사람은 방금 전에 주의를 받은 상태였고, 또 한 사람은 이제 결혼할 새색시의 입장이니 신랑감 앞에서 다소곳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 기찬의 형이 보기에 이상할 것은 전혀 없는 일이었다.
“그래, 자네는 지금 휴직 중이라면서......”
“네, 해외 지사에 근무하다가 결혼 문제 때문에 들어오느라...... 이제 결혼하는 대로 복직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 근무하기로 내정되어 있지요.”
“하하, 그래야 되겠지. 신혼에 낯 선 외국생활은 우리 처제가 고생이 될 테니......”
의례 그렇듯 이미 동서지간이나 된 것처럼 식사를 마치고 술잔이 오고가면서부터의 대화는 기찬의 형과 사내 녀석, 두 사람 간 친교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녀석은 한두 번 해 보는 일이 아닌 듯 잘 꾸며진 스토리를 늘어놓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에 장단을 맞춰주는 꼴이었다.
기찬은 국으로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일어서 어머니에게로 건너가 용돈을 쥐어 드리고는 잠시 후, 주방에서 음식을 정리하는 보라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형수, 거기 닭튀김하고 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 조금만 싸 줘요. 음식 하지 말라니까 뭘 이렇게 많이 했어요?”
“아! 도련님이 가져가실 거는 따로 싸 뒀어요.”
기찬은 보라가 가리키는 찬합을 열어보고는 비닐 팩에 몇 가지를 담아 슬그머니 현관을 나서고, 의아하게 생각한 보라가 그 뒤를 따라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 음식은 왜요? 안에서 먹지 않고......”
“아! 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출출해 할 것 같아서 그래.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있어. 금방 올 거야.”
기찬은 윤호를 떠올렸던 모양이었다. 이내 밖으로 빠져나와 윤호에게 전화를 하니 마주 보이는 경비실 근처에서 라이트를 비춰준다.
“후후, 고생 많지? 자, 출출할 텐데 이거라도 들고 있어.”
“고생은요? 아닙니다. 모처럼 재미나게 하고 있습니다. 아까 들어가시는 것 보고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안 했습니다. 걱정 마시고 들어가 계세요.”
“그래, 이제 여기서 나가서부터가 문제야. 밤길이 어두우니까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저 새끼들 보나마나 여자 후리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놈들일 테고, 이제 저 미련한 계집애마저 자기 신랑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테니, 둘 다 술까지 한 잔 마신 김에 무슨 수작이라도 걸어올 것 같으면 잘못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네, 알았습니다.”
건물 구석에서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아파트로 들어서는 기찬을 기다리는 것은 소라였다. 필시 언니에 대한 당부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있었겠지만 기찬은 모른 척하려는 모양이었다.
“나하고 이야기 좀 해.”
“으응? 소라..... 왜 나왔어? 너희 신랑은 어떻게 하고......”
“딴 소리 하지 말고...... 나...... 언니한테 그 이야기 다 들었어.”
“이야기? 무슨 이야기...... 설마......”
“그래,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 그것도 모르고 너한테 화내고 그랬던 건 미안해. 하지만 난 정말 언니가 걱정 돼 죽겠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니?”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형수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지금 너도 봐서 알겠지만,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어. 형수한테 곤란한 일 안 생기도록 다 알아서 조심할 테니까...... 자, 자...... 우리 둘 다 나와 있으면 오히려 안에서 걱정하겠다. 어서 들어가자.”
“기찬 씨, 너...... 정말 언니 애먹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자식이...... 그래. 자, 약속......”
기찬은 소라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장난스럽게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소라 역시 손가락을 걸며 거듭 거듭 언니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이미 기찬과 언니와의 관계를, 그것도 자신의 언니가 기찬에게 얼마나 매료되어 있는지를 익히 알고는 있지만, 차마 행복하게 해 달라는 부탁은 어불성설이니 이제 결혼을 한다는 것에 자주 볼 수 없는 언니에 대한 걱정으로 감정이 사무치는 모양이었다. 끝내 눈물까지 글썽이는 소라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서는 기찬이야말로 정작 자신 때문에 답답한 노릇이라는 것을 소라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럼 나는 이제 결혼식장에서 볼 일밖에 없겠네. 잘 가. 나는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해서......”
“그, 그래...... 잘 가.”
뭔가 기찬에게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라 역시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여 그저 그렇게 눈빛으로만 언니를 당부하는 모양이었다.
더 있어봐야 쓸 데 없는 일에 공을 들이는 셈이니, 마침 걸려온 전화를 핑계로 기찬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낮에 통화를 했었던 윤정의 전화였다. 남편이 들어오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했으니 이제 흑석동으로 건너가서 고소취하에 대한 건을 의논해야 할 터였다.
기껏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일이었으니, 기찬의 차는 아파트를 빠져나와 한강 인도교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이네요?”
“어, 어서 오세요. 식사하셔야죠?”
마침 여기서도 식사 중이어서 기찬은 그저 상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윤정은 즉시 일어서 밥공기를 준비하고, 기찬은 이미 식사를 했지만, 굳이 그녀를 말리지는 않을 모양이었고, 사내 녀석은 일전, 수혜와의 일을 떠올리는지 기찬을 향해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그...... 미국으로 도망 간 놈 말입니다.”
“아! 네, 네......”
기찬은 대뜸 사기사건으로 서두를 열어가고 있었고, 윤정의 남편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눈을 크게 뜨고 상 앞으로 바짝 다가앉고 있었다. 이미 기찬이 윤정과는 낮에 입을 맞춰 뒀으니 그저 수순을 풀어갈 뿐이라는 것을 알 리 없는 일이었다.
“알아보니까, 마피아 쪽에 연이 닿아 있는 인물이라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돈을 받아 낼 방법이 없게 돼 버렸습니다. 그런 놈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 올 리도 없는 일이고......”
“아니, 그러면 영영 내 돈은 못 찾는단 말씀입니까?”
“내 말을 더 들어 봐요. 그 돈을 못 찾으면, 결국 내 돈도 묶인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두 분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는 내가 두 분을 길거리로 쫓아낼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
“그래서 내가 사람을 쓸까 합니다. 물론 현지 사람이지요. 나도 이 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놈인데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사람이라면......”
“해결사 말입니다. 내가 건너갈 수도 없는 일이니까 결국 그쪽 사람을 쓸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그쪽에서는 그게 불법도 아니에요. 수배범만 전문적으로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들이 있어요.”
“아! 네, 네......”
“그러자니 내가 직접 거래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데, 현재 직접적인 피해자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곤란한 점이 있어요.”
“아! 그렇겠군요. 피해자는 저로 되어 있으니......”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나야 그저 재판 걸어서 두 분 내보내 버리면 그뿐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이란 게 있고, 나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인데 눈 뜨고 당할 수만은 없는 일 아닙니까?”
“......”
“내가 여기서 방을 빼고 이사를 나갈 테니까, 당신은 지금 걸어 둔 고소를 취하하는 걸로 합시다.”
“네? 그, 그러면......”
“내가 이 집에 걸려있는 전세권을 해지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결국 나도 그 놈에게 사기를 당한 셈이니까 내가 직접 고소를 해서 처리를 할 겁니다. 그래야 내가 현지 사냥꾼들에게 일감을 맡길 수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 대신......”
“네, 네...... 그 대신......”
“나도 그 일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게 발생을 할 텐데, 그것을 내가 혼자 부담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 아닙니까? 두 분은 가만히 앉아서 집을 찾는 일인데...... 그렇다고 해서 현재 두 분 상황이 경비를 부담해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닐 것이고......”
“네, 그, 그렇지요.”
“그리고 사실 내가 화가 나서 그러지만, 그 일을 벌여서 돈을 꼭 회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일인데, 그래서, 그 대신 부담을 나눈다는 차원에서 삼 년만 내게 봉사를 해 주쇼.”
“네? 보, 봉사라니요? 무슨 봉사를......”
“내가 따로 가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남영동에 우리 형수가 운영하는 매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아주머니가 나와서 경리 일을 맡아서 좀 거들어 준다면, 나도 이것저것 경비 들이고 손해 보는 것을 반타작하는 셈이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아! 네, 그럼 저희 집사람이 삼 년만 그 가구점 일을 해 드리면, 저희는 그것으로 의무 끝이란 말씀입니까? 만에 하나, 수사관님이 돈을 못 찾더라도 말씀입니다.”
“허허, 참, 꼭 못 찾기를 바란다는 말씀 같습니다.”
“아,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합시다. 만에 하나, 돈을 못 찾는다고 해도 그 문제로 두 분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아! 그럴 게 아니라 아주 오늘 계약서를 씁시다. 삼 년간 부인이 일을 해 준다는 조건으로 내가 전세권을 해지하는 것으로......”
“아!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 그렇게 하시죠. 그럼 어서 종이하고......”
윤정은 얼른 방으로 들어가 종이와 펜을 들고 나와 기찬에게 건네준다. 이미 내용을 모두 들어 익히 알고 있었으니 미리 준비를 해 두었을 것이었다.
윤정의 월급은 물론 보라의 가구점에서 매달 정상적으로 지급이 될 것이었지만, 윤정의 남편 모르게 친정 살림과 동생의 학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 위한 것인 모양이었다.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윤정의 남편에게는 정말 횡재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거절할 일은 아니었다. 직접 수고를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아내를 시키면 되는 일이었으니 그저 삼 년은 찰나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삼 년이 지난 다음에는 정상적으로 월급을 책정해 드릴 테니까 계속 일을 하실 거면 하시고, 그건 그 때 가서 또 의논을 해 봅시다.”
기찬은 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윤정의 남편에게 건네고 있었다.
“아! 네, 그렇게 하시죠. 고맙습니다. 저희들이야 덕분에 걱정을 덜었습니다만, 수사관님도 그 일이 부디 잘 풀려야 할 텐데......”
“뭐, 사실 나야 먹고 살만 하니까 굳이 못 찾아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다만 타고 난 성격이 속고는 못사는 체질이라서 갈 데까지는 가 봐야 될 모양입니다. 자, 그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내일이라도 고소를 취하하시면 근거서류를 부인에게 주세요. 그러면 부인이 출근을 하시면서 가구점에 갖다 두시고......”
“아! 네......”
“그러면 제가 바로 전세권을 소멸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이어서 기찬은 윤정의 남편에게 보라는 듯, 윤정에게 가구점의 위치를 설명해 주는 척하며 윤정에게 다가앉아 약도를 그려가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윤정은 속으로야 웃음이 날 일이었지만, 남편이 보고 있는 앞이니 자못 심각한 얼굴로 기찬의 설명을 듣고 있었고, 기찬이 오른 손으로 약도를 그려가며 식탁 밑의 왼 손으로는 윤정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을 마주 앉은 그 남편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막대한 재산권이 오고 가는 그 현장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처지를 배려해 삼 년간 친정을 돌볼 수 있도록 해 준 기찬과, 정작 일을 해야 하는 자신의 의견 따위는 묻지도 않는 남편의 차이는 윤정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마침, 일이 마무리되어 가는 즈음, 윤호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고, 순간 기찬은 당황하고 있었다.
“뭐, 뭐야? 아, 알았어. 거기가 어디라고?”
“네, 용산역 근처입니다.”
“그래,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즉시 따라붙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받아 버려야 돼. 전화 바로 받고......”
기찬은 윤정 부부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바삐 아파트를 벗어나고 있었으니, 창문을 열어 즉시 경광등을 올리고, 거의 최고속도에 육박할 정도로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이 자식이 진작 전화를 하지 않고......”
다시 전화를 들어 윤호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 기찬은 한 손으로 전화기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어?”
“네, 등에 업고 가다가 토했는지 지금은 전봇대 밑에서 등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아! 지금 일으켜서 다시 업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근처 여관 쪽으로 갈 것 같습니다.”
“아, 알았어. 나 지금 한강 다리를 건너가고 있으니까 곧 도착할 거야. 그 근처에 큰 건물이 어떤 게 보이나?”
“네, 큰길가에 제과점이 있는 골목인데요. 블루진 제과점 그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 아, 지금 여관에 들어가고 있는데......”
“야! 인마. 막아. 못 들어가게 막아. 거기 무슨 여관이야?”
“네, 네. 대, 대호장 여관입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기찬은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으니, 어쩌면 자매가 모두 비슷한 상황으로 치달리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제 막 다리를 통과해 교차로를 지나면서도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고, 번쩍이는 경광등 불빛만큼이나 마음이 바빴으니 경적을 울리며 시선은 제과점을 찾느라 온통 길가의 간판으로만 집중되어 있었다.
“아! 저기, 저기 있군.”
이내 제과점을 끼고 어두운 골목을 한참이나 달려오니 비로소 여관 간판이 군데군데 불빛을 뿌리고 있었다. 이미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윤호에게 중간 상황을 물을 여유도 없었다. 모르면 몰라도 좁고 어두운 골목을 미행하면서 오토바이 시동도 걸 수 없었을 테니 제 때에 쫓아가 잡지 못했다면 무슨 사단이 벌어져도 벌써 벌어졌을 시간이었다.
대호장, 여관 간판을 확인하고 입구로 들어서려는 기찬의 귀에 윤호가 악을 쓰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와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뭐야? 어떻게 됐어?”
“아! 젠장, 수사 중이라는 말을 안 먹어 주잖아요. 아, 빨리 그 방 가르쳐 달라니까요?”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기찬은 벌써 비슷한 체험을 한 바가 있으니 윤호를 뒤로 밀치고 신분증을 꺼내 보이고 있었다.
“몇 호요? 빨리 그 방 비상키를 주쇼. 그리고 관내 파출소에 전화해서 경찰을 오라고 하고......”
“아아, 네. 삼 층입니다.”
낚아채듯 키를 받아 계단을 뛰어오르는 기찬의 몸놀림은 가히 제비처럼 날렵해 계단을 대여섯 개씩 뛰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늦었다면 벌써 늦은 일, 방문 앞에 도착한 기찬은 깊은 심호흡으로 여유를 회복하고 있었고, 뒤 따라 올라온 윤호를 제지하며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들어선 방 안, 역시 욕실은 열려있었고, 그곳엔 토사물을 씻기 위함인지 사내 녀석과 소라의 겉옷이 나뒹굴고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서는 기찬의 콧속으로 토사물의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발밑으로는 찢어져 너덜거리는 소라의 속옷 따위가 발길에 채이고 있었다.
“어어? 누, 누구......”
다행히 아직은 일을 치르기 전인 듯, 녀석은 한 곁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들어서는 기찬을 발견한다. 아마도 소라와 자신의 옷에 모두 토사물이 묻었을 테니, 그렇게 옷을 벗어 욕실에 던져야 했을 것이고, 이미 송장처럼 늘어진 소라의 옷을 벗겨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건 찢어져 발길에 걸리는 속옷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소라의 얼굴과 몸에 묻은 토사물을 씻기고, 거사를 치르기 전 바쁜 호흡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물고 있었다는 것은 그 손에 들려있는 물수건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미 기찬의 얼굴을 알고 있었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긴 했겠지만, 녀석은 과히 걱정을 하지는 않는 얼굴이었다. 아직 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두 사람은 곧 결혼을 할 사이로 되어 있었으니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 오히려 불쾌한 듯 서둘러 소라의 벗은 몸을 이불로 가려주고 있었다.
“아니, 저......”
“시끄러워. 어서 옷이나 입어.”
이미 상황이 벌어졌다면 녀석을 죽도록 두들겨 패느라 정신을 못 차렸겠지만, 의외로 기찬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녀석도 치부를 모두 드러내고 있었으니 할 수 없이 불쾌한 표정으로 고분고분 바지 안으로 다리를 꿰고 있었다. 막 와이셔츠에 팔을 꿰고 단추를 채울 즈음, 비로소 기찬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기 시작했으니, 복부에 일격을 맞고 주저앉는 녀석의 좌우 턱을 날리니 고작 서너 번의 주먹질에 입안은 온통 피투성이로 하나 가득 핏물을 물고 곤죽이 된 채 콜록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기다려주고 옷을 입으라 한 것은 일전 가구공장 박 사장의 경우, 까무러친 뒤 경관들이 옷을 입히느라 애를 먹은 것을 기억했던 것뿐, 다른 배려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 새끼, 소라 계집애의 맨몸을 보고 더듬은 것만 해도 너는 갈아 마셔도 시원찮아.”
작지 않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소라는 이미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져 아무 분간을 할 수 없는 빈사상태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너, 이 새끼. 도대체 뭘 먹인 거야? 술에다가 무슨 약이라도 타서 먹인 거야?”
녀석은 좌우 치아나 잇몸이 모두 상했을 테니 퉁퉁 부은 얼굴로 입을 놀려 웅얼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발음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욕실에 던져뒀던 양복 주머니를 뒤져보니 알 수 없는 약들이 튀어나오고, 그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필시 수면제나 발정을 돕는 흥분제 같은 약들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윽고 들이닥친 경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예의 경우처럼 녀석을 비밀리에 유치해 줄 것을 당부하고 객실 밖으로 나선다.
윤호는 자신이 대단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잔뜩 풀이 죽어 있었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은 기찬이 오히려 잘 알고 있는 바였다.
“후훗, 자식. 괜찮아.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던 모양이야. 수고했다. 오늘 고생 많이 했어. 참, 네 오토바이는 어쨌냐?”
“아! 참, 아까 골목에 버려두고 뛰어 오느라고......”
“그래, 자, 오늘 수고비다. 넣어 둬.”
기찬은 수표를 한 장 꺼내 쥐어 주지만, 금액이 생각보다 커서 그랬는지 윤호는 선뜻 받아 넣지를 못하고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 받으라니까. 당분간 어디서 돈 생길 곳도 없잖아. 이 돈으로 카이로에서 조금만 버텨. 경험이 쌓이면 조만간 더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갈 테니까. 그리고 오늘 일은 절대 발설하지 말고......”
“아! 네. 고맙습니다.”
“자, 이만 오토바이 찾아서 들어 가. 여기는 내가 마무리 하고 갈 테니까......”
“네, 그럼 나중에 카이로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이제 모든 일이 끝나고 사방이 다시 조용해지니 당장의 일이 문제였다. 소라에게 위험한 약을 먹인 것은 아닐 테니 굳이 위세척을 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고, 단지 잠을 자고 일어나면 될 뿐이겠지만, 술도 적잖이 마셨을 상황에 수면제를 얼마나 먹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 낯 설은 장소에서 이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적당한 장소라고는 삼각지가 제 격인데, 이것 참......”
옷은 이미 토사물과 욕실의 물로 잔뜩 젖어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으니 걸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관 주인의 협조를 받아 녀석이 남겨두고 간 양복 상의와 소라의 옷을 비닐봉투에 담고, 브라우스와 찢어져 너덜거리는 팬티, 브래지어도 서류봉투에 담아 여관주인에게 들려준다.
“자, 이걸 여관 앞에 있는 지프에 좀 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아가씨 몸을 덮어서 데려가려면 침대 시트를 좀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 돌려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아! 아, 네, 그렇게 하십시오. 알았습니다.”
여관주인은 눈치 빠르게 앞서서 내려가고, 기찬은 기절한 듯 자고 있는 소라의 몸을 시트로 가려 어깨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홑이불이나 다름없는 침대 시트 밑으로 소라의 맨살이 느껴지지만 여유롭게 즐길 수도 없는 일, 서둘러 자리를 떠나 버린다.
삼각지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올라 선 기찬은 냉큼 벨을 눌러 호출을 한다.
“아! 네......”
“방으로 좀 오시겠습니까?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사람인 듯 보이는 물체를 어깨에 걸머지고 손에는 보따리를 잔뜩 들고 있는 기찬의 모습이 의아하기도 했을 것이었다. 즉시 달려온 주인 여자에게 세탁물을 부탁하고서야 기찬은 몸을 누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소라에게선 술 냄새와 토사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으니 오래 누워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기왕지사 소라의 옷은 모두 벗겨진 상태에 있었으니 기찬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욕실에 더운 물을 채우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다.
“후훗, 계집애. 네가 결국 내 앞에 이렇게 되는구나.”
기찬은 즉시 녹화장치가 되어있는 옆방으로 건너가서 기기를 가동시키고 있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보라와의 애정전선은 이미 활짝 개어있었지만, 나름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이 장면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싫었던 모양이었다.
시트를 걷어내고 소라를 일으키려다가 기찬은 아직 자신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옷을 벗기 시작한다.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리는 소라를 씻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욕조 안에 끌어안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노릇이었다.
칫솔에 치약을 짜 양치질을 시키는 동안에도 주저앉아 있는 소라를 뒤에서 끌어안고, 턱을 받쳐줘야 했지만, 소라로 인해 민감한 부위를 자극받기보다는 정신을 못 차리는 소라가 자칫 칫솔에 잇몸이라도 상할 것이 걱정되는 일이었다.
“에이 참......”
할 수 없이 몇 번의 칫솔질 이후에는 손가락에 치약을 묻힌 후, 소라의 입안 구석구석을 문질러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정작 그 행위가 체위를 갖춰 섹스를 하는 것보다 더욱 기찬을 자극하고 있었다.
작은 입술을 벌려 단아한 치아 곁으로 잇몸이 스치고 혀가 와서 감길 때에는 품에 끌어안은 소라의 엉덩이 밑으로 잔뜩 성이 난 물건이 여기저기를 찔러 대고 있었다.
다행히 머리에는 토사물이 묻지 않은 듯 고운 샴푸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샤워꼭지를 틀어 입안을 헹궈줄 때는 더러 물이 기도로 들어가기도 했는지 콜록거리는 소라가 잠시 눈을 들어 기찬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 정신은 아닌 듯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기찬에게 맡겨온다.
욕조 밖으로 나가자니 소라를 맨바닥에 쓰러뜨려 둘 수도 없는 일이라 그저 무릎 위에 올려둔 채 배수구를 개방해 물을 바닥으로 흘려보내 버린다.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아주고 나니, 아직도 약하게 술 냄새는 풍기고 있지만, 비로소 평소 은은하게 느꼈던 소라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 기찬을 미소 짓게 하고 있었다.
“영차......”
소라를 들어 다시 침대 위로 자리를 만들어 준다. 수건으로 몸 곳곳의 물기를 닦아주고, 다리를 들어 사타구니를 닦아줄 때에는 세심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노릇, 계집애가 몸뚱이를 어떻게 굴리고 다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은 개척되지 않은 신비지라고 믿어주고 싶었다.
살며시 손을 대고 살집을 밀어내보니 연분홍의 속살이 기찬을 향해 손짓을 하듯 미끄러지고 있었다.
“후후...... 계집애, 맛 좀 볼까?”
소라의 두 다리를 접어들고 고개를 숙여 코를 들이미니 방금 씻어서 그런 것인지, 물기가 촉촉한 그곳이 살짝 밀려난다. 혀를 쓸어 부드럽게 살을 밀어내고 몇 번이고 맛을 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리를 다시 내려주고, 옆으로 몸을 누인다.
언제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올 것인가. 소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기회였으니 젖가슴에 손을 얹어 문지르기도 하고, 젖꼭지를 비벼 보기도 한다.
“하음......”
제법 자극이 되기도 했는지 소라가 콧소리를 흘리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니 달아오른 소라를 끌어당겨 옆으로 끌어안고 입술을 더듬어 혀를 밀어 넣어 본다.
살며시 벌어져 있는 입술에 혀를 밀어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의식이 없으니 앞니에 쓸리는 혀가 불편한 노릇이었다. 턱을 쥔 손으로 살짝 볼을 눌러 입술을 열어준 뒤, 소라의 혀를 맛본다. 코로는 알싸한 술 냄새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소라의 입 안은 달콤하기만 하였다. 한참동안 입술을 빨아들이다 보니 소라는 호흡이 어려웠는지 몸을 뒤척이게 되고, 오히려 그 덕에 제자리에서만 오물거리던 소라의 혀를 비로소 입안으로 빨아들일 수 있었다.
“흐읍, 쭈우웁......”
학습은 무의식중에도 되는 것인지, 한 번 넘어 오기 시작한 소라의 혀는 점차 횟수를 늘려 기찬의 입을 들락거리면서 감로수를 넘겨주고 있었고, 이제 입술을 기찬에게 반응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에 고무된 기찬은 소라의 가슴이며, 엉덩이를 쉼 없이 애무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고 있는 소라를 끝까지 몰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내일 정신을 차리고 나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자신의 몸을 보게 될 것이니, 수순은 그 후에도 밟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시 옷을 걸쳐 입은 기찬은 문단속을 해 두고 거리로 나서고 있으니 소라에게 입힐 속옷을 사기 위함인 모양이었다. 주변에 여자들이 수도 없이 포진하고 있으니 그 속옷인들 한두 번 본 것도 아닐 것이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음......”
“으응?”
잠결의 기찬은 이상한 기운에 실눈을 뜨고 소라를 바라보게 된다. 쇼핑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소라에게 팔베개를 해주었었지만, 얌전하게 죽은 듯 누워있던 소라가 이제 약기운이 몹시 받치는지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기찬을 향해 돌아누운 소라는 한 팔을 기찬의 가슴에 둘러 감고 다리 역시 감아올려 보슬거리는 체모가 허리에 느껴질 정도로 골반을 문질러 오고 있었다.
“후훗, 이 계집애 좀 봐라......”
팔을 뻗어 소라의 머리칼을 쓸어주기도 하고, 얼굴에 들어붙은 머리칼을 떼어 정리를 해 주는 중, 소라의 눈이 살며시 열리고 있었다.
“으응?......”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기찬은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깜짝 놀랄 소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아유...... 물, 물 좀 줘......”
머리가 몹시 아픈 모양인지 기찬의 가슴을 왼 팔로 짚고 몸을 반쯤 일으킨 소라는 어이없이도 물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기찬은 그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물을 따라 소라의 손에 쥐어주고, 단숨에 그 물을 들이켜 버린 소라는 다시 몸을 떨어뜨리듯이 침대로 눕고 있었다.
다시 쌔근거리는 숨소리만이 방안에 가득하고 기찬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그저 천정만 마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다시 소라의 몸부림이 시작되고, 손으로는 기찬의 가슴이며 배를 거칠게 쓰다듬고 있었다. 기찬도 몸을 틀어 소라를 마주 보니 누우니 비로소 바짝 달라붙어 다리를 감아올리고 암내를 뿌리기 시작한다.
“후훗, 계집애...... 이제 보니 아직도 비몽사몽이로구먼......”
입술을 찾아 맞춰주니 이제는 소라가 적극적으로 들이대고,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터득이 되는 것이니 몸을 뉘어 기찬을 몸 위로 유도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미 소라의 손길로 인해 바짝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기찬의 심벌은 분기탱천, 하지만 기찬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기찬은 엉뚱하게도 소라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소라야. 소라야......”
한참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소라는 다시 실눈을 떠 기찬을 바라본다. 동공이 열린 듯 몽롱한 시선에 점점 힘이 모이는 것 같더니 한 순간 기찬의 가슴을 밀어낸다. 하지만 그 팔에는 힘이 들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결에 취기와 약기운까지 겹쳐 비록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는 남자가 기찬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소라의 전신은 마치 물 먹은 솜처럼 자꾸만 까라지고 있었다. 기찬이 원했던 것은 바로 이런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기, 기찬 씨......”
“이제 정신이 들어?”
“뭐, 뭐야. 도대체...... 지금...... 꺄아악......”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그리고 언니의 얼굴도 떠올랐을 것이고, 게다가 자신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다른 처지임에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기찬의 배 밑에 깔려 있는 처지가 소라에게는 오직 기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몸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자신을 누르고 있는 기찬에게 발버둥을 쳐봐야 빠져나갈 힘도 없었다. 오히려 용을 쓰고 난 후 취기와 약기운만이 더 빠르게 소라를 자극하고 있었는지 점점 더 달아오르는 피부의 열기를 기찬 마저도 감지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허억......”
지친 모양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다시 시트로 떨어뜨린다. 아직도 소라의 머릿속은 몹시 어지러울 것이었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소라의 입술을 열어간다. 잠시 입술에 힘을 주어 대항하고, 도리질로 피해가던 소라의 얼굴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니 마침내는 입술을 열어주려는 모양이었다. 기찬이 정작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비록 왜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미 처해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 있는 지 알 수 없더라도 이제 기찬의 협조를 받아 이 난국을 극복해야 할 일이니 계속 기찬을 거절할 수는 없다는 소라의 판단을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으흡...... 쭈우웁......”
더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이미 두 사람 모두가 달아오른 상태에 있었고, 기찬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소라의 약기운은 마구 폭주하고 있었다.
“하악......”
이미 젖어 번질거리는 다리 사이로 기찬이 몸을 옮길 때조차 소라는 익숙한 창부처럼 다리를 벌려 맞아들일 뿐이니 더 이상 어려울 일은 없는 셈이었다.
“으으윽......”
하지만 뻐근하게 밀려오는 동통은 남다른 것이었고. 약기운에 의존한 소라의 의지와는 달리 몸만은 생경스러운 경험을 거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아악......”
소라의 비명소리를 흘려들으며 기찬은 마구 허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고, 기찬을 마주 끌어안은 소라의 기다란 손톱은 고통을 견디기 위함인지 마구 파고 들어가 그 등에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