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부- (25/40)

-25부-

“어머! 기찬씨...... 차는 뒤에 주차장이 또 있어요. 빨리 뒤로 옮겨요.”

“아, 아...... 알았어. 이거 완전히 찬 밥 신세로구먼......”

“앞에는 돈 내는 손님들이 주차해야지...... 호호호...... 자기는 돈 안 낼 거잖아.”

지영의 레스토랑은 전면 보도블록에 좌우로 약 세 대씩, 여섯 대정도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점포였다. 건물 뒤의 주차공간도 제법 넓어 점포를 구한 애경의 솜씨를 짐작할 만하였다.

“그런데 왜 혼자 왔어? 여자 데려 온다면서......”

“하하...... 에이, 오늘은 첫 날인데...... 누님하고 먹어야지.”

“어머나! 고마워서 어쩌지? 호호호......”

“그런데 벌써 손님이 제법 있네?”

“으응, 여기가 큰길가라서 그런지 그냥 흘러가는 손님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야.”

“누님 마스크가 분위기는 죽여주니까...... 음식만 맛있게 하면 단골이 금방 생길 텐데......”

“어머머! 정말 오늘 왜 이렇게 비행기를 태우실까? 호호...... 우리 서방님......”

“내실은 꾸며 뒀어?”

“어머나, 어머나...... 자기 혹시...... 지금 그 생각나서 온 건 아니겠죠? 집에서는 안아주지도 않더니......”

“집에서는 애경이도 있고...... 눈치 보이잖아...... 하하......”

“피...... 뭐 애경씨는 자기 여자 아닌가? 그리고 어쨌든 지금은 안 돼요. 영업시간에 괜히 애들한테 책잡힌단 말이에요.”

“음, 흠...... 누가 뭐랬나? 그냥 구경만 하려고 했지. 후후......”

“그럼...... 기찬씨, 나 오늘 집에 가지 말고 여기서 잘까?...... 밤에 올래요?”

“으응?...... 글쎄...... 조금 있다가 독산동에도 가봐야 하는데...... 카이로에도 들러야 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중에 마칠 때 쯤 전화 해 봐.”

“피...... 몰라요. 오든 말든...... 난 갈 거야. 혼자 밥 먹어.”

지영은 기찬의 그 말에 삐쳤는지 휑하니 찬바람을 일으키고 카운터 쪽으로 사라진다. 카이로의 마담 세미와 몹시 흡사한 용모임에도 전혀 다른 쾌활함과 함께 간혹 기찬에게 따지고 덤벼들기도 하는 나이답지 않은 천진스러움이 지영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그럼에도 기찬의 복잡한 여자관계를 질투하지 않고, 누나의 마음으로 조곤조곤 챙겨주기도 하는 알뜰한 성격이라 기찬의 총애를 받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아...... 잘 먹었다. 누님 나, 갈게......”

“몰라...... 가거나 말거나......”

“푸훗...... 알았어. 그럼 이따가 전화 해 줄게.”

“정말이지?...... 그럼 안가고 있을 거니까 많이 기다리게 하면 안 돼. 호호......”

“어이구 참, 알았어...... 나중에 봐.”

순식간에 표정변화를 보여주는 지영을 뒤로 하고, 독산동으로 지수를 만나러 가려던 기찬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조상환의 사채 사무실에서 받아온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는 서류를 조수석으로 던지며 시계를 바라보고, 키를 돌려 시동을 넣는다.

“그래, 지금 가 봐야 아줌마들 정리도 끝나지 않았을 텐데......”

서류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기찬이 이미 물 건너 간 채권 서류를 칠십만 원이나 주고 구입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보증인 명부에 올라있는 사람은 채무자의 남편이었고, 그 남편의 신분이 군인이었으니, 군 수사기관의 문관으로 등록되어 있는 기찬에게는 차려둔 밥상이나 다름없는 일인 것이었다.

김사장이란 자도 보증인 신분이 확실한 군인이란 점에서 담보도 없이 거액을 빌려준 모양이었고, 그 점에 대해선 기찬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었다. 군인이라면 개별 사생활도 진급에 크게 작용하는 법인데, 개인회생이나 파산 따위의 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더 이상 군 생활을 포기한다는 선언과도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가보면 알게 되겠지.”

기찬의 타고난 호기심도 호기심이거니와, 이 일이 잘 해결된다면 약 사백만 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니 칠십만 원정도의 투자는 아까울 것이 없는 일이었다. 잠시의 나들이에 기대를 품고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수원이었다.

수원에는 공군 비행단이 있었고, 그 보증인 자격의 사내는 정비창 하사관 신분이었으니 기찬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 최규린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 누구시죠?”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최근의 일들을 반영하는 듯 낯선 이를 잔뜩 경계하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저...... 서울 소공동에서 왔습니다만, 채권 오백만 원에 대해서......”

“어머! 여보세요. 그건 벌써 정리가 된 거잖아요? 왜 자꾸 이러시는 거예요? 몇 푼 되지도 않는 것 가지고...... 기다리면 다 법원에서 입금해 준단 말이에요.”

자신이 할 말만 해 대고 전화를 끊어 버렸는지, 기찬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휴대폰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

“허헛 참...... 김사장 터지는 속을 알 것 같기도 하군......”

할 수 없이 기찬은 군부대로 전화를 넣는다. 신분을 밝히니 상대는 바로 경직된 채 기찬의 전화를 받아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린다. 보통의 하사관이라야 수사계통의 일반 사병에게도 감찰 대상이 되는 일이고, 위관급이나 영관급 장교도 수사계통의 하사관들에게조차 함부로 굴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하물며 기찬은 그 신분의 제약이 있는 군인도 아니고 군무원이었으니 아내의 빚보증을 선 하사관에게는 비상이 걸린 셈이었다.

사내를 만나러 가는 사이 전화가 울려온다.

“네, 여보세요?”

“저...... 혹시 조금 전에 최규린씨한테 전화 하신 분이신가요?”

“아! 그렇습니다만, 혹시...... 최규린씨?......”

“아, 아니요. 저는 잘 아는 친구예요. 혹시 최규린씨 남편에게도 전화를 하셨나 싶어서......”

“네, 안 그래도 지금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만......”

“그, 그럼 혹시......”

“혹시 뭡니까?”

“수사관이시라는......”

“허허...... 참 나......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라고 이렇게 꼬치꼬치 묻는 겁니까? 이 친구 이거 안 되겠네. 뜨거운 맛을 보여 줘야지...... 입이 이렇게 가벼워서야......”

“아, 아니요. 선생님...... 제가 그 돈을 대신 갚아 드리면 안 될까요?”

“뭐요?...... 당신이 대신 갚아주겠다?”

이 말 한마디로 일단 돈은 받을 수 있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여자의 등장에 기찬의 호기심이 멈출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 꼬리를 쫓아 기찬의 흑심이 발동을 해 버린다.

“네에...... 말씀하신 소공동 돈은 갚아드릴 테니 제발 그 남편 신상에는......”

“으흠...... 일단 만납시다. 거기가 어딥니까?”

여자와 약속장소를 정하고 난 뒤, 다시 군부대로 전화를 넣는다. 전화해 온 여자의 신상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어야 할 일이니 사내를 다시 윽박지른다.

“아, 아...... 저는 제 아내에게 전화를 했을 뿐인데...... 그 여자는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내가 누군가에게 돈 부탁을 한 모양인데요. 저, 정말입니다.”

“전혀 짐작이 되는 사람도 없어요? 매탄동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 매탄동이라면 제 집사람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미용실을 하는...... 제 집사람도 미용실에서 같이 일하고 있거든요. 아마 그 사람인 모양입니다.”

“음...... 그런 모양이군. 알았소. 그럼 나중에 봅시다.”

“저, 저는......”

“뭐, 걱정 마시오. 나도 결국 다른 사람 부탁으로 왔을 뿐인데 돈만 회수할 수 있다면 문제 삼지 않을 테니까...... 사실 당신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어? 당신 아내가 벌인 일일 텐데...... 너무 걱정 마시오. 대신 갚아 주겠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일이 잘 해결되면 그냥 바로 올라갈 테니까......”

“아! 네, 네...... 고맙습니다.”

“뭐, 나도 군대 밥을 먹는 사람이지만, 이거 참...... 살림 사는 여자들 문제 많아요. 어쨌든 문제가 해결되는 모양이니까 안심하시오.”

약속한 다방은 마침 흘러간 분위기의 다방인지 실내가 몹시 어두워 분간을 하기가 쉽지 않았고, 껌을 요란하게 씹어 대는 난해한 분위기의 아가씨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기찬을 반겨 맞는다.

“어머! 어서 오세요. 오빠......”

“아! 손님이 있을 건데......”

“네...... 손님이 여자 분이시죠?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구석진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며 기찬을 맞는 여자는 이십대 후반이거나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기찬의 속내를 모르고 있을 테니 그 얼굴에는 제법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엽차를 한 모금 마실 즈음 어두운 실내에 차츰 익숙해져 여자의 얼굴 윤곽이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죄, 죄송해요......”

갸름한 얼굴에 짙은 눈썹이 마치 문신을 한 듯 선명한 얼굴의 그녀는 정작 자신의 일도 아닌데, 매우 긴장하고 있어 기찬을 의아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 아닙니다. 저야 돈만 받으면 문제 삼지 않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래, 돈은 언제쯤 준비가 되겠습니까?”

“네, 되는 대로 빨리 준비해 드릴게요. 한 이삼 일만 말미를 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갚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그 최규린씨라는 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어찌 됐거나 각서에는 두 분이 같이 연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제가 적어 드리면 안 될까요? 규린이는 사실 제가 여기 온 걸 모르고 있는데......”

“네에?......”

어이없는 소리에 또 다시 기찬의 궁금증이 물밀듯 밀려온다. 최규린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에게만 말을 했다고 했는데, 그 아내가 친구에게 부탁을 하지 않았다면, 이 여자는 어디에서 소식을 듣고 왔으며, 또 돈을 대신 갚아주겠다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어...... 사실은 저희 남편이 전화를 해서...... 대신 갚아주라고......”

“으응?......”

그렇다면 최규린은 남편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서야, 자신이 박대해 버린 전화가 소공동 사무실에서 청탁을 받은 수사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 후 함께 일하는 친구가 아닌, 그 친구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성립이 되는 것이었다. 다시 그 남편은 자신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비로소 이 여자가 기찬과 만나고 있다는 것이니 그 복잡한 속사정에 기찬의 오감이 곤두서 일어난다.

“뭐야? 지금...... 당신들 사는 게 왜 이리 복잡해? 그럼 내 전화번호도 당신 남편이 불러주더란 말이요?”

“네...... 아마 규린이 신랑이 남편에게 불러 줬겠지요.”

“얼씨구?......”

어렴풋이 감이 잡혀온다. 이 여자는 물론이고, 최규린과 그 남편인 하사관, 어느 누구의 말도 신용할 수가 없는 상태가 돼 버렸으니, 이 여자가 최규린의 남편과 붙어먹는 것인지, 최규린이 이 여자의 남편과 붙어먹는 것인지 모호한 상황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제는 돈도 돈이지만, 그것을 받아내는 일은 기찬의 왕성한 호기심 뒤로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그 우선순위가 뒤집혀 버린다. 여자의 알싸한 미모와 함께 자신의 전화를 싸가지 없이 받아낸 최규린의 진면목 또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분위기로 보자면, 최규린과 이 여자의 남편이 붙어먹는 것이고, 이 여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름의 이유로 모른 척하며 가슴앓이를 하고 지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잔뜩 풀이 죽어 말하는 여자의 모습에 일면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기찬이었지만, 만약 그 반대로 신변에 위협을 느낀 최규린의 남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공연히 멀쩡한 자신의 남편과 최규린을 불륜으로 몰아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니 그 귀추가 주목되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잘 하면 이 관계를 비집고 들어가 최규린은 물론 이 여자도 넘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기찬의 입 꼬리가 다시 비스듬히 걸리게 된다.

최규린의 얼굴이야 아직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 있으니 이 여자에게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두 여자가 함께 일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 미용실에 가서 확인하면 그뿐인 것, 기찬은 서둘러 각서를 받아낸다. 최규린의 분위기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이 여자의 말이 사실인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여기에 각서를 써 주세요. 이삼 일이면 충분하다고 했지요?”

“저...... 방을 하나 빼야 할지도 모르니까 넉넉잡고 일주일만 주시면 안 되시겠어요?”

“뭐...... 그럽시다. 그 대신 기간이 경과하면 이자는 물론이고, 다시 처음의 문제가 다시 대두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네, 네...... 꼭 그 안에 갚아 드릴 거예요.”

“음...... 박계영씨?......”

“네......”

각서를 적어 나가는 여자의 이름은 박계영이었다.

“최규린씨와는 어떤 사이신지...... 친구라고 하셨는데......”

“네, 여고 동창이에요.”

“아...... 그렇군요. 자, 그럼 가서 머리나 좀 자르고 갈까요?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아! 네...... 그, 그러시죠. 그럼 가시더라도 이 말씀은 좀......”

“그러죠. 뭐...... 저야 계영씨에게 돈을 받으면 그 뿐이니까...... 알았습니다. 계영씨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 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머리만 자르고 가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럼 전 나온 김에 시장 좀 보고 들어갈 테니 먼저 가셔서 머리를 하고 계세요.”

“네, 네...... 그러시죠.”

찻길을 건너 아파트 단지 상가 일층에 입주해 있는 미용실로 걸음을 옮기고, 계영은 계영대고 슈퍼로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후훗...... 이것 봐라?”

기찬은 반가이 맞아주는 규린의 얼굴을 확인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상의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의자에 앉으며 거울로 규린의 만족할 만한 몸매를 흩어 본다.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로서 군인의 부인들이 대부분 미인이라는 것이 빈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머리를 깎는 동안 슬쩍 슬쩍 부딪쳐 오는 가슴의 감촉을 즐기고 있자니 비닐봉지 가득 물건을 쇼핑한 계영이 돌아온다.

“어머! 얘, 뭘 그렇게 많이 샀어?”

“으응, 날이 더워서 저녁에 냉면이라도 할까 싶어서...... 너도 갈 때 좀 가지고 가.”

오고가는 대화중에 전혀 돈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 규린은 정말 기찬과의 전화통화를 끝으로 그 일은 잊어버린 듯 보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규린의 남편 하사관과 계영이 불륜인지, 규린과 계영의 남편이 불륜인지 다시 기찬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네, 또 오세요.”

계산을 치르고 미용실을 빠져나온 기찬은 시계를 바라보곤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아뿔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버렸네...... 이거 미림이가 알면 발악을 해 댈 텐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전화가 울어 대고 그 주인공은 미림이였다.

“으응, 외삼촌이 지금 바빠서......”

“칫...... 누가 뭐래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하하...... 저녁에 보자. 미림아...... 내가 지금 수원에 있거든...... 올라가는 길에 들릴 테니까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하더라고 말씀 좀 전해 드려.”

“그럼...... 저녁에는 꼭 오실 수 있는 거예요? 안 먹고 기다릴 테니까......”

“으응, 그럼...... 가고말고...... 내가 가야 미림이가 저녁을 안 굶지. 하하하......”

“그럼 꼭 오셔야 돼요.”

“그래, 그래......”

기찬은 다시 차를 몰아 비행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가 도깨비 같은 여자들로부터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어려울 것 같아, 규린의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면회소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규린의 남편이 나타나 거수경례를 해 온다. 아직 중사 계급이라면 썩 넉넉하지도 않을 형편에 마누라 잘 둔 덕에 생으로 못 할 짓을 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뭐, 어차피 빚이라는 게 개인 명의를 따라가는 거니까 굳이 당신하고 연관 지을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군인 신분이라는 것이 주변이 깔끔해야 하는 만큼 이해하시오.”

“아, 네...... 물론입니다.”

“그래...... 부인은 뭐 하는데 그리 많은 돈을 여기저기서 끌어왔답디까? 카드빚에......”

“아! 그게...... 저 모르게 돈을 번다고 무슨...... 다단계 회사에 속았던 모양입니다. 살아 보겠다고 그런 것을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한 때는 속이 상해서 이혼하려고도 생각했었는데......”

“어허...... 그렇다고 무슨 이혼씩이나......”

“네, 소개해 주신 선배님 얼굴도 있고 해서...... 이번에 개인회생 신청한 것도 그 선배님이 별 일 없을 거라고 알려준 건데 이런 파장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건 당신이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뭐,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어요? 다 빠져 나간다고 해도 당신이 군인인 것이 나하고 맞아 떨어졌을 뿐이지...... 나도 그 돈만 받으면 다른 것은 문제 삼지 않을 테니 그 점은 안심해도 좋아요. 마침 같이 일한다는 친구가 우선 막아 주기로 했으니......”

이쯤해서 기찬은 궁금한 점을 짚어가기 시작한다.

“아! 선배라는 분이 소개를 해 줬다면 부인을 중매로 만나신 겁니까?”

“아, 네...... 허허...... 뭐, 중매라기보다는 소개죠. 그래도 한 육 개월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했으니까...... 바로 그...... 미장원을 하는 친구 남편이 제 선배십니다.”

“아! 원래 두 집이 그렇게 가까운 사이시구먼...... 남편끼리는 선후배에 부인끼리는 친구가 되시고...... 그래요. 잘 알았습니다. 공연히 걱정하실까 봐 일부러 들렀습니다. 이젠 다 해결된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참! 그러면 내 전화를 받고 그 선배에게 따로 돈 부탁을 하신 겁니까? 여자들끼리 오백만 원이라면 제법 큰돈인데......”

“아, 아니요. 저는 이번 일로 이것저것 폐를 끼친 것이 많아 염치가 없어서...... 아마 제 처가 놀라서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하지 않았을지...... 그 쪽에서도 어쩌면 제가 이혼한다는 것을 만류하는 입장이어서...... 게다가 제 처를 소개해 준 일도 있고 하니...... 허허...... 우리 선배도 자기 부인 부탁에 마지못해 빌려준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허허......”

“아! 그랬겠군요. 하하...... 아, 이거 다단계 문제 많아요. 자,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얼렁뚱땅 사실에 접근해 보려고 했지만, 이 사내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인지 역시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다. 이 친구는 자기 부인 규린에게만 전화를 한 모양이었고, 다방에 기찬을 만나러 왔던 계영이 말하기로 규린은 그 사실을 모른다고 했으니, 역시 계영의 말대로 중사는 부인 규린에게, 규린은 계영의 남편에게. 다시 계영의 남편은 계영에게 전달을 해 빚을 대신 갚아 주라는 것이었으니 규린과 계영의 남편이 불륜이라는 것이 틀림없는 모양이었다.

“으흠...... 그러면 계영은 자기 남편과 불륜관계에 있는 규린을 그저 친구라고 모른 척 해 주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남모르는 사정이 있어서 남편한테 쥐어 살기라도 하는 건가?......”

대강의 사실에 접근하고 보니 새삼 계영에게 안 됐다는 마음이 피어오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지 않으면 미림이에게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 걱정되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채권에 대한 각서도 받아 두었으니 다음을 기약하며 서울로 페달을 밟아간다.

“와...... 오늘 고생이 많으셨지요? 누님......”

“아! 사장님, 이제 오십니까?”

“어머! 어서 오세요. 아직도 정리가 다 안 돼서......”

“외삼촌, 어서 오세요.”

“오! 그래, 그래......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네......”

김비서 식구들이 이사한 아파트를 여기저기 둘러보는 기찬의 뒤로 세 식구가 따라붙어 마치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바탕 웃어넘긴다.

큰 방 두 개와 작은 방 하나가 있어 방 하나는 김비서의 서재로 꾸며 두었고, 작은 방을 미림이의 방으로 정해둔 모양이었다.

“가끔 외삼촌 술 드시고 못 가시면 저 방에서 주무시면 될 거예요. 그렇죠?”

누가 묻지도 않은 것을 미림이가 나서서 서재에 대한 사용권을 은근슬쩍 기찬에게 몰아주며 제 아빠와 엄마를 돌아본다. 김비서의 입장에서야 다른 이유를 들어 반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한창 예민할 시기의 딸 미림이가 그나마 기찬과 잘 지내는 것 같아 내심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냉큼 미림의 말에 대답을 해 버린다.

“그렇겠지? 그럼 사장님 이부자리는 앞으로 미림이가 챙겨 드려야 되겠는 걸?...... 하하......”

“호호......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요? 제가 할게요.”

“하하...... 미림이 덕에 그럼 나도 방이 하나 생긴 셈인가?...... 자, 김비서...... 이제 저녁이나 먹으러 가시죠? 뭐, 이삿짐이라는 게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저녁엔 건너가 봐야 할 일도 있고......”

“어머! 외삼촌 오늘 안 주무시고, 그냥 가실 거예요?”

기찬은 지영의 레스토랑에 가기로 약속을 해 두었으니 식사 후 건너가야 할 입장이었고, 미림이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기찬에게 투정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정작 곤란한 사람은 미림이의 속내를 알고 있는 지수였으니 얼굴이 달아올라 황급히 미림이를 만류한다.

“어머! 얘, 미림아. 나가려면 어서 옷부터 갈아입어야지. 그렇게 입고 나갈 거야?”

“어, 엄마는...... 이게 뭐, 어때서......”

기찬은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가 문득 소파가 낡았다는 생각이 들어 손으로 바닥을 몇 번 눌러보고, 일어서서 발로 눌러 보기도 하더니 김비서를 바라본다.

“음...... 이거 방배동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여기에 두고 보니까 색깔이 영 맘에 안 드는데요?”

“아, 네...... 좀 낡았지요? 오래 됐습니다.”

“그럼 이사 기념으로 제가 소파하고 탁자를 바꿔 드리지요. 하하...... 달리 해 드릴 것도 없는데.......”

“어머! 괜찮아요. 사장님...... 그냥 써도 되는데......”

어느새 나왔는지 반바지를 다시 긴 바지로 갈아입은 미림이가 기찬의 말에 맞장구를 쳐 온다.

“어머! 잘 됐다. 그럼...... 외삼촌, 밝은 색으로 바꿔 주세요.”

“그래, 알았다. 자...... 이제 나가볼까?”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순간부터 아빠의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는 미림이가 귀여운지 김비서는 연신 웃음을 흘리고, 큰 길로 나서는 길에서도 미림이는 아빠의 팔을 흔들어 가며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

그 뒤를 따라가는 기찬과 지수 두 사람은 미림이가 저러는 이유를 모를 리 없으니,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도 시선이 마주칠 때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누님, 오늘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지수는 어디에서 용기가 생겼는지 앞서가는 남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슬며시 기찬의 손을 잡아온다. 미림이가 비뚤어지지 않고,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해 주었다는 것에서도 크게 안심할 일이지만, 힘들어 할 때마다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해 주고, 위안을 주는 기찬에게 지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 표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안해, 낮에는 바쁜 일이 좀 있었어.”

“괜찮아요. 괜히 미림이한테 철없는 엄마가 돼 버린 것 같아서 하루 종일 기분이 이상했어요.”

“하하...... 저 녀석, 이제 완전히 내 편이라니까......”

“후훗...... 그러게요. 그래도 아직 미림이에겐 말도 못 붙이겠어요. 낯이 서질 않아서......”

“차차 좋아질 거야. 너무 마음 쓰지 마.”

식당에 도착해서도 미림이는 냉큼 제 아빠 곁으로 달라붙어 물수건이며 재떨이 따위를 챙기는 등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해 내고 있어서 속 모르는 김비서는 이제껏 받아 본 적이 없는 서비스에 입이 찢어져 귀에 걸려 있는 형국이었다.

“하하...... 어서 앉으세요.”

자연스럽게 기찬과 지수는 그 맞은편에 앉게 되고, 그런 미림이의 배려에 기가 막힐 뿐이지만, 틈틈이 테이블 밑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아 아쉬운 교감을 이어 가기도 하고 있었다.

지금 지수의 심정은 마치 남편의 앞에서 벌거벗겨진 채 기찬과 성교를 나누는 듯 은밀한 오르가즘마저 오고가는 그 손길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미림이는 이미 방배동에 있을 때, 어른들의 술좌석에 끼어 이것저것 안주를 집어먹으며 한 자리를 차지한 경험이 있으니 쉼 없이 제 아빠의 빈 술잔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머! 얘, 미림아. 아빠 술 그만 드려. 아빠, 술도 잘 못하시는데......”

“어, 어...... 아니야. 여보...... 나도 이제 제법 술이 늘었어. 하하......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언제 미림이에게 이런 서비스를 받아 보나? 괜찮아.”

아빠를 일찍 취하게 하려는 미림이의 치기어린 목적을 지수가 모를 리 없으니 미림이를 만류해 보지만, 김비서는 아닌 게 아니라 현장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술이 제법 늘었는지, 의외로 아직까지는 흐트러짐 없이 기분 좋게 술을 마셔 내고 있었다.

하지만 술에는 장사 없는 법, 식사를 마칠 즈음엔 여지없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무너져 버린다.

“아, 아이구...... 허허...... 사장님, 제가 조금 취한 모양입니다.”

“하하...... 뭐, 어때요? 기분 좋은 날...... 저도 오늘은 많이 마셨습니다.”

미림이는 제 아빠를 부축해 식당을 나서고, 김비서는 휘청거리는 걸음을 미림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지수가 얼른 달려들어 김비서를 부축하려 하자, 미림이는 지수를 만류하고 나선다. 그리고는 마치 제 아빠에게 들으라는 듯이 또렷한 목소리로 기찬에게 말을 전한다.

“외삼촌, 그러면 저는 아빠 모시고 집에 갈 테니까요. 엄마하고 가구점에 들러서 소파하고 테이블 보내주셔야 돼요. 알았죠?”

“으응, 그래...... 알았다.”

저만치 멀어져 가는 미림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무데나 가서 대충 고르면 안돼요. 여러 군데 가 보고...... 천천히......”

한참을 걸어가다가 제 깐에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다시 뒤를 보고 소리치는 미림이가 어이없을 뿐이었다.

“아유, 난 몰라...... 어쩌면 좋아요?”

큰길임에도 지수가 몹시 당황했는지, 기찬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 기대어 온다. 기찬은 팔을 둘러 지수를 포근히 안아줄 뿐이었다.

“하하...... 괜찮아. 누님...... 지금은 낯설어서 그럴 뿐이야. 계집애들 키워 놓으면, 나이 먹어가면서 다 엄마하고 친구처럼 변해 가는 거 아냐?”

“아유, 난 무서워요. 저 계집애...... 아까 제 아빠 부축해 주려고 했더니 나한테 윙크를 하잖아요. 글쎄...... 미림이한테는 내가 모르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면서요?”

“그랬어요? 허헛 참...... 그러면 미림이도 서로 알고 있다는 걸 대충 눈치로 알아챘다는 뜻인데...... 차라리 잘 된 거잖아요? 어쨌거나 누님 입장을 이해해 주고 있으니...... 오죽하면 제 엄마 힘들어 한다면서 품어 주라고 전화를 다 했을까?”

“아이 참, 누가 들어요.”

“뭐, 들으면 어때서?...... 후훗...... 자, 누님...... 시간 없는데, 여관부터 갈까? 가구점부터 갈까?”

“어, 어머! 아유, 기찬씨......”

지수도 술을 한 잔 곁들여서인지, 아니면 미림이의 응원에 고무된 것인지 제법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기찬의 팔짱을 걸어온다.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겨 번화가로 방향을 잡는다.

“정말 고마워요. 기찬씨...... 난 너무 행복해서 꿈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내 인생에 날 이렇게 아껴주는 남자가 있다는 것이...... 꼭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오신 것만 같아요.”

“후훗...... 그래, 나는 영원히 누님 남자야. 그러니까 아까처럼 괜히 우울해 하지 마.”

“네, 알았어요. 이제 내일부터는 저도 바빠지잖아요? 그럴 시간도 없을 거예요.”

“자, 저리 들어가자. 누님......”

“네, 가요.”

이젠 마음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기찬을 향한 애정이 끓어올라 지수도 기찬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의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옷을 벗는 기찬의 앞에서 다소곳한 모습으로 뒤로 돌아 허물을 벗어 내린다.

흘러내리는 고운 어깨선이 마치 비너스 상을 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탐스러운 젖가슴이 기찬의 손길을 끌어들인다.

“흐응...... 먼저 샤워하고 오세요.”

“누님, 같이 들어가자. 같이 씻고 싶어. 시간도 없잖아?”

“네, 그래요. 그럼......”

모든 일에 고분고분 순종적인 지수의 모습에 기찬은 한없는 사랑을 느낀다. 기찬과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 중 금주와 더불어 가장 나이가 많은 지수라지만, 어디에서도 나이 차에서 오는 거리를 느낄 수 없는 여자였다. 천생 여자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어느 정도의 미모만 있어도 되바라진 요즘의 세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탄력 있는 젖가슴 밑으로 가늘어지는 허리선을 타고 기찬에게 한없는 안식을 전해주는 지수의 엉덩이가 부풀어 오른다. 흐르는 물줄기에 손을 얹어 정성스럽게 비누칠을 해 주며 지수의 소중한 곳,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도록 관심을 기울여 그 정성을 다 해 문질러 준다.

“흐윽...... 여보...... 그러면 싫어요.”

“누님...... 언제까지 그럴 거야?...... 이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에요. 가만히 느껴 봐요.”

지수는 이미 기찬과 여러 번 경험을 나누었지만, 오럴에 낯설어하는 지수를 배려해 기찬은 그저 보편적인 행위를 통한 사랑을 나누었을 뿐이었다. 이제 함께 욕실에 들어 부끄러운 부분을 속속들이 대낮같이 밝은 곳에서 정인의 눈앞에 드러내게 되고 그 손으로 만져진다는 생각이 흥분과 함께 올라오는 수치심에 지수를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하는 모양이었다.

“흐으읍...... 쭈우웁......”

“하악...... 거긴 더러워...... 여보......”

“흐으읍...... 괜찮아요. 누님...... 하나도 안 더러워.”

물을 뿌려주면서 틈틈이 입술을 들이대 돌기를 물어주고, 혀로 쓸어주며 빨아 주기도 하니 지수는 그 흥분에 겨워 온 몸을 떨어대고, 고개가 뒤로 꺾여 버린다.

자극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기어이 주저앉고 마는 지수를 보고 기찬은 내친 김에 지수의 닫혀있는 성감을 일깨워 주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누님, 저기 잡고 엉덩이를 뒤로 내밀어 봐.”

“어, 어떻게 하려고?......”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봐요.”

정상적인 부부 관계에 있어서 피차가 소극적이었다면,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함직한 일이니, 그 감각이라는 것이 특별히 타고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닐 바에야 지수라고 해서 그것을 견디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기찬은 커다란 지수의 엉덩이를 붙잡고 그 갈라지는 곳의 무늬도 선명한 들국화 꽃잎을 물어간다.

“흐어억...... 안돼요..... 싫어...... 미쳤나 봐......”

기찬은 버둥거리는 지수의 엉덩이를 힘주어 잡아 멍이 들 정도로 잔뜩 품에 안아 들어 버린다. 다리가 허공에 들린 지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덩이를 잔뜩 벌리고 계곡에 코를 들이박은 기찬에게 꽃잎을 빨리고 있었다.

“하으윽...... 싫어...... 더러워...... 흐윽......”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꽃잎 밑으로 열려있는 분홍빛 살집이 부풀어 오를 즈음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된 기찬의 혀 놀림에 지수는 혼절을 할 지경의 쾌감이 밀려와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고, 수치심에 흘려버린 눈물도 이제는 말라붙어 지수에게 찝찔한 소금기만 전해주고 있었다.

“허으응...... 여보...... 살려 주세요...... 제발...... 잘못했어요......”

“흐으읍...... 쭈우웁...... 후우...... 이젠 누님이 좀 해 봐요. 할 수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강하게 한 번 빨아 주고 심호흡을 하며 허리를 펴자 지수는 대답 대신 기찬의 허리춤을 쓸어 올리곤 두 손으로 기찬의 심벌을 고이 받쳐 입으로 물어 간다.

“흐으음...... 쭈우웁......”

“으흑...... 흐윽...... 잘 하는데...... 그래......” 

이어지는 기찬의 칭찬에 지수는 그만 어린애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기찬의 심벌을 흰 손으로 말아 쥐고 흔들어 주기 시작한다.

“흐으윽......크으윽......”

역시 사랑이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우는 것인지, 그 틈에 입술을 벌려 기찬의 심벌을 물어가고, 고운 입술로 빨아주며 여전히 흔들어 대는 손길은 기찬을 나락으로 몰아가 버린다.

기찬 역시 잔뜩 몰려오는 흥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깊숙이 찔러 넣어 지수의 목구멍을 경험한다.

“우욱...... 큭...... 켁켁......”

“아, 아...... 누님...... 미안해...... 나도 모르게......”

“하악, 하악, 하악...... 괜찮아요. 여보...... 더 해 드릴게요.”

이미 경지를 넘어선 지수의 동공은 풀려 있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지수를 일으켜 침대로 데리고 나선다. 다리가 풀려버린 지수를 안아들다시피 침대로 데리고 오고, 갈 곳을 몰라 힘겨워 하는 심벌을 지수의 계곡 살집 사이로 밀어 넣어 버린다.

“하악...... 여보......”

“후욱...... 후욱......”

밤거리 조명이 휘황한 건물들 사이로 다정하게 팔짱을 낀 기찬과 지수의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해요?”

“뭐를?......”

“그 침대......”

“쿡쿡...... 그러게 누가 오줌을 싸래?”

“아이 참, 조용히 해요.”

“하하...... 자, 어서 소파나 보러 가자고...... 이 근처 가구점에 우리 물건 들어가는 곳도 어딘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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