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아휴...... 아까는 그만...... 놀라서 애 떨어지는 줄 알았지 뭐예요? 호호호......”
“하하...... 나도 그랬어. 아, 이 계집애가 도움이 안 돼요. 글쎄......”
기찬과 보라는 장을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가구점을 빠져나와 기찬의 차에 오른다.
자연스레 기찬에게 팔짱을 끼고 가구점을 나서는 모습은 종종 보아왔던 것이니 소라도 별다른 반응 없이 배웅을 한다.
“두 사람 너무 다정해 보이는 거..... 알긴 알아? 나는 가끔 저 물건이 우리 형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하거든......”
기찬과 농담을 자주 주고받는 소라가 평소와 다름없이 한 마디 던진 말에 보라의 가슴이 내려앉는다.
“뭐, 뭐?...... 너 이 계집애...... 무, 무슨 말을......”
“호호호...... 언니, 미안...... 미안......”
소라의 짤랑거리는 웃음소리가 하늘로 흩어지더니 이내 가구점 안으로 사라진다.
기찬의 차는 남대문 방면으로 방향을 잡고, 기찬은 보라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 둔다.
“와 줘서 고마워요. 도련님......”
“그게 무슨 소리야?...... 형수는 이제 내가 챙길 내 사람인데...... 후훗......자, 어디부터 갈까? 아까 놀라서 애 떨어질 뻔 했다니까 애가 잘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하러 갈까?”
“어머! 도련님...... 너무 해요...... 그런 소리를......”
“하하하...... 자, 근처 어디 호텔로 들어갈까? 나도 빨리 형수 만지고 싶어서 죽겠어.”
“......”
보라는 얼굴이 다시 달아오르는지 말없이 다소곳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충무로를 지나 회현동 근처의 한 호텔로 들어서 발걸음을 서두른다. 이미 보라의 가슴은 터져 버릴 듯 두 방망이질을 시작하고 행여 놓칠세라 기찬에게 매달려 밀착해 온다.
보라 역시 기찬을 처음 받아들였던 것이 가구공장 박사장과의 일 이후, 감정의 기복이 심한 상태에서였기 때문에 이렇게 차분하게 작정을 하고 호텔에 오게 되니 그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는 모양이었다.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기찬은 보라의 허리를 끌어안아 들어 올리고, 보라는 두 다리를 기찬의 허리에 감아 마주 안아간다.
“흐으읍......으으흥......”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기찬씨......”
“그래, 보라...... 나도 보라 사랑해. 이제 누가 뭐래도 보라는 내 여자니까......”
“하악...... 그래요. 나는 기찬씨 여자예요.”
기찬은 잠시 보라를 내려놓고 허리에 손을 두른 채 은근한 시선을 보낸다.
“형수......”
“아이, 싫어요. 왜 또 형수라고 해?...... 우리만 있잖아요. 여긴......”
“그래, 그래...... 알았어. 이렇게 예쁘고 날씬한 보라가 정말 내 여자라는 말이지?”
“으흥, 그래요. 제 마음 다 알면서 왜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치......”
“나...... 부탁이 있거든......”
“뭔데요? 말해요. 들어 줄 테니까...... 무슨 부탁인데 이렇게......”
“자, 자...... 더운데 씻으러 가자. 들어가서 말해 줄게......”
쏟아지는 샤워 물줄기 아래서 슬쩍 슬쩍 보라에게 장난을 치면서 허리를 끌어안아 엉덩이 사이의 굴곡으로 심벌을 밀어 넣는다.
“으흥...... 기찬씨...... 나가서......”
“보라......”
“으응, 네?......”
“내가...... 보라 사랑하는 거 믿지?”
“그럼요...... 믿고말고요.”
“그래서 내 부탁 들어 준다고 했지?”
기찬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보라는 몸을 돌려 기찬을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래요? 어서 말 해봐요. 사람 궁금하게......”
“나도 보라의 순결을 가져가는 첫 남자이고 싶어서 그래......”
“어머! 기찬씨...... 하지만...... 그건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저도 제 순결을 다 드리고 싶지만......”
“아니야. 줄 수 있어. 보라만 마음먹는다면...... 영화 같은 거 보면......”
“기찬씨, 호, 혹시...... 설마......”
“그러면 난 보라의 첫 남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아서 그래. 꼭 한 번 해 보고 싶기도 하고......”
“세, 세상에...... 기찬씨......”
“......”
기찬은 유정과의 항문섹스 경험 이후 뭔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이유가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삽입을 유정이 호흡을 맞춰주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이제 보라 정도라면 자신의 뜻을 받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떼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요. 기찬씨가 원하는 거라면...... 하지만...... 어떻게...... 더럽잖아요.”
“여기는 콘돔도 있잖아...... 괜찮을 거야.”
“그, 그래도...... 속이 더러울 텐데...... 아이, 참...... 정말 미쳤나 봐...... 기찬씨......”
“나는 보라를 다 가지고 싶어. 하나도 남김없이...... 그 대신 다시는 그런 부탁 안 할게...... 우리 한 번만 해 보자. 응?”
“아유, 기찬씨...... 좀 조를 걸 졸라요...... 그거 많이 아플지도 모르잖아요?......”
어느덧 두 사람은 침대에 걸터앉아 마주보고, 보라는 잠시 후의 일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기찬은 몸을 일으켜 화장대 근처를 더듬어 콘돔을 찾아오고, 보라는 그 모습에 다시 욕실로 도망치듯 들어간다.
“어디 가?...... 왜?......”
“아유, 가만히 있어 봐요. 비데라도 좀 더 하고......”
“으응, 나도 같이...... 나도 좀 보고 싶어.”
“아유, 정말 미쳤어...... 오늘 정말 변태 같은 거 알아요? 보고 있으면 못해요......”
“싫어. 볼 거야. 내 여잔데 뭐 어때. 다 예뻐. 사랑스럽고......”
“아이 차암......”
보라는 할 수 없이 기찬이 보는 앞에서 비데의 강도를 조절해 항문을 씻기 시작하고, 한 순간 긴장을 늦추자 차가운 물줄기가 장 속을 파고든다.
등골을 후벼 파는 듯 낯 선 이물감이 목덜미까지 밀고 올라오는 것만 같아 기찬을 끌어안고 있는 보라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
“크으윽......”
“자, 이제 다 된 거야? 가자......”
“아, 아니......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고......”
결국 기찬에게 이끌려 침대로 오고 만 보라는 기찬에게 다짐을 받는다.
“아프게 하면 안 돼요? 으응?”
“가만...... 화장품 같은 것 좀 바르자. 콘돔만 쓰면 젤이 부족할 것 같은데......”
“화장품?...... 내 콜드크림을 써도 될까?......”
“그래, 그게 좋겠다......”
결국 침대 한 곁에는 병원의 수술도구를 연상하도록 이것저것 잡동사니들을 잔뜩 늘어놓은 채 기찬은 보라를 바라본다.
“자...... 보라가 세워 줘.”
“으흥...... 후루룹...... 쭈웁......”
침대 밑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찬의 심벌을 잡아 입으로 물어 간다. 몇 번의 혀 놀림으로 보라의 작은 손 가득히 심벌이 쥐어진다.
“흐읍...... 흐읍......”
이어 콘돔을 꺼내 정성껏 씌우곤 기찬을 바라본다.
“이, 이젠 어떻게 해요?......”
“으응, 침대로 올라가서 옆으로 누워 봐.”
“이, 이렇게?......”
기찬은 보라를 모서리로 끌어당기고, 보라의 가지런히 모아진 두 다리 사이로 살집이 도드라진다. 보라의 화장품 통을 열어 콜드크림을 듬뿍 찍어 예쁘게 움찔거리는 꽃 잎 위로 문질러 바르고 손가락을 밀어 넣어 본다.
“하으으윽...... 손가락을 넣으면 어떻게 해요?”
“가만히 있어 봐.
의외로 한 마디가 손쉽게 들어가고 그 틈 사이로 콜드크림이 밀려 나오자, 기찬은 곧 허리를 들이댄다. 몇 차례 입구를 문지르다가 끝을 조금 걸칠 수가 있었고, 그리고는 곧 조금씩, 조금씩 밀어 넣을 수가 있었다.
후끈한 느낌이 피부를 통해 전해지고 고르게 조여 주는 압박은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하는 듯 기찬의 고개를 뒤로 꺽게 만든다.
“으흑...... 아파...... 조금만......”
“쑤욱......”
한 순간 보라의 긴장이 풀린 듯 깊은 곳까지 뿌리째 들어가 버린다.
“하아악......”
“됐어. 다 됐어...... 흐윽......”
천천히 보라의 엉덩이를 쥐고 허리를 흔들기 시작하자 보라는 소리도 못 지르고 입만 크게 벌린 채 큰 눈이 더욱 커져 기찬을 바라본다.
낯 설은 이물감이 항문 가득 들어차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으로 보라를 일깨워 준다.
“흐으응...... 이상해...... 자, 자기......”
“후욱...... 후욱...... 좋아, 정말 좋아......”
“하악, 하악...... 기찬씨...... 이렇게 해 놓고...... 나...... 구박하기만 해 봐...... 가만히 안 둘 거예요.”
“무, 물론이지...... 후욱...... 후욱......”
공기의 흐름이 없어서인지 기찬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흩어지지도 않고 뭉친 채 허공을 떠다니고, 침대에 누워 허공에 도넛을 만들어내는 기찬의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가득하다.
“아직도 멀었어?”
“아, 아직 들어오지 말아요. 들어오면 죽여 버릴지도 몰라......”
“큭큭...... 알았어. 천천히 나와.”
보라는 아직도 얼얼하고 후끈거리는 느낌을 어쩌지 못하고 변기 위에 올라앉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러 번 뒷물을 하고 손가락으로 더듬어 들국화처럼 예쁜 꽃잎의 모양을 점검하고서야 욕실을 나선다.
어쩐지 어정거리는 걸음걸이로 한 번 더 기찬을 쓰러뜨린다.
“큭큭큭......”
“웃지 말아요. 이젠 확실히 당신 여자가 된 거니까 앞으론 바가지 좀 긁힐 각오도 하세요.”
“바, 바가지?...... 무슨 바가지?......”
보라는 침대로 다가와 기찬을 쓰러뜨리고 그 어깨 옆으로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기찬씨, 솔직히 말해 줘요. 나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해서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잖아요. 이래서야 어떻게 자기 여자라고 하겠어요.”
“으응...... 그거?...... 후훗, 별 거 아닌데......”
“뭔데?...... 말해 줘요.”
보라는 기찬의 가슴을 두들기며 앙탈을 부리고 그 바람에 분이 묻어날 듯 뽀얀 젖가슴이 기찬의 가슴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린다.
“나...... 종로에 있는 야간업소에서 관리 일을 봐 주고 있거든. 룸싸롱 같은 거...... 그 사장이 나 군대있을 때 모시고 있던 분인데 우연히 만나서 일을 하게 됐지.”
“그, 그런데 있으면 이상한 여자들도 많이 볼 거 아니에요.”
“후훗, 그거야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고, 그런 건 따로 관리하는 마담이 있어. 나는 그저 사장 대행으로 행정업무만 보는 거니까 안심해.”
“피...... 누가 그것 때문에 그러나? 아 참! 이제 어서 가요. 늦었어요.”
“으응, 그래...... 어서 가자. 나도 엄마 보고 다시 가야 하는데......”
공연히 수사관 신분을 밝혔다가 혹시라도 전에 살던 집에 대한 경과를 물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강 둘러대 버린다.
서둘러 소지품을 다시 챙긴 뒤, 마트에 들러 고기를 두어 근 끊고 나서야 가구점으로 방향을 잡는다. 저녁 정산을 해야 하니 보라를 가구점에 내려준 뒤, 기찬은 곧바로 차를 움직여 아파트로 향한다.
“그럼 금방 마치고 와야 돼. 나도 곧 가야 하니까......”
“네, 알았어요. 서방님...... 호호......”
기찬은 지갑을 뒤적거려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는 모양이었다.
그 곁에는 기찬의 형이 앉아 기찬을 보면서 너스레를 떨어댄다. 아마도 집 문제로 인해 기찬에게 면을 세울 수 없는 까닭에 더욱 그럴지도 모를 일......
“와...... 너 취직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돈이 있냐?”
“하하...... 형은 참, 내가 뭐 백수 시절이라고 돈이 없었나? 그 때도 사실은 주식 좀 만져서 쓸 돈 다 쓰고 다녔지. 자요...... 엄마, 우선 이거 넣어 두고 쓰세요. 수중에 돈이 좀 있어야 다니시면서 괜찮은 영감이라도 보이면 커피라도 한 잔......”
“뭐라고?...... 호호호......”
“하하하......”
뒤이어 보라가 도착한 뒤, 온가족이 저녁상을 맞는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기찬의 전화가 울려 모두가 기찬이 가야 함을 예감하고 특히 그 행선지를 알고 있는 보라는 서둘러 남은 고기를 찬합에 담는다.
전화통화를 하는 기찬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난다.
“뭐?...... 그래서...... 아직도 그러고 서 있단 말이야?”
“......”
“으음, 알았어...... 바로 갈 테니까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해.”
전화를 끊고 식구들과 인사를 한 후, 보라를 따로 불러낸다. 아파트 밑까지 배웅을 나온 보라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곤 차에 오른다.
“으음...... 그나마 형수가 바로 곁에 있을 때라 다행이로군.”
부리나케 차를 몰아 도착한 카이로에는 삼십 대정도의 건장한 남자가 입구에서 다소 떨어진 골목길을 배회하고 있었다. 주변의 불빛으로 대강의 윤곽을 볼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정확한 인상착의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시간에 쫓겨서인지 늘 다니는 비상계단을 마다하고 바로 입구로 들어선다.
“아! 강하사님, 어서 오십시오.”
“네, 수고 많으시죠?”
서둘러 인사를 받고 내실로 뛰어오르니 세희와 마담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기찬을 반긴다.
“아유, 어떻게 하면 좋아요? 강하사님...... 그러게 이 계집애는 조심 좀 하지 않고......”
“강하사님, 어떻게 해요. 저...... 잡히면 죽을지도 몰라요. 우리 남편 너무 무서운데...... 오늘 일 나간다고 점심때쯤 나갔었는데 아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허허......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오도록 눈치를 못 차리나? 뒤를 밟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어?”
“네, 택시에서 내리다가 슬쩍 봤는데, 무서워서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이층 창문에 숨어서 보니까 남편이 맞더라고요.”
야간 경비 일을 한다던 세희의 남편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렸는지 세희의 뒤를 밟고 카이로에 들어가는 것을 봤으니 세희의 입장에서는 사단이 나도 큰 사단이 나 버렸다.
“그럼 이렇게 해. 지금 나하고 같이 나가는 거야......”
주절주절 늘어놓는 기찬의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은 정색을 한다.
“어머! 강하사님...... 그런 회사도 갖고 있는 거예요?”
“어머머! 정말 그렇게 해 주실 거예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대신, 세희는 시간이 더 자유로워질 테니까...... 마담 속 썩이지 말고, 일도 더 열심히 하고...... 당분간 남편이 자리 잡힐 때까지는 나오지도 말고...... 벌써 네 빚은 내가 갚아 줬으니까 정신 차려야 돼.”
“네...... 그럴게요. 알았습니다.”
남편 걱정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았으니 시간이 걸릴 것은 없었다. 바로 계단을 내려와 정문으로 몸을 빼낸다. 마치 세희의 남편에게 보라는 듯 세희와 기찬은 큰 길에서 마주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기찬은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카이로로 들어선다.
세희가 도착하자마자 기찬에게 연락을 했으니 지금까지의 시간이라야 고작 한 시간 남짓 흘렀고, 그 정도 시간이야 기찬의 계획대로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기찬은 주방에 들러 이곳저곳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과일을 하나 집어 깎아 먹을 즈음 전화벨이 울린다.
“으흠....... 으흥...... 그러지. 지금 나갈게......”
예측이라도 한 듯 가볍게 전화를 받고 거리로 나선다. 카이로 입구 앞에는 세희와 그 남편이 서 있었고, 세희의 남편은 기찬에게 즉시 허리를 꺾는다.
“아, 안녕하십니까?”
“아, 아...... 반갑습니다. 마침 이 근처에 볼 일이 있으셨다고요? 그것 참, 저하고 인연이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기찬의 너스레 뒤로 세희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기찬은 말을 이어간다.
“그래요...... 뭐, 우리 형수님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직접 뵈니까 체격도 좋으시고 잘 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우리 회사에 연락을 해 둘 테니까 이력서를 준비해서 김비서라는 사람을 찾아가도록 하세요. 월급도 지금 받으시는 것보다 많이 책정해 드릴 겁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없을 때, 몇 번 저를 만나려고 오셨던 모양인데...... 메모라도 남기시지 그랬습니까? 우리 형수님 후배시라면 제가 일부러라도 시간을 냈을 텐데...... 우리 형수님이 자칫 오해하실라......”
“아! 안 그래도 방금 전화로 감사하다고 제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찾아뵙고 인사를 따로 드리겠습니다.”
“아, 아....... 뭐, 일부러 그러실 것까진 없습니다. 자, 그럼 나중에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자, 세희씨도 잘 가시고......”
“네, 네...... 사장님.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세희를 형수 보라의 후배로 둔갑시키고, 세희는 남편의 일자리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기찬을 만나러 온 것으로 상황을 역전시켜 버린다. 게다가 이상한 눈치를 느끼고 뒤를 밟았다면 한두 번 감을 잡은 것은 아닐 테니 여러 번 헛걸음을 한 것으로 몰아가 버린다.
확인전화를 한다손 치더라도 보라에게 이미 입을 맞춰 두었으니 더 이상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세희의 남편은 기찬의 가구공장 야간 경비 일을 보게 될 테고, 야간 출근이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당연한 일, 이젠 그 위치 파악이 보다 용이한 일이니 그야말로 카이로에 몸을 의탁한 세희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세희는 더욱 외박 등 일거리가 늘어날 테고 그녀에게서 들어오는 마스터 추가비용으로 세희 남편의 월급을 충당하고도 남을 일이니 또 한 번 기찬의 잔머리가 빛을 발한다.
오히려 두 사람 모두를 양 손에 올려두고 좌지우지하는 즐거움만 만끽하니 앞으로 그의 손에 놀아날 커플이 몇 쌍이나 될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강하사님......”
“아! 네...... 마담, 아직 안 나가시고 여기 계셨어요?”
“네, 강하사님, 대단하세요...... 그런 회사까지 갖고 계신 분이 왜 이런 일은......”
“아, 아...... 그 일은 따로 보는 사람이 있어요. 저야 아직 나이도 젊은데 그런 일에 매이고 싶지도 않고, 뭐, 좋잖아요? 이렇게 사는 것도......”
“치...... 그래서 그렇게 저한테는 눈길도 한 번 안 주시는 거예요? 난 그것도 모르고......”
이젠 마담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펼쳐오는 모양이다. 기찬도 매양 박상사와 마담의 일로 상황을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니 마담의 말끝을 받아넘긴다.
“저라고 왜 마담이 싫겠어요? 하하하...... 하지만, 여긴 박상사님 영업장이고, 또 마담이 그분하고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것도 느낌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겠어요?”
“어머?...... 누가 강하사님한테 책임 져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가 뭐, 박상사님 와이프라도 되나요? 내 몸 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 그냥 매일 보면서도 오히려 서먹서먹하게 대하시니까 저도 여진이나 미라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러죠. 그리고 저, 드라이브도 시켜 준다고 하셨잖아요?”
“하하...... 그래요. 그거야 언제든지 말씀하시라니까......”
“그럼 오늘 일 마치고 새벽에 나가요. 네?......”
“그럽시다. 그럼...... 그 대신 절대 다른 사람들 눈치 차리게 하면 안 됩니다. 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박상사님이 신경 쓰여서......”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마담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인지 희희낙락한 채 방을 나서고, 기찬은 무슨 생각에선지 그런 마담을 불러 세운다.
“마담, 나 좀 봐요.”
“네, 왜요?”
마담은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귀를 쫑긋 세운다. 기찬은 마담에게 다가가 허리에 손을 얹어 끌어당기고 더운 입김을 귓가에 불어 속삭인다.
“난, 내 여자를 다른 사람과 정신적으로 공유하기 싫은데......”
“네, 네?......”
“나와 관계를 한다고 해서 마담이 박상사를 떠날 수는 없겠지만, 마담 마음속의 남자는 오로지 나만이 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럴 수 있겠어요?”
“그,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강하사님도 여자들이 많으면서...... 호호호...... 나같이 늙은 여자를 뭐에 쓰시게...... 정말 욕심도 많으세요?”
“싫으면 말고...... 마담 정도 미모면 나도 혹시 알아요? 정재계에 내가 납네 하는 인간들하고 교분을 쌓는데 유용할지......”
“어머! 그럼 저를 여진이나 미라, 세희 계집애들처럼 내돌리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음...... 뭐, 꼭 필요한 경우라면...... 마담도 내 여자를 자처한다면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거라고 믿는데...... 아니면 나한테 이러는 게 단순히 젊은 놈 정력 테스트라도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건가요?”
“아, 아니에요. 그런 건...... 하지만...... 알았어요. 그 대신 아무한테나 저를 내 주시는 건 정말 싫어요. 그것만 약속해 주세요. 그럼 저도 강하사님 여자 할게요. 그리고 계집애들한테는 비밀 지켜 주셔야 돼요.”
“흐읍...... 으흐흥...... 쭈우웁......”
기찬은 대답 대신 마담의 엉덩이를 강하게 주무르며 입술을 가져간다. 넘나드는 살덩이들이 감로수를 적셔서 서로의 갈증을 달래주고, 가느다란 마담의 허리가 풍만한 엉덩이에 걸쳐 뒤로 꺾인다.
“하악......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요? 하악......”
“후후훗...... 이젠 내 건데 뭐 어때? 안 그래요?”
“아이 차암...... 정말 못 됐어요. 나중에 내가 아주 혼 내 줄 거예요.”
“그거 정말 기대 되는데...... 참, 마담 이름도 모르고 있잖아. 이름이 뭐지요?”
“어머! 그런가?...... 저...... 홍세미예요.”
“홍세미라...... 그래, 알았어. 어서 가서 일 봐.”
“네에...... 세미는 갑니다. 마스터님...... 호호호......”
복덕방 사장의 부인, 애경을 다른 이들에게 내돌린 경험을 보아 기찬의 주변 여자들을 나름대로 계통을 정해 자신만의 여자들과, 필요할 경우 접대의 용도로 쓸 수 있는 여자들을 미리 구분이라도 해 두는 듯, 자칫 여자들이 가질 수 있는 기대를 애당초 정리해 버리는 모양이었다.
“후훗...... 아무리 봐도 지영이랑 닮았단 말이야......”
그 때, 기찬의 생각을 멎게 하는 소리가 울려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미라의 올케 최강희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네, 저예요. 강희......”
“으응,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네에...... 저...... 말씀대로 일을 그만 둔다고 하고 나왔거든요.”
“으응, 그래...... 참 송만호씨는 퇴근해서 들어왔겠지?”
기찬은 낮에 만났던 미라 오빠의 안부를 묻는다.
“네...... 강수사관님 만난 애기를 해 주더라고요. 우리 아가씨 친구라고 하셨다면서요?”
“으응, 그랬지. 강희도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네, 그런데......”
“으음...... 참, 왜 전화했지?”
“네, 거기 사장한테서 계속 전화가 와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무슨 전화?...... 만나자고?......”
“네에...... 이러다가 자칫 남편이라도 알게 될까 봐......”
“지금 어디야? 강희 있는 데가......”
“저, 지금 집 앞에 나와서 전화하는 거예요.”
“으음...... 사장 집도 그 근처잖아?”
“네,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혹시라도 근처에 왔다가 마주칠지도 몰라서......”
“그럼 전화해서 오늘은 늦어서 안 된다고 하고, 내일 만나자고 해. 내일 볼 일이 있어서 외출하니까 내일 밖에서 전화해 준다고......”
“그, 그래서요?”
“그러고 나면 내가 다시 전화해 줄 테니까 우선 그렇게만 전해.”
“네, 알았어요. 그럼 전화 주세요.”
“그래, 참...... 강희......”
“네......”
“내가 사랑하는 거 잊지 말고...... 강희는 누구 여자라고 했지?”
“네, 강수사관님이요......”
“그래, 내일 낮에 혼자 있을 때 전화해 줄 테니까 기다려.”
“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