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부- (8/40)

-8부-

“도련님, 저...... 한 번만 제 이름 불러 주시면 안돼요?”

“왜? 듣고 싶어?”

“네...... 저도 불러보고 싶고......”

“후훗...... 그게 뭐 어려운 일일까? 그러지 뭐...... 보라, 사랑해.”

“하악...... 고마워요. 저도 사랑해요. 기찬씨...... 여보......”

“그래, 여보...... 사랑해. 보라......”

오르가즘이란 그런 것인지 보라는 기찬과의 정사 후, 다정스런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나름의 느낌을 주고받는 몸짓에 기찬을 끌어안고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기찬의 손은 아직도 보라의 등이며 허리, 엉덩이 등을 쉼 없이 쓰다듬어 그 감각을 일깨우고 끌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호칭은 좋지 않아. 보라는 형수의 자리에서, 나는 시동생의 자리에서 각각 지켜내야 할 일이 있잖아.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면 보라와 나의 관계는 아무 것도 아닐 수밖에 없는 거잖아. 나는 앞으로도 보라를 그저 형수라고 부를 거야.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는 존댓말도 사용해야 할 거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데 제약을 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잖아. 그렇지?”

“도련님, 설마 그런 이유로 저를 멀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요? 앞으로 저 모른 척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후훗......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 예쁜 형수를......”

“저...... 앞으로 도련님을 제 하늘처럼 믿고 살아갈게요. 물론 도련님 말씀대로 형하고도 사이좋게 지내고 어머니 모시고 착한 며느리로 열심히 살겠지만, 도련님...... 저, 정말 도련님 없이는 안돼요.”

“그래, 전화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데 뭘 그런 걱정을 해? 자, 이제 그만 가 볼까? 어서 형한테 어머니 모시고 가는 것도 상의해야 하잖아?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나하고 그 문제를 상의했다고 하고......”

“네, 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형하고 상의해서 도련님한테 전화 드릴게요.”

“으응, 그래......” 

거리로 나온 기찬은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중에도 보라의 손을 꼭 쥔 채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사기를 당해 집을 날리게 되고,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간통을 선택했다가 결국 기찬 자신과 몸을 섞게 되었으니 그 혼란한 심경을 짐작 못할 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구점에 도착해 보라를 내려주기 전, 힘주어 깍지 낀 손등에 입을 맞춰 줌으로 한 번 더 그 마음을 다독여 주고 삼각지 숙박업소를 다시 방문한다.

“사무실을 좀 봅시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선 기찬은 이제 다소 익숙해진 듯 안내를 받고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복도로 들어서서 조금 걸음을 옮기자 예의 그 사내가 기찬을 기다리다가 사무실로 안내를 하고, 이미 다 늦은 저녁 다시 방문한 기찬이 그다지 좋은 의도로 오진 않았을 것을 예감하는지 사내의 태도는 아까와 달리 매우 조심스러웠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군에서 나왔습니다. 아까 선생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지금 우리 군에서 하고 있는 수사에 심각한 훼손을 입었습니다.”

“아, 아...... 저는 모르고 그만......”

“태도를 보아하니 선생...... 소방이나 경찰 관계자들하고도 연이 많이 닿으시는 모양이던데...... 어디 세금문제랄지...... 기타 검토를 좀 받아 보도록 합시다. 내가 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아까 선생이 자신만만하게 보여준 태도를 아주 자세하게 반영할 테니까 우리 군 수사진도 선생이 커버해 나갈 수 있는지 한 번 봅시다.”

“아이고, 선생님...... 오해십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제가 그런 신분증을 처음 보다 보니까......”

“여기에서 여자들을 불러 주기도 하는지 모르겠군. 그런 것은 불법이니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장님께서 그럴 리는 없을 테고...... 하여간 내가 이 근처에 적을 두고 장기적으로 관찰을 좀 해야 할 모양입니다.”

“아, 아니......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빌겠습니다. 우선 여기 좀 앉으시고 차차 말씀을......”

“허허...... 거 참...... 그럼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치고, 선생이 우리 수사에 끼친 타격을 보상받는 차원에서 방을 하나 징발하고자 하는데 그건 어떻겠습니까?”

“아유...... 네, 네...... 얼마든지 하십시오.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좋습니다. 뭐, 그렇다면 저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는 않겠습니다. 항상 사용할 것은 아니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실 건 없고, 필요할 경우 신분증을 제시할 테니까 그 즉시 방을 제공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수사이다보니까 경찰관서를 이용하기가 불편한 점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아! 네, 그러시군요. 이젠 저나 우리 직원들도 선생님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언제라도 선생님이 오시면 그렇게 조치를 하겠습니다. 신분증 보여주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출입 기록화면 있지요? 그것은 그 즉시 삭제를 하셔야 합니다. 아까 제가 체포해서 보낸 그 사람들 화면도 지금 즉시 지우십시오.”

“아! 네, 네......”

잠시 후, 기찬은 경찰서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긴급체포 후 범인을 재인도 받는 입장이니 소정의 서류절차를 마친 후 유치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미 정식 코드를 부여받아 외관상으로는 공식적인 수사를 하는 입장이니 이제는 기찬의 행보에 과히 조심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다소 난감한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군에서 하는 일은 의례 보안상 비밀스러운 부분이 있음을 강조하면 일선 경찰관서에서도 개입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 그 친구, 변호사 불러달라고 얼마나 떠들어 대던지....... 뭐, 강간이 아니라 간통이니까 그 여자도 같이 잡아 오라는......”

“아...... 그랬습니까? 아직도 자기가 왜 체포를 당했는지 모르니 그럴 테지요. 허허...... 제가 잠시만 이야기를 하고 데리고 가겠습니다. 직원들이 잠시만 비켜서게 해 주십시오.”

“아! 네, 알았습니다.”

이윽고 경찰에게 지시를 받은 유치장의 의경마저 자리를 피한 상태에서 기찬이 철창 안으로 들어서고 경찰이 꾸며둔 박사장의 신원에 대한 서류를 들여다본다.

“박...... 사장님.”

“네......”

사내는 보라에게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기찬에게 당해 얼굴이 말이 아닐 정도로 상했음에도 그의 얼굴을 볼 겨를은 없었는지 기찬을 알아보질 못하고 있었다.

“자, 갑시다. 나는 당신을 맡아서 수사할 사람이요. 당신 이제 자리를 옮겨서 수사를 받아야 할 텐데...... 한 가지만 미리 귀띔을 해 주고 이동할 테니까 귀를 씻고 잘 들어 두쇼.”

“......”

“당신은 강간이니, 간통 따위로 체포된 것이 아니야. 사기사건이란 말이야. 인. 도. 네. 시. 아...... 알아들었지? 자, 힘 빼게 하지 말고 조용히 갑시다.”

“허억......”

경찰에서 제공받은 백차를 타고 결국 삼각지로 돌아와 원탁을 사이에 두고 박사장은 기찬과 마주 앉게 되었다.

이미 인도네시아라는 말 한 마디에 박사장은 어느 정도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지만, 기찬은 품에 있는 디스크를 꺼내 컴퓨터 모니터에 화면을 띄움으로써 그 쐐기를 박아 버리고, 박사장은 이내 포기를 한 듯 낙담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당신, 심문에 응하는 자세를 봐서 나도 적절하게 대처할 테니까 대답 잘 하쇼. 인도네시아는 실제로 거래를 하고 있나?”

“네, 네...... 그건 사실입니다. 저도 가구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대량으로 처리할 경우엔 인도네시아가 가격 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아 실제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사내는 공식 수사기관도 아닌 여관에 끌려와서 취조를 받는 것이 두려웠는지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지사를 위장해서 피해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지?”

“그, 그건...... 딜러나 마찬가지라서 그 중 아무나 한 사람만 인도네시아 회사에 등록이 돼 있으면 실제 거래는 가능합니다.”

“오호...... 물론 그것도 위장된 신분으로 등록했겠지?”

“네...... 그, 그렇습니다.”

“그러면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담보물을 팔아 치울 때는 인감이 필요했을 텐데...... 그건 어떤 방법으로 처리를 했지?”

“네...... 껌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껌 종이?......”

“네, 껌 속 포장지에서 은박을 벗겨내면 얇은 종이가 남는데, 그것을 이미 도장을 찍은 자리에다 대고 문지르면 똑같이 뜰 수가 있습니다. 그리곤 옮겨 찍을 자리에 다시 문지르는 거죠.”

“으흠...... 판박이 수법이로군. 여러 장을 그렇게 처리하기엔 무리가 따랐을 텐데......”

“그래서 일부러 인주가 잘 스며들지 않는 다른 명목의 서류에 도장을 많이 받아 두거든요. 나중에 잘 배어나도록 인주도 골고루 묻혀서 찍어 두지요.”

“푸훗...... 좋아, 그리고...... 현재 그 부동산의 주인으로 떠 있는 사람들은 노숙자들 명의로 가져갔겠지?”

“네, 네......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부동산 업자도 끼고 있는 건가? 그것을 빠른 시간 안에 현금으로 만들려면 누군가를 통해서 팔아 치워야 할 것 아닌가?”

“아니요. 그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대부기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다가 노숙자들 명의로 고쳐 둔 부동산 서류를 집어넣어서 한도 끝까지 대출을 받아내고, 주저앉혀 버린다고 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노숙자 명의를 개입시키는 거지? 그냥 피해자들 명의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담보대출 신청은 가능할 텐데......”

“그, 그게...... 대부기관에서도 대출과정에 전화를 한다든지 수 일 내에 이자상환에 대한 서식이나 기타 안내문들이 발송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걸릴 위험이 있어서......” 

“오호라! 그러니까 집은 그렇게 처분하는 거로군. 부동산 업자를 통하면 추적을 당할 수도 있을 거고, 어차피 그런 물건 제값을 받아낼 수도 없을 테니...... 대부기관에서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니 결국 모른 척 받아서 세탁을 해 준다는 말일 테고...... 흐음...... 저기 저 사람들 중에 당신이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지?”

“두, 두 사람 있습니다.”

“좋아, 당신이 진보라에게 준다던 그 집은 어떻게 준다는 건가? 지금 분위기를 보아하니 당신도 하수인에 불과한 것 같은데...... 그냥 진보라를 어떻게 해 보려고 거짓말을 한 건가?”

“그, 그건......” 

“말 똑바로 해. 당신은 지금 실제로 인도네시아 회사를 거래하고 있는 사람이고, 지금 그 회사를 표면상에 띄워놓고 사기를 쳤기 때문에 내가 펜 한 번 놀리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주범으로 둔갑할 수도 있어. 그뿐만 아니라 당신 이미 눈치로 읽었겠지만, 나는 일선 경찰이 아니야. 요즘......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행방불명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나?”

“마,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그 집은 제가 미리 제 몫으로 달라고 해서 빼돌려 뒀던 겁니다.”

“왜 그랬지? 유독 그 집만...... 그 여자가 탐이 나서 그랬던 건가?”

“네, 네......”

“자, 그럼 이제 대강 정리를 해 보자고...... 나는 군에서 나온 수사관이야. 지금 다른 보안 사건을 다루고 있는 중에 당신들이 진보라를 건드린 탓에 재수 없게 걸려 든 거야. 낯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잖아.”

“......”

“당신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겠어. 둘 중에서 하나를 정하란 말이야. 아직 혀가 제자리에 달려 있어서 말 할 수 있을 때, 말을 잘 해야 돼.”

“허억! 네, 네...... 알았습니다.”

기찬은 보라의 안위를 지켜주려는 듯 보라와는 무관한 사건으로 몰아가며 계속 살벌한 단어들을 조합해 박사장을 압박해 가고 있었다.

“죽고 싶은가? 아니면, 살고 싶은가?”

“네에?......”

“결정해. 둘 중에서 한 가지만 정해. 소원대로 해 줄 테니까......” 

“아, 아...... 사, 살고 싶습니다.”

사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찬의 주먹이 날아들고, 사내는 의자와 함께 침대 곁으로 굴러 떨어진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서둘러 자리로 돌아와 앉는 사내의 코에선 붉은 피가 비치고 기찬은 티슈를 내밀며 말을 잇는다.

“좋아, 살려주지. 너는 네놈이 살고자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상관 안 하는 것 같던데, 나는 자비심이 넘치는 사람이니 살려주도록 하지. 잘 들어. 이것을 잘 처리하면 살려줄 것이고, 이것을 서툴게 처리하면 당신은 소리 소문도 없이 죽는 거야. 사기 치다가 걸려봐야 몇 바퀴 돌고나오면 된다는 생각 따윈 하지 마. 받아 적어.”

“네, 네......”

“첫째, 진보라에게서 사취한 부동산에 대한 등기관련 서류 일체...... 둘째, 당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등기관련 서류 일체...... 셋째, 당신이 운영한다는 공장의 등기관련 서류 일체...... 이상의 서류를 내일까지 마련해서 대기한다.”

“그, 그러면 저는......”

“그렇다고 알거지는 아니잖아? 당신, 현금도 제법 보유하고 있을 거고, 그 외에 다른 부동산도 있을 거 아닌가? 정말 다시 조사해서 타고 다니는 자동차까지 싹쓸이 당하고 싶은가? 응?”

“아,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면 당신은 살 수 있다. 또 한 가지, 당신 안 좋은 습관이 있는 모양인데 한 번만 더 진보라에게 접근하면 그때는 예고 없이 죽는다. 진보라 그 여자는 우리 군에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알았나? 잘 생각해서 알아서 기어. 당신이 죽고 사는 문제야.” 

“네, 네...... 미처 모, 몰랐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좋아, 내일 모든 일이 마무리 되고 나면, 당신은 이 사건의 중요정보 제공자로 분류해서 사법처리를 당하지 않도록 해 줄 테니까 그만 하면 당신도 영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안 그런가?...... 응?......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재기할 수도 있잖아? 일단 흙냄새를 맡으면 그럴 기회도 없는 거야.”

“네, 네...... 그렇습니다.”

화류계에서 늙어버린 볼품없는 여자처럼 퇴락해 추레하기 짝이 없는 삼각지 뒷골목을 기찬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형수 보라에게서 기찬의 형과 상의를 마쳤다는 연락도 받았으니 이젠 그 사전작업으로 취직이 되어 숙소로 들어간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할 차례가 되었다. 실상 내일이면 다시 집에 대한 권리를 찾아올 수 있는 일이지만, 어차피 자신은 박상사와의 일을 벌려 둔 상태에 있으니 주야 구분 없이 움직여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엄마를 위해서는 형 내외가 모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어 모른 척 그대로 추진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울리는 전화 소리가 기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네......”

“지금 어디야?”

“왜?......”

“왜는 뭐가 왜야? 마스터를 찾을 때는 얼른 뛰어와서 구해줘야지.”

“뭐, 뭐야? 무슨 사고 났어? 거기 어디야?”

여진의 전화였다. 보통 새벽 시간이 되기 전에는 외박을 나가는 경우가 드물지만, 간혹 오랜 단골이거나 매상을 많이 올려 준 손님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어서 사고가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은 바가 있었다. 

또한 반드시 함께 외박을 나간 손님과의 사고뿐만이 아니라, 건달들과의 충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계집애들의 뒷배를 봐준다는 것이 항상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호호호...... 속았지? 아까 집에 온다고 하고 안 온 벌이야.”

“허헛...... 참...... 별 일 아니면 내일 보자. 나 지금 다른 볼 일도 있고......”

“어머! 잠깐만...... 마담 언니가 바꿔 달래.”

“그래......”

“저...... 강하사님?......”

“네. 무슨 일이십니까?”

“호호...... 제가 사고를 하나 쳐 버렸는데, 어떻게 하죠?”

“네?...... 사고요? 무슨......”

“강하사님이 박상사님한테 구해 달라고 한 차 말이에요.”

“네, 네......”

“그런데 그게 언제 나올지 모른다고 해서 제가 아는 손님한테 전화로 물어 봤더니 마침 보유하고 있는 차 중에 무슨...... 사하라라는 지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 네...... 그래서요?”

“강하사님이 급하신 것 같아 무작정 가져오라고 해서 차는 여기 도착했는데...... 어떻게 하죠? 한 번 보셔야 할 텐데......”

“아! 하하...... 잘 하셨습니다. 그럼 박상사님께도 전화를 드려야 하겠네요.”

“호호...... 네, 알았어요. 제가 전화해 둘게요, 그럼 나중에 봐요.”

마담이 부쩍 살갑게 구는 것이 밉지는 않지만, 은근히 박상사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담의 입지를 보았을 때, 애정문제는 둘째 치고 자칫하면 박상사와의 밥그릇 싸움으로 그의 영역을 넘본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발을 들여놓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전에 자칫 여난으로 인해서 망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처를 잘못하여 마담을 수치스럽게 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허허...... 이거 참...... 마치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니......”

그냥 집으로 가려던 기찬은 할 수 없이 카이로로 향하고, 택시에서 내려 건물 뒤의 비상계단을 이용해 곧장 4층으로 올라간다. 여진과의 밀회가 있은 후, 이 길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것 역시 이른바 박상사파라는 이름의 기존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배인 이하 웨이터들, 그리고 그 그늘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의 입담에 오르내리기 싫어서였으니 행여 기찬의 등장을 자신들의 입지 축소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도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머! 상은 안 주실 거예요? 제가 이거 구한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지프는 어느 마니아가 타던 차인지 모르지만 거의 완벽한 튜닝이 된 상태로 단지 도색이 붉은 색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흠 잡을 것이 없었다. 

“하하...... 드려야지요. 그러면 이전문제는......”

“치...... 강하사님 인적사항 다 알아서 처리했어요. 아마 내일 쯤 서류 꾸며서 올 거예요. 그 사람한테 보험까지 다 알아서 하라고 말해 뒀고, 조금 부족한 돈은 다음에 제가 술로 대접한다고 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고요.”

마담의 은근한 추파를 시운전을 핑계로 따돌리고 집으로 향한다. 차의 상태를 보아 아무리 업자들 간에 움직이는 가격이라고 해도 오백 이상은 더 주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마담의 미모가 그 값은 하는 모양이었다.

“으응, 이제 오니? 어서 와라.”

“도련님, 식사는요?”

집에는 이미 형과 형수 보라가 도착해 있었고, 늦은 시간임에도 자지 않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보여 상황을 무마하려니 달리 도리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찬도 너스레를 떨어 댄다.

“어허...... 이래서 내가 취직을 하면 안 되는 건데...... 백수가 취직을 한다니까 바로 이런 비상사태가 발생을 하는군. 그래...... 하하......”

“아, 이 녀석아. 취직자리를 구했으면 엄마한테도 말을 해 줘야지. 너희끼리만 쉬쉬하고 있었어?”

“에이...... 나는 다른 자리 알아보려고 그랬지요. 취직을 하면 당분간 회사 숙소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엄마 혼자 둘 수가 없어서 말을 못했지.....” 

그날은 그렇게 저물어 가고 모두가 각각의 생각으로 분주하기만 했다. 기찬의 형 내외는 엄마에게 어떤 형태로도 소식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으니 형은 그동안 자신이 엄마를 모시지 못했던 것 때문에 기찬이 자리를 잡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핑계를 역설하여 서둘러서 아침에 엄마를 모시고 가기로 하고 이삿짐은 낮에 이삿짐센터를 통해 보라와 기찬이 정리하는 것으로 입을 모았다. 이제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변해 버릴 것이었다.

“도련님...... 도련님......”

아침부터 지저귀는 꿈결 같은 새소리는 보라의 목소리였던 모양이다. 이부자리에서 눈을 비비는 기찬의 코앞에 화사한 미소를 띤 보라의 얼굴이 나타난다.

“어, 어...... 내가 늦잠을 잔 모양이네...... 형은?......”

“후훗...... 벌써 어머니 모시고 갔어요. 어머니가 도련님은 더 자게 두라고 하셔서......”

“음...... 그럼 우리 둘뿐이네?”

기찬은 팔을 뻗어 보라를 끌어당기고, 보라는 가볍게 입을 맞춰 준 후 몸을 빼낸다.

“이삿짐센터에서 금방 오기로 했으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씻고 식사부터 해야지요.” 

“에이...... 왜 벌써 전화를 했어? 아쉽다. 뽀뽀 한 번만 더 하고......”

“어머! 아유 참, 도련님도...... 어제 일이지만, 시간으로 치면 아직 채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어요. 호호.....”

“아휴...... 그렇지만...... 이거 봐.”

기찬은 개구쟁이처럼 담요를 걷어붙여 심벌을 가리키고, 잠을 자고 난 뒤 기력이 충만해 한참 성이 나 있는 그 물건은 팬티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엄마야...... 호홋...... 난 몰라요. 빨리 나오세요.”

보라는 방을 빠져 나가 도망가고, 기찬은 기지개를 켜며 행복한 아침을 맞는다.

“강기찬......”

“아! 네, 상사님...... 반갑습니다.”

“응, 그래...... 네가 하도 서둘러서 요즘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금 사령부에들어가면 표찰이 나와 있을 거다. 원래 내가 수령해 가고 네가 부대에 들어와서 정식으로 받아가야 하지만, 자네 것만 따로 빼 두라고 했으니까 먼저 가서 수령하도록 해. 내가 첩보수집이 늦어지면 안 된다고 우겨서 그런 거니까 비표도 받게 되면 당장 오늘부터 보고서가 올라와야 된다. 알았지?”

“아! 네...... 물론입니다. 보고서 양식은 그대로겠지요?”

“으응, 변한 건 없다.”

“네,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찌감치 박상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기찬의 행보에 속도를 더해준다. 

기찬의 짐이래야 옷가지와 컴퓨터 따위뿐이니 새로 산 지프에 나눠 싣고 서둘러 이사를 마쳐 버린다. 어차피 인부들이 알아서 하는 일, 뒷일은 보라에게 맡기고 자리를 피하니 뒤통수에 보라의 시선이 꽂혀도 못 본 척 손만 흔들어 줄뿐이다.

“아! 그러십니까? 이, 이런......”

“음...... 그렇습니다. 우리가 맡은 일을 조사하는 과정에 드러난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민간인들에 대한 사건을 군에서 처리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자료를 넘겨 드리는 겁니다. 다만, 여기 이 자는 우리가 계속 참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제공자로 분류해서 처벌 받지 않도록 해 주시고...... 아직 저희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매스컴에도 보안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종로 경찰서. 기찬은 자신이 적발 해 낸 사기사건을 굳이 용산이 아닌 이곳까지 들고 와서 넘겨주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어차피 자신의 관할이 이곳이기도 하지만, 룸싸롱 ‘카이로’도 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니 지역 수사진과 면식을 여는 입장에서도 애 쓸 필요 없이 유리한 지위를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자연스레 브리핑을 해 주는 과정에 주요 간부진들이 기찬을 인식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점심식사라도 대접하겠다는 제의를 뿌리치고 박사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입조심 하라는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는다.

“사건이 마무리 되는대로 연락하시오.”

“아! 네, 네...... 알았습니다.”

기찬은 다시 카이로에 돌아와 그간의 일들을 회상해본다. 대강의 일들이 일단락되고 보니 모든 것이 미라를 통해서 주어진 인연이나 다름없는 일들이었고, 그녀에게 뭔가 그 보답이 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아직도 영진기업의 사장 집에서 파출부를 하고 있을 미라의 올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래, 미라 오빠도 다시 취직이 됐다고 하던데 이젠 부인이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자리를 지키게 해 주는 것도 보답이라면 보답이 될 수 있겠지. 결국 오빠가 행복해지면 미라도 행복해 할 테니까......”

기찬은 다시 주섬주섬 전화를 찾아 영진으로 전화를 넣는다.

“여보세요......”

“네, 영진입니다.”

“당신...... 김비서요?”

“아! 네...... 그렇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음......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 모양이지요?”

“네, 네...... 물론입니다. 무, 무슨 일이신지......”

“아! 걱정 말아요. 사장에게 볼 일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당신 문제는 잘 무마됐으니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일간 다시 들릴 테니까 그때 얘기하고, 우선 사장실 좀 돌려주시오.”

“네,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제 미라와 관계된 주변의 일들을 마무리 짓기로 하고 보니 아직도 사장에게서 나올 기름진 종이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저...... 전화 바꿨습니다.”

“아! 사장님이십니까? 저를 기억하시겠는지...... 언젠가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하신......”

“아! 네, 네...... 물론 기억하지요. 오늘이라도 한 번 뵐까요?”

전화를 연결해 준 김비서에게 방금 들었으니 아는 척이야 해 오겠지만 반가울 리는 없을 터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기분으로 기찬의 전화를 받아내는 모양이었다. 기찬도 술을 마심에 있어 카이로에서라면 아무래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없을 것 같아 사장에게 장소를 일임하고 약속을 정해둔다.

통화를 끝낼 무렵 마담이 들어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린다.

“네...... 무슨 일로......”

“저......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 좀 쉬러 왔어요. 괜찮지요?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하하...... 좋지요. 잘 오셨어요. 그래, 무슨 일인데 마당발 마담이 골치를 썩어요?”

“제가 골치 썩을 일이 뭐 다른 일이겠어요? 계집애들 때문에 그렇죠.”

“왜요? 누가 그렇게 속을 썩여요?”

“애들이 예쁘장하면 일부러 그 애를 지명하는 단골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계집애는 일을 띄엄띄엄 한 달에 열흘도 채 안 나오니까 제가 손님들한테 시달리잖아요. 다른 손님한테 빼돌리고 자기들한테 안 보내는 줄 알고......”

“큭...... 하하...... 그거 이상하네요. 그 애도 돈을 벌기 위해 나올 텐데, 왜 일을 그렇게......”

마담이 커피잔을 내밀며 말을 잇는다.

“그 애가 신랑이 있거든요. 뭐라더라?...... 무슨 경비용역 일을 한다던데...... 그래서 신랑이 야간 일을 할 때만 시간이 되니까......”

“허허...... 그것 참......”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다른 집으로 옮기라고 좀 나무랐더니 울며불며 난리를 쳐서 이리 피해 왔어요. 호호......”

“음...... 남편이 실직을 했거나, 아프다든지 딱한 사정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멀쩡한 남편이 있는데 왜 이런 일을 고집하지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요?”

“꼴에 또 애인은 따로 있는지...... 돈을 뜯어가는 녀석이 따로 있는 모양이던데요. 사생활이야 제가 관여할 게 아니니까 그 이상은 저도 잘 몰라요.”

“그래요?......”

여진에게도 결혼한 후에 나오는 계집애들이 있다는 말을 듣긴 들었지만, 접해본 바가 없으니 또 다시 기찬의 호기심에 자극이 된다. 게다가 단골이 있어 손님들이 마담에게 빼돌린다는 오해를 할 정도면 그 미모도 상당할 테니 더욱 그러한 일이다.

“그 친구...... 내가 한 번 봐도 되겠어요?”

“어머! 강하사님...... 은근히...... 기분 나쁜데요? 저는 아직 드라이브도 안 시켜 주시고선......”

“아! 하하...... 그거야 말씀하시면 언제라도 대환영이라니까요. 단지 그 애 사정이 궁금해서 좀 들어봤으면 싶어서요. 저 좋아서 따로 애인을 두고 있는 거라면 몰라도 혹시 불량배들에게 돈이라도 뜯기는 것 같으면 막아 줘야지요.”

“아유...... 그냥 두세요. 제 돈 아낀다고 마스터도 안 두는 애들인데......”

“하하...... 그래서 그래요. 저도 수입이 좀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여진이하고 미라뿐이잖아요. 그렇게 서비스라도 하면 차차 늘겠지요.”

“어머...... 세상에...... 호호호...... 알았어요. 아유, 강하사님 너무 재미있으시다. 제가 가서 지금 올려 보내 드릴게요. 호호호......” 

마담의 웃음소리 너머로 기찬은 시계를 바라본다. 시간은 충분하니 영진 사장을 만나러 가기까지 시간이라도 때우고 놀기는 아주 좋은 소재였다. 

잠시 뒤에 기찬의 방으로 불려온 계집애는 예상과 달리 눈이 환해지는 미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솜털 보슬거리는 은행원정도의 느낌을 받을 만큼 수수한 인상의 계집애였다.

기찬도 대화도중 받은 느낌이지만 그렇게 손님의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화류계에 흔해빠진 되바라진 애들과 달리 여동생 같은 느낌의 다소곳함이 어필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놈이 애인도 아니고 깡패도 아니란 말이야?”

“네, 강하사님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 사람 손대시면 전 큰일 나요. 남편 모르게 진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거거든요.”

“으응, 그러고 보니...... 너는...... 참, 이름이 뭐지?”

“세희예요. 정세희......”

“그래, 세희 너는 이런 일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 일을 하는 이유가 그 빚 때문이라는 거니?”

“네......”

“이 일은 얼마나 했어?”

“한 삼 개월 됐어요.”

“빚은 얼마나 되는데?......”

“지난달까지는 오천만 원 정도였는데...... 몰라요. 또 늘어났을 거예요.”

“뭐야? 네가 버는 돈을...... 버는 족족 뺏어간다면서? 한 달에 열흘만 일을 해도 네 인기정도면 하루에 외박을 두 번도 나갈 수 있었을 테고...... 그러면 족히 몇 백은 벌 텐데...... 그렇게 갚아나가도 빚이 늘어난단 말이야?”

“몰라요. 그 사람들 이자는 원래 그런 거라고 해서...... 그냥 버는 대로 갚아나가면 더 이상 문제 삼지는 않겠다고 하니까......”

“허헛 참...... 너는 혹시 마스터나 누구 다른 사람들한테 상의해 본 적 없니?”

“처음에 누가 마스터를 두라고 소개해 줬는데 그 사람도 그런 개인적인 문제는 개입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마스터 없이 일하고 있어요.”

“너...... 그 사람들한테 최초에 빌린 돈이 얼마였니?”

“오백만 원이요.”

“......”

“흐흑......”

자신을 걱정해 주는 듯 다정하게 묻는 기찬을 통해 괜한 서러움이 묻어나는지 세희는 기어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마스터들이 물론 취객이나 다른 불량배들로부터 아가씨들을 보호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에 개입해 복잡한 일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었으니 세희는 달리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게다가 그런 불법사채집단 뒤에는 만만찮은 조직이 몸을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아가씨들 뒷배를 봐주는 푼돈수입에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모험을 한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 이런 일은 어떻게 알고 시작한 거니?”

“그 사람이 여기서 일하라고 데리고 왔어요. 자기 집이 이 근처라고...... 흑...... 이거라도 해서 갚아 나가면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는다고......”

“너, 그 친구들한테 몸을 요구받은 적은 없니?”

“흐흑...... 같이 잔적도 몇 번 있었어요.”

기찬은 불법사채업자라는 인간들도 한 번쯤은 접해 보고 싶어 세희를 거두기로 내심 작정을 한다. 이렇게 사람을 공포로 몰아가서 황폐하게 만드는 것에는 기찬도 일가견이 있으니 호승심이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세희...... 너...... 오늘부터...... 내가 마스터 해 줄까?”

“네?......”

“오늘부터 내 여자 할 거면 네 빚 내가 한 번에 다 갚아 줄 거고...... 싫으면 그냥 너 좋을 대로 살고......”

“그럼...... 제가 강하사님께는 그 돈을 어떻게 갚으면 되는데요?”

“이자는 한 푼도 안 받을 테니까 그냥 너 쓸 거 써 가면서 천천히 갚으면 돼. 마스터 비용은 물론 별도로 하고 한 달에 백만 원씩만 받으면 될까?”

“네, 네...... 그럼 할게요. 강하사님 여자 될게요. 제 돈 좀 갚아 주세요. 흐흑......”

“그래, 그래...... 울지 말고...... 자, 오늘은 내가 약속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니까 내일 그 쪽 사람들 만나서 돈을 갚아 줄게......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그 대신 상황이 변하는 건 없어. 열심히 일 해야 돼. 마담한테 혼나도 참아야 하고......”

“네, 그럴게요. 저...... 그럼......”

“응, 뭐?......”

“여기서 그냥 옷을 벗을까요?”

기찬은 잠시 생각을 한다. 어차피 마스터가 없는 아가씨들이라면 지금의 기찬의 위치에서 얼마든지 손을 뻗칠 수도 있는 일이었고, 설혹 마스터가 있는 아가씨라고 해도 자신의 영역 안으로 잡아끄는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박상사를 대신하는 이인자의 입장에서 동침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다.

마담도 한 수 접어주는 기찬의 눈 밖에 난다면 계집애들의 입장이 여러 모로 불편할 것은 당연한 일이니 기찬이 마음만 먹는다면 손대지 못할 계집애들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당장에 세희를 취하지 않더라도 결국 기찬의 그늘에 있으니 달라지는 것은 없는 일이지만, 뭔가 세희를 안심시켜 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 저기 문을 잠그고 이리 와라.”

“네......”

기찬은 바지만 벗고 선 채로 세희를 기다리고, 세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눈치로 알았는지 기찬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흐으윽......”

서늘한 손가락의 느낌과 곧 이어지는 후끈한 입안의 훈기는 마치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드는 듯 나른함을 전해주고 목구멍 깊숙이 삼켜 줄 때에는 아득함에 몸을 휘청거린다.

“후룹...... 후루룹......”

고개를 숙여 근원에 다다르니 선홍색 부드러운 살덩이가 단향을 풍기고, 춤을 추듯, 공 굴리듯 입 안에 담아내어 소중히 물어주고 뱉어주길 여러 번, 끝내 기찬의 고개를 뒤로 꺾어 버린다.

“아흑...... 세희야......”

“하악...... 하악...... 네에......”

눈빛을 빛내며 기찬을 바라보는 중에도, 몰아 숨 쉬는 가쁜 호흡 중에도 감싸 쥔 두 손 안에 미끄러지는 불기둥을 놓을 수 없다는 듯 울긋불긋 불거진 혈관의 느낌을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모아간다.

“그, 그만...... 이제 그만......”

“네에...... 하악, 하악......”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세희를 일으켜 책상을 짚게 한다. 길게 엎드린 세희의 등을 따라 골이 파이고, 잘 익어 한껏 벌어진 복숭아가 기찬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이미 새 주인을 기다리는 성문에는 이른 아침의 이슬이 맺혀있고, 개선하는 장군은 그 이슬을 적시며 목을 축인다.

“하아아윽......”

“후욱, 후욱......”

기찬의 몸짓에 따라 커다란 엉덩이가 물결치며 파문을 일으키고, 허리까지 걷어 올려 잔뜩 늘어진 드레스가 찰랑거리며 발밑을 어지럽힌다.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할 쾌감에 세희는 쓰러지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곳에 기찬의 흔적이 남는다.

“하악...... 하악...... 강...... 하사니임......”

마지막 남은 열정을 세희의 부드러운 엉덩이에 문지르며 가는 허리를 쥐어간다. 끓어오르는 용암의 느낌에 표정을 감출 수 없는 세희는 떨어 울리는 경련으로 응답해 온다. 

“크윽......”

“제, 제가...... 하악, 하악...... 닦아 드릴게요.”

“그, 그래......”

번질거리는 용두를 마다 않고 다시 입으로 물어간다. 몇 번을 핥고 빨아 들이마시는 세희는 두 뺨이 오목해지도록 정성을 기울여 주인을 맞아들이고, 두 손을 넓게 펴 그 얼굴을 어루만지는 기찬은 애정 어린 눈길로 세희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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