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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57화 (157/161)
  • 157화 Chapter 156

    “불길하군.”

    칠흑으로 물든 세상, 그리고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붉은 유성.

    굳이 어떠한 지식이 없어도 이 모든 전조가 어떤 불길함을 가져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그게 영민하기 그지없는 펠리드라면 더더욱 불길한 징후를 포착할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유성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새롭게 자신의 호위가 된 은왕림주를 바라보았다.

    “샬롯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본래는 림주로만 불렸던 이.

    하지만 펠리드는 이름이 없는 것을 가엾게 여겨 그녀에게 샬롯이라는 이름을 부여해 주었다.

    “…세계의 멸망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지금껏 말을 아꼈던 샬롯.

    하지만 그녀는 펠리드 앞에서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히 전해 주었다.

    “멸망… 말입니까?”

    하지만 좀처럼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다.

    멸망이라니.

    갑자기 무슨 변화가 생겨서 대륙이, 세계가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말인가.

    “펠리드 님도 이미 아시겠지만 이 대륙을, 별의 밖으로 시야를 넓히면 우주라는 광대한 장소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광대하고도 무한한 세계에는 다양한 존재가 살고 있고, 그중에 특히 외부자라 불리는 정점에 선 존재들이 있습니다.”

    “네, 형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별을 먹어 치우는, 괴이한 존재들이 있다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행동을 개시한 것 같습니다.”

    “외부자들이 우리 대륙을 넘보려 한다는 말입니까?”

    “정확히는 오래전부터 생명력이 넘치는 이 별을 노려 왔었습니다. 다만 시초자분들에 의해 발견되지 않아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운이 다한 것 같군요.”

    “…….”

    샬롯의 말에 펠리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떨어지는 유성을 응시했다.

    단순히 왕국이 멸망하고, 사람들이 죽는 전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대륙, 그리고 별의 운명이 걸려 있는 일.

    이 별의 모든 생명체가 몰살할 수도 있는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형님이 있지 않습니까.”

    위기 상황 속에서도 펠리드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아서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위기라 생각했던 모든 일을 우습게 넘겨 버린 이.

    도무지 그 힘의 끝을 찾아볼 수 없는, 같은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절대적인 능력.

    지금까지 아서를 겪어 온 펠리드는 이번에도 아서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펠리드의 말에 샬롯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위대하신 분이라고 해도 외부자의 정점에 있는 지배자들이 움직이고 있다면…….’

    아니,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이 불안한 감각은 분명 지배자들의 등장을 나타내고 있었다.

    머지않아 별을 집어삼키는 지배자들과 휘하의 부하들이 나타나 대륙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억겁의 시간 동안 탐식을 위하여 힘을 비축한 그들의 병력을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그분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러나 나머지 인간들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없다.’

    아무리 아서가 강하다고 해도 혼자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과연 아서 혼자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샬롯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서 님이라면 충분히 위기에서 대륙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심을 숨긴 그녀는 펠리드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그래요. 그렇게 되어야 하겠죠.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겁니다.”

    하지만 샬롯은 몰랐다.

    펠리드가 굉장히 영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또한 지금 다가오고 있는 멸망의 시간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무너져 버린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나를 따라오겠는가?’

    내심을 숨긴 이유는 그가 왕이기 때문이다.

    만백성의 어버이, 백성들을 지탱해 줘야 할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누군들 힘이 나서 싸울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펠리드는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좌절과 절망만이 남는다고 해도 그만은, 가장 위에 있는 자는 희망을 품어야만 했기에.

    “그런데…….”

    막 대화를 이어 나가려 할 때였다.

    “옵니다!”

    샬롯이 경고하며 자신의 무기, 창을 빼 들었다.

    콰아아아아-

    저 멀리, 창공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

    그것은 칠흑의 밤하늘을 가르고 있던 붉은 유성 중 하나였다.

    “유성……?!”

    처음에는 멀게만 느껴졌으나 눈 깜짝할 사이 왕성 근처로 다가온다.

    그 순간 유성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평범한 유성이 아니구나!’

    그것은 지금까지 보아 온 유성이 아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던 것. 그것은 무언가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둥근 공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콰앙!

    잠시 후 기이한 유성이 왕성 근처에 떨어졌다.

    만약 일반적인 유성이었다면 그 충격파로 인해 인근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테지만 생각보다 큰 충격파는 오지 않았다.

    단지.

    드드드득-

    대지의 요동과 함께 둥글게 뭉쳐져 있었던 기이한 무언가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지배자의 부하들입니다. 본래는 형태를 띠지 않는 녀석들은 대지의 생명을 흡수하여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될 겁니다.”

    과거 시초자들에 의해 탄생하게 된 샬롯.

    그녀는 시초자가 지니고 있었던 많은 정보를 전수받았고, 그중에는 지배자들의 병력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대륙에 떨어진 저 병력이 어떠한 것인지도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기생자.’

    다행히 지배자들이 부리는 상급 병력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희망적인 것도 아니었다.

    기생자는 중급 이상의 병력으로, 특히 생명력이 넘치는 대지에 안착했을 경우 아주 강력한 괴물로 변모하게 된다.

    「쿠워어어어!」

    「캬아아아악!」

    곧이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괴이한 생명체.

    “칫!”

    샬롯은 혀를 찼다.

    하필 기생자 무리가 낙하한 지점이 인근의 숲이었다.

    그렇기에 기생자들은 늑대, 곰 등 나름 강력한 포식자들에게 기생하여 강력한 육체와 힘을 얻게 되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는 않은 것 같군요.”

    펠리드 또한 변신한 기생자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수천 개에 달하는 촉수, 그리고 부패한 살점을 가진 기생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대륙의 강자들도 상대하기 힘든 위압감을 뽐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녀석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혹여 병력을 풀 생각을 하진 마십시오. 기생자들이 인간의 몸에 기생하게 되면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펠리드는 곧장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인간에게 기생한 존재라면 더욱더 골치 아파질 터.

    일단은 그녀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한심하구나. 고작해야 한 사람을 믿고 버텨야 한다니.’

    일찍이 대륙에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도 부지런히 노력하여 정예 병력을 양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만족하는 중이었지만 아니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존재는 같은 인간이 아니라 외부의 존재.

    그들의 손짓 한 번에 펠리드가 양성한 모든 병력은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가고 말 터.

    ‘나는 그동안 무얼 하였단 말인가.’

    아무리 외부의 존재,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이라지만 자괴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샬롯 님, 부디 보중하십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적어도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니.”

    펠리드의 말에 옅은 미소를 보인 샬롯.

    콰앙!

    곧장 그녀의 몸이 쏘아진 화살처럼, 기생자 무리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쿠워워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곰에 기생한 녀석이었다.

    취릭, 취리릭!

    몸에서 돋아난 검은 촉수가 사방을 점하며 달려든다.

    하지만.

    스스슥-

    단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창은 다가오는 수백 개의 촉수를 모두 갈라 버렸다.

    「쿠우?」

    의문에 빠진 녀석.

    그리고.

    촤악!

    샬롯의 창은 정확히 곰에 기생한 녀석의 몸뚱이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촤악, 촤촤촤촤악!

    아니. 반으로 가른 게 아니라 형체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로 아예 갈아 버렸다.

    「우우!」

    「캬악!」

    당연히 주위에 있던 기생자들이 반응한다.

    늑대, 멧돼지 등에 기생한 녀석들이 사납게 달려들었다.

    “내가 있는 이상 그 누구도 펠리드 님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한다!”

    그것은 위대하신 분, 아서가 그녀에게 남겨 준 사명.

    그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그녀는 사력을 다하여 창을 휘둘렀다.

    「키엑!」

    「캭!」

    하나만 해도 수만의 병력을 해할 수 있는 기생자.

    하지만 샬롯의 창술은 너무도 신묘한 것이어서, 그 강력한 괴물들도 감히 받아 내지 못한 채 힘없이 썰려 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

    뚝, 뚝-

    샬롯의 팔을 타고 흐른 선혈이 지면을 빨갛게 물들인다.

    “후우…….”

    오랜 시간 벌어진 사투.

    그 사투에서 살아남은 존재는 샬롯뿐이었다.

    스윽-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칼을 위로 쓸어 올리며 주변을 바라본다.

    “…….”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잘려 나간 촉수, 절단된 기생자의 육체, 그리고 녀석들이 흘린 파란색 피뿐.

    수백의 기생자를 홀로 처치하는 기염을 토한 샬롯.

    하지만 그 대가는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과연 외부자의 병력인가. 쉽지는 않았어.’

    왼손이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만약 기생자의 병력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그녀는 벌려진 상처를 통해 들어오는 기생자들에 의해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린 채 펠리드를, 그리고 왕국을 자신의 손으로 멸망시켜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그 불행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돌아가…….”

    홀로 상황을 정리한 그녀.

    무사 귀환을 위해 다시금 움직이려던 그녀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그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유성이 왕성 근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건……?’

    심지어 그 기운 중에는 상급 병력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힘도 느껴진다.

    조금 전 기생자 한 병력을 상대하는 것도 조금은 벅찼던 그녀였기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쾅, 콰콰콰쾅!

    수십 개의 유성이 지면에 떨어졌다.

    “…….”

    샬롯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위대하신 분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도망치거나 숨지 않는다.

    아서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손에 쥔 창에 힘을 준다.

    확고한 결의.

    그녀는 여기서 자신의 모든 생명을 바쳐 마지막 아서의 명령을 이행하기로 했다.

    “와라, 이 더러운 탐식의 개들아!”

    소리친 그녀가 막 외부의 병력들을 향해 달려가려 할 때.

    지지지직-

    엄청난 마력의 파동과 함께 공간이 뒤틀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뭐지?’

    그녀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

    콰챠챵!

    그와 함께 차원이 부서지면서 통로가 생겨났다.

    기이한 기운을 풍기는 차원과 연결된 통로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

    “드디어 돌아왔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냐!”

    “얼마만은 무슨. 우리에게는 오랜 시간이지만 이곳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야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

    그들은 바로 아서가 마계에 남겨 두고 왔던 타일로, 갈린, 그리고 킬리아였다.

    오랜 시간 동안 마계를 방랑하며 수행을 하던 그들이 마침내 대륙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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