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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56화 (156/161)
  • 156화 Chapter 155

    쿠쿠쿠쿵!

    다른 이들은 느낄 수 없겠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녀석들이 다가오고 있다.’

    거대한 기로 뭉쳐진 존재가, 누가 봐도 강력한 살의를 지닌 이들이 대륙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진체. 녀석들의 등장만으로 대륙을 박살 난다.’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대륙을 파괴한다면 그건 이미 전투라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아야만 한다.

    한데 어떻게?

    아무리 내가 강하다고 해도 이 막강한 기운을 자랑하는 지배자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는 없다.

    ‘자충수로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에 대한 마땅한 해결법을 찾을 수 없었다.

    “아서 님!”

    그리고 쿠린 왕이 다가왔다.

    “조금 전 그가 한 말은…….”

    “네, 조금 있으면 대륙이 산산이 파괴될 것 같습니다.”

    나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솔직히 말해 주었다.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나를 바라보는 쿠린 왕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했지만.

    “저로서도 막기는 버겁습니다.”

    그 기대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었다.

    “아서 님이 불가능하다면 대륙의 운명은 끝이로군요.”

    “글쎄요, 혹시 모르죠. 대륙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은거기인들이 나타나 대륙을 구해 줄지도. 그리고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난세에는 영웅이 나오는 법이라고. 혹 숨어 있던 전설의 용사라는 게 나타나서는…….”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네.”

    일단 나오는 대로 지껄였지만 그딴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나타날 턱이 없다.

    이곳은 꿈도 희망도 없는 무자비한 현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막아 낼 게 아니라면 사실상 대륙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하면 이것은 쓸모가 없겠군요.”

    그리 말한 쿠린 왕이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그건……?”

    “태초의 보물이 봉인된 장소가 기록된 고대의 지도입니다. 레이안이 발견한 그것을 빼돌렸고, 그들이 이곳을 찾은 것도 저보다는 이것을 되찾기 위함이었겠죠.”

    “희망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았군요.”

    설마 여기서 태초의 흔적을 찾을 줄이야.

    “네?”

    “그걸 제게 양도해 줄 수 있겠습니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러지요.”

    쿠린 왕은 서슴없이 지도를 내어 주었다.

    ‘하여간 신비한 양반일세.’

    나는 멀뚱히 그를 응시했다.

    대단한 게 아니라니.

    자기 목숨을 걸고 레이안, 그리고 시사지외에서 물건을 빼돌린 것 아니었나?

    그런데 별거 아니라고 전해 준다는 게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는 거침없는 행동을 보여 주는 이.

    아마도 그렇기에 나는 이 양반이 그리 싫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감사를 표하며 지도를 받아들였다.

    촤악-

    돌돌 말려 있는 지도를 펴자 뜻을 알 수 없는 온갖 기호와 문양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도 어떻게든 해석을 해 보려고 했지만 제 기억 속에는 전혀 어원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

    3,00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온 쿠린 왕이 해석을 못할 정도면 불가사의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요. 이것은 외부자의 언어 체계니까요.”

    “네?”

    곧바로 의문을 표하는 쿠린 왕.

    “호, 혹시 이 언어를 해석할 수 있습니까?”

    “네, 다행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내 지식이 해박해서가 아니다.

    지이잉-

    지도를 펼친 순간 멋대로 발휘된 태초의 눈.

    이마에 숨겨진 그 눈이 기하학적인 언어를 해석해 주고 있었다.

    “해석은 끝났습니다. 이 보물을 얻는다면 어쩌면 조금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초자들은 분명 후일을 대비하여 태초의 보물을 남겨 뒀다고 했다.

    아마도 그들은 예언과 같은 특별한 능력을 통해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짐작했을 터.

    ‘마지막 보물을 얻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렇기에 행동하는 데는 아무런 망설임이 있을 수 없었다.

    *

    철썩!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모처럼 육지가 아닌 해변에 온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진짜 바다가 검은색이네?”

    보통 바다라고 한다면 푸른색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비친 바다는 푸른색이 아닌 완연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대륙의 동쪽, 대륙의 끝이라 불리는 흑해(黑海).

    단순히 명칭만 흑이 아니라 진짜 바다색이 시커멓다.

    ‘어쨌든 이곳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거지.’

    지도를 해석한 결과 알아낸 사실은 마지막 남은 태초의 보물, 태초의 육신이 이곳 흑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대륙 사람들은 이곳 흑해를 가리켜 죽음의 바다라 부르며 접근하지 말아야 할 금지로 지정했지만 내게는 아니다.

    풍덩!

    곧바로 다이빙을 해 바다 아래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바닷속은 위에서 본 것처럼 검기만 하다.

    ‘왜 사람들이 금지로 지정했는지 알겠네.’

    그 어둠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보통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다?

    아마 10초도 견디지 못한 채 심연의 공포에 떠밀린 채 수면 위로 도망치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아니다.

    지이잉-

    태초의 눈이 발동하여 주위의 어둠을 물리친다.

    애초에 흑해라는 장소가 생겨날 수 있었던 건 시초자 중 하나의 권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권능은 태초의 눈으로 파훼할 수 있었고, 오직 그만이 이 어둠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태초의 눈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헤엄을 쳤다.

    촤악, 촤악!

    그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환계에서 지겹도록 수영했으니까.’

    레비아탄 녀석은 바다의 지배자.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물속에서 뛰노는 법을 배워야만 했고, 몇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육지에서 걷는 것처럼 수영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굳이 수영할 일이 없겠지만 흑해는 모든 마력이 차단된 장소.

    어쩔 수 없이 헤엄을 치며 깊숙이, 더 깊숙한 곳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보인다.’

    그렇게 얼마나 헤엄을 쳤을까.

    마침내 어둠 속에서 옅은 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우웅!

    태초의 눈이 반응하는 것으로 봐선 저곳이 마지막 태초의 육신이 숨겨져 있는 곳이 분명하다.

    촤아아-

    속도를 더욱 올려서 마침내 빛을 마주한 나는.

    화악!

    곧이어 그 빛이 나를 삼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긴…….”

    눈을 뜨자 물속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색의 공간.

    주변을 둘러보면 흰색밖에 보이지 않아 마치 무한한 공간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뒤틀린 공간이로군.’

    강력한 힘을 통해 공간을 분리시켜 놓은, 다른 이들의 침입을 방지하는 독자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은 그대가 약속의 존재라는 뜻이겠군.」

    잠시 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면. 하얀 실루엣이라고 표현하면 딱 맞을 것 같은, 온통 하얗게 칠해진 인간 형상이 서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내가 만나야 할 시초자의 마지막이라는 뜻이겠죠.”

    「그런가? 훗,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되는군.」

    하얀 실루엣, 아니 시초자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안타깝군. 내가 실존할 수 있었다면 약속의 그대를 만나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시간과 기억이 뒤틀린 곳에서 그 잔향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니.」

    비록 자신의 존재 파편을 남겼다고는 하나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시간, 그리고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만나고 있으나 그에게 나는, 나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그렇다고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는 것.

    「뒤틀린 세계에서나마 그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멀리서 날아온 지배자 녀석들이 대륙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말이다.

    「흠, 결국 그들이 이곳을 찾은 건가?」

    “네, 조금 있으면 별 자체를 씹어 삼키려 할 겁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이곳은 우리들이 마지막 희망을 위해 남겨 둔 곳. 혼돈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넘겨줄 순 없으니.」

    사정을 깨달은 시초자는 손을 휘저었다.

    슈우우우-

    그러자 그의 몸속에서 나온 빛의 구슬이 허공에 머물렀다.

    「본래 약속된 존재를 위한 시련이 있으나 그것은 내 임의대로 없애겠다.」

    “화끈하십니다.”

    「허허허허!」

    그냥 빈말이 아니다.

    처음 본 시초자는 너무 정석이었고, 그리고 그다음에 본 녀석은 아예 타락해 버려 날 공격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마지막 시초자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인데 시련까지 생략해 준다니.

    ‘이래서 삼세번이라는 말이 생겨났군.’

    왜 옛 성현들께서 그렇게 삼세번, 삼세번을 외쳤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결국 세 번째가 되어서야만 이렇게 진국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이 구슬이 나의 권능을 발현하여 만든 태초의 육신이다. 오직 약속된 존재를 위하여 성심성의껏 만들었으니 그대가 이것을 취하라.」

    “그럼 사양하지 않고.”

    시간이 없기에 곧장 날아오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웅웅!

    그와 함께 태초의 눈, 그리고 내면에 잠들어 있던 태초의 영혼이 깨어나 반응했다.

    그건 마치 태초의 육신과 공명하는 듯한 반응.

    「일찍이 그대가 얻은 태초의 눈, 그리고 태초의 영혼은 보다 많은 권능을 전해 주었을 것이나 태초의 육신을 얻는 순간은 다를 것이다. 애초에 이 세 가지 보물이 모여야만 완전한 힘을 내도록 설계 되어 있었으니. 이제 그대는 세 개의 보물을 모두 흡수하여 보다 완벽한, 우리가 바란 그 원대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마지막 시초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태초의 육신을 손에 쥐고 나니 알 수 있다.

    이 육신까지 흡수하게 된다면 나는 그들이 설계해 놓은 진정한 힘을 얻어 다른 영역에 들어설 수 있음을.

    “그럼.”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구슬을 손에 쥐었고, 그것을 흡수한다고 생각한 순간.

    육!

    구슬이 나의 육신에 정확히는 심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순간.

    두근.

    나는 지금껏 들을 수 없었던 선명한 심장 박동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두근두근.

    그 심장 박동은 점차 빨라졌다.

    그와 함께 세 개의 보물에 고루 퍼져 있었던 신비한 힘이, 지금까지는 잠겨 있었던 그 강대한 파도가 내게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으윽!’

    그것은 지금의 나도 감당하기 힘든 강력한 힘.

    「그대가 얼마나 그 힘을 흡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50% 이상의 힘을 흡수한다고 해도 능히 전지전능한 존재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시초자의 말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에 신경을 쓰고 있을 새가 없었다.

    나의 몸을 폭발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엄청난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비명.

    그것은 격을 얻고 난 이후 내가 처음으로 지르는 고통에 찬 비명이었고.

    콰콰콰콰콰쾅!

    이어서 힘의 충돌로 인한 엄청난 폭발이 내부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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