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Chapter 149
“귀향이라…….”
귀향.
누군가 들으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꿈에서도 간절히 바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
내가 귀향을 바라게 된 건 나 자신의 어떤 목적이라기보다는 원정대원들의 바람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들의 바람이 없었다?
어쩌면 대륙으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법칙을 비튼 자들도 마찬가지.
어쩌면 대륙에서의 생활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각자의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는 것.
그렇기에 귀향이라는 그 목적이 허황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법칙을 비튼 자들이 이 대륙을 통째로 외부자들에게 넘기려 하고 있고, 그 대가로 각자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얻는다, 이 말이죠?”
“정확합니다.”
“그럼 당신과 같이 대륙 태생들은 무엇을 받는 거죠?”
여기서 궁금한 건 그렇다면 쿠린 왕과 같은 대륙 태생은 무엇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대륙이 고향이지 않은가?
대륙 출신의 법칙을 비튼 자들 또한 많을 텐데 이 별을 통째로 넘기게 되면 그들은 무엇을 얻는 걸까.
“각자 원하는 바는 다릅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외부자들의 권속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흐음. 하긴, 아무리 법칙을 비틀었다고 해도 외부자들 정도면 충분히 몸을 의탁할 만한 가치가 있을 수 있겠군요.”
법칙을 비튼 자들 입장에서 외부자들은 신세계의 존재들이다.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면 영원불멸한 삶을 얻을 수 있을 터.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궁금증은 풀렸군요. 그렇다면 이제 결론이 남았는데…….”
나는 뚫어지게 쿠린 왕을 응시했다.
꿀꺽-
지금껏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나의 결정을 기다렸다.
“…뭐, 언제고 녀석들을 손봐 줄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요.”
“감사, 감사합니다!”
쿵!
쿠린 왕은 주변의 눈치를 생각지도 않고 머리를 찧으며 감사를 표했다.
“아니, 뭐 그렇게 감사를 표할 것까지야…….”
내가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는데, 이 양반과 있으면 어찌 된 일인지 당황할 일이 많이 생긴다.
‘내가 알던 고위층과 달라서 그렇겠지.’
과거에는 강철 제국의 2대 황제로, 그리고 지금도 건국왕이자 고귀한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주변의 눈치를 본다거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일이 좀처럼 없다.
기쁘면 기뻐하고, 슬프면 슬퍼하고, 또한 부탁할 게 있으면 허리를 굽히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하하하, 제가 이상하십니까?”
게다가 눈치도 빨라서는 곧장 질문을 던진다.
“이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처음이라.”
“그렇겠지요. 그건 지난날의 삶 때문입니다.”
“지난날의 삶이라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법칙을 비튼 자, 특히 회귀자로서의 삶은 온통 거짓으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회귀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어도 다시금 회귀하게 되는… 어, 잠깐?
“그런데 분명 회귀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이제야 이상한 점을 눈치채셨나 보군요.”
쿠린 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왜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죠?”
회귀자는 죽음에 이른 순간 다시금 삶을 반복하는 이다.
그렇다는 건 그는 쿠린 왕이 아니라 키르옌 황제의 삶을 반복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나와 같은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더는 회귀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네, 저는 에스카니안 제국이 건국된 이례로 지금까지 죽지 않는 불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
그 말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에스카니안 제국이 건국된 지 얼마나 지났더라?’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3,000년 이상이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쿠린 왕은 3,000년 이상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높은 경지에 도달해도 인간은 결국 인간.
노화를 막을 수 있는 일이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노화를 늦출 수는 있어도 그것도 백 년 단위일 뿐, 그 이상은 무리다.’
하물며 3,000년 이상을 중년인의 모습을 유지한다?
악마와 계약한다 해도 불가능한 수준의 이능이었다.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3.000년 이상의 시간을 견딜 수 없죠. 하지만 그자는, 레이안은 불사의 삶을 얻는 대가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습니다.”
“아마도 그 악마가 아슬론이겠군.”
“바로 보셨습니다.”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법칙을 비튼 자들의 배후에 있는 존재라면 아슬론, 그 녀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불사의 방법을 알아낸 건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오랜 삶을 살아온 아슬론이라면 충분히 불사의 방법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요.”
“그게 무슨……?”
“인간의 노화를 완전히 막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존재하긴 하지요.”
“아!”
쿠린 왕의 말에 어느 정도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설마 클론……?”
“네, 클론을 이용한 영혼 전이. 그 방법을 이용하면 유한한 삶을 무한히 늘릴 수가 있습니다.”
“흐음, 어쩐지. 수만 많아지는 쓸모없는 연구를 계속한다 싶었더니 결국 그런 이유가 있었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클론 생산 시설을 봤을 때 처음 가졌던 건 의문이었다.
클론은 완전한 복제품이 아니다.
10의 힘을 지닌 인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을 복제한 클론의 힘은 고작해야 1, 2에 불과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것도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지 만약 실패를 하게 될 경우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기이한 괴물이 탄생하게 되는 것.
더욱이 클론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아무리 대륙을 주무르고 있는 아슬론이라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것.
굳이 그 많은 자원과 그리 대단치 않은 양산품을 계속 제작하는 데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의문이 풀리는군.’
아슬론은 불사의 삶이라는 매력적인 미끼로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밑의 사람들에게 뭔가 이득을 줄 수 없다면 그 위치를 오래 차지하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억겁의 시간 동안 쌓은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수많은 금단의 비법을 완성하였고, 그것을 통해 인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한한 삶을 반복하는, 법칙을 비튼 자들.
그들에게 더는 반복되지 않는 삶,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참으로 매력적이었겠지.
아슬론이 어떻게 시사지외를, 레이안을 구워삶았는지 빤히 보이는 듯했다.
‘하여간 능력 하나는 대단한 양반일세.’
과연 아슬론답다고 해야 할까?
그 누구도 풀지 못했던 불사의 영역을 풀어낸 것.
그리고 법칙을 비튼 자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것을 보상으로 자신의 목적에 끌어들이는 대담함까지.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만 그와의 만남이 조금은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아서 님이라 알려 드리는 겁니다만…….”
그답지 않게 주변을 살피던 쿠린 왕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최근 그들이 노리고 있던 중요한 물건 한 가지를 빼돌렸습니다.”
“오호라!”
중요한 물건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특히 아슬론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본래는 이것까지 보여 줄 생각은 없었지만 아서 님이라면 충분히 내어 드릴 가치가 있지요.”
“내가 아니라 사실은 내 실력을 믿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고.
“하하,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요.”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쿠린 왕 정도면 나의 내면을 어느 정도는 들여다볼 수 있을 터.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그 무한한 힘에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시사지외나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법칙을 비튼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겠지.
“이것은 최근 아슬론의 명령으로 그와 시사지외의 모두가 찾고 있던 물건으로, 다행히 제가 먼저…….”
품속에 손을 넣은 그가 막 물건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잠깐!”
나는 그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왜……?”
“누군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적에게 맞설 준비를 위해 의지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한 상태였다.
그런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하나, 둘… 못해도 50은 되어 보이는 이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습니다만.”
쿠린 왕 또한 탐지를 펼치고 있었으나 좀처럼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맙소사!”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쿠린 왕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는 자신조차 감지하지 못한 기척을 느낀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곳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정체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레이안, 그자가 부하들과 함께 오고 있습니다!”
과연 범상치 않은 속도라고 했더니 그래도 꽤 한가락 하는 양반들이 오고 있었군.
“마침 잘됐군요. 그렇지 않아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하지만 장소가 좋지 않습니다. 지금 마을 사람들이…….”
“아아, 괜찮습니다. 누구보다 마을 사람들의 안위에 대해서는 제가 더 걱정하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내 말에도 불안한지 연신 마을 사람들을 응시하는 쿠린 왕.
‘확실히 지금까지 말했던 게 거짓은 아닌 것 같네.’
새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쿠린 왕, 과거의 키르옌 황제는 확실히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인의가 살아 있다.
중간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소속되어 있던 시사지외를 배신하면서까지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뭐, 차차 캐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가 그리 싫지 않기에 그러한 부분은 차차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쿠린 왕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쉬이익-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그건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척척척!
눈 깜짝할 사이 마을 입구에는 가지각색의 복색을 한 수십의 무리가 도착해 있었다.
“쿠린, 너의 배신을 모두 파악했다. 그러니 그만 나와라.”
선두에 선 20대의 미남자.
다른 이들보다 확연히 초탈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가 누군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거참, 오래 산 양반이 그런 껍데기를 쓰고 있을 줄이야. 하여간 늙을수록 나잇값 못하는 것들이 참 많아요.”
앞으로 나가려는 쿠린 왕을 만류한 채 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이이익-
폭풍과도 같은 바람의 칼날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베어 버릴 듯한 칼의 폭풍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건방진. 너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니 그만 사라져라.”
칼의 폭풍을 일으킨 거구의 사내는 그렇게 뒤로 물러났다.
마치 자신의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하지만.
“고작해야 바람 한 번 일으켜 놓고 허풍이 심하네.”
“뭣이?!”
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날 보며 경악에 찬 감정을 내비친다.
놀라기는.
아직 놀라기는 이른데 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 구차한 목숨 연명하느라 수고했어. 오늘 너희의 비틀린 법칙을 그만 끝내 줄게.”
아마 녀석들은 모를 것이다.
나의 권능은, 그의 비틀린 운명마저도 끊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