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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49화 (149/161)

149화 Chapter 148

강철 제국 에스카니안.

비록 오래전 멸망하긴 했으나 에스카니안 제국은 대륙 최초의 제국, 그리고 가장 강성한 세를 자랑했던 곳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제국의 상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전설의 마검사 레이안 드락슬러.

강철 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홀로 제국을 건국하다시피 한 절대의 강자였다.

특히 그가 절대의 무력을 과시하게 된 이유는 검과 마법의 융합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당시에는 검과 마법의 융합, 즉 인간의 몸으로 두 개의 다른 기운을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른 두 기운, 두 개의 기술을 동시에 발현할 수 있다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실패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육체를 단련하는 마나와 마법을 다루는 마력.

두 개 기운을 동시에 일으키면 그 충돌로 인해 육체가 무너졌던 것.

모두가 마법과 검을 융합하는 건 불가능의 영역이라 판단했다.

그런 와중에 레이안이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9써클의 마법과 9성의 경지에 이른 놀라운 검술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마치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갑작스레 대륙에 등장한 그는 이어서 놀라운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대륙의 강자라 불렸던 수많은 이와의 결투에서 승리한 것은 물론 악행을 저지른 수배자, 대륙을 침공한 마족 등을 차례로 무찌르며 그 명성을 떨쳐 나갔다.

명성이 올라가면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는 법.

그의 주위로 수많은 인재, 그리고 동료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는 이들과 함께 제국을 건국, 마침내 강철 제국이라 불리는 에스카니안의 황제에 등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인지상의 위인 황제가 되어서도 레이안의 기행은 끝나지 않았다.

암행을 통해 백성들의 사정을 살피고, 또한 산적이나 해적 등 백성들을 괴롭히는 무리를 직접 처단하는 모습을 보이며 성군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로 인해 많은 역사가는 말한다.

레이안 황제가 조금만 더 황위를 지켰다면 대륙의 역사는 뒤바뀌었을 거라고.

역사가들의 말처럼 제국의 황제에 오른 레이안은 10년간의 선정을 뒤로한 채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그 누구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

황비인 엘라도, 그의 뒤를 이어 강철 제국의 2대 황제로 오른 그리옌 황제도 말이다.

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것처럼 나타났던 레이안은 사라질 때도 감쪽같이 흔적을 지워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말이다.

*

“레이안? 내가 알고 있는 그 레이안 황제가 맞습니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물었고.

“그렇습니다. 강철 제국 에스카니안의 초대 황제 레이안 드락슬러입니다.”

“수천 년 전의 그 황제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거죠?”

“네.”

“그리고 그자가 법칙을 비튼 자들의 모임, 그러니까 시사지외의 수장이라는 거고.”

“네.”

“그리고 본인 또한 법칙을 비튼 자라는 것이고.”

“네.”

“쿠린 왕 또한 그 법칙을 비튼 자 중 하나라는 말이죠?”

“모두 맞습니다.”

하하하.

아무리 내가 막 나가는 녀석에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 봤다지만 이 많은 내용이 한꺼번에 전달되니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본인 소개 좀 부탁해도 될까요? 뭐, 대략적으로 어떤 법칙을 비틀었는지…….”

“회귀자입니다.”

“회귀자라면……?”

“죽음의 순간 삶을 반복하게 되는,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들은 기억이 있다.

법칙을 비튼 자 중에서도 최상위의 존재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환생자, 그리고 회귀자라고.

죽여도 죽지 않는, 거의 불사에 가까운 삶을 영위하는 이들.

특히 그들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 알 수 없기에 그 수련의 척도나 힘을 판단하기 힘들다.

‘어쩐지 인간치고는 강하다고 했더니, 역시 법칙을 비틀어서 그렇군.’

어디서 이런 강자가 나타났나 했더니 역시 정상인(?)은 아니었다.

확실히 법칙을 비튼 자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이라면 이 정도의 무력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왜 당신은 시사지외에 반하는 것이죠? 당신 또한 법칙을 비튼 자 중 하나일 텐데.”

그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시사지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그들끼리 뭉쳐 무언가를 이루려 할 것이 빤하다.

그렇다면 같은 법칙을 비튼 자 중 하나인 쿠린 왕 또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들의 목적이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옳지 못하다. 그것참 난해한 말이로군요. 세상에 옳은 일만 하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물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의가 아닙니다. 그들이 행하려 하는 건 옳고 그름의 정의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패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없군요. 대체 그들이 무슨 일을 획책하고 있는 겁니까?”

“…….”

내 물음에 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나를 좋게 보고 있다지만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진실을 말해도 될는지.

“굳이 망설인다면 들어 보지 않아도…….”

“아니요, 말하겠습니다.”

아주 좋은 판단이다.

만약 내게 이유를 말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를 돕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이 획책한 일은…….”

꿀꺽-

손에 든 술잔을 기울여 한 번에 넘긴 그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대륙, 아니 이 별을 외부자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곤 나의 반응을 살핀다.

“아! 그렇군요. 별을 가져다 바친다라. 흐음…….”

“놀랍지 않으십니까?”

“물론 놀랍기는 한데, 그리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라서.”

아마도 쿠린 왕이 나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내가 누구인가.

이미 외부자들, 최상위에 있다는 지배자들을 만나 그들과 한바탕 몸싸움까지 벌였던 이다.

아슬론을 비롯한 수많은 이가 외부자들에게 별을 바치려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내용이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래서, 별을 삼켜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해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겁니까?”

“비록 법칙을 비튼 자라곤 하나 우리 모두는 인간입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 그리고 태생은 다를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하나의 공통체로 태어난 이상 어찌 이 많은 이들을 제물로 삼아 본인의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쿠린 왕이 부르짖었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남아 있긴 하네.’

진심을 담은 그 말이 조금은 의외였다.

법칙을 비튼 자들은 대부분 다른 차원,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쿠린 왕처럼 오랜 시간 동안 삶을 살다 보면 인격마저도 닳고 닳아 대부분 감정이라는 것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딱 봐도 오랜 세월을 반복해 온 그는 여전히 많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류애라든지, 동정심이라든지.

여전히 남아 있는 그 감정의 편린은 생각보다 마모되지 않은 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1,000년을 살아온 나도 이리 닳았는데 말이야.’

그와 비교하면 1,000년의 세월은 우스울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감정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나와는 다른 모습에 조금은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런 모습 때문에 끌렸는지도 모르겠군.’

가만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이 양반, 쿠린 왕에게서 호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감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그에게 본능적으로 끌렸던 것이 아닐까?

“혹 레이안 황제에게 원한 관계가 있는 건 아니고요?”

예상되는 게 있어서 물었다.

분명 쿠린 왕은 레이안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부분에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증오나 원한과 같은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그리움, 그리고 후회.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 그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원한 관계라…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저는 남다른 관계로 이어져 있지요.”

과연 예상한 것처럼 회한에 잠긴 듯 눈을 빛낸다.

확실히 뭔가 얽혀도 단단히 얽혀 있는 것 같았다.

“혹시 그걸 물어도…….”

“…그는 저의 아버지입니다.”

“풉!”

그 순간 나는 먹고 있던 술을 역류시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뿜어진 술이 쿠린 왕을 적시는 일은 없었다.

놀랍게도 그는 찰나의 순간에 기막을 펼쳐 뿜어진 술을 방어했기 때문이다.

“컥, 커컥!”

사레가 들려 몇 차례 기침을 한 후 그를 바라봤다.

“아버지……? 그렇다면 당신은……?”

“그렇습니다. 과거 에스카니안의 2대 황제로 즉위했던 그리옌 드락슬러. 그것이 제 첫 회귀의 삶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을 강철 제국의 2대 황제 그리옌 드락슬러라고 밝혔다.

‘와,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인데?’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이안 황제가 법칙을 비튼 자라는 것은 웬만한 이들이라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느닷없이 등장하여 엄청난 무력을 자랑한 대다수의 인물은 법칙을 비튼 자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들, 에스카니안을 망국으로 만든 장본인, 최악의 황제라 불렸던 이도 법칙을 비튼 자라니.

“그 법칙을 비트는 힘이라는 게 유전이 되기도 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랬다면 아마 대륙의 수많은 이가 법칙을 비튼 자들이 되었겠지요.”

맞는 말이다.

오랜 삶을 사는 만큼 다양한 이들과 결혼하여 후손을 볼 테니 대륙의 수많은 이가 법칙을 비튼 자로 양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운명이라는 것이겠지요. 뛰어나지 못하여 제국을 망국으로 만든 것, 그리고 아비의 그릇된 길을 올바르게 인도하여야 한다는 사명.”

그 말에는 진득한 회한이 남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리옌 황제는 강철 제국이라 불렸던 에스카니안을 망국으로 만든 주범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너무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올랐고, 그를 대신하여 황비, 그리고 그 일가가 수렴청정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잘못이 있다면 어린 황제에게 아무런 칼자루도 쥐여 주지 않은 레이안에게 있었다.

그가 만약 제대로 된 황권을 정립하고 나갔더라면 아무리 어린 나이였어도 그리옌은 좀 더 안정적인 정치를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때는 그의 말에 속아 시사지외에 몸담기도 했지만 그들은 가식으로 뒤덮인 자들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수많은 이를 제물로 삼으려 하는 극악무도한 자들. 그 사실을 알고 더는 그와 뜻을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 그럼 하나만 물어봅시다. 대체 그들이 이 별을 외부자들에게 넘기려는 이유가 뭡니까?”

나는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아무리 감정이 마모된 이들이라고 해도 무언가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쿠린 왕은 그러한 목적을 줄곧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어떤 목적이 그들을 별의 제물까지 몰아가면서 움직이도록 만든 것일까?

“법칙을 비튼 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계십니까?”

“듣기로는 온갖 차원에서 넘어왔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대륙에서 태어난 이들도 있지만 그 대다수는 거의가 다른 차원, 혹은 별에서 넘어온 이들이죠. 그렇기에 그들의 바람은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흠. 그게 설마……?”

“네, 맞습니다. 본래 자신이 속해 있던 차원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들이 별을 제물로 삼아 외부자들에게 바라는 건 각자가 속해 있었던 차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귀환.

오랜 세월을 낯선 대륙에서 지낸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귀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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