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Chapter 147
“저, 정말입니다. 산적이, 산적이 모두 토벌되었습니다!”
마을 출신의 사냥꾼 하나가 목청이 터져라 외치며 다가온다.
그제야 쿠린 왕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본다.
“하하하하! 그렇게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곤란한데 말이야. 으하하하하하!”
말과는 다르게 마을 사람들의 경외를 대놓고 즐긴다.
‘어째 이 녀석도 정상은 아닌 것 같네.’
아무리 봐도 쿠린 왕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 정상인 녀석이 오히려 이상한 법이지.’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이런 척박한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동류.
녀석에게서는 나와 같은 미친놈의 향기가 난다.
“그럼 정말 폐하시란 말씀이십니까?”
촌장은 손에 쥔 지팡이를 부들부들 떨어 대며 쿠린 왕을 응시했다.
“응? 분명 짐이 말하지 않았느냐?”
“그걸 잘도 믿겠습니다.”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닌 말로 지나가는 사람이 나 왕이요, 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당연히 의심하고 봐야죠.”
내 말에 쿠린 왕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렇습니까? 감히 날 사칭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아니, 그게 아니라 사람이란 모름지기 의심하는 동물이라는 말이죠. 아무리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그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적어도 한 번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건 또 몰랐군요.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믿는 것입니까?”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죠.”
“실력?”
“그 자리에 서서 산적단을 단숨에 토벌했으니 어떻게 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자신을 증명할 때는 이 실력 증명이라는 게 최고죠.”
“아하! 그렇군요. 다음부터 혹 내 정체를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단칼에 모가지를!”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지만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죠.”
“하하하, 역시 아서 님과는 많은 부분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실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으하하하하!”
“케케케케케!”
어딜 봐도 악당과도 같이 기분 나쁘게 웃는 도중이었다.
“폐, 폐하. 부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촌장을 대신하여 셀렌 부인이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
“음? 무엇이 말이냐?”
“그, 그것이… 폐하를 몰라뵙고…….”
“아, 그것 말이냐? 괜찮다. 인간이란 무릇 반드시 의심하는 법이니. 게다가 짐은 위세를 뽐내기 위해 이곳에 방문한 것이 아니다.”
“허, 하면…….”
“아이니.”
쿠린 왕은 셀렌 부인의 옆에 붙들려 있는 아이니에게 다가갔다.
“생일을 축하한다.”
짤랑-
그리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건넸다.
“이건……?”
“생일이지 않느냐. 당연히 네게 주는 선물이지.”
어울리지 않는 푸근한 미소를 짓는 쿠린 왕.
“…….”
쿠린 왕을 바라보던 아이니는 이내 셀렌 부인을 응시했다.
“폐하! 감당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셀렌 부인은 황망함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왜 그러지? 짐의 선물이 보잘것없어서 그러느냐?”
의문에 찬 쿠린 왕이 손에 쥔 목걸이를 바라봤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물건이다.
천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펜던트에는 온갖 귀한 보석, 그리고 다이아몬드가 알알이 박혀 있었다.
“보잘것없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이것은 너무 귀한 것이라…….”
“귀한 것이라. 글쎄, 아이니가 짐에게 준 선물에 비하면 너무 부족한 감이 있는데 말이다.”
“네? 아이니가 폐하에게 선물을?”
셀렌 부인이 아이니를 응시했다.
도리도리-
하지만 아이니를 영문을 몰라 도리질을 칠 뿐이었다.
“하하하하, 너로 인해서 저분을 알게 됐지 않느냐.”
쿠린 왕이 가리킨 곳에 있는 건 바로 나.
“아서 님을 알게 된 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 그러니 이 선물이 과하다 생각하지 말고 받도록 해라. 그나마 짐이 할 수 있는 약소한 보상이니 말이다.”
쿠린 왕의 말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아저씨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요?”
의문이 풀리지 않은 아이니가 대담하게 물었다.
“그럼, 아주 대단한 사람이지. 일국의 왕인 짐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아주 대단한 사람.”
쿠린 왕은 씨익 웃었다.
물론 그것은 장난기가 가득한 게 아니라 진실을 담은 미소였다.
“…….”
“…….”
다시금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물론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그 시선을 흘릴 뿐이었다.
“으하하하하! 자,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렇지?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산적단을 토벌하지 않았느냐. 이런 좋은 날에 고기와 술이 빠져서야 쓰겠는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 가는 쿠린 왕.
“자, 어서 고기와 술을 준비해라!”
흥겨움에 손짓했지만.
“…….”
“…….”
마을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으응?”
그 어색한 침묵에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마을 사람들을 확인한다.
“저, 저기… 폐하…….”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그나마 용기를 낸 셀렌 부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지?”
심상치 않은 공기를 확인한 쿠린 왕이 물었다.
“그게… 저희 마을에는 고기와 술이 없습니다.”
“응? 고기와 술이 없다니……?”
“보시다시피 화전 마을이라 제대로 된 음식을 갖추기 힘든 환경이라서 말입니다.”
셀렌 부인이 손짓했고, 그제야 마을의 상태를 확인한 쿠린 왕.
화전 마을.
초지를 불태워 그곳에 농작물을 심어 삶을 연명하는 곳이다.
사냥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고기를 구하기 힘든 마을인 것.
“아차차! 짐이 실책하였구나.”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쿠린 왕이 이마를 쳤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백성들이여. 고기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차차차차창-
곧장 의지를 부여하여 대검을 쪼개 수백 자루의 검을 만든다.
“흐아압!”
힘찬 기합성과 함께.
파파파파팟-
사방으로 날아간 검.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꾸웩!”
“끼잉, 끼잉!”
날아간 검이 돌아왔다.
놀라운 사실은 그 수백 자루의 검에 들짐승들이 하나씩 꿰뚫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멧돼지, 늑대, 사슴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으하하하. 이 정도면 마을 사람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
“흠, 배부른 정도가 아니라 배가 터질 것 같습니다만?”
내가 한마디를 거들자.
“으하하하하하!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지. 자, 뭣들 하느냐. 어서 축제를 준비하거라!”
“네, 네. 알겠습니다.”
“자, 모두 움직이세.”
쿠린 왕의 명령에 따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마을의 축제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자자! 부어라, 마셔라!”
조금 전과는 달리 왁자지껄한 마을.
타닥타닥-
곳곳에 피어난 모닥불에는 쇠꼬챙이에 꿰뚫린 각종 고기가 회전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쿠린 왕이 조금 전 사냥에 성공한 각종 들짐승이었다.
물론 모든 고기가 밖에 나와 있지는 않았다.
마을 인원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적당히 양을 조절했고, 나머지는 창고에 저장되어 마을의 저장 식량이 되었다.
우걱우걱!
모두가 고기를 맛있게 뜯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을에 사냥꾼이 있다지만 대체적으로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다.
운이 좋으면 사냥에 성공하곤 했기에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날은 한 달에 많아야 2, 3번에 불과했다.
그런데 쿠린 왕의 활약 덕분에 고기가 넘쳐 나게 되니 마을 사람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된 것.
게다가 그들이 손에 쥔 것은 고기만이 아니었다.
“크으! 좋구나!”
“원래 술이란 게 이렇게 맛이 있는 거였습니까?”
“그러게. 보통 술은 아주 쓰기만 하던데 말이야.”
사람들은 얼기설기 만든 나무 잔에 들어찬 붉은 액체를 응시했다.
그것은 분명 술이었지만 보통의 술처럼 쓰거나 독하지 않았다.
뭐랄까.
마치 꿀을 먹는 것처럼 달달했고, 또한 깊은 향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들이 화전 마을에 사는 촌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맛과 향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턱이 있겠는가.
“…….”
자연스레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도 그럴 게 저들이 마시고 있는 술은 모두 내가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으하하하하! 아서 님!”
그리고 흥에 겨운 쿠린 왕이 다가왔다.
“도대체 이 술은 뭡니까? 왕궁에서도 이리 고급진 술은 먹어 보지 못했거늘.”
“당연히 구경 못했을 수밖에요. 그건 대륙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아주 귀중한 것이거든요.”
“호오? 이것이 말입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이들에게 건네준 술은 마계, 그중에서도 10위의 권좌 안에 들어가는 최상위 마신들만 마실 수 있다는 지옥의 눈물이었다.
몇백 년에 한 번 피는 ‘딜리아의 눈물’이라는 꽃을 담가 그것을 수천 년 발효시켜야만 겨우 만들 수 있는 것.
쉽게 말해서 마신들도 마시기 힘든, 아주 진귀한 술이었다.
물론 나는 그 마신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에게서 갈취한 수천 병의 지옥의 눈물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용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나는 손에 든 지옥의 눈물을 한 모금 들이켜며 물었다.
“아하하,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게 수상쩍은 기운을 풍기고 있는데 눈치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거, 이거. 아서 님에게는 거짓말을 못하겠습니다.”
당연히 못하지.
혹여 내 앞에서 거짓을 말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기세를 갈무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한다.
쿠린 왕이 대륙에서 쉽게 보기 힘든 강자인 건 맞지만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아서 님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부탁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부탁이라. 물론 그건 들어 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비록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는 인물이라곤 하지만 나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인 녀석이다.
무슨 부탁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들어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서 님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사실 이 대륙에는 법칙을 비튼 자들이라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법칙을 비튼 자들?
그 순간 나는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자의 입에서 법칙을 비튼 자들이 나올 줄이야.
“본래 그들은 몇천 년, 몇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존재지만 최근 그것이 뒤틀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법칙을 비튼 자들은 본래 아주 희소하게 나타나는 운명을 타고난 자들.
그런데 최근에는 그들이 너무 많이 들어 시사지외라는 세력을 형성할 정도.
그건 분명 법칙이 심하게 뒤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털썩!
갑작스레 무릎을 꿇는 쿠린 왕.
“법칙을 비튼 자 중 하나로써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부디 뒤틀린 운명의 법칙을 정상으로 되돌려주십시오.”
“정상으로 되돌려 달라니, 그게 무슨……?”
“다른 누구도 모르지만 저는 그 뒤틀린 운명을 정상적으로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틀린 법칙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도 말입니다.”
놀랍게도 쿠린 왕은 자신이 법칙을 비튼 자 중 하나임을 밝히고 있었다.
아니, 그건 별로 놀라운 게 아니다.
지금 그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법칙을 비튼 자들에 대한 근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초대 제국의 황제이자 법칙을 비튼 자 중 하나인 레이안, 그자의 변심으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던 비사를 꺼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