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46화 (146/161)

146화 Chapter 145

“사람이 말이야. 꼭 좋게 나오면 호구 취급을 하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는 아무런 소란도 피울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막 나가는 녀석이라고 해도 명색이 부탁을 하러 온 입장이었기에 좋게 좋게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어울리지도 않게 예의를 차렸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옛 성현들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물론 호의를 계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베푼 적은 없다.

하지만 모처럼 호의를 보인 상황에 이런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니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야!”

그리고 그 더러운 기분을 청명의 기사 녀석에게 그대로 표출했다.

“으으으.”

하지만 녀석은 내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기세. 숨 막히는 기세로 인하여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어휴. 고작 기세 좀 방출했다고 그 잘난 주둥이도 나불댈 수 없는 거야? 이래서 입만 산 것들이란.”

조금 전까지의 자신감은 어디 가고, 눈앞에 있는 건 그저 공포에 잠식된 하찮은 존재뿐이었다.

스르르-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기세를 풀었다.

나의 의지가 지배한 영역이 해소되자.

“허억!”

“흐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녀석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이, 이 무슨…….”

덜덜덜 몸을 떨고 있는 후작이 나를 바라본다.

“쯧. 처음에는 패왕이네 어쩌네 하면서 아부하기 바쁘더니. 홀랑 저 머저리의 말에 넘어가?”

“…….”

내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뚫린 입이라고 어찌 함부로 지껄일 수 있겠는가.

후작씩이나 되는 녀석이 고작해야 기사 녀석의 말에 넘어가서는 일을 망쳤는데 말이다.

“물론 뱀처럼 간사한 혓바닥을 놀린 녀석이 가장 문제긴 하겠지.”

비록 머저리의 말에 넘어갔으나 후작은 참고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역시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네. 알량한 능력만 믿고 나대는 녀석이 영웅은 무슨.”

용안인가 뭣인가, 그 능력을 너무 믿었던 것 같은데.

애송아. 세상은 말이다. 그렇게 네가 아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일단 패고 시작하고 싶지만, 그래서는 아이니가 실망할 게 뻔하니.”

주제도 모르고 나댄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으나 아이니를 실망시킬 순 없기에 손을 쓰진 않았다.

생각해 봐라.

우상이라고 생각한 청명의 기사가 처참하게 당한 모습을 드러내면 그 기분이 어떻겠는지.

“감히, 감히!”

하지만 녀석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감히 사악한 술법을 사용하다니!”

저것 봐라.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사악한 술법이네 지껄이고 있지 않은가.

“쯧. 아무래도 넌 안 되겠다.”

되도록 멀쩡한 상태로 데려가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건방진!”

스릉-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지 검을 뽑아드는 녀석.

“데몰린, 그것은…….”

“후작님, 말리지 마십시오. 지금 저자가 사악한 술법으로 우리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저런 사악한 힘을 감춰 둔 자를 벌하지 않는다면 제가 어찌 청명이라 불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새끼, 진짜 물에 빠져도 입만 둥둥 떠다닐 녀석이네.

‘어쩌면 저 녀석이 유명해진 건 실력이 아니라 저 나불대는 주둥이 덕분일 수도 있겠네.’

그 정도로 녀석의 입은 뱀의 그것처럼 간사했고,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청명의 기사 데몰린. 이 이름을 기억하라. 나는 그대의 사악한 힘에 넘어가지 않으니.”

검을 수직으로 세운 녀석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이고, 그러세요?”

오냐.

오늘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한번 맞아 봐라.

그렇게 마음을 먹고는 곧장 손을 쓰려고 할 때였다.

“이 무슨 소란인가!”

장내에 울려 퍼지는 쩌렁한 음성.

연무장을 향해 걸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폐, 폐하!”

“폐하를 뵙습니다!”

후작과 데몰린, 두 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기사 따위면 몰라도 이곳에서 후작을 이리 쉽게 무릎 꿇릴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단 한 사람.

‘이 녀석이 그란델의 왕 쿠린이로군.’

일단의 무리를 대동한 채 걸어오고 있는 이를 응시했다.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른 중년인.

왕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광택으로 번쩍이는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그는 등에 거대한 대검을 메고 있었다.

일반적인 왕의 복색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떻게 보자면 장군이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외형.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쿠린은 그란델 왕국의 건국왕이자 왕국 제일의 무력을 자랑하는 검사였기 때문이다.

“예는 되었다.”

쿠린이 가볍게 손짓했고.

“흡!”

“허!”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이 떠밀린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호오?’

그 광경에 나도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형의 기를 이용하여 두 사람을 일으켰다.

마나를 다루는 그 정교한 컨트롤은 지금껏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이들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다시 묻겠다. 분명 성에 손님이 왔다고 들었거늘, 어째서 이리 소란을 피우고 있단 말이냐.”

기세를 발현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그 말에 실린 무게는 무척 무거웠다.

“그것이…….”

후작은 난감한 시선으로 데몰린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양새였다.

“폐하!”

그리고 데몰린이 앞으로 나서서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자는 사악한 술법을 발현하여 후작과 저를 옭아매…….”

“사악한 술법? 지금 사악한 술법이라고 말한 것이냐?”

중간에 말을 끊은 쿠린이 무섭게 노려본다.

“그렇습니다. 분명 사악한 힘을…….”

“닥쳐라!”

하지만 다음 순간 쿠린의 호통이 이어졌다.

“사악한 술법이라니. 그것이 의지의 힘임을, 기세라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아니, 그것이 어찌…….”

“참으로 그릇된 자로다. 어찌 그 지고한 영역을 한낱 사악한 힘으로 치부할 수 있단 말이냐. 네가 요즘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해서 단단한 착각에 빠진 것 같구나.”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더는 듣기 싫으니 그 입을 다물라.”

“…….”

쿠린의 엄포에 데몰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장내의 소란을 제압한 쿠린. 그의 시선은 내게로 향했다.

스윽-

그리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폐하!”

“어찌!”

후작을 비롯 장내에 있던 모든 귀족이 대경했다.

쿠린은 일국의 왕이다.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되는 인물.

그런 그의 고개가 타국의 낯선 이에게 숙여진 것이다.

“참으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랫사람의 잘못은 윗사람의 것. 이렇게 사과를 드리니 부디 용서를 바랍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 그리고 경악에도 쿠린은 사과를 멈추지 않았다.

‘이야. 처음으로 보는 제대로 된 인간일세.’

그리고 그것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본 대다수의 웃대가리, 그러니까 높으신 분들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안하무인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들은 모두 대가리에 똥만 찬 머저리들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여기 그란델 왕국의 왕은 뭔가 좀 다르다.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 고개는 가볍지 않고 그 누구보다 무거운 무게가 느껴졌다.

“흠.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고 하던데. 여기는 어찌된 게 윗물은 맑은 데 아랫물이 흐릴 수 있지?”

신비한 현상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윗물이 제대로 정화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에이. 흥이 식었네. 뭐,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니 어쩔 수 없지. 지금까지의 무례는 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말에 고개를 든 쿠린.

정광으로 번뜩이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내 전신을 훑었다.

‘이것 봐라?’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게 아니다.

녀석은 나의 내면을 관찰했다.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내면에 감춰진 그 힘을 감지한 것.

“패왕이라. 처음 들었을 때는 소문이 과한 줄 알았더니, 오히려 소문이 무척 축소된 것 같군요.”

“소문이 항상 과장되리란 법은 없으니 말입니다.”

쿠린의 말에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대강 사정은 전해 들었습니다. 저 모자란 녀석을 데려가기 위해 방문하셨다고?”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태를 보아하니 데려가 봐야 좋은 꼴은 보기 힘들 것 같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 모자란 녀석이 누군가의 우상이라니. 소문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가 봅니다.”

“누구는 소문이 축소됐는데, 누구는 소문이 과장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인간을 만나니 대화가 술술 이루어진다.

쯧. 이렇게 정상인들이 적어서야 원.

“들어보니 지인분께서 산적단을 토벌하기 위해 저 녀석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표면적인 이유는 그게 맞긴 하지만, 아무래도 청명의 기사라는 만들어진 영웅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만들어진 영웅이라. 그렇군요. 허황된 소문이 만들어 낸 위업이니 당연히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할지. 이 모자란 녀석을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일단 그렇긴 한데. 흐음…….”

나도 고민이다.

일단 아이니의 소원이니 이 머저리를 데려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녀석을 우상으로 보여 줘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조나단의 소원이다.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기껏 생일에 맞춰 왔건만 그 소원이 이따위 녀석을 보는 것이라면 재고해야 하는 게 옳은 것 아닐까?

“곤란하신 모양이로군요.”

“음…….”

“하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떤……?”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에?”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의문이었다.

이 양반이 지금 내게 뭐라고 말하는 거지?

“그란델의 건국왕이자 왕국을 대표하는 검사. 이 쿠린이라면 저 모자란 녀석을 대신하여 충분히 지인분의 우상이 되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씨익 미소 짓는 쿠린 왕.

“아니, 그게 그렇기는 한데…….”

고작해야 이제 명성을 쌓고 있는 기사 따위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쿠린 왕.

두 사람 중 누가 더 대단한 사람인지는 명확하다.

문제는 그것을 몰라서 내가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양반, 도대체 무슨 심산이지?’

지금껏 많은 사람을 겪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쿠린 왕과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도무지 그 속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하하. 이거 자존심이 상하는군요. 제가 저 모자란 녀석과 고민해야 하는 위치라니. 하하하하하.”

아무리 봐도 이 녀석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쿠린 왕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