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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43화 (143/161)
  • 143화 Chapter 142

    “그러니까 이 아이가 제 호위를 담당하게 될 거란 말입니까?”

    일국의 왕이기에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펠리드.

    하지만 지금 왕좌에 앉은 펠리드는 놀란, 경악한, 그리고 황당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실은 채 말하고 있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은 채 물었다.

    “아니, 이게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황당하다는 듯 다시금 앞에 있는 이를 바라본다.

    녀석의 앞에 있는 건 소녀. 끽해야 13살 정도 되어 보이는 가냘픈 소녀였다.

    ‘하긴, 녀석에게는 심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야.’

    비록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3성의 경지에 도달한 녀석이었지만 그래 봐야 하찮은 수준에 불과하다.

    나와 같이 심안을 얻은 게 아니기에 소녀, 아니 림주에게 내재되어 있는 시간을 짐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이 어린 소녀가 왕의 호위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인지?”

    내 말이라면 개도 고양이라고 할 녀석.

    하지만 소녀를 호위로 쓴다는 말에는 반항 아닌 반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 호위는 타일로가…….”

    “아! 내가 말 안 했나? 녀석은 한동안 못 돌아와.”

    “네?”

    “못 돌아온다고. 내가 수련을 보냈거든.”

    “아니, 분명히 전에는 금방 데려오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응, 그랬지.”

    “그런데 어째서?”

    “녀석이 안 돌아오겠다고 하더라고.”

    “네?”

    “달리 해석할 건 없어. 녀석이 자기 입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니까.”

    “혹……?”

    역시 영특한 녀석이라 그런지 내 말의 뜻을 곧장 이해한 것 같다.

    “그 설마가 맞아. 마계에서 좀 더 수련하고 오겠대.”

    “허어!”

    무척 놀란 듯한 음성을 내뱉는다.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른 곳도 아니고 마계에서, 그것도 시간의 축이 뒤틀려 버린 그곳에서 수련을 하겠다는 게 일반인의 발상은 아니지.

    “녀석들에게 상당한 각오가 있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놈들이 빨리 복귀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흠, 그렇군요. 그 부분은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소녀를 호위로 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그렇습니다. 아무리 봐도 가냘픈 소녀를 호위로 어찌 쓰겠습니까. 게다가 제게는 아직 이 그라시아스가…….”

    펠리드가 어깨 위의 미꾸라지 그라시아스를 응시했을 때였다.

    덜덜덜-

    미꾸라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그라시아스?”

    「페, 펠리드여.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런 말이라뇨?”

    「나의 무력을 자랑하지 마라. 내가 지닌 그녀 앞에서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니.」

    “네?”

    놀란 펠리드가 다시금 림주를 응시했다.

    “약속된 존재의 동생분이시자 일국의 왕이여. 그대가 본녀를 얕잡아 보는 것 같으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라.”

    휴,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얼굴은 소녀인데 말투는 무슨 할머니도 이런 할머니가 따로 없다.

    “비록 본녀가 약속된 분에 비해서는 많이, 아니 한참이나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미약한 그대를 호위하는 일은 자신이 있으니.”

    “…….”

    의문이 섞인 녀석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어딜 봐도 설명을 바라는 눈빛.

    뭐, 적당히 놀려 먹었으니 이제 사실을 밝혀도 될 것 같다.

    “은왕림 알지?”

    “과거 왕의 칭호를 받은 이들이 모인 최강의 단체 아닙니까?”

    그래도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금방 은왕림이란 신비한 단체에 대하여 말한다.

    “이 할망… 아니 사람이 바로 그곳의 림주야.”

    “…네? 리, 림주라면……?”

    “그래, 은왕림에서 제일 강한 존재라는 뜻이지.”

    “허억!”

    놀란 펠리드는 헛바람을 들이켠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긴.

    13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그 강력한 단체의 수장이라고 하면 저렇게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더는 의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아니 대륙에서 나를 제외하면 웬만한 존재는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으니까.”

    “그,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비록 믿기지는 않겠지만 내 말에 토를 달진 않는다.

    적어도 녀석의 안위에 대해서 내가 헛소리를 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식견이 워낙 일천하여 높으신 분을 몰라뵙습니다.”

    자리에서 펠리드가 상체를 숙여 사과를 해 보였다.

    “괘의치 마시게. 심안을 지니지 않은 이상 본녀의 내력을 짐작하기는 어려운 법이니.”

    적절한 사과와 이를 받아 주는 것으로서 일련의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자기소개는 끝난 것 같으니 나는 이만 빠질게.”

    펠리드에게 든든한 호위를 붙여 뒀으니 이제 녀석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을 것 같다.

    “형님, 또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낌새를 눈치챈 펠리드가 물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젠 내가 할 일을 해야지.”

    “그 할 일이라는 게……?”

    “말했잖아. 내게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아!”

    다른 이들은 몰라도 펠리드는 확실히 알고 있다.

    내가 이 대륙으로 돌아온 이유.

    아직도 내게는 완수해야 할 원정대원들의 바람이 꽤 남아 있었다.

    *

    ‘저기 보이는군.’

    걸음을 멈춘 채 정면을 응시했다.

    거목과 수풀 사이로 보이는 건 작은 마을. 가구라고 해 봐야 겨우 20을 넘기지 않는, 숲속에 위치한 아주 소박한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인근 숲으로 공간을 뛰어넘었기에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조금 걸어갈 필요성이 있었다.

    빠직-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밟은 모양인지 꽤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 누구냐!”

    그와 함께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던 이, 젊은 갈색 머리의 사내가 조잡한 창을 들고서는 위협적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다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당신은……?”

    공포심이 깃든 눈동자.

    하지만 이내 그 눈동자에 찾아온 건 의문이었다.

    “…누구신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의 등장에 경계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조나단 형님의 동료였던 사람입니다.”

    “조, 조나단 아저씨?”

    그 순간 갈색 머리 사내의 눈동자가 커진다.

    ‘확실히 잘 찾아온 것 같네.’

    여느 원정대원이 그렇듯 매번 마을에 대한 설명을 그림처럼 해 줬던 조나단. 그렇기에 이 낯선 땅의 마을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진짜 조나단 아저씨의 동료가 맞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녀석의 반응이었다.

    지나친 의심, 그리고 경계가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보통 마을에 들르는 이방인들에게, 그리고 마을 사람의 동료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토록 경각심을 가지는 게 일반적인 일인가?

    ‘뭔가 있군.’

    아무래도 마을에 뭔가 변고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이것을.”

    짤랑-

    나는 아공간에서 꺼내어 목에 걸어 두었던 회중시계를 꺼냈다.

    “조나단 형님이 아끼던 회중시계입니다. 평소 마을에 자랑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라면 확인이 될는지요?”

    “아!”

    그 순간 감탄사를 내뱉는 갈색 머리의 청년.

    “조나단 아저씨가 항상 차고 다녔던 회중시계네요.”

    그제야 조금의 의심을 지운 녀석이 창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요즘 마을 사정이 좋지 않아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사정이 좋지 않다?”

    그 말이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 조나단은 자신이 속해 있던 마을이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누누이 말했었다.

    비록 먹을 것이나 자원은 풍부하지 않으나 마을의 모든 사람이 서로 협력하고 돕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마을.

    그런데 지금 녀석은 마을의 사정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혹시 그 사정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미약하나마 힘이 되어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을 전체에 빚을 진 건 아니지만 엄연히 조나단의 마을의 아닌가.

    만약 변고가 생겼다면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휴. 그게, 얼마 전부터 그레쉬라는 악한이 이끄는 산적단이 나타나 노략질을 하는 통에…….”

    산적단이라는 말에 곧장 마을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지의 병력들은 무엇을 하고 말입니까?”

    아무리 숲속에 위치한 마을이라지만 명색이 영지에 소속된 곳이다.

    당연히 영지민을 보호해야 하는 영지의 병력, 기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애초에 이곳 케르센 영지는 유명무실한 곳입니다. 영지라고 해 봐야 코딱지만 한 땅이 전부이며 당연히 그곳을 지키는 병력도 소수일 수밖에 없지요. 그 작은 영지도 지키기 벅찬 병력이 이곳에 파병될 일이 있겠습니까?”

    어쩐지.

    산적들이 멀쩡한 마을을 침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럼 경계를 서고 있는 것도?”

    “네, 어떻게든 녀석들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자 자발적으로 경계를 서는 중입니다.”

    물론 그건 단순한 경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딱 봐도 창을 쥔 손이 아니거든.’

    그냥 가장 젊은 사내기에 경계를 자원했을 터.

    산적단이 나타나면 별다른 힘도 쓰지 못한 채 죽어 나자빠질 것이다.

    “그렇군요.”

    “이방인 분도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마십시오. 조만간 산적단이 또 마을을 습격할 수도 있으니.”

    “충고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조나단 형님의 가족분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조나단 아저씨라면 마을의 가장 왼쪽 집을 찾아가 보십시오. 셀렌 아주머니와 아이니가 그곳에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마을의 사정을 대충 들은 후 곧바로 조나단의 가족이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기 무섭게.

    끼익-

    문이 열리고 빼꼼 얼굴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곱슬한 붉은 머리칼을 지닌 중년의 여인.

    조나단이 평소 자랑했던 미모의 부인인 셀렌이 분명하다.

    “누, 누구신지?”

    갈색 청년의 반응과 다를 바 없다.

    혹 산적이 나타났을까 두려워하는 행동이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이 더 실용적인 법.

    슥-

    나는 조나단이 아끼던 회중시계를 꺼냈고.

    “조나단?!”

    시계를 확인한 부인이 곧장 문을 열었다.

    “이, 이게 어째서 당신의 손에?”

    “아, 저는 조나단의 사냥 동료였습니다.”

    “사냥 동료요?”

    의심의 눈초리가 뒤따른다.

    당연하지.

    조나단은 주로 마을에서 활동했던 사냥꾼.

    동료라고 해 봐야 대다수가 마을 사람일 텐데, 이렇게 외지인이 동료인 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 번씩 조나단 형님이 장기 사냥을 나간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몇 번 마주쳤던 동료입니다.”

    “아, 그럼 그이가 며칠 자리를 비웠을 때?”

    “네, 먼 지역까지 사냥 갔던 터라 그때 만나 친해졌었죠.”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괜한 의심이나 오해를 살 수 있기에 일부러 조나단의 사냥을 동료라고 속인 것이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열린 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아이.

    ‘빼닮았군.’

    그 순간 가슴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다.

    이제 6살 정도 된 딸.

    안타깝게도 셀렌 부인이 아니라 조나단을 쏙 빼닮을 딸이 곰 인형을 들고 서 있었다.

    “네가 아이니로구나.”

    “저를 아세요?”

    모를 리가 있나.

    조나단을 통해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럼, 조나단 형님이 네 이야기를 얼마나 하던지. 자, 이거 받아라.”

    나는 조나단의 회중시계를 아이니에게 건네주었다.

    “아빠가 당장을 돌아올 수 없어서 아저씨에게 이 시계를 맡겼단다. 생일 축하한다, 아이니.”

    조나단의 염원.

    그것은 자신이 아끼는 회중시계를 딸아이의 생일에 맞춰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시간에 맞춰 회중시계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특별히 부탁한 게 있어서 말이야.”

    “네? 아빠가요?”

    “그래, 이 아저씨가 이래 보여도 꽤 능력이 있거든. 그러니까 생일 소원 하나만 말해 봐라. 뭐든지 들어줄 테니.”

    자신을 대신하여 아이니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것.

    물론 그것이 무엇이든 내 능력이 닿는 한 뭐든지 들어 줄 생각이었다.

    “정말, 정말 아무 소원이라 빌어도 되나요?”

    “그럼.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말해 봐라.”

    “그럼…….”

    잠깐 망설이던 아이니.

    “저를 청명의 기사, 데몰린에게 데려가 주세요.”

    “응? 데몰린……?”

    “네, 엄마가 그랬어요. 청명의 기사라면 그레쉬 산적쯤을 가뿐히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아이니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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