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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42화 (142/161)
  • 142화 Chapter 141

    「크허허허헝!」

    태초의 육신을 얻은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에 있던 마수가, 분리되어 있었던 잠자는 마수가 사라졌음을.

    ‘하나 남았나?’

    태초의 눈, 그리고 육신을 통하여 6마리의 마수가 사라졌다.

    남은 건 하나. 과연 가장 처음 분리된 녀석이자 가장 끔찍한 마수인 녀석은 태초의 눈과 육신의 흡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영혼만 손에 넣으면…….’

    나를 옥죄고 있던 마수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상태가 꽤 좋네.”

    꽈악- 주먹을 쥐었다.

    격을 이루지 않았음에도 격을 이룬 것만 같은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단순한 악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능, 그리고 의지, 그 모든 것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막 내가 태초의 힘을 체감하고 있을 무렵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스스-

    어둠만이 지배하고 있던 공간이 흩어졌고.

    “약속된 존재시여!”

    나를 반긴 건 은왕림의 림주였다.

    태초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마련되어 있었던 공간 자체가 소멸하고 만 것이다.

    “림주.”

    “부르셨습니까!”

    내 말에 공손히 대답하는 림주.

    “혹시 나머지 영혼, 아니 태초의 보물에 대한 행방을 알고 있어?”

    아무래도 태초의 보물 중 하나를 지키고 있었던 존재이니만큼 나머지 보물에 대한 단서를 알까 싶어 물었다.

    “태초의 보물 말입니까? 하지만 그것은 약속된 존재께서 이미 얻으신 게 아닌지……?”

    역시 모르는 눈치다.

    하긴, 그것을 만든 시초자들 또한 단서를 알려 주지 않는 마당에 그것을 지키는 일개 수호자 따위가 그것을 알 턱이 없지.

    “그래, 그러면 됐고.”

    역시 나머지 태초의 영혼에 관해서는 요행을 기대하거나 혹은 단서를 찾아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못 볼 꼴 보느라 수고했고, 이제 네가 지켜야 할 것은 없으니 자유롭게 살아.”

    딱 봐도 긴 시간 동안 태초의 육신을 지켜 왔을 림주.

    이제 지켜야 할 보물이 사라졌으니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럼 난 이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막 그곳에서 몸을 빼내려고 할 때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권능을 일으키려는 나를 다급히 가로막는다.

    “왜?”

    “약속된 존재시여.”

    털썩!

    갑자기 무릎을 꿇은 림주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저는 태초의 존재를 섬기는 몸, 부디 미천한 이 몸을 거두어 주십시오.”

    “엉?”

    뭐?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위대한 시초자 분들께 은혜를 입은 저희 가문은 대대로 태초의 보물을 지켜 왔습니다.”

    그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수호자의 일은 ‘사명’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위대한 시초자께서 가문에 전한 명령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이곳 신전에 감춰 둔 태초의 보물을 지키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약속된 존재가 나타나면 그를 성심성의껏 모시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조아린 머리를 든 림주.

    그런데 이 할멈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그러지.

    뭔가 심히 불안한데.

    “…만약 수호자가 사내면 약속된 존재를 평생 주군으로 모실 것이며 계집일 경우에는…….”

    “계집일 경우에는……?”

    스멀스멀 불길한 기운이 올라온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약속된 존재와 혼인하려 위대한 씨앗을 잉태하여야만 한다고 전하였습니다.”

    “미친!”

    뭐, 뭐?

    위대한 씨앗을 잉태?

    아니, 이것들이 뭔데 멋대로 남의 혼삿길을 정한단 말인가.

    “설마 너 그 말을 따르려는 건 아니지?”

    “위대한 시초자께서는 선조부터 후대로 이어지기까지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 감히 창조주의 명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응, 아니야. 거부할 수 있어. 그리고 말했잖아. 너는 보물을 무사히 지켰고, 그걸 나에게 인도하면서 임무는 끝났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따를 생각 말고 자유를 찾아 떠나.”

    “그럴 수 없습니다.”

    “쯧, 답답하기는. 아니, 애초에 혼사라는 게 누가 명령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당장 너만 해도 마음에 없는 사람과 혼약을 맺으라는 그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따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하지만 내 말에 림주는 얼굴을 더욱더 붉힐 뿐이었다.

    어? 이거 뭔가 기류가 묘한데?

    “…않습니다.”

    “뭐라고?”

    “마음에 안 들지 않습니다.”

    “…너, 그럼 설마?”

    “네, 약속된 존재시여. 당신은 저의 이상형이십니다.”

    “어엉?”

    이 할망구가 상당히 당돌하네.

    “아니, 마음에 든다니. 사람 첫눈에 반했다는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까?”

    “말이 안 되잖아! 도대체 내 뭘 보고 반했다는 건데?”

    “강함입니다.”

    “강함?”

    “네, 대대로 저희 가문은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위해 대대로 무력을 중시해 왔습니다. 무를 숭상해 왔고, 그것을 최고라 여겼기에 이성에 대한 감정 또한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 그렇다면……?”

    “네, 외부자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무를 숭상하는 제가 어찌 약속된 분께 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게 반한 거야? 동경이나 경외가 아니고?”

    “제게 있어서 동경과 경외는 사랑과 동일시됩니다.”

    “어… 음…….”

    그렇다는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니, 아니지.

    “그래, 네가 나한테 반했다고 쳐.”

    “…….”

    할망구야, 그만 얼굴 붉히라고.

    다른 녀석이라면 네 동안에 혹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다 보인다고. 네가 살아온 세월이 나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이.

    “근데 나는 아니거든. 혼인이라는 게 혼자만 마음이 맞으면 누가 혼인을 못하겠어. 둘이 쿵짝이 맞아야 성사되는 게 아니겠어?”

    “노력하겠습니다.”

    “노력만으로 다 되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왜 있을 거며 쓸쓸히 혼자 죽는 녀석들도 없겠지. 나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혹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지?”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낸 림주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이 양반아, 그렇게 어린아이 몸을 하곤 마음에 안 든다고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라고 하지. 누굴 변태로 만들 일이 있나.”

    단순히 나이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다.

    림주는 누가 봐도 동안, 아니 기껏해 봐야 13살 정도 되어 보이는 몸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세상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꼬맹이를 부인으로 둔 변태로 낙인찍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내가 별로라는데.”

    “마음에 드는 여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어.”

    “안 돼도 노력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할 것 같지는 않다.

    “혼인은 일단 미루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다만 동행을 허락해 주십시오.”

    “…동행?”

    “그렇습니다. 비록 약속된 분께는 모자랄 수 있겠으나 소녀를 데리고 다닌다면 분명 쓰임새가 있을 겁니다.”

    “흐음…….”

    확실히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녀석들을 마계에 두고 왔으니 다른 호위 병력도 필요하고 말이야.’

    최근 펠리드의 호위 병력인 타일로, 갈린, 그리고 킬리아를 마계에 두고 왔다.

    물론 아직 그라시아스가 펠리드의 곁을 호위하고 있었지만 녀석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

    녀석들의 빈 자리를 림주로 채우게 한다면 어떨까?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합하다.

    림주의 수준은 위대한 일원에 소속된 황금 가면 녀석들도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

    “혼인에 관해서만 더 따져 묻지 않는다면야 거두어 주는 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리 말하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렇다면 거두어 주십시오. 혼인에 관한 것은… 차차 노력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아니 약속된 분께 어울릴 수 있는 여인이 되도록 정진해 보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

    하지만 굳게 닫힌 림주의 입술, 그리고 눈동자에는 확고한 결의가 깃들어 있다.

    ‘이건 내가 뭐라고 말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네.’

    이러한 눈빛을 한 경우에는 어떠한 설득, 그리고 협박도 소용없다.

    방법이 있다면 하나.

    ‘모르는 척이 장땡이지.’

    어차피 미리 혼인이란 건 둘의 마음이 맞아야만 가능하다고 했으니 더는 고집 피우지 않겠지.

    이만한 호위 무사(?)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뭐, 그건 알겠고. 일단 이동하자.”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림주의 손을 잡은 순간 마력을 발현하여 공간을 뛰어넘었다.

    *

    「우우웅!」

    마치 진동음과 같은 떨림은 전하는 건 거대한 괴생물체.

    3m에 달하는 신장과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는 그건 용암으로 이루어진 골렘이었다.

    화르륵-

    당연한 말이겠지만 몸체가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엄청난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열기를 발산하는 용암 골렘.

    들끓는 지옥 마그마가 지배하고 있는 71계층, 마그마 지옥에서도 최상위 마수에 속하는 이 괴물은 지금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만 뒈지라고!”

    그 원인은 갑작스레 71계층을 찾아온 이방인 때문이었다.

    파앗!

    「우우우우웅!」

    황금빛 겸기가 용암 골렘의 몸을 훑고 지나갔고.

    쿠웅!

    그 거대한 몸체는 끊는 마그마에 처박히고 말았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물리 공격에 타격을 받지 않는 골렘이 고작해야 검기에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그 새끼, 그거 더럽게 오래 버티네.”

    최상위의 마수를 쓰러뜨렸으나 그리 큰 환호는 없었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용암 골렘을 지나치는 세 사람.

    그들은 자의에 의해 마계에 남은 타일로와 갈린, 그리고 킬리아 일행이었다.

    “치료는?”

    전투가 끝난 후 킬리아가 물었고.

    “필요 없어.”

    “뭐, 이딴 골렘 하나 가지고.”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용암 골렘이 마그마 지옥의 최상위 마수라곤 하나 벌써 7년간 71계층을 방랑한 이들에게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용암 골렘을 해치운 그들은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찰박- 엄청난 열기를 자랑하는 마그마를 웅덩이처럼 밟고 지나가면서도 아무런 열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7년이라는 시간은 일행을 부쩍 성장시키게 하기에 충분한 것.

    웬만한 열기는 그들의 육신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일행.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계단…….”

    “마침내…….”

    “도착했네요.”

    하늘로 이어진 무한한 계단.

    마침내 70계층으로 갈 수 있는 승천의 계단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것은.

    촤아아악-

    마그마가 갈라지며 거대한 불의 옥좌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옥좌가 있으면 당연히 그 주인이 있어야 하는 법.

    「나는 위대한 71의 권좌를 차지한 마신 단탈리온. 너희의 자격을 시험하고자 한다!」

    72계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승천의 계단을 지키는 마신의 등장.

    갑작스레 마주친 강력한 존재에게 당황할 법도 하지만.

    “응, 자기소개 잘 들었고.”

    “응, 죽어.”

    “빨리 끝내요.”

    마치 지나가는 똥개를 본 듯 달려드는 일행.

    비록 처음으로 마주하는 마신이었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마신이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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