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Chapter 140
스스슥-
신전 안으로 발을 들이기 무섭게 주변의 광경이 무섭도록 변하기 시작했다.
「왕자님…….」
「억울합니다… 어떻게 우리만…….」
「같이 가시지요…….」
찾아온 건 심마.
과거 마계에서의 여정에서 죽은 원정대원들이 원통함을 호소한다.
“쯧.”
그 광경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나름의 시험인 건가?’
아마도 신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시험을 마련한 것 같은데, 하필이면 가장 싫은 기억을 건드린다.
아!
가만 생각해 보니 이것이 시험이라면 사람의 가장 싫을 부분을 건드리는 게 맞긴 하겠구나.
상체가 반쯤 잘린 엘런.
온몸이 화상으로 녹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구스타.
내장을 쏟아 내고 있는 게릭.
가장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한 원정대원들이 비틀대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꼴값잖은 시험은 그만 사라져.”
아무런 감상이 없다.
그렇기에 파리를 쫓듯 손을 휘휘 저었고.
스르르-
그것을 신호로 하여 원정대원들의 환영이, 그 심마가 사라져 버렸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건 아니다.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존재였다면 이 강력한 심마를 이겨 내는 일은 요원할 테니까.
‘아니, 태초의 눈이 없었다면 조금 힘들었을지도.’
사실 이리 간단히 심마를 물리칠 수 있었던 건 태초의 눈 덕분이었다.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모든 심마를 파하는 능력이 있었을 줄이야.’
그건 나도 몰랐던 효과.
알고 보니 태초의 눈은 모든 심마나 환영, 정신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곳은……?”
마침내 드러난 광경.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어둠. 마치 태초의 어둠과도 같은, 칠흑의 공간이었다.
「네 녀석이 약속된 존재인가?」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마침내 나 이외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빛?’
그것은 어떠한 형체도 없는, 빛으로 이루어진 덩어리였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너는 시초자 중 하나겠군.”
물론 시초자라고만 알지 나머지 녀석들이 정확히 뭐 하는 녀석들인지는 모른다.
「시초자? 감히 너를 창조한 위대한 존재에게 그따위 언행을 일삼는단 말이냐!」
호통이 들려온다.
‘음?’
그냥 호통이라고 한다면 자기들이 창조주라는 생각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호통에서 느껴진 건 단순히 노한 감정이 아니라 ‘적의’가 깃들어 있었다.
‘이것 봐라?’
일전에 만났던 시초자와는 전혀 다른 반응에 녀석, 빛의 덩어리를 유심히 응시했다.
「비록 ‘그’가 인정했다곤 하나 아직 나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으니. 네가 아무리 약속의 존재라고 해도 창조주를 향한 존경을 보이지 못한다면 나의 보물을 넘겨줄 수 없다.」
번뜩!
그 순간 나의 이마에 있는 태초의 눈이 반응하여 개안했다.
“너… 타락했구나?”
태초의 눈이 내게 알려 주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시초자, 그 존재의 파편이 타락했음을.
분명 후예를 위하여 존재해야 할 파편의 의지는 적의, 탐욕,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타락? 감히 타락이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네 녀석에게는 절대 이 보물을 넘겨줄 수 없다. 그러니 떠나라. 네게 이 보물은 어울리지 않으니.」
명백한 축객령.
확실히 녀석은 타락한 게 틀림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태초의 보물은 원래 약속된 존재를 위한 것. 절대 개인이 탐을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시초자 중 하나인 녀석은 자기가 남긴 보물에 대한 탐욕을 부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보물을 지키던 존재의 파편이 보물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그것이 곧 타락으로 이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지이잉-
그 순간 엄청난 압박이 나를 이 공간에서 쫓아내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딜!”
하지만 태초의 보물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지.
파앗!
나의 힘이, 그 의지가 쫓아내려는 의지를 해소시켰다.
「…이 무슨?」
자신의 권능을 해소한 것에 경악하는 시초자.
“왜? 네가 만든 창조물 따위가 너무 강해서 놀랐어?”
아무리 약속된 존재라고 해도 자신의 권능을 해소시켜 버렸으니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 녀석, 약속된 존재가 아니로구나. 도둑, 침입자! 네 녀석은 나의 보물을 탐하기 위해 온 침입자가 분명하다!」
그리고 녀석은 나라는 부정하기 위해 도둑으로 몰기 시작했다.
「함부로 신성한 영역에 들어온 자, 소멸을 면치 못하리라!」
보물에 대한 욕심으로 자기 세뇌를 한 녀석.
쿠쿠쿠쿠쿠쿵!
곧이어 엄청난 힘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건?’
그건 존재의 파편이 지니고 있는 힘을 능가하는 것.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녀석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스으으-
빛의 덩어리가 특정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얼굴과 몸통, 손과 발. 형용할 수 없는 칠색의 빛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분명 인간의 육신과 닮아 있었다.
“태초의 육신이구나!”
그 순간 깨달았다.
녀석이 지키고 있는 보물이 바로 시초자들이 완성한 태초의 육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고,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란 말이다!」
탐욕으로 가득한 의지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태초의 눈은 그 의지에서 녀석에게 깃든 사념을 전달해 주었다.
「나는 왜 이것을 지켜야만 하는가.」
「이것이 무엇이기에?」
「참으로 지루하구나. 나는 어찌하여 이 일을…….」
「나는 꼭 이것을 지켜야만 하는 건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닌가?」
「참으로 놀라운 힘이구나. 이것을 어찌…….」
「이것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내 것이 아닌가.」
「누구도, 누구도 넘볼 수 없다. 이것은 나의 보물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태초의 육신을 지켜 온 녀석은 의문에 빠졌을 것이다.
왜 자신이 이것을 지켜야 하는지.
처음에는 단순한 의문이었으나 이내 그것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이 보물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지켜야만 하는가.
그리고 호기심에 태초의 육신을 건드렸을 테고, 그 힘에 취해 버렸을 것이다.
호기심은 탐욕으로, 그리고 탐욕은 녀석을 타락으로 이끌었다.
본래의 목적, 후예를 위한 안배는 그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했어.”
뜻하지 않게 태초의 보물이 있는 위치를 알아낸다 싶었다.
역시 일이 쉽게 풀리려고 하다 보면 이렇게 훼방이 한 번씩 들어와야지.
“그래, 억겁의 시간 동안 그것을 지키느라 힘들었겠지. 게다가 그것이 본체도 아니고, 그것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 불과한 이상에야.”
아마 본체가 남았다면 이리 타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남은 건 본체가 아니라 파편에 불과했을 뿐이고, 결국 그 억겁의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건방진! 내 비록 그의 파편에 불과하나 네 녀석이 함부로 입에 놀릴 만한 존재는 아니란 말이다.」
“그래, 어련하시겠어.”
더는 녀석과 대화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그 말 알아?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단어를 말이야.”
「무슨……?」
“쪽에서 나온 물감에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야. 그 말이 뭐냐, 네가 만든 창조물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너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단 말이지.”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나는 격을 이루었다.
콰아아!
감춰져 있었던 존재감이 드러난 순간, 녀석이 지배하던 장내는 나의 영역으로 변하였다.
「…뭐, 뭐……?!」
경악한 녀석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네 보물? 미안하지만 그 보물은 이제 내가 차지해야 할 것 같네.」
더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팟!
나의 육신이 공간을 넘어 녀석에게 쇄도했다.
「놈!」
힘의 차이를 느꼈으나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쉬이익!
정확히 내 위치를 파악하여 주먹을 내지른다.
그리고 그건 격을 이룬 내가 보기에도 거력이 느껴지는 일격이었다.
‘과연 태초의 육신인가.’
시초자들이 남긴 최후의 보물답게 육신에 담긴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 한번!’
그렇기에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짓쳐 들어오는 주먹을 바라보며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며 굉음이 울렸다.
「크윽!」
그 충격파에 의해 녀석이 비틀대며 물러났다.
「호오?」
물론 그 충격은 나도 물러나게 할 정도였다.
다만 녀석이 한참이나 물러난 것에 비해 나는 고작해야 한 걸음 정도를 물러섰지만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어째서 한낱 피조물 따위가…….」
「이야, 너무하네. 그래도 명색이 네가 창조한 피조물이잖아.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그렇게 놀라는 것보다 칭찬해 줘야 하는 것 아냐?」
「닥쳐라! 피조물은 피조물에 불과할 뿐, 결코 창조주를 넘어설 순…….」
「응, 아니야.」
아무리 타락했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창조주라고 대우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녀석은 대우해 줄 필요가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만 떠들고 이제 사라지도록.」
장난은 여기까지.
우리의 창조주님께 피조물이 엄청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려 했지만 아무래도 녀석에게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 줄 필요성이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을 꿰뚫는 창.」
의지를 더욱 다듬어 칼의 노래를 단축했다.
파지직!
그 순간 전격을 발하는 거대한 빛의 창 하나가 완성되었다.
브류나크, 과거 환계의 모든 환수를 무릎 꿇린 바 있는 빛의 창.
과거에는 고작(?)해야 환수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냈지만 더욱더 공고한 의지는 모든 것을 꿰뚫는 광속의 창을 만들어 냈다.
「나아가라!」
빛의 창이 나의 손을 떠난 순간.
스팟!
「커헉!」
곧장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
경악의 감정을 담은 시선이 자신의 육신으로 향한다.
그리고 녀석은 볼 수 있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육신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어,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보물도 그것을 다루는 자의 역량에 따라 보물이 되거나 쓰레기가 될 수 있는 법. 아무리 좋은 육신이라고 해도 그것을 다루는 게 고작해야 타락한 네 녀석이라면 간단히 뚫리는 게 당연한 거지.」
확실히 녀석이 차지한 육신은 굉장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보물도 그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녀석은 그 육신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고, 허무하게 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는…….」
「구차한 말 하지 말고 그냥 사라져.」
고작해야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타락한 녀석이 무슨 말이 필요하다고.
파스스스-
나의 말과 함께 녀석의 육신은, 아니 정확히는 그 육신에 깃든 타락한 파편이 소멸을 맞이하였다.
웅웅웅!
한순간에 주인을 잃어버린 육신.
하지만 태초의 육신은 그것에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격한 울림을 전하며 그 기쁨을 전하고 있었다.
「오냐, 이제 진정한 주인이 왔으니 얼른 너의 주인을 맞이해라!」
육신 또한 태초의 눈을 가진 약속된 존재를 알고 있을 터.
그렇기에 나는 정해진 주인이 왔음을, 그 의지를 육신에 전하였고.
스으으-
마침내 내게로 다가온 육신은 태초에 정해진 운명대로 나와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