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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36화 (136/161)
  • 136화 Chapter 135

    ‘이거 사실을 말해야 하나?’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세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

    사실 이렇게 오래 머무르게 할 생각은 없었다.

    기껏해야 1, 2개월 정도. 마계의 일을 처리하면 그 정도는 충분할 거라고 판단했기에 시간의 축을 비틀었건만.

    ‘시간의 축을 비틀어 버렸는데, 너희가 마계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이렇게 말하면 날 죽이려고 하겠지?’

    솔직히 내가 당했으면 그렇게 마음먹을 것 같다.

    그렇기에 막 나가는 나로서도 사실을 말하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서 님.”

    우물쭈물하고 있을 무렵 타일로가 내게 다가왔다.

    ‘오른쪽? 왼쪽?’

    과연 어디로 검을 휘두를까.

    녀석이 손에 쥔 검을 유심히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털썩.

    타일로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녀석뿐만이 아니라 갈린, 그리고 킬리아도 무릎을 꿇으며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왜 이래? 내가 뭐 잘못…….”

    “존경합니다.”

    “엉?”

    “마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아서 님이었습니다.”

    그래, 그거야 당연하겠지.

    내가 임의로 녀석들을 마계에 처넣은 것이니 말이다.

    “아니, 그게…….”

    “그 시간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고, 처음에는 왜 이런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순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서 님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 왔다는 것을.”

    “게다가 우리와는 달리 아무런 무구도, 힘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죠.”

    타일로의 말을 갈린이 거들었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녀석들의 눈동자에는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 처절한 시간을 생각하니 고작해야 몇 년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킬리아 또한 두 사람의 말에 동조했다.

    ‘이건… 예상 밖인데?’

    못해도 100년 치 먹을 욕을 다 듣겠구나, 그래도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녀석들은 내가 머물렀던 그 인고의 시간에 대한 경외감을 지니게 된 것 같다.

    “내가 이곳에 가둔 것을 원망하지는 않고?”

    그래도 찔리는 게 있어서 애써 물었지만.

    “물론 처음에는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수련이라 생각하니 차츰 적응되었습니다. 게다가 아서 님이 의도한 수련의 결과도 점차 확인할 수 있었고 말입니다.”

    “…….”

    타일로의 말에 녀석을, 그리고 갈린과 킬리아를 차례로 응시했다.

    ‘…재능이 무섭긴 무섭구나.’

    처음 본 순간부터 느끼긴 했지만 자세히 관찰한 것은 또 달랐다.

    놀랍게도 녀석들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지, 의지의 영역에 발을 들인 상태였다.

    ‘고작해야 10년 정도였을 텐데 그게 가능하다고?’

    재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이 이런 식으로 빠르게 개화할 줄이야.

    사실 내가 원했던 건 어느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혹독한 경험을 위한 것이었다.

    나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아무리 수련을 강요해 봐야 진정으로 느끼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한 것.

    물론 어느 정도의 실수로 인해 녀석들을 방치하긴 했지만 그게 이런 결과를 낼 줄이야.

    ‘게다가 이 녀석은……?’

    특히 주목한 건 킬리아였다.

    타일로나 갈린이야 워낙 재능이 출중한 녀석들이라 가만히 내버려 둬도 성장할 게 빤했다.

    하지만 그 성장에서 킬리아는 예외였는데, 놀랍게도 가장 큰 성장을 이룬 게 그녀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생명이 불과 1년도 남지 않은 거 아니었어?”

    나는 킬리아를 향해 물었다.

    신격인 나도 소모된 생명 에너지를 회복시켜 줄 순 없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1년이나 그 안에 죽을 줄 알았건만 10년이 지났는데도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이다.

    아니, 그냥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마기가 이렇게 강해?’

    생명 에너지가 다 사라지기는커녕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엄청난 양의 마기였다.

    순수한 마기의 양만 비교하자면 타일로나 갈린의 수십 배, 아니 100배는 족히 넘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

    내가 녀석에 대해 몰랐다면 마족이라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단지 이 마기가 무척 익숙하고, 친숙한 게 꼭 고향에 돌아온 기분과 같다고 할까요? 덕분에 소모했던 생명 에너지를 다시 채울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어떻게 마기로 생명 에너지를 채울 수 있지? 네가 마족도 아닐 텐데.”

    “그러게요. 마족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별로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녀석이 어떻게 마기를 축적하여 그것을 생명 에너지로 전환한 것인지는 나도 모르고 킬리아 본인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마기를 다루는 엄청난 재능!’

    심지어 마기만이 아니다.

    놀랍게도 녀석의 몸속에는 신성력과 마기가 공존하고 있었다.

    사실상 빛과 어둠으로 표현되는 이 상극의 기운이 한 몸에 공존한다?

    그건 나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애초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신성력과 마기의 공존. 어쩌면 이걸 잘만 이용하면…….’

    예상치 못한 엄청난 전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아니라 앞으로 많은 위험에 노출될 펠리드의 곁을 말이다.

    “뭐, 느끼는 바가 있었다고 하니 다행이고.”

    알아서 그렇게 생각해 주니 굳이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으리라.

    “게다가 내가 바랬던 것처럼 핏빛의 대지도 완전히 정복한 것 같고.”

    지금 녀석들과 내가 있는 곳은 승천의 계단이 있는 곳이었다.

    그것은 핏빛 대지에 있는 거의 모든 위협에 맞서 그 끝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더는 이곳에서의 수련은 의미가 없는 셈이었다.

    “그럼 돌아가자.”

    볼일이 모두 끝났으니 당연히 돌아갈 것은 권했지만.

    “아뇨, 가지 않겠습니다.”

    놀랍게도 타일로는 가지 않겠다는 말을 전했다.

    “가지 않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저와 일행은 마계에 남아 단련에 힘쓰겠습니다.”

    “엉?”

    놀란 내가 갈린과 킬리아를 차례로 응시했다.

    “아서 님도 홀로 마계를 정복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라고 못할 이유가 없죠. 물론 우리는 셋이나 되니 더욱더 쉽지 않겠습니까?”

    “다들 그렇다고 하네요.”

    갈린도 그렇고 킬리아도 웃으며 마계에 남겠다는 말을 전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아마도 녀석들의 심중에는 내가 있는 것 같다.

    1,000년 동안 마계, 그리고 온갖 차원을 떠돌며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나를 목표로 하여 단련을 시작한 것.

    물론 그 과정이 똑같다고 해서 같은 경지에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쁘진 않지.’

    과거였다면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녀석들은 의지의 영역에 발을 들였고, 그 힘이라면 능히 마신들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

    게다가 과거의 나와는 달리 하나가 아니라 세 명이나 있지 않은가.

    ‘킬리아가 있으면 죽을 걱정도 없을 테고.’

    킬리아의 몸에 가득 찬 마기를 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저 강력한 마기, 그리고 신성력을 공존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아마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성과를 낼 수도 있을 터.

    “목표는?”

    “당연히 아서 님과 같습니다. 마계를 정복하는 것. 그 일이 끝나지 않은 이상 마계를 떠날 일은 없을 겁니다.”

    “후회하지 않겠어? 그 원대한 목표가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죽을지언정 후회는 없을 겁니다.”

    “저도요. 어차피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삶, 여기서의 자극적인 생활이 새로운 활기를 주는 것 같거든요.”

    타일로를 비롯하여 모두가 마계에 남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허 참, 처음에는 죽도록 싫다고 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자진해서 남겠다고 하네.”

    “강해지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죠.”

    “하하하, 강해지는 즐거움이라. 그래,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더 큰 성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

    과거의 나는 원정대원을 위해, 그 복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당연히 포기하고픈, 죽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정도로 엄청 괴로웠다.

    하지만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녀석들은 ‘강해지는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 녀석들이야말로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삐뚤어진 나와는 달리 순수한 마음으로 단련하고 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러한 마음가짐이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그래, 너희의 바람이 그렇다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사용하고 싶으니까.”

    녀석들이 10년은 대륙에서의 1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핏빛 대지에 펼친 나의 권능, 시간의 축을 비튼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핏빛 대지를 정복하는데 무려 1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무리 빠르게 성장했다고 해도 남은 71계층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터.

    하지만 나는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슬론 녀석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때 어떻게든 녀석들이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흐읍!”

    그렇기에 그간 녀석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나의 전력, 격을 이루었다.

    “오오!”

    “맙소사!”

    “이, 이런 힘이……?”

    나의 전력을 확인한 녀석들은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 녀석들의 반응이 아니었다.

    「뒤틀려라!」

    나의 의지가, 나의 힘은 시간의 영역에 영향을 미쳤고.

    째깍, 째깍.

    녀석들은 들을 수 없는 시곗바늘 소리.

    그것은 내가 행한 시간의 축 비틀기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 분명히 뭔가 변화가…….”

    “그래, 시간의 축을 비틀었어.”

    “네? 시간의 축이라면?”

    “마계 전체와 대륙의 시간을 비틀어 버렸으니까 너희가 마계를 정복하고 돌아온다 해도 대륙의 시간은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았을 거야.”

    그것은 과거 내가 만들었던 시간의 방과도 비슷한 개념.

    물론 마계 전체를 시간의 방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펠리드를 위한 일이기에 기꺼이 힘을 아끼지 않았다.

    “모처럼 내가 힘 좀 썼으니까 너희…….”

    나는 녀석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내가 원하는 결과 이상을 내지 못하면 뒈지게 맞을 줄 알아.”

    당연히 성장하겠지만 만약 그 성장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한바탕 거하게 손을 봐줄 생각이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아서 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성장하겠습니다.”

    “그때는 한번 손을 겨뤄 봤으면 좋겠군요.”

    “그건 갈린만의 의견이니까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얼마나 오래 걸릴지, 그리고 결과를 내지도 못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에도 녀석들은 웃는다.

    물론 자신도 있겠지만 정말 이 과정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 긴말하지 않으마. 내가 걸었던 길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말을 꺼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빨리 다음 층을 정복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려서 말이죠.”

    타일로와 갈린은 벌써 승천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킬리아가 나를 향해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넸고.

    “그래.”

    나는 승천의 계단을 오르는 녀석들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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