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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35화 (135/161)

135화 Chapter 134

슈슉!

과거와는 달리 본신의 힘만으로 차원을 넘었다.

“형님!”

이동한 곳은 별궁에 마련된 나의 방 안.

그런데 펠리드 녀석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겼다.

아마도 마계에 간 게 걱정돼서 계속 방을 서성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니 미워할 수 있나.’

걱정이 가득한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망나니 황태자 소튼 왕국의 수치라 불렸던 그때.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모욕할 때도 오직 녀석만이 따뜻한 시선을, 형제의 우애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손짓 한 번으로도 왕궁을, 아니 대륙을 쓸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 되었어도 진정으로 나를 걱정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렇기에 녀석을 아낄 수밖에 없다.

“마계로 가신 일은 잘 끝나신 겁니까?”

“뭐, 나름의 수확은 있었지.”

완벽하게 잘 끝났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게다가 미지의 영역도 알게 되었고 말이야.’

절대자라는 범우주적인 존재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외부자들. 이번 마계 원정은 그 정보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게다가 태초의 육신과 영혼도 찾아야 하고.’

아직 원정대원들의 바람을 모두 들어주지도 못했으니 그것도 마저 해결해야 한다.

본래는 그들의 바람만 들어주고 다가오는 운명에 몸을 맡기려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태초의 눈을 흡수한 것만으로도 그 압박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육신과 영혼을 얻는 날에는.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더는 끝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것을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일단 주변에 산재한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만 말이다.

“펠리드.”

“네, 형님.”

“당분간 좀 바빠질 것 같으니까…….”

막 녀석에게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려 할 때였다.

“음?!”

말을 멈춰야만 했다.

왕궁 전체를 감싼 내 기감에 잡히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왕궁을 향해 다가오는 존재. 하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 기운은… 검왕?’

타일로를 가르치다 갑자기 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운 검왕 드레이브. 그가 왕궁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서 님!”

일부러 흘린 내 기운을 읽은 녀석이 곧장 별궁 안으로 들어왔다.

“헉, 허억…….”

얼마나 다급하게 왔는지 그래도 나름 실력을 자랑하는 녀석이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나는 심드렁하게 물었고.

“크, 큰일입니다.”

숨을 할딱이던 녀석이 큰일을 들먹였다.

“큰일?”

“아, 아서 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아! 도움이 절실하다는 걸 보니 우리와 관련된 건 아닌가 보네?”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은 즉, 이번에 일어난 큰일이 나와는 별반 상관없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은왕림이 일원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호오?”

순간 흥미가 동했다.

“지금까지는 크게 대치하진 않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은왕림과 위대한 일원은 서로 적대하는 관계였어도 지닌 바 힘이 비슷하기에 국지전을 제외하면 큰 충돌이 없었다.

서로 큰 피해를 받을 게 빤하니 감히 시작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을 텐데.

“아무래도 일원 쪽에서 냄새는 맡은 것 같습니다.”

“냄새? 무슨 냄새?”

“그것이…….”

잠깐 머뭇거리는 검왕.

“호오, 뭔갈 숨기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네.”

“그게 아니라…….”

“숨기고 싶은 게 있으면 숨겨. 어차피 너희를 도와줄 마음은 없으니까.”

사실 펠리드나 내 주변 지인이 관계된 일이 아닌 이상 녀석들의 일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물론 타일로의 스승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이들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부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결정한 일.

위대한 일원 녀석들이 마음에 안 들고, 그들을 방해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은왕림이 파괴되는 것을 막을 명분은 없는 것.

“죄, 죄송합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지 감추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말에 어떻나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담담한 눈으로 응시했다.

‘급한 건 녀석들이니 뭐라도 털어놓겠지.’

사실 녀석들이 지닌 비밀이라는 게 조금은 궁금하긴 했다.

위대한 일원이 위험을 무릎 쓰면서까지 은왕림을 노리는 이유.

아마도 그건 내 행보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사실을 말하려면 은왕림이 세워진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세간에 왕의 칭호를 받은 자뻑 녀석들이 모인 것 아녔어?”

녀석의 말에 의문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분명 전에 듣기로는 왕의 칭호를 받은 이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렇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은 왕의 칭호를 받은 이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호오?”

“사실 은왕림이 세워진 이유는 고대로부터 감춰진 한 장소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과연, 처음 듣는 정보였다.

단순히 왕의 칭호를 받은 이들끼리 모여서 검술이나 실력을 논하는 집단이라고만 생각했건만.

“은왕림의 초대 림주셨던 영웅왕 제라드 님은 어느 날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계시를 따라 대륙을 방랑하던 초대 림주께서는 태초부터 존재하였던 고대의 신전을 발견하셨지요.”

“헉! 영웅왕이라면……?”

놀란 펠리드가 그 칭호를 입에 담았고.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각종 이종족이 난립하던 대륙에 최초로 인간의 왕국을 건국한 바로 그분이십니다.”

영웅왕 제라드라.

한 번도 듣지 못한 인물인데, 아마도 고대의 역사서에나 기록되어 있는 인물인 모양이다.

워낙 학구열이 뛰어난 펠리드는 알고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최초의 왕국을 건국한 영웅왕이자 당시 인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계셨던 그분은 계시로 인도되어 신전에 도착하셨고, 그곳에서 대륙을 창조한, 그리고 모든 생물을 창조한 창조주인 시초자의 흔적을 발견하셨지요.”

“시초자?!”

그 순간 심드렁하던 나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초자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설마 그 신전에 태초부터 존재했던 뭐가 보관되어 있다거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떠보았고.

“헉! 어떻게 아셨습니까? 신전에는 시초자 중 한 분이 남겨 놓은 태초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옳다구나!”

혹시가 역시!

시초자의 흔적이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태초의 육신과 영혼 중 하나가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뭐가 있으려나. 육신, 영혼? 뭐, 어떤 것이든 상관은 없지.’

무엇이 보관되어 있든 상관 없다.

아니, 설혹 그것이 내가 노리는 태초의 육신이나 영혼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게 무엇이든 아슬론의 손에 들어가는 건 볼 수 없거든.’

녀석들이 은왕림을 노리는 이유는 그 태초의 보물을 얻기 위함일 터.

어떤 방식으로든 태초의 보물이 위대한 일원에 아슬론의 손에 넘어가는 꼴은 볼 수 없다.

“그래서 그 보물을 지키기 위하…….”

“설명은 됐어.”

“네?”

“설명은 됐다고. 그래서 은왕림이 어디에 있는데. 빨리 가야 일원 녀석들에게서 그 보물을 지킬 거 아냐.”

무슨 일이 있어도, 설혹 내가 가지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태초의 보물을 아슬론에게 넘겨줄 순 없다.

녀석이 작정했다면 은왕림이 끝나는 건 시간문제일 터.

그렇기에 서둘러야만 했다.

“아,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얼른 가자.”

검왕을 앞세워 은왕림으로 출발하려던 그때.

“그런데 형님.”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펠리드가 멈춰 세웠다.

“왜?”

“타일로와 갈린, 그리고 킬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그 순간.

“…우왁!”

나도 모르게 비명과 같은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까먹고 있었다!”

워낙 많은 일이 생겨 마계에 남겨 둔 녀석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뭐,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찾아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펠리드는 가볍게 말했지만.

“그게… 내가 시간의 축을 비틀어 버려서 말이야.”

“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렀을 거라는 말이지.”

내가 고작 그 몇 시간을 보내자고 녀석들을 마계로 보냈겠는가.

사실 권능을 발현해 핏빛 대지 전체에 시간의 축을 비틀어 놓은 상태였다.

나야 고작 몇 시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시간의 축이 뒤틀린 녀석들은 꽤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방랑했을 터였다.

*

“끼이익!”

괴성을 터뜨리며 힘차게 뛰어오르는 핏빛 대지의 마수 아세크.

고작해야 성인의 팔목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는 괴물 메뚜기로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는 개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스스스스-

뛰어오르는 개체가 수백만 마리에 이른다면 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검은 몸체로 인해 ‘칠흑의 해일’이라 불리는 이 마수가 활동을 시작하는 날이면 핏빛 대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물체가 목숨을 잃게 된다.

핏빛 대지의 포식자라 불리는 거대한 사자 마오르카도.

모든 것을 부숴 버릴 수 있는 일각(一角)을 자랑하는 아이쉘도.

파삭파삭-

아세크 떼가 지나갈 때면 소름 끼치는 소음과 함께 그 모든 포식자는 뼈도 남기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칠흑의 해일이 덮치기 직전의 거리를 걷고 있는 이들.

“씨발, 이번엔 또 뭔 지랄이야.”

걸쭉한 욕설이 나왔다.

그런데 그 욕설을 내뱉은 장본인은 평소 욕을 잘 쓰지 않는 타일로였다.

귀족가의 기사를 역임했던 탓에 그래도 나름 기품이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다가오는 칠흑의 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휴, 씨벌. 진짜 이 지옥 같은 곳을 빨리 벗어나든가 해야지. 진짜 무슨 사고가 끊이질 않네, 끊이질 않아.”

그리고 그 말을 받은 갈린.

마찬가지로 능글능글하긴 하긴 해도 욕설을 잘 쓰지 않는 그도 나름의 거친 표현을 뱉고 있었다.

핏빛 대지에 남겨진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수련이라고 하기에 고작해야 한 달 정도는 있을까 생각했던 그들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척박한 대지를 방랑해야만 했다.

10년이란 시간은 그들의 성격을 확 바뀌게 만들었는데, 척박한 환경에 맞게 거칠게 변했다.

“고작해야 메뚜기 떼 같은데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나마 성격을 유지한 존재라면 바로 킬리아였다.

거친 욕설을 내뱉는 둘과는 달리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멀리 다가오고 있는 칠흑의 해일, 아세크를 응시하고 있었다.

본래는 진즉 죽었어야 할 운명. 하지만 마계의 마기는 그 운명을 변화시켰다.

마기를 터득한 그녀는 바닥난 생명력이 다시금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텅 말라 버린 호수에 갑자기 물을 부은 듯한 변화.

그 덕분에 킬리아는 1년도 안 남은 생명을 연장했고, 지금은 시한부 인생이 아니라 충만한 생명을 만끽하고 있었다.

“썅, 온다!”

스릉-

아세크 떼를 발견한 타일로와 갈린은 검을 들었고, 킬리아는 양손을 맞잡으며 기도를 시작했다.

「축복을!」

그것은 분명 의지의 힘.

화악!

그 순간 두 사람의 검에 엄청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의지의 힘을 통하여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축복이 부여된 것.

“으아아압!”

“으리얍!”

축복을 받은 두 사람은 거침없이 칠흑의 해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언뜻 보기엔 그냥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 같지만.

파파파팟!

마치 춤을 추듯 어지러이 궤적을 그리는 검은 다가오는 해일을 가르고 있었다.

10년간의 방랑.

그동안 ‘천재’의 영역에 있었던 두 사람은 몰라보게 성장하여 어느새 의지를 다룰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있었던 것.

“퀙!”

“키익!”

궤적이 그려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괴성.

핏빛 대지의 재앙이라 불리는 아세크 떼는 고작해야 인간 3명의 벽에 가로막혀 그 강력한 위용을 뽐내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휘익!

아세크의 진액이 묻어난 검을 털어 내는 두 사람.

“…….”

기적이라 불릴 만한 광경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세크 떼는 전멸에 이르러 있었던 것.

하지만 그들을 찾은 건 아세크 떼만이 아니었다.

슈슉!

차원의 일그러짐과 함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있었으니.

“다들 아직 살아 있었네?”

10년 만에 핏빛 대지를 찾아온 아서.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세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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