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Chapter 131
시간의 축이 뒤틀려 1,000년 넘게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제는 놀랄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놀랍구나!’
태초의 눈을 이마에 박아 넣은 순간 나의 사고는 넓어졌다.
그건 뭐랄까, 좁은 호수에서만 살던 물고기가 거대한 강으로 나아간 듯한 느낌이 적절하려나?
사고는 무한히 확장되고, 편협했던 시선 또한 넓어졌다.
과거의 사건들,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파도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릇이 확장이라는 것이구나!’
그 순간 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간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갇혀 있었는지를.
비록 신의 격을 얻을 정도의 수행을 쌓았다곤 하나 나는 인간의 몸에 갇힌 기이한 상황이었다.
그 그릇은 굉장히 좁은 것이었고, 그래서 항상 그릇이 깨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이어붙여야만 했었다.
물은 넘치는데 그것을 담을 그릇은 종지 그릇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던 것.
물론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물을 얼려도 보고, 나눠서 담아 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겨우 그릇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초의 눈은 그러한 그릇의 크기를 넓혀 주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신격이라는 물을 모두 담을 수 없었지만 최소한 야수라는 이름의 분산된 그릇을 제거해 줄 정도는 되었다.
‘더는 녀석들의 울음이 들리지 않는군.’
내면에 잠들어 있던 7마리 야수의 울음이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나의 내면은 신격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말이었다.
화악!
그것을 깨달은 순간 장내를 장악한 빛이 사라졌다.
“과연!”
태초의 눈.
과연 인류를 창조한 시초자들이 안간힘을 쓰고 보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 정도의 효용성이라면 반드시 차지해야겠는데?”
웬만하면 뭔가에 욕심을 부리지 않을 테지만 시초자들의 유물은 다르다.
‘이것을 이용하면 완전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애초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시한부 인생처럼 굴었던 건 내 그릇이 격을 담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어야 1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시간.
게다가 고대 신과 신격을 흡수하면서 그 격은 더욱더 커져만 가서 걱정이었는데, 태초의 눈을 비롯한 육신, 그리고 영혼까지 차지할 수 있다면 이러한 걱정을 기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나머지는 어디에 있지?”
문제는 나머지 2개 유물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다급히 시초자 그 존재의 파편을 찾기 위해 기감을 확장했다.
‘없어……?’
하지만 그 어디에도 시초자의 흔적은 없었다.
사라진 척하고 나머지 2개 유물의 행방을 알려 줄 줄 알았더니.
“별수 없지. 아슬론이 단서를 찾을 때 동안 기다리는 수밖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많은 단서를 쥐고 있는 아슬론을 추적하여 가로채는 것뿐이었다.
‘아니, 잠깐.’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지도?’
아직 이번 여정이 다 끝난 게 아니다.
쿠콰콰쾅!
상념에 빠져 있을 무렵 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휘오오오!
무너진 공간 너머로 생긴 입구.
그것은 숨겨진 계층을 넘어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가는 입구였다.
팟!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무너지는 차원 속에 머물러 있다가는 돌아갈 수 없는 차원의 미로를 헤맬 수도 있는 일. 빠져나갈 수 있을 때 얼른 몸을 날려야만 했다.
슈슈슉!
주변의 경관이 빠르게 뒤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놈! 태초의 눈을 내놓아라!”
강렬한 분노를 담은 음성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찰나의 순간 정면을 바라봤고.
씨익- 나는 웃었다.
살벌한 기세를 발산하고 있는 황금 갑옷의 사내, 솔로몬이란 이름을 가진 아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 널 보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네 녀석, 태초의 눈을 가졌느냐?”
당연하게도 녀석의 관심사는 태초의 눈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것이 녀석의 계획, 완벽한 인류를 만들기 위한 재료였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기다린 걸 보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거 아냐?”
“말해라. 태초의 눈을 가졌느냐?”
“당연하지.”
툭.
나는 내 이마를 가리켰다.
“여기에 잘 잠들어 있지.”
“놈!”
그것으로 녀석의 인내가 끊어졌다.
파앗!
녀석의 신형이 흐릿해졌다고 느낀 순간.
쿠아아아!
어느새 내 정면에 도달한 녀석이 엄청난 기운이 응집된 구체를 날렸지만.
“…….”
그 구체는 어떠한 폭발도, 그렇다고 어떠한 변화도 만들지 못했다.
“무엇이?!”
당황하는 녀석.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 손이 녀석의 손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층 거대해진, 넓어진 의지를 이용하여 녀석이 응집시킨 구체 자체를 소멸시켰다.
‘아마 조금 전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
본래는 의지의 방패를 펼쳐 구체를 막을 생각이었지만 태초의 눈 덕분에 거대해진 의지는 아예 구체 자체를 소멸시켰다.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
‘이러니까 욕심이 생길 수밖에.’
새삼 태초의 눈, 그리고 그릇의 확장에 감탄하며 아슬론을 응시했다.
“아이고, 이걸 어떡해. 네가 노리던 태초의 눈 덕분에 이렇게 강해져 버렸네. 이걸 어쩐다?”
“이익!”
그 강력한 의지를 깨달은 아슬론.
슈슉!
공간을 넘어 곧장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스륵- 나는 녀석이 발현하는 의지에 개입했다.
그리고.
슈슈슉!
“헙!”
공간 이동의 술법을 펼쳤던 아슬론. 하지만 내가 녀석의 의지에 개입하면서 똑같은 공간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 역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의지의 개입은 상대의 의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
비록 내가 엄청난 격을 손에 넣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일일이 계산하여 파악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태초의 눈을 통해 개안(開眼)을 하게 되면서 그러한 분석이 가능해졌다.
그렇기에 이러한 의지의 개입도 가능한 것.
“아이고, 이걸 어떡해? 태초의 눈 덕분에 네 녀석의 움직임이 훤히 보이는걸?”
“건방 떨지 마라!”
하지만 녀석은 강력한 내 권능을 보고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라락-
녀석이 한 일이란 왼손에 든 책을 펼치는 것이었다.
‘레메게톤의 서?’
그것이 마신들을 굴복시켰던 맹세의 서인 레메게톤의 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작을 부리게 둘 순 없지.”
하지만 나는 모난 성격이라 회심의 카드를 사용하게 할 마음은 없었다.
스릉!
곧장 나만을 위해 제작된 검, 파멸을 꺼냈다.
비록 지금은 손쉽게 상대하고 있다고는 하나 녀석의 실력은 그리 가벼운 게 아니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전력을 발휘해야 제압할 수 있는 정도.
물론 지금은 또 다른 영역에 도달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일검(一劍).」
그렇기에 의지를 부여한 검을 떨쳐 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르는 의지가 부여된 그 검은 정확히 아슬론을, 세계를 반으로 갈랐다.
아니, 갈랐어야만 했지만.
카앙!
나의 의지는 녀석의 보호막을 넘지 못했다.
“호오?”
스멀스멀-
아슬론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색색의 기운.
그 근원지는 손에 쥐고 있는 레메게톤의 서였다.
‘아니, 하나가 아니다.’
또 다른 기운의 근원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녀석이 손에 낀 반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나의 의지 행사를 방해했다.
“크흐흐. 역시, 아무리 네 녀석이라고 해도 그의 힘이 깃든 반지를 깨지는 못하는군.”
“그?”
지금껏 아슬론이 다른 누군가를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라고 칭하는 것을 보니 녀석과 대등한 관계의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흐흐흐, 강적의 등장으로 나에게도 보험이 필요해서 말이야. 어리석은 자여, 명심해라. 네 녀석으로 인해 세계의 파멸이 한층 앞으로 다가왔음을.”
하지만 아슬론은 여전히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보아라, 이것이 바로 영혼의 융합이니!”
레메게톤의 서에서 뿜어져 나온 색색의 기운이 아슬론의 곁을 빙빙 돌더니.
슈아악!
이내 자석에 이끌리듯 그 육신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영혼의 융합?’
말 그대로 그건 영혼의 융합이었다.
레메게톤의 서에 있던 기운은 강렬한 영혼의 파장을 담고 있었는데, 그것이 억지로, 강제성이 부여되어 아슬론의 영혼과 융합하고 있었던 것.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그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영혼이란 강렬한 에너지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본질이 있기에 절대 융합될 수 없다.
억지로 융합하게 된다면 그 반작용으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야 하는데.
‘가능하네?’
놀랍게도 녀석은 수십 개에 달하는 그 모든 영혼을 자신에게 담고 있었다.
심지어 폭발이라는 부작용도 발생시키지 않은 채.
“우오오오오!”
수십 개 영혼을 흡수하던 녀석이 환희에 찬 탄성을 내질렀고.
뚝!
그 순간 엄청난 힘의 파장에 의해 주위의 시간이 일순간 멈췄다.
아마 보통의 평범한 대상이었다면 멈춰 버린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했을 테지만 나는 다르다.
불룩불룩.
살점이 부풀어 오르고.
드득, 드드득!
뼈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뒤틀린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크아아아악!」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모습은.
“괴물이네.”
괴물이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수십 개의 얼굴, 그리고 젤리처럼 늘어난 피부와 비대해진 덩치.
마치 인간과 동물을 한데 섞은 듯한 괴이한 생명체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모습은 괴이하게 변했어도 그 힘은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쿠우우우!
녀석이 내뿜은 입김이, 파괴의 기운을 담은 숨결이 모든 것을 소멸시키기 위해 쇄도했다.
찌릿!
내 피부를 찌릿하게 만들 정도의 위력.
확실히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불가능해 보였던 나의 소멸까지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찰나의 순간, 나는 내게 허락된 전력을 발휘하였다.
지잉-
의지를 품은 순간 완전한 격을 이룰 수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복잡한 과정 따위는 필요 없이 순식간에 격을 이루었고, 그와 함께.
「후우.」
나는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그 입김은 괴물이 된 아슬론이 발현한 것처럼 어떠한 큰 영향도 끼치지 않은 채 조용히 나아갔지만.
사아아-
아슬론이 발현한 입김과 마주한 순간 그것을 소멸시켰다.
「흩어져라.」
그것이 끝이 아니다.
다시금 의지를 품어 손을 휘저었고.
「끄으으아아악!」
괴물 아슬론이 별안간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다시금 명한다. 흩어져라.」
어떻게든 저항하는 녀석에게 다시금 의지를 발현하자.
「끄악!」
한 줄기 비명과 함께.
파파파파파팟!
녀석의 몸에서부터 조금 전 흡수한 색색의 기운이 흩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어, 어떻게……?”
본래의 모습, 황금 갑옷을 입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슬론이 경악에 찬 비명을 내뱉었다.
아마 녀석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억지로 이어붙인 영혼의 융합이 이렇게 간단히 풀릴 거라곤 말이다.
「네 녀석에게 물어볼 게 많아 특별히 살려 뒀다.」
그리고 경악하는 녀석을 빤히 응시하며.
「거절은 거절할 테니 내 질문에 성실히 답하도록.」
나는 녀석의 의지를 내 지배하에 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