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Chapter 129
촤악!
흡사 채찍과도 같은 촉수를 피하기 위해 의지를 움직이자.
슈슈슉!
그의 육신이 공간을 넘어 촉수의 근원지 근처로 이동하였다.
「ڥڪښڮٻ」
수십 개의 눈을 가진 그 생명체는 역사와 함께 삶을 살아온 솔로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언어를 내뱉고 있었다.
“그만 사라져라!”
레메게톤의 서를 든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기운을 집중한다.
스스스스-
곧 빛의 입자가 그 손에 모여들어 하나의 형상을 완성했는데, 그것은 다른 게 아니고 무척 작은 빛의 구체였다.
피잉!
솔로몬의 손을 떠난 구체는 빠른 속도로 괴물의 육신을 꿰뚫었다.
그러나 그것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피피피핏!
마치 자아가 있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닌 빛의 구체가 찰나에 불과한 순간 괴물의 육신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크어…….」
계속 촉수를 보내 저항하던 괴물은 결국 그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한 채 허물어졌다.
쿠웅!
한 차례 울려 퍼지는 굉음. 그것은 솔로몬의 승리를 알리는 신호였다.
“하하하! 시초자여, 당신이 창조한 이런 괴물들 따위는 나를 막을 수 없소이다!”
밝은 웃음을 토한 솔로몬이 걸음을 옮긴다.
그가 걸어가고 있는 곳은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계단을 올라왔다.
그렇게 층에 도달하게 되면 시초자가 창조한 괴물과 대면해야 했고, 조금 전과 같은 격렬한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강력한 상대긴 했지만 시초자도 아니고 고작해야 그가 창조한 피조물이 솔로몬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그것은 직감의 영역.
하지만 솔로몬은 이 지루한 전투가 곧 끝날 것으로 짐작했다.
저벅저벅-
그렇게 계단을 올랐고.
“드디어!”
마침내 그는 볼 수 있었다.
아무런 피조물도 지키지 않는 곳, 탑의 꼭대기에 도착한 것.
“…….”
투구에 감춰진 그의 눈동자가 좌우를 빠르게 살폈다.
그리고.
“오오오!”
그는 볼 수 있었다.
단상 위에 홀로 떠 있는 검은색 보석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태초의 눈이로구나!”
가까이 다가간 그는 홀린 것처럼 보석을 응시했다.
태초의 눈.
대륙을 찾은 외부자들, 즉 시초자라 불리는 이들이 후손에게 남긴 유물 중 하나.
과거 그 흔적을 쫓아 마계를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한 채 돌아왔어야만 했다.
하지만 시초자의 흔적을 쫓으면서 점차 그 단서를 얻을 수 있었고, 마침내 이렇게 그 실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 있으면 완벽한 인류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물론 그 유물을 탐하려는 이유는 그가 그토록 염원하는 신인류의 창조를 위한 것이었다.
카인과 아벨이라는 실험작이 존재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험작에 불과했다.
선과 악이라는 성향에 구애받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인류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두 개를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과거 인류를 만드는 데 사용했던 시초자의 유물이었다.
솔로몬은 환희에 찬 마음으로 태초의 눈에 손을 가져갔지만.
파삭-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태초의 눈은 환상처럼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무, 무슨?!”
깜짝 놀란 솔로몬이 사라지는 태초의 눈을 응시하고 있을 때.
「거짓을 행하는 자여, 그대는 태초의 눈을 가질 자격이 없으니.」
흩어지는 먼지가 들려주는 하나의 의지.
“거짓을 행하는 자? 서, 설마?”
그 순간 솔로몬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숨겨진 계층으로 가기 위해 사용한 것은 레메게톤의 서로 복사한 신물의 레플리카였다.
물론 진품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이 부여되었지만 레플리카는 레플리카일 뿐.
“이런 제기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솔로몬의 분노가 재해처럼 뿜어져 나왔고.
쿠콰콰콰쾅!
성난 그의 분노는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
‘이곳은?’
차원의 문을 넘은 내게 보인 건 높게 솟은 흑색의 탑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탑과는 다르다.
뾰족한 탑의 정상에서는 거대한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거대한 눈이라. 그 녀석들이 떠오르네.’
일전에 대면한 적 있었던 지배자.
녀석들도 자신의 아바타를 거대한 눈으로 사용하곤 했었다.
‘하긴, 아슬론 녀석이 찾고 있는 게 외부자의 유물이었지.’
그제야 자기가 찾는 것이 외부자의 유물이라는 것을 상기한 후 탑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으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빠른 속도로 가려고 하는데 자꾸 공간이 어그러지며 나아가기를 방해했다.
이질감에 주변을 둘러보자.
“오호라?”
탑과의 거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느낀 이질감은 공간의 어그러짐으로 인한 것이었다.
마치 내가 가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공간을 비틀어 놨기에 좀처럼 나아갈 수 없었던 것.
물론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금방 파악했다.
‘저 눈까리.’
탑의 정상에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눈. 그것이 나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시험과 같은 거겠지.’
솔로몬은 외부자의 유물을 찾기 위해 이 공간을 찾았다.
굳이 유물을 파괴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는 건 그것의 주인을 찾기 위한 일인 것.
당연히 그 유물의 주인을 가리기 위하여 특정한 시험을 준비해 놨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지.’
츠츠츠츠-
보통의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기에 곧바로 진실된 힘을 개방했다.
육신을 감싸는 오색찬란한 갑옷.
격의 육신을 발휘하고서 나의 의지를 발현하였다.
「나아간다.」
공간의 어그러짐을 뚫기 위하여 나만의 길을 형성했다.
지잉, 지이잉-
내가 만든 길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 때도 자꾸 눈까리가 방해를 시전했다.
하지만.
‘하찮군.’
격의 육신을 이룬 내게 그것은 너무도 하찮은 방해에 불과했다.
녀석의 권능은 내 행사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탑의 입구에 도착했고.
끼익-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문 너머는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둠이 아니라 조금 전 나를 방해하던 것과 같은 공간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슬론 녀석이 먼저 들어갔으니 얼른 그 뒤를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스으으으으-
문 안으로 발을 들이기 무섭게 공간이 마구잡이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마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공간의 변화를 이겨 내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겠지만 내 의지는 그 모든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 그 모든 변화가 끝이 났고.
「마침내 자격의 존재가 이곳을 찾아왔구나!」
변화의 끝과 함께 한 줄기 의지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전해지는 의지에 정면을 응시했다.
원형의 넓은 공간. 그곳 중앙에 있는 건 그림자와 같은 누군가의 실루엣이었다.
‘존재의 파편이로군.’
물론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이미 소멸하고 사라진 어떤 존재의 흔적. 그가 이곳을 찾은 이를 위하여 남겨 둔 파편에 불과했다.
그리고 실루엣의 외형은 인간의 외형과 흡사했다.
「나는 시초자. 그대와 같은 인류를 창조한 창조의 존재 중 하나.」
내 마음을 읽었는지 짧게 자신을 소개한다.
“시초자?”
그런데 처음 듣는 단어가 나왔다.
시초자라니. 외부자들이 아니었단 말인가?
「우리에 대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는 것 같군. 우리는 한때 외부자였으나 인류를 창조하여 새로이 시초자로 변하였다.」
음?
잠깐, 이거 내 생각을…….
「그렇다, 나의 피조물 중 하나여. 시초자는 모든 피조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노라.」
“그렇군. 우리를 창조한, 어떻게 보면 창조주와 같은 존재들이니 마음을 읽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겠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인류를 창조한 창조주였다.
그렇기에 속마음을 읽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나는 권능을 발현하여 모든 인류에게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부여한 존재. 그리고 지금은 태초의 눈을 지키고 있으니.」
“태초의 눈?”
「그렇다. 피조물이여, 그대는 이 유물을 가져가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것이 아닌가?」
“아! 일단 유물을 가지러 온 게 맞긴 한데…….”
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어딜 봐도 솔로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여기 다른 사람이 방문하지 않았… 습니까?”
아무리 내가 막 나가는 녀석이라고 해도 인류를 창조한 창조주 앞에서 반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피조물이여. 이 공간에 올 수 있는 건 단 한 명.」
“으음, 이상한데. 분명 먼저 차원의 문을 넘어서 이동했는데 말입니다.”
「그대가 말하는 존재라면 거짓된 계층으로 이동하였다.」
“거짓된 계층… 말입니까?”
「그렇다. 그는 비틀린 법칙으로 탄생한 존재. 다른 시초자는 몰라도 나는 그를 이곳에 들일 생각이 없으니.」
“아하!”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슬론 녀석은 대륙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이방인이었다.
말을 들어 보니 이 시초자는 토종 대륙인이 아닌 이상 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그는 거짓된 신물을 통하여 차원의 문을 형성하였다. 후에 그러한 거짓된 자를 거르기 위하여 따로 공간을 마련하였으니 피조물이여, 그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이 공간에 들어온 것은 나뿐이고, 아슬론은 전혀 다른 공간, 그러니까 속임수로 만든 공간에 갇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크큭, 꼴좋다.’
처음에는 조금 조급한 마음도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되니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피조물이여, 그대 또한 안심하지 말라. 태초의 눈을 가져갈 자격을 시험할 것이니.」
한층 강렬해진 의지가 장내에 울려 퍼졌고.
쩌엉!
일순간 차원 자체가 일그러지는 어마어마한 기파가 형성되었다.
물론 그 근원은 시초자가 남긴 존재의 파편. 그가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태초의 눈은 매우 강력하고 위험한 유물. 그것을 사용할 자격을 증명해 보여라.」
“자격을 증명하라고 한다는 건, 역시 실력 행사입니까?”
「그렇다. 나는 그대의 실력을, 그 의지를 시험할 것이다. 내 존재의 파편을 상대로 승리하려 그 자격을 증명해 보아라.」
츠츠츠-
그와 함께 시초자의 파편이 무기를 생성했다.
양손에 쥐어진 건 쌍검. 물론 어떠한 검인지 알아볼 수 없는, 실루엣의 형태였다.
‘나를 창조한 창조주와의 싸움이라…….’
물론 그게 존재의 파편에 불과하지만 그리 쉬운 승부는 아닐 것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전력을 여기서 보여 줘야겠다.
「마침내 하나가 되리라.」
전력을 펼친다는 것.
그것은 일전에 보여 주었던 격의 정신과 격의 육신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
나의 의지가 그것을 원하는 순간, 마침내 나는 육신과 정신이 하나가 된, 진정한 격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쿠쿠쿠쿠쿠쿠쿠!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 숨겨진 계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 현상은 내 존재가 하나가 된 것만으로 일어난 것.
「…자, 잠깐!」
그리고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 시초자의 파편이 당황한 의지를 보냈다.
「시험은 없다. 그, 그대는 능히 태초의 눈을 사용할 만한 자격을 증명하였으니.」
시초자의 파편은 너무도 간단히 시험을 통과했다는 의지를 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