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27화 (127/161)

127화 Chapter 126

“너…….”

할 말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데?’

곧장 1,315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기운도 그렇고, 무엇보다 본질적인 기운이 달라져 있었다.

다른 이들은 볼 수 없는, 내 눈에만 보이는 녀석의 본질은 무척 바뀌어 있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변한 것처럼 말이다.

「인간 따위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만 돌아가라. 승천의 계단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으니.」

“그냥 보내 준다고?”

직접 겪지 않았으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족이 누구인가.

아무리 포장하려고 해도 전투에 환장한, 피에 환장한 잔인한 족속들이었다.

그런데 존재가 변한 듯한(정확히는 기억이 조작된 듯하지만) 마족이 굴러들어 온 인간을 돌려보내려고 하다니.

당장 붙잡아서 영혼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한 고문을 해도 모자를 판국에 말이다.

「왠지 너를 그냥 보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말이지.」

호오?

강제로 기억이 조작됐음에도 용케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막연히 남아 있는 공포, 경외와 같은 그런 감정의 찌꺼기겠지.

“승천의 계단을 지키고 있는 걸 보니 네 녀석이 72마신, 안드로말리우스의 이름을 계승한 거냐?”

「마신의 계승을 알고 있나?」

“물론. 아마 너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게 나일걸?”

「으음… 신비한 인간이로군. 기이한 감정을 끌어내더니, 마신의 계승도 알고 있다라. 도대체 네 녀석의 정체가 뭐지?」

“뭐, 그건 조만간 알게 될 테니 알 거 없고. 묻는 말에 답만 해 줄래?”

「하하하, 참으로 오만하구나. 하지만 어쩐지 그 오만함이 어울려. 질문에 대한 답을 해 달라? 그렇다면 답해 주지. 그렇다, 내가 바로 새로이 72마신의 권좌에 오른 안드로말리우스다.」

“크으…….”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안드로말리우스 후보 1,315호로 완전히 순위권 밖이었던 녀석이 나와 함께하며 어느새 그 이름을 계승하다니.

마치 잘 키운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심정으로 녀석을 응시했다.

「뭐, 뭐지? 그 아련한 시선은?」

“대견해서. 짜식, 그래도 싹이 좀 보인다고 했더니 몰라보게 성공했구나.”

「대견? 그대가? 나를? 왜지?」

“그건 곧 알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 그보다 네가 72마신에 오르게 된 건 역시 솔로몬 녀석의 영향이겠지?”

갑작스러운 소환과 함께 기억은 조작됐고, 강력하게 변했다.

그 영향을 준 건 다름 아닌 솔로몬, 정확히는 아슬론일 것이다.

「인간,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군.」

반응을 보니 확실해졌다.

아슬론 녀석은 마족들을 이용하여 뭔가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

‘물론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그 계획을 방해한다고 결심했으니 이미 끝난 게임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시작은 눈앞에 있는 1,315호, 아니 이제는 어엿한 72마신이 된 안드로말리우스가 될 것이다.

「인간, 배려는 여기까지다. 더는 대화할 생각이 없으니 이제 이곳에서…….」

“쯧, 그래도 나름 될성부른 싹이라 생각해서 옆에 뒀는데 고작 그따위 정신 조작도 못 버티고 말이야.”

솔직히 조금은 실망했다.

나를 가까이 함으로 인해 그 거대한 존재가 각인이 되었을 텐데도 아슬론의 정신 지배를 이겨 내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무슨 소리긴, 맞는 소리지.”

씨익- 옅은 미소를 지으며 녀석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처맞는 소리.”

쉬익!

곧장 공간을 접어 녀석에게 접근했다.

「흡!」

찰나의 순간 지척에 접근한 나를 확인한 안드로말리우스가 주먹을 뻗었다.

파앙!

놀랍게도 녀석의 주먹은 시간을 뛰어넘은, 반드시 명중하고야 마는 필중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많이 컸네?’

하지만 필중의 주먹이 내 육신에 닿는 일은 없었다.

쉬익!

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내 의지가 더 강했기에 몸을 튼 내 어깨를 녀석의 주먹이 스치고 지나갔다.

「건방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녀석이 주먹과 발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언뜻 보기엔 엉성하기 그지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봉제 인형의 형태를 한 상태이지 않은가.

어딜 봐도 솜방망이와 같은 주먹, 그리고 발길질 같아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동작 하나하나에 매서운 의지가 깃들어 있다.

놀랍게도 녀석은 공격에 의지를 실을 수 있는 경지, 의살(意殺)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던 것.

그 의지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기 위해서는 동등한,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의지를 발휘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72마신이다. 게다가 솔로몬의 어떠한 권능을 통하여 더욱더 강력해진 존재.

‘하지만 내게는 쉬운 일이지.’

녀석에게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게는 참 쉬운 일이었다.

휙, 휙휙!

녀석의 공격은 감히 내 육신을 넘보지 못했다.

마치 일부러 빗겨 나가는 것처럼 녀석의 손과 발은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익!」

분노한 녀석이 더욱 강력한 의지를 실어 가며 공격을 가했지만.

“상당히 강해지긴 했다만, 아직 100만 년은 이르다.”

여유롭게 말을 뱉으며 마침내 주먹을 뻗었다.

뻐억!

「크흡!」

약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치 부분을 파고든 주먹으로 인해 녀석의 등 부분이 불룩 솟아올랐다.

그 광경을 보니 형태만 봉제 인형인 줄 알았더니 재질 자체도 봉제 인형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주먹이라는 건 말이야, 그렇게 막 난사한다고 위협적인 게 아냐.”

나는 진심을 담은 충고를 건넸다.

「닥쳐라!」

물론 이성을 잃은 녀석이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러니 몸소 그것을 깨닫게 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잘 봐.”

꿈틀.

의지가 움직인다.

단순히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필살의 의지를 담는다.

“아무렇게나 날리는 게 아니라 한 방에 필살의 의지를 담는 것!”

분명 주먹이 움직였으나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무음의 권. 소리마저도 초월하는, 필살의 의지를 담은 주먹은 그대로 안드로말리우스의 복부에 적중했고.

쿠아앙!

엄청난 굉음을 동반했다.

「꺼으윽…….」

신음을 내뱉은 녀석의 시선이 자신의 복부로 향한다.

「이, 이럴 수가…….」

곧이어 경악하는 녀석.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지를 실었어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날리면 안 돼. 한 방을 날리더라도 필살의 의지를 담아서. 알간?”

「…….」

진심을 담은 충고를 건넸지만 녀석은 그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이놈!」

분노.

그 근원적인 감정을 끌어 올린 녀석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너무 얌전하다 싶었다.’

마족이란 족속은 얌전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지금 안드로말리우스의 본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뿌득, 뿌드득!

폭신해 보였던 봉제 인형 재질에 가시와 같은 뾰족하게 솟아나 빼곡히 녀석을 덮었다.

그 가시는 순식간에 영역을 확대했고.

“호오?”

눈 깜짝할 사이 풀 플레이트 아머와 같은 외형을 만들었다.

지잉-

어둠을 간직한 투구 사이로 빛나는 붉은 눈동자.

그 눈빛에는 상당한 마기와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거대한 폭풍이 너를 삼킬 것이다!」

쿠르릉, 쾅쾅!

조용하던 핏빛 대지에 천둥과 벼락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사나운 폭풍이 일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츠츠, 츠츠츠츠-

그 변화의 원인은 안드로말리우스가 손에 쥔 검이었다.

“스톰브링어?”

놀랍게도 그건 과거 과거의 72마신이 사용했던 신물인 스톰브링어였다.

검은색과 녹색이 조화된 폭풍의 마검이 녀석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신물마저 복구했다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거 72마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신물은 분명 내가 빼앗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녀석이 스톰브링어를 손에 쥐고 있다는 건 과거의 신물을 복구, 재생산했다는 의미였다.

‘레플리카인가?’

처음에는 레플리카라고 의심해 봤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진품보다 더 강력한데?’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새로이 나타난 스톰브링어가 품은 폭풍의 힘은 내가 가진 진품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크하하하! 이것이 바로 솔로몬 폐하께서 하사한 새로운 신물이다. 과거의 신물보다 훨씬 예리한, 그리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

“음, 확실히 맞는 말이라 부정할 수가 없네.”

확실히 솔로몬, 아니 아슬론이 대단하긴 한 것 같다.

나도 제작할 수 없는 마계의 신물을 이리도 뚝딱 만들어 내다니.

「나의 신물, 스톰브링어의 첫 제물이 되어라!」

투기의 갑옷을 두른 녀석이 스톰브링어를 휘두르자.

쿠콰콰콰콰콰!

폭풍의 힘을 담은 사나운 바람이, 일대를 쓸어버리는 폭풍이 재해처럼 다가왔다.

“그래, 분명 네 녀석의 검이 과거의 스톰브링어보다 강력하긴 해.”

다가오는 재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이 만들어진 스톰브링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 신물이나 되는 무기는 품고 있는 힘이 다가 아니라는 걸 모르나 보네.”

확실히 지닌 바 힘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신물은 한 가지가 결여되어 있다.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스톰브링어를 꺼냈다.

웅웅웅!

마치 새로운 스톰브링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웅후한 검명을 토해 낸다.

「스톰브링어?!」

과거의 스톰브링어를 본 녀석이 깜짝 놀란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에 불과했다.

당황은 사라지고 핏빛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 찬다.

과거의 스톰브링어 따위 언제든 박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쯧. 멍청아, 힘이 다가 아니야. 새로운 신물에는 역사라는 게 없거든.”

과거의 신물, 그러니까 내가 쥐고 있는 마계의 신물은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인 역사가 있었다.

초대 마신부터 시작해서 후대, 그리고 그 후대의 모든 마신이 쌓은 역사라는 힘 말이다.

「울부짖어라.」

그리고 나는 그 역사를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지이잉-

그간 스톰브링어를 스치고 지나갔던 모든 마신의 기억이, 그 역사가 유형화되기 시작한다.

「스톰브링어!」

마침내 시동어가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콰콰콰콰콰콰콰!

과거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72계층을 지배하였던 그 모든 힘이 개방되었다.

「무, 무슨……?!」

깜짝 놀라는 안드로말리우스.

하지만 이미 모든 게 녀석의 손을 떠난 상태였다.

콰콰콰쾅!

폭풍과 폭풍이 만나 연이은 폭음을 일으켰다.

그 결과?

스스스스-

당연하게도 역사의 힘을 품은 폭풍이 승리하였다.

「이이익!」

상황이 역전되어 반대로 폭풍을 마주하게 된 녀석이 발악하듯 엄청난 기운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산과 대지 바다를 뒤엎을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의 기운이었으나.

콰콰콰콰!

폭풍의 거센 행진을 녀석은 막지 못했다.

「끄으으아아악!」

핏빛 대지에 울려 퍼지는 녀석의 비명.

“…….”

잠시 후 내가 발현한 폭풍은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건 투기의 갑옷이 모두 벗겨진, 본래의 봉제 인형으로 돌아온 안드로말리우스였다.

「아서 님…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스톰브링어의 역사와 마주한 녀석은 어느새 아슬론의 정신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쿠웅!

그리고 기력을 다한 녀석이 지면에 허물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