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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16화 (116/161)
  • 116화 Chapter 115

    ‘후계자?’

    아무래도 이 녀석이 오랜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미친 게 분명하다.

    후계자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쉽게 믿기는 힘들겠지. 허나 내 말은 진실일세. 이 세상에서 오직 그대만이 나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지.”

    “쉽게 믿기는 힘든 게 아니라 믿지 말아야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치고받던 원수에게 후계자라니? 미치셨어요?”

    비아냥거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솔직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흠, 물론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자네만 한 인재가 없는 게 사실이야.”

    “나를? 무엇 때문에?”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내게 후계자라는 말을 꺼냈는지.

    “나의 눈은 대륙 곳곳에 퍼져 있고, 많은 것을 지켜보았지. 그리고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아서, 그대의 활약이었네.”

    사실 누군가의 시선은 진즉 알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관리자, 그리고 지배자라 불리는 외부자들이었고, 또 하나가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워낙 은밀한 시선이어서 정확히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다.

    “천계에서의 활약, 그리고 금기의 공간에서의 그 활약 또한 인상적이었지.”

    “응? 그것도 봤던 모양이네.”

    “물론일세. 말하지 않았나. 내 눈은 대륙은 물론 모든 곳에 뻗쳐 있다고.”

    확실히 많은 준비를 한 게 티가 나긴 한다.

    “외부자, 특히 관리자급을 간단히 처리한 것하며 지배자의 위세에 꿇리지 않는 기개.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러한 기개를 가진 인물을 본 건 처음이었지.”

    당시의 그 활약에 대해 상당히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당시에도 느꼈지만 외부자는 상당히 강력한 존재이다.

    가장 하위에 존재인 관측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관리자 그리고 지배자까지 올라가게 되면 정말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하게 된다.

    그러한 존재를 간단히 물리쳤으니 상당한 감동을 받았겠지.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나의 원대한 목표 중 하나는 외부자들로부터 이 대륙을 지켜 내는 걸세. 그리고 유일하게 자네만이 내 뜻에 부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지.”

    “나만이 가능하다? 그럼 네 제자들이나 나머지 부하들은?”

    “후후, 솔직히 말해 줄까?”

    “솔직? 좋지. 나는 솔직한 걸 아주 좋아하거든.”

    “내 계획에 조금 전 보았던 제네리아나 나머지 제자, 그리고 그 어떤 부하도 들어가 있지 않네.”

    “어…….”

    그건 좀 충격적인 말이었다.

    상당히 아끼는 것 같더니 결국은 버릴 패다?

    “…그럼 왜 그들을 돌봐 주고 있는 거지?”

    “신인류를 위한 준비물이니까.”

    “준비물?”

    “더 깊은 것까진 말해 줄 수 없네. 만약 그대가 나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 숨은 이야기도 말해 줄 수 있겠지만.”

    “응, 안 해.”

    하지만 내 생각은 과거도,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뭐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선민의식에 쩔어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그들의 의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거지? 네가 뭔데 그들의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거지?”

    지가 뭔데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가.

    그 판단이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정의는 맞는가?

    대의라는 이름 아래 그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게 과연 정당한가?

    녀석은 대의이자 정의라고 외치고 있는 일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할 수 있는가.

    내가 보기엔 녀석이 행하는 일은 어설픈 정의감에 빠진 3살짜리 꼬맹이의 장난에 불과했다.

    “지금의 대륙은 스스로 정화할 힘을 잃었어. 누군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자멸하고 말 테지.”

    “자멸하게 되면 자멸하게 둬. 그것이 순리고 그것이 흐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지만 결국 비가 내리면 고인 물도 새롭게 정화되는 법이다.

    안에서 보면 썩어 있어도 더 큰 세계에서 보면 그건 그저 하나의 결과로 가는 과정에 불과한 일.

    굳이 모든 이의 생명을 없애가며 억지로 정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금기된 행위라 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리고 말이야.”

    들어야 할 말은 다 들었다.

    대화를 통해 알아낸 녀석은 잘난 정의감에 취한 애송이 그 이상이 아니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한 것.

    “비밀을 알아내는 방법이 네 후계자가 되는 것 말고도 또 하나가 있거든.”

    꽈악-

    그와 동시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녀석이 이 주먹에 맞으면 비밀을 술술 풀어놓더라고.”

    그 어떤 설득이나 감동적인 말보다 주먹이 효과적이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눈앞에 있는 아슬론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아쉽군. 자네라면 내 생각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건만.”

    “응, 아니야. 나는 말이야, 네 유치한 생각에 동조할 정도의 얼간이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플랜 B를 실행하는 수밖에.”

    딱!

    그리 말한 녀석이 손가락을 튕겼고.

    쿠쿠쿠쿠!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오호라!’

    아마도 날 상대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 모양인데.

    ‘이거… 모처럼 흥분되는데?’

    지금껏 내가 벌였던 전투라는 건 모두가 일방적인 전투였다.

    기껏해야 조금 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전투가 지배자와의 만남이었을 때니, 사실상 그 나머지 전투는 마음의 동요조차 이끌지 못했던 일방적인 전투였다.

    하지만 오늘, 아슬론은 만나게 되니 드디어 어느 정도 흥분할 수 있는 전투와 대면할 수 있을 것 같다.

    「크허허헝!」

    의지를 품지 않았음에도 마수가 깨어났다.

    마력의 파동, 그것이 주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녀석들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오너라, 나의 아이들아!”

    장내를 잠식한 마력의 파동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마려의 폭풍을 일으킨 이들이 차원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 봐라?’

    그 막강한 기운을 흘려 내고 있는 건 두 명의 사내였다.

    아직 20대도 되지 않았을 법한, 앳된 얼굴을 지닌 미남자 두 명.

    하나는 어둠을 품은 듯한 흑발에 이목구비가 굉장히 날카로웠고, 또 하나는 그와는 반대로 백발에 유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소개하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인 카인과 아벨일세.”

    녀석의 소개를 통해 어느 정도는 짐작 가능한 것.

    ‘이 녀석들이 신인류 실험으로 탄생한 녀석들이로군.’

    그것은 눈앞에 있는 두 명이 바로 아슬론이 만들어 냈다는 신인류의 실험작이라는 점이었다.

    분명 외형은, 아니 존재 자체는 인간이지만 기존의 인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건 뭐랄까.

    마치 선과 악을 분리하여 각각의 존재에게 주입해 놓은 것만 같달까?

    “바로 보았네. 이 아이들은 인간의 선과 악, 그 순수한 결정만을 부여하여 탄생한 나의 걸작이지.”

    ‘응?’

    그 순간 나는 의아한 시선으로 아슬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가?”

    나는 조금 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내 내심을 파악하곤 알아서 대답한 것이었다.

    “그럴 턱이 있겠나. 의지의 벽을 통해 모든 것을 차단했는데 독심술 따위가 그 벽을 뚫을 수 있을 턱이 없지.”

    “그런데?”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읽히는 게 있더군. 손짓, 표정 하나만 봐도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할까? 일종의 관심법이라고 해 두지.”

    관심법이라니.

    과연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이내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나는 아슬론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그의 양옆에 선 카인과 아벨을 차례로 응시했다.

    “재밌네.”

    괜한 말이 아니다.

    과거 지배자의 존재 파편을 본 이후로 이러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흥분과 긴장감 사이.

    그것이 의미하는 건 녀석들이 굉장한 힘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었다.

    “지배자와 싸움을 각오할 정도로 강력한 자네를 상대해야 하는 거라 단단히 준비를 해 보았네. 설마 자네를 상대로 3명이나 있다고 불평할 생각은 아니겠지?”

    “뭐, 나쁘지 않아. 오랜만에 제대로 준비 운동은 할 수 있을 것 같네.”

    “허허, 우리를 상대로 준비 운동이라. 하지만 그 광오한 자신감이 나쁘진 않아.”

    “잔말 말고 덤벼!”

    더는 녀석과 말을 섞을 이유가 없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진 터라 녀석들에게 덤비라며 손을 까닥거렸다.

    “건방진 인간!”

    “어어… 꼭 싸워야만 하는 겁니까?”

    그리고 전혀 다른 반응이 튀어나왔다.

    흑발의 카인은 당장에라도 덤벼들 것처럼 흉폭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지만 백발의 아벨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나서기를 꺼려 하는 모습.

    “아벨, 아비가 말하지 않았더냐. 우리가 행하는 일은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다. 좀 더 나은 세계, 모두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 그렇지만…….”

    “에잇, 멍청한 녀석. 닥치고 형만 따라와!”

    익숙한 일인 듯 아벨에게 소리친 카인 녀석이 먼저 나섰다.

    웅웅웅!

    기운의 발현과 함께 녀석의 손에 나타난 것은 사람의 피로 만든 듯한 붉은 검이었다.

    ‘만든 것 같은 게 아니라 피잖아?’

    자세히 보니 그 검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피였다.

    인간의 피인지 짐승의 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기이한 힘을 품고 있는 건 확실했다.

    “히히, 어디 내 검을 받아 보라고!”

    마치 이 행위를, 전투를 즐기듯 한차례 웃어 보인 녀석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스스슥!

    하지만 녀석의 검술은 형편없었다.

    ‘이게 뭐야?’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조잡한 검술은 내가 아니라 웬만한 실력을 지닌 기사라면 충분히 피해 낼 수 있을 정도다.

    ‘뭐 이런 조악한…….’

    막 그 형편없는 검술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 무렵, 나는 경악할 만한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피핏!

    “음?!”

    지금껏 단 한 번도 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던 내 육신에 혈선이 그러졌다.

    그리고.

    푸확!

    벌어진 상처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큭!”

    곧이어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마계에서도 숱한 고통, 그리고 상처를 버텨 낸 육체였다.

    그런데 지금의 고통은 그런 나에게도 ‘고통’이라는 것을 안겨 줄 만큼 굉장히 강렬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분명 녀석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몸에 새겨진 상처는 도대체 무슨 연유란 말인가?

    “허허, 그것이 카인의 검이라는 것일세. 순수한 악의 결정만을 받아들여 탄생한 그 아이의 검은 모든 법칙을 무시하는, 오로지 살육만을 위한 의지를 품고 있지.”

    “히히힛! 내 검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아슬론의 말에 카인은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순수한 악을 품은 아이. 그리고 녀석이 휘두르는 검은 기본적인 법칙을 무시하여 상대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무질서의 검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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