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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14화 (114/161)
  • 114화 Chapter 113

    ‘만족스럽군.’

    칠흑의 로브로 전신을 가린 이.

    차원을 넘어 세계수에 접근한 ‘그녀’는 바로 거대한 지하의 제국을 다스리는 다크 엘프의 여왕, 제네리아였다.

    「제네리아, 배신자 느르하를 처단하고 그들에게 나의 힘을 깨닫게 하라.」

    갑작스럽게 전해진 스승의 의지.

    이에 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차원을 넘었고, 가장 강력한 권능 중 하나인 헬 파이어를 발현하였다.

    결과?

    보는 바처럼 모든 것이 파괴된 처참한 광경이 있을 뿐이었다.

    “…….”

    거대한 세계수는 박살이 나 버려 둥치만 남았고, 그 주변은 처참히 파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쯧, 이래서 엘프 녀석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던 건데.”

    아무리 위대한 계획을 위한 일이라지만 엘프 따위를 받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과거에 얽매인 멍청이들. 자연과 조화라니, 그게 언제 적 이야기냐고.’

    물론 그 불만에는 엘프와 다크 엘프의 은원이 아주 없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엘프가 정말 필요한지는 의문이었다.

    자연과의 조화. 그 구닥다리 사상을 여전히 간직한 멍청이들이 과연 도움이 되느냐?

    그 물음에는 항상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

    위대한 다크 엘프의 여왕은 처참한 파괴의 현장을 바라봤다.

    비전 마력.

    이것이야말로 엘프와 다크 엘프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다.

    한때는 엘프와 한 뿌리였으나 다크 엘프는 자연과의 조화에서 벗어나 비전 마력에 심취했다.

    그리고 그 작용으로 인해 피부는 검어지고, 머리칼은 회색으로 물들었지만 엘프는 그것을 저주라고 말하며 비난했다.

    ‘그때 몰살시켰어야만 하는데.’

    태초의 다크 엘프 중 하나였던 제네리아는 당시 엘프들과 싸워 그들을 몰살시키자고 주장했지만 뿌리를 파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당시에는 그 의견을 따라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도태된 자들은 사라져야 하는 법.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자신이 있었다.

    “오호호호! 모처럼 상쾌하군. 오늘은 좋은 꿈을 꿀 수 있겠어.”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세계수, 그리고 느르하와 하이 엘프들을 처리한 제네리아는 요망한 웃음을 터뜨리며 비행 마법을 펼쳤다.

    쉬이익-

    찰나의 순간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 속도는 가히 광속이라 부를 만했다.

    *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주 지랄을 하세요.’

    불쾌한 그 웃음소리를 당장 멈추게 하고 싶지만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위대하신…….”

    “쉿!”

    말을 걸려는 느르하를 다급히 제지했다.

    「조용히 해. 환상 마법을 펼쳐 놓긴 했지만 그래도 발각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음성 대신 의지를 녀석의 머릿속에 주입했다.

    비록 완벽한 환상 마법을 펼쳐 녀석을 속이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속일 수는 없는 법.

    작은 기척, 그리고 소리에도 환상 마법은 깨어질 수 있다.

    ‘어떻게 발현한 건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사실 저기 다크 엘프 녀석이 보고 있는 건 내가 만든 거대한 환영이었다.

    물론 녀석이 발현한 헬 파이어 따위는 가볍게 방어했다.

    웅웅웅!

    세계수를 비롯하여 모든 지역을 방어하는 보호막은 나의 의지로 발현된 것.

    이 절대의 보호막은 헬 파이어로부터 모두를 지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환상 마법을 펼쳐 다크 엘프 녀석에게는 처참한 광경이 보이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귀찮은 일을 감수한 것은.

    ‘심문하는 복잡한 과정보다 녀석의 뒤를 따르는 게 더 좋아 보이거든.’

    아슬론과 관계된 녀석들을 심문하는 과정에 조금은 지쳤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마치 계획을 성공한 것처럼 보여 준다면?

    아마도 녀석은 그 보고를 위해 어떻게든 아슬론과 접촉할 테고,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녀석을 미행하는 것이었다.

    「당분간 환영 마법이 유지될 테니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그리 당부한 후 마기를 발현했다.

    그러자.

    스스슥-

    곧이어 내 육신이 사라졌다.

    아, 물론 완전히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투명화 마법을 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투명화가 아니라 의지를 부여하여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린, 그야말로 완벽한 은신이었다.

    그 상태를 유지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다크 엘프 녀석에게 접근했다.

    “오호호호! 모처럼 상쾌하군. 오늘은 좋은 꿈을 꿀 수 있겠어.”

    내가 만든 환영을 보며 만족을 표하던 녀석이 움직였다.

    팟!

    그리고 그 속도에 맞춰 미행을 시작했다.

    “잠깐! 이참에 그냥 엘프 녀석들을 모조리 몰살시켜 버릴까?”

    잘 가다가 멈춘 녀석이 고민을 시작했다.

    ‘억? 그러면 좀 곤란한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녀석이 엘프들을 몰살시키겠다고 나선다면 과연 그것을 방관해야만 하는가?

    ‘뭐, 나와 관련된 녀석들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지 않을까?’

    순간 든 생각은 귀찮은 게 싫으니 그냥 녀석이 하는 대로 방관하자는 것이었지만.

    ‘응? 정말 그래도 괜찮아?’

    불현듯 찾아온 의문에 스스로에 질문했다.

    ‘정말 그 많은 생명이 죽는 걸 귀찮다고 그냥 방관만 하겠다고?’

    물론 내가 대단한 위인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충분히 막을 수 있으면서 그 많은 생명이 죽는 걸 그냥 지켜보겠다고?

    ‘언제부터……?’

    과거의 나였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을 힘이 있으니 당연히 방관하지 않고, 녀석을 제지할 생각을 했겠지.

    ‘…….’

    살짝 주먹을 쥐며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변하고 있다.’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변하고 있다.

    신격을 흡수하면서 조금은 그 시간을 늦출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더 가속화되고 있다.’

    오히려 그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 변화(최종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라는 건 알겠지만 어쨌든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자.’

    하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만 그 변화를 감지했으니 앞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거나 관조할 수 있을 것이다.

    “에잉, 됐다. 괜히 나서서 또 무슨 소릴 들을라.”

    다행히 내가 나설 일은 없었다.

    쉬이익!

    녀석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나는 녀석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녀석과 나는 검게 죽어 버린 대지에 도착했다

    ‘절망의 대지로군.’

    대륙의 북서쪽에 자리한 절망의 대지.

    보이는 것이라곤 검게 죽어 버린 대지만 가득한 그곳은 과거 원인을 알 수 없는 엄청난 마력 폭발에 의해 모든 것이 죽어 버린,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린 곳이었다.

    그곳의 한 지점에 선 녀석은.

    “شښخیث.”

    이내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의 언어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그그긍-

    굉음이 울리며 지면이 갈라지며 거대한 입구를 드러냈다.

    열린 틈 사이로 이동했고, 나 또한 녀석을 따라 그곳으로 진입했다.

    ‘오!’

    곧장 드러난 광경은 사뭇 인상적인 것이었다.

    녹색의 마법 등불이 곳곳에 자리한 지하 공동에 있는 건 기묘한 모양으로 건축된 집과 거대한 성이었다.

    그런데 성의 형태가 압권이다.

    마치 꽃을 형상화한 것처럼 거대한 하나의 조각품과 같다.

    ‘엘프들을 피해 지하로 피신했다고 하던데, 듣던 거와는 조금 다르네.’

    다크 엘프와 관련된 역사서를 읽어 본 적이 있었는데, 막상 드러난 광경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하나의 예술품처럼 곳곳에 자리한 건축물과 각종 조각상은 과연 이곳이 누군가를 피해 숨어들 만한 공간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다크 엘프들.

    “여왕님!”

    “오, 여왕님이 오셨어!”

    그리고 그들은 제네리아를 발견하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다들 볼일 봐.”

    반갑게 반응하는 다크 엘프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인사를 받는다.

    ‘여왕 아니었어?’

    스스럼없는 그 태도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분명 다크 엘프들은 녀석을 보고 ‘여왕’님이라고 칭했다.

    그런데 칭호와 어울리지 않는, 저 스스럼없는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뭐랄까.

    동네 아는 누나는 본 것처럼 스스럼없고, 편해 보였다.

    그래도 명색이 왕의 칭호를 받은 자에게 저러한 태도가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그 의문은 풀렸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여왕님, 내일은 저희 가게를 방문해 주세요. 갓 만든 맛있는 빵이…….”

    잠시간 그들을 지켜본 결과 그것이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여왕이라 불리는 제네리아는 격식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냈다.

    ‘분명 각종 책에는 비전 마력을 연구하는 아주 어두운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말이야.’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생각하는 다크 엘프는 어두운 곳에서 비전 마력을 연구하는, 그리고 온갖 잔인한 실험과 인체에 관해 연구하는 잔인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펼쳐진 다크 엘프 사회는 유토피아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과 엘프가 만든 허상이었군.’

    아마도 그러한 배경에는 엘프들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다.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는 기존의 가르침을 거부하며 다른 갈래로 뻗어 나간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온갖 좋지 않은 소문으로 흠집을 낸 것.

    하지만 정작 엘프라는 것들은 세계수를 이용하여 하이 엘프 양산(물론 아슬론의 세뇌가 있긴 했지만)을 계획하고 있는 반면, 다크 엘프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놀라운 사회를 만들어 냈다.

    예상치 못한 다크 엘프의 사회에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일일이 화답하며 길을 서두르는 제네리아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끼익-

    마침내 도착한 곳은 성의 가장 깊숙한 곳, 여왕의 침소였다.

    “…….”

    그곳에 도착한 그녀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시선을 의식하며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단순히 살피는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막강한 마력을 뿜어내며 탐색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내가 발각될 일은 없었다.

    ‘나를 발견하려면 적어도 내 의지를 부술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턱이 있나.

    이곳에 외부자 중 가장 강력한 지배자나 아니면 최상위 신격이 오지 않는 이상은 무리다.

    당연히 제네리아는 내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내 화장대로 이동했다.

    “ثیخښٸش.”

    그리고 이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고.

    화악!

    그녀가 바라보는 거울에서 엄청난 빛이 일어났다.

    「명한 일은 잘 해결되었느냐.」

    그리고 나타난 건 허공에 떠다니는 눈동자였다.

    지금까지 봐 왔던 눈과는 다르게 황금빛을 빛내는 금안.

    “네, 스승님께서 명한 배신자 느르하와 세계수의 파괴를 완료했습니다.”

    제네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공손히 말했다.

    ‘스승님이라.’

    그리고 나는 곧바로 그 눈동자가 아슬론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하하하하하!」

    하지만 그 말에 아슬론의 파편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제네리아, 참으로 어리석구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너는 내 명을 이행하지 못했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분명…….”

    「이제 그만 나오는 게 어떻겠소?」

    아슬론의 파편은 제네리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내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주며 황금빛을 뿜어낼 뿐이었다.

    “호오, 생각보다 예리하네?”

    더는 숨을 이유가 없기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구면이지?”

    비록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존재의 파편으로 많이 마주친 적은 있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 어떻게……?”

    당황하는 제네리아.

    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건 녀석이 아니다.

    “이제 네 뒤를 쫓는 게 조금 귀찮거든. 그러니까 쥐새끼처럼 그만 숨어 있고, 우리 한번 만날까?”

    더는 녀석의 흔적을 쫓는 일은 사양이다.

    그렇기에 나는 곧장 내 모든 힘을, 전력을 발휘하여 거대한 눈까리의 저편에 있는 아슬론의 흔적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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