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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12화 (112/161)
  • 112화 Chapter 111

    장내를 장악한 빛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

    그런데 정작 그 빛의 고리를 정면으로 맞은 느르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상당한 의지를 소모한 만큼 최소한 육신의 반쪽은 날아갔어야 정상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의문도 잠시.

    “으아아아아!”

    갑작스레 비명을 터뜨리는 느르하.

    그와 함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우웅!

    느르하의 육신, 정확히는 눈과 코, 귀, 그리고 입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응?’

    그것은 조금 전 빛의 고리가 발현했던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처음에는 옅었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파아아앗!

    세계수의 빛은 완전히 느르하를 감쌌다.

    “이것이, 이것이 진정한 세계수의 힘이자 근원이로다!”

    그 광경을 확인한 대장로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뭐가 그렇게 감격스러운지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른다.

    ‘정화의 힘이었군.’

    다음 순간 나는 그 힘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느르하를 지배하고 있던 불쾌한 기운. 일원의 잔재가 빛에 의해 소멸하고 있었다.

    속성의 고리, 세계수의 빛이라 불리는 그것은 느르하의 내부를 잠식한 타락의 기운을 씻어 냈다.

    어쩐지 갑자기 사 대 속성을 하나로 합치라고 하더니.

    역시 대장로는 느르하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화악!

    그렇게 절정에 이른 빛이 장내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 빛은 조금 전과는 달리 시야를 가리지는 않았다.

    따스한, 뭔가 엄마의 품과 같은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내가 무슨 짓을…….”

    정화의 기운을 마주한 느르하가 중얼거리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벌였던 일에 대하여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말을 잇질 못한다.

    연기가 아닐까?

    ‘아니.’

    내부를 관조한 결과 확실히 타락의 기운을 모두 씻어 냈다.

    광기에 빠져 있던 조금 전의 녀석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느냐?”

    그런 그를 향하여 대장로가 다가갔다.

    “대장로님…….”

    “너는 타락과 광기의 환영으로 인하여 미망을 헤매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안갯속 길을 걷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괜찮다. 이분이, 예언의 존재께서 너를 끝없는 미로 속에서 건져 주셨으니.”

    “아!”

    느르하와 대장로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예언의 존재?

    “예언의 존재?”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채 곧장 의문을 제기했다.

    “허허, 그렇습니다. 과거, 제가 막 세계수의 잎사귀에서 태어났을 무렵 세계수의 가지에 예언이 새겨졌습니다. 훗날 세계수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 도탄에 빠진 엘프들을 구원하리라는 내용의 예언이 말입니다.”

    “세계수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존재라…설마…….”

    “그렇습니다. 예언의 존재시여. 당신이야말로 엘프의 미래를 구원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리 말한 대장로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부디 우매한 우리를 이끌어 찬란한 미래로 이끌어 주십시오.”

    대장로가 고개를 조아리는 그 순간.

    “부디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부디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대장로와 함께 부복하는 하이엘프들.

    아무리 봐도 예언에 관해서는 모르는 눈치 같았는데 대장로의 뜻에 금방 동조한 것이다.

    아마도 세계수의 힘을 다루는 것과 느르하의 타락을 씻어 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그런데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다.

    솔직한 처음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아슬론의 제자인 느르하와 반항하는 엘프 녀석들을 조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들을 이끌어 달라니.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엘프를 이끌어 달라?”

    “그렇습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운명. 우리 엘프는 세계수의 운명을 거스를 생각이 없습니다.”

    “흐음…….”

    하지만 나는 확답을 주지 않은 채 느르하를 응시했다.

    털썩!

    그리고 내 시선을 받은 느르하 또한 곧장 무릎을 꿇었다.

    “저 또한 대장로님과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미망에 빠진 절 구해주셨고, 세계수의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존재라면 응당 엘프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엘프의 정점인 녀석이기에 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웬걸?

    느르하는 곧장 내게 굴복했다.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어차피 이곳에 온 목적은 정보를 얻기 위한 것.

    이들이 알아서 굴복해 온다면 그 정보를 얻기가 한결 편할 것이다.

    게다가.

    ‘펠리드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생길 수 있으니.’

    한창 왕국 재건에 바쁜 펠리드에게 쓸 만한 패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뭐, 그건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고.”

    하지만 당장 확답은 주지 않았다.

    어차피 눌러앉아 엘프들을 다스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다만 그 권위를 이용하여 제대로 정보를 빼먹을 생각이다.

    “느르하.”

    그리고 그 중요한 정보원은 느르하였다.

    “네, 위대하신 분이시여.”

    “네가 타락에 빠진 이유를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해 순간 망설였으나 이내 대답했다.

    “샘의 현자 아슬론. 그와 관계된 게 확실하냐?”

    “샘의 현자?!”

    “허어! 그가 느르하 님을?”

    “그자가 왜……?”

    내 말에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샘의 현자는 엘프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자의 칭호를 받는 이 대부분이 엘프 출신이었으나 이번에는 인간 사이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엘프들 사이에서는 그를 현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아슬론은 엘프들과 깊은 지식의 교류를 나눴고, 그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한 엘프들이 그가 현자에 어울리는 존재임을 인정해 준 일화는 매우 유명했다.

    엘프들 사이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 유명한 게 바로 샘의 현자인 셈이다.

    그런데 그가, 인간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정한 존재가 느르하를 타락시킨 범인이라니.

    놀라지 않는다면, 아니 경악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위대한 분께서는 알고 계시는군요.”

    “덕분에 이곳에 찾아온 거니까.”

    “…사실 그건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타락했던 그 일련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아슬론, 그자와는 사적으로 친분이 없는 사이였습니다. 다만 이름만을 들어 왔던 자에 불과했으나, 그날 갑작스러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천둥과 벼락이 치던 폭풍우의 밤.

    샘의 현자라 불리는 아슬론이 세계수의 가장 가까운 곳에 터를 마련해 있던 느르하를 찾아왔다.

    “그는 한창 엘프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제게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을 했습니다.”

    “달콤한 제안이라. 설마 그게……?”

    “네, 세계수의 복제와 하이엘프의 대량 잉태에 관련된 자료였습니다.”

    한창 연구를 진행 중이었던 세계수의 복제, 그리고 하이엘프의 대량 잉태.

    그냥 말뿐이었다면 느르하가 아슬론을 믿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막대한 자료를 보여 준 뒤였다.

    “그 순간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그의 제안에 응했고, 엘프의 미래라는 목적을 위하여 온갖 잔혹한 일을 벌여 왔습니다.”

    ‘마치 뭐에 홀렸다라. 아마도 세뇌나 최면의 권능을 지니고 있는 것 같군.’

    예쩐부터 느꼈었는데 아슬론, 그 녀석은 누군가를 다루는 재주가 탁월했다.

    그런데 그건 일반적으로 아는 지도력, 카리스마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홀리는 힘’이었다.

    예상하기로 녀석의 권능 중 하나는 사람을 세뇌시키는 어떠한 ‘정신’ 관련 능력일 것이다.

    “샘의 현자, 그자에게 상당한 정신계 권능이 존재하는 것 같군.”

    “아마도 그럴 겁니다.”

    “허어! 느르하 님을 타락시킬 정도의 권능이라니.”

    “샘의 현자는 참으로 위험한 자가 아닙니까?!”

    아마 이렇게 직접 느르하가 말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느르하가 누구인가.

    세계수의 열매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정점에 있는 엘프였다.

    인간도 아니고 초월체와 같은 정신력을 지닌 그를 타락시킬 수 있을 정도면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게 틀림없다.

    “뭐, 녀석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관심 없고.”

    그래 봐야 내 아래가 확실하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래서 느르하, 너는 아슬론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알고 있지?”

    아슬론에 대한 정보였다.

    지금까지 한 모든 이야기는 엘프에 대한, 느르하 본인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했다.

    정작 중요한 아슬론에 관한 정보는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었다.

    “내가 전해 듣기로는 샘의 현자가 죽었다고 하던데. 너는 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오로라는 통해 얻은 정보는 샘의 현자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것을 사실로 알고 있었다.

    만약 그게 그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중요한 다섯 제자 중 하나인 느르하도 그렇게 알고 있는 거라면?

    그 말에 신빙성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샘의 현자는…….”

    잠깐 말을 끊은 느르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분명 죽었습니다.”

    “어엉?”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죽었다고? 진짜? 그가? 왜?”

    나는 질문을 쏟아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게 맞겠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분명 그는 죽음을 맞이했으나 그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쉽게 말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은데.”

    “위대하신 분이시여, 혹 법칙을 비튼 자들을 아십니까?”

    “법칙을 비튼 자……? 아!”

    그 순간 떠오르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설마 환생자?”

    “그렇습니다. 샘의 현자는 법칙을 비튼 자. 그렇기에 죽음의 운명을 비틀어 새로운 육체를 얻어 환생하였습니다.”

    그제야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로라는 결코, 잘못된 정보를 전한 게 아니었다.

    다만 법칙을 비튼 자, 아슬론이 환생자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샘의 현자는 단순한 환생자가 아닙니다.”

    “환생자만이 아니다.”

    “그는 최초로 법칙을 비튼 자임과 동시에 다른 차원에서 온 귀환자, 그리고 환생, 회귀, 모든 법칙을 비틀어 버린 존재입니다.”

    맙소사.

    그 말에는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법칙을 비튼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적(異蹟)’이라 불릴 만한 권능을 타고난 셈이다.

    그런데 귀환, 환생, 회귀 등의 모든 법칙을 다 비튼 자라면.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는 것 같은데.’

    어쩌면 아슬론 녀석이 생각한 것 이상의 무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을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그는 여러 가지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 신분?”

    “네, 위대하신 분께서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온갖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강력한 권능을 얻은 위대한 일원, 그리고 법칙을 비튼 자들로만 구성된 사시지외. 이 두 세력의 수장 모두가 바로 샘의 현자라는 것입니다.”

    느르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믿을 수 없는 말을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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