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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10화 (110/161)

110화 Chapter 109

“네, 네 녀석… 정녕 인간이 맞는 건가?”

익숙한 반응.

“응, 대륙 토종 인간 맞아.”

그리고 익숙한 대답.

어째 나를 보는 녀석마다 반응이 한결같으니 대답 또한 매번 똑같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여전히 경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대장로.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억겁의 시간 동안 영역을 보호해 왔던 결계가 깨어진 것이다.

그것도 일순간 깨어진 게 아니라 파멸의 권능을 통하여 세계수의 힘 자체가 파괴되고 말았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지금부터 엘프는 마력의 침묵이라는 강력한 결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자립해야만 한다는 것.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새는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나 자립을 해야 하는 법이지. 그간 세계수의 보호 아래에 편히 지냈으니 이제는 독립할 때도 됐잖아?”

다시금 녀석들에게 세상의 이치를 설명해 줬다.

“감히!”

그리고 그 말에 분노한 건 느르하였다.

“네 녀석이 무슨 짓을 벌인지 알고 있는 것이냐?!”

콰아아아아!

녀석의 분노는 곧 의지가 되어 사방을 휩쓸었다.

그건 뭐랄까.

마치 성난 파도와도 같은 거친 기세로, 엘프가 자랑하는 자연의 조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힘이었다.

“빙고!”

그리고 나는 그 기운 속에 숨어 있는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대장로나 다른 하이 엘프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 기운은.

‘위대한 일원.’

그 녀석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 흡사했다.

물론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는 게 있듯 내 안목을 속일 순 없었다.

“호오, 한번 덤벼 보시겠다?”

세계수의 결계를 무참히 파괴한 것을 보고도 덤빌 생각을 한다?

이건 예상 밖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상황은 아니다.

샘의 현자와 관련된 녀석들이라고 한다면 한 번쯤 손을 봐줄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방진!”

이미 싸울 결심을 마친 듯 막강한 기세를 뿜어 대기 시작하는 느르하.

그런데 이게 뭔가 좀 이상하다.

“응?”

쿠쿠쿠쿠쿵!

녀석의 기세가, 그 의지가 시간이 지날수록 놀랍도록 강해진다.

처음에는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겨질 정도였으나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는 존재가 바뀐 것처럼 더욱더 강대해졌다.

“우오오오!”

녀석 또한 그 힘을 만끽하는 듯 환희에 젖은 고함을 내질렀다.

“아하!”

그 근원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파스스스-

녀석의 뒤, 세계수의 힘을 간직한 작은 세계수가 급격하게 시들고 있었다.

마치 모기에게 피를 빨리는 것처럼 싱싱했던 이파리는 갈색으로 물들었고, 생기를 가득 머금고 있던 가지는 회색으로 메마르고 있었다.

‘개인 저장용 창고였군.’

아마 다른 엘프들에게는 작은 세계수가 일족을, 다가올 미래를 위한 거니 뭐니 온갖 사탕발림을 해 놨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쓰임새는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

과연 그 스승의 그 제자라고, 아슬론과 비슷한 성향이었다.

“이, 이게 무슨……?”

“세계수가… 작은 세계수가 어째서?”

“설마……?!”

뒤늦게야 그러한 상황을 인지한 하이 엘프.

“느르하! 이게 무슨 짓이냐!”

그리고 노한 대장로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일족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가장 위대한 자리를 내줬거늘, 네 녀석은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단 말이냐!”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알아서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

흥미로운 마음에 팔짱을 낀 채로 녀석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감히… 감히 신성한 세계수의 기운을 흡수하다니. 이 무슨 역천의 행위란 말인가!”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대장로의 말.

“진정하십시오, 대장로. 이곳은 강대한 적을 상대하기 위한 하나의 방비책…….”

“닥쳐라!”

하지만 대장로는 변명하려는 느르하의 말을 막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세계수의 힘은 손대지 않는 게 원칙이다. 과거 그 힘에 손을 댔던 이들의 말로가 어떤지 몰라서 하는 말이더냐?”

“그것은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지요.”

“뭣이?!”

“고작해야 세계수의 잎에서 태어난 무능한 자들. 주제도 모르고 과분한 힘을 탐한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렇다면 너는 다르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저는 긴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태어나지 않았던 선택받은 자. 세계수의 열매를 통하여 생명을 잉태한 자. 오직 나만이 세계수의 힘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그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녀석은 억지로 흡수한 세계수의 힘을 잘 통제하고 있었다.

‘그릇이 다르군.’

확실히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

아마 다른 엘프, 아니 이곳에 있는 하이 엘프와 비교해도 느르하의 존재 그릇은 거대했다.

마치 세계수의 힘을 담기 위해 인위적으로 늘린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그래, 그렇겠지. 태초부터 지금까지 세계수의 열매에서 잉태된 존재는 없으니. 허나 세계수의 힘은 생명이 탐할 수 없는 것. 아무리 너의 그릇이 크다고 해도 그것을 인위적으로 담으면 큰 화를 부른다는 것을 모르느냐?”

“…….”

세계수의 힘과 파멸.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과거에도 느르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엘프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세계수의 힘을 담아내기 위하여 온갖 실험과 연구를 거듭했고, 그중에는 일부 실험에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힘을 탐한 모든 엘프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

세계수의 힘에 취하여 괴물이 되거나.

그 힘을 견뎌 내지 못하여 즉사하거나.

이성을 잃고 힘만을 취하는 변종이 되거나.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수의 힘을 취한 엘프의 끝은 항상 비극이었다.

물론 지금껏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느르하라면 다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장로와 나는 잘 알고 있다.

‘세계수의 힘은 생명이 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계수의 힘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탐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세계의 법칙, 운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세계수의 힘은 그 법칙 아래에 살아가는 생명이 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신의 격을 이룬 이들이라고 해도 탐할 수 없는 금단의 힘이지.’

그리고 사실상 신의 격을 이룬 나는 잘 알고 있다.

저 힘을 탐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파국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것을.

물론 본인은 힘에 취하여 그런 것을 돌아보지 못하겠지만.

“연기는 이제 그만 됐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녀석은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대장로. 아니, 아슈리아.”

“뭐, 뭣이……?!”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다르게 마치 아랫사람을 다루는 듯한 말투.

그 말투에 대장로는 물론 하이 엘프들도 놀란 듯 느르하를 응시했다.

“세계수의 힘을 통해 불사의 축복을 받은 네가 왜 아직도 그 영역에 머물고 있는지 알겠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내 말이 어려웠나? 그렇다면 쉽게 말해 주지. 그렇게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사니까 발전이 없는 것이다.”

“고리타분이라니…….”

“언제까지 세계수를 성역으로 남겨 둘 셈이지. 이 막강한 힘이 보이지 않는가. 다른 종족은, 여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힘을 눈앞에 두고도 방치하는 게 과연 일족을 위한 길이냐는 말이다.”

“그 힘은 한낱 피조물 따위가 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 인정. 지금까지는 그랬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재능에 취하지 마라. 너의 재능이 뛰어난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세계수의 힘을 취할 정도는 아니다.”

“어떻게 단언할 수 있지? 네가 내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하찮은 네가 감히 나를 판단할 수 있냐는 말이다.”

“너, 너…….”

“하하하,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군. 날 이해하지도 못하는 벌레 따위와 이리 대화하는 것 자체가 말이야.”

가면을 벗은 느르하는 상당히 호전적인 녀석이었다.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유순한 엘프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돌연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도 다 아슬론 녀석의 개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유순한 엘프를 아주 광기로 물들여 놨군.

과연 아슬론. 녀석은 종족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는 것 같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아슈리아 님은 엘프의 역사. 그분을 욕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두 엘프의 언쟁에 하이 엘프들이 나섰다.

이거 어째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지만 일단 상황이 흥미로우니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구경은 강 건너 불구경과 싸움 구경 아니겠는가.

“흐음, 그대들은 확실히 입장을 정리한 것 같군.”

하이 엘프 모두가 느르하에게서 벗어나 아슈리아에게 섰다.

아무리 느르하가 세계수의 열매에서 태어난 최고의 인재라고 하지만 세월은 무시 못한다.

아슈리아는 그야말로 엘프의 역사.

그런 그를 부정한다는 건 엘프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너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닥쳐.”

오호라.

이제는 강하게 나가다 못해 막 나간다.

“어차피 때가 되면 너희 고리타분한 것들을 모두 정리할 생각이었다. 지금이 그때가 될 줄은 몰랐지만 시기를 앞당길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

그와 함께.

사아아아-

녀석의 주위로 검붉은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이 기운은?

“어찌 이런 사악한?!”

느르하가 발산하는 기운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것은 자연의 기운이 아니라 사악한, 부정적인 기운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리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확실히 아슬론과 연관되어 있음을.

이것은 조금 전 녀석이 발산한 기운에서 느꼈던 그 이질적인 기운의 집합체였다.

바로 위대한 일원 녀석들이 주로 사용하는 그 괴랄한 기운 말이다.

“엘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구닥다리 녀석들은 제거해야겠지.”

오만한 느르하의 시선이 엘프들에게 향했고.

슈슈슈슈슉!

모여든 검붉은 기운이 바람의 칼날이 되어 순식간에 사방을 휩쓸었다.

“어림없다!”

그 기운을 감지한 순간 대장로가 권능을 발현하여 연녹색 보호막을 펼쳤다.

수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엘프의 비전.

그 정수를 통하여 펼쳐진 강력한 보호막이었지만.

콰챠챵!

“허억!”

그 보호막은 검붉은 기운 앞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억겁의 세월 동안 연마한 보호막이, 그 정수가 단숨에 깨어져 버린 것.

“쓸모없는 옛것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이들이여. 엘프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대들은 망각에 떨어지리라.”

느르하는 선언하듯 말했고.

파파파팟!

바람의 칼날이 하이 엘프와 대장로를 휩쓸었다.

“응, 안 돼.”

물론 나는 그것을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사라져.」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의지를 전하는 것으로 물리적인 힘을 발현.

사아아아-

느르하 녀석이 발현한 바람의 칼날은 미풍이 되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으하하하하! 아무리 네 녀석이라고 해도 세계수의 힘을 흡수한 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녀석은 세계수의 힘에 취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지만 그건 크나큰 오판이다.

“세계수의 힘? 고작해야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일부의 힘 가지고 잘난 척하기는.”

지켜보는 동안 녀석을 어떻게 해야 굴복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한 것은 하나.

“흐읍!”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이곳에 펼쳐져 있는, 아니 깊숙한 곳에 자리한 세계수의 근원을 내 몸 안에 축적했다.

드드드드드-

한 번의 호흡으로 인해 대지가 흔들린다.

그것은 세계수가 지르는 비명과도 같은 것.

“이, 이 무슨?!”

“이게 대체 무슨 변화란 말인가.”

당황하는 하이 엘프.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게 있으니.

“서, 설마. 이 힘은!”

바로 대장로였다.

그는 지금 역사의 순간을 보고 있었다.

슈우우우우-

“흠. 뭐, 그리 대단한 힘은 아니네.”

연녹색의 빛에 휩싸인 나를.

느르하와는 달리 세계수의 힘을 온전히 흡수한 완전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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