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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08화 (108/161)

108화 Chapter 107

거목의 심장부.

엘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세계수 안에 마련된 성역.

그곳에 드나들 수 있는 건 세계수의 잎에서 태어난 소수의 하이 엘프들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하이 엘프들이라고 해도 거목의 심장부에서 거주할 수는 없다.

여기서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건 오직 하나.

가장 위대한 자라고 불리는, 세계수의 열매에서 태어난 단 하나의 존재인 느르하뿐이었다.

톡톡.

세계수의 가지로 제작된(정확히는 세계수 스스로가 의자의 형태를 만든) 의자, 인간 세계로 치자면 왕좌에 앉은 이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팔을 괸 채 손가락을 두드리는 심드렁한 광경.

하지만 이 사소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그는 놀라울 만큼의 고귀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신의 직접 빚은 듯한 아름다운 외모와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게다가 은은히 발산되는 황금빛 광채는 그의 고귀함을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한 엘프 세계에서도 이런 고귀함을 뽐낼 수 있는 건 단 하나.

가장 위대한 자, 느르하.

엘프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은발의 미남자 그가 바로 현재 엘프 세계를 통치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자였다.

“…….”

“…….”

그리고 그의 발밑으로 부복한 엘프 여럿이 보인다.

비록 느르하만큼은 아니지만 평범하지 않은 고귀함을 발산하고 있는 그들은 각 일족을 통치하고 있는 하이 엘프들이었다.

느르하 이전에는 일족을 다스리며 위대한 자라는 칭호로 불렸던 그들은 감히 그 앞에서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침묵을 유지했다.

“그래서, 결론은 좀처럼 진척 상황이 없다는 것입니까?”

침묵을 깬 느르하의 입에서 질책이 담긴 말이 나왔고.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저희의 무능함을 꾸짖어 주십시오.”

“면목이 없습니다…….”

땅으로 파고들 듯 더욱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약속했던 기한이 지났건만 성과가 전혀 없다라…….”

말끝을 흐린 느르하의 시선이 부복한 하이 엘프들을 차례로 살폈다.

그리고.

“애슬론 님.”

“예, 예… 가장 위대한 존재시여.”

호명을 당한 녹발의 여성 하이 엘프 애슬론이 벼락에라도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호명을 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지난번에 내게 기한 내에 완성할 수 있을 거라며 호언장담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것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해서…….”

“변수?”

“그렇습니다. 설마 세계수의 잎과 이슬의 기운이 상충하여 공멸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지라…….”

“하하하. 변수, 변수라 말했습니까?”

화악!

평온하던 장내의 분위기는 느르하가 뿜어낸 서릿발과도 같은 기세로 인해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흐읍!”

“컥!”

고작 기세를 발산했을 뿐인데도 고귀한 하이 엘프들은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가끔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느르하와 하이 엘프 간의 격차는 고작 한, 두 단계가 아니다.

마치 신격과 인간의 그것처럼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

만약 느르하가 마음먹고 기세를 발산하였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하이 엘프,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그들은 금방 생을 마감하고 말았을 것이다.

“확신하여 말할 때는 그 변수까지 예상하여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엘프의 미래를 결정 짓는 이 중요한 안건이라면 말입니다.”

예상을 못했기에 변수다.

하지만 느르하는 그 변수마저도 예상하여 보고할 것을 말했다.

“그것이…….”

“후우, 아직도 변명할 생각이라니.”

가볍게 한숨을 내쉰 느르하.

“애슬론, 당신은 안 되겠군요.”

뚝!

그 순간 거짓말과도 같이 장내를 지배하던 느르하의 기운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한 번만 기회를…….”

“아니요. 이미 당신에게 줄 기회가 더는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 말한 느르하는 오른손을 가볍게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슈와아악!

그의 손에서 발생한 엄청난 흡입력이 애슬론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애슬론의 육신이 아니라.

“으아아아.”

슈욱!

한 차례의 비명과 함께 애슬론의 생명, 사실상 그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근원이 빠져나왔다.

웅웅웅!

연녹색 빛을 발하는 그 구체야말로 애슬론이 지닌 힘의 근원.

“도, 돌아와. 네, 네가 없으면…….”

힘의 근원을 본 애슬론이 사정하듯 말했지만.

쉬이익-

힘의 근원은 그 애원을 무시하며 흡입력에 이끌려 느르하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슈욱!

그리고 힘의 근원은 흡수되듯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아…….”

털썩.

힘의 근원을 잃어버린 애슬론은 양분을 잃은 고목처럼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져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

1.000년의 시간을 함께한 동료가 죽었지만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애석해하거나 혹은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멍청한 녀석, 공에 눈이 멀어 호언장담하더니.’

‘자신의 분수를 알았어야지.’

‘잘난 척하길 좋아하는 네놈이 언젠가 그리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

오히려 모두 애슬론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평소 공에 욕심이 많던 애슬론의 행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수에 맞게 나댔으면 모를까, 분에 넘치는 행각을 벌인 통에 그들 사이에서도 골칫덩이로 통했던 존재.

그렇기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는 적어도 장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슬론의 처참한 죽음 이후.

솨아아아-

세계수의 의자 뒤로 서 있던 거대한 나무, 작은 세계수라 불리는 거목에 잎사귀 하나가 새로이 생성되었다.

“생명은 순환하는 법. 하나가 죽었으니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될 겁니다.”

애슬론은 하이 엘프.

세계수의 잎에서 태어난 존재였기에 그의 죽음 이후 새로운 잎이 생성된 것.

그것이 바로 느르하의 권능이었다.

세계수의 열매에서 태어난 이 고귀한 존재는 엘프들의 생명을 거두어 다시금 그것을 세계수로 환원시킬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엘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그가 엘프의 신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었다.

“자, 그럼 애슬론의 연구는 공석이 되었군요.”

애슬론이 죽었으니 그가 담당하고 있던 연구의 책임자가 공석이 된 셈이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애슬론이 책임지고 있었던 연구는 우리 엘프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중차대한 부분입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애슬론의 연구는 세계수의 이슬에서 탄생하는 일반 엘프를 변형하여 세계수의 잎, 그러니까 하이 엘프의 탄생으로 이끄는 것.

쉽게 말해서 인위적으로 하이 엘프를 양성하게 하는 엄청난 연구였다.

성공만 한다면 대륙의 판도를 엎어 버릴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연구.

그렇기에 느르하의 지시가 있었어도 누구 하나 쉽게 나서지 못하는 연구였지만 공에 눈이 먼 애슬론은 그 부담감을 생각지 않고 덜컥 일을 맡아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느르하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을 줬고, 그 시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가차 없이 해당 책임자를 제거했다.

“자, 우리 엘프의 미래를 책임질, 후대의 모든 엘프가 기억하게 될 막대한 연구를 책임지실 분 없습니까?”

“…….”

“…….”

하지만 느르하의 말에도 좀처럼 나서는 자는 없었다.

‘실패할 게 빤한데…….’

‘허무하게 죽고 싶진 않아.’

‘아무리 공이 탐이 나도…….’

‘으으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연구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책임자가 교체되었다.

그 말인즉 모두가 실패를 거듭했고, 조금 전 애슬론처럼 제거되어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본래 하이 엘프란 존재는 위대한 자라고 불릴 만큼 지성과 육신의 능력, 모든 것을 갖춘 존재였다.

그런 그들조차도 오랜 세월 동안 난제로 해결하지 못한 것을 어찌 그들이라고 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공에 목이 말랐다 해도 하이 엘프 양산 연구에 대해서는 쉽사리 나설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모두 양보해 주시니 제가 한 번 나서 보겠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마침내 나서 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음성은 장내에서 들린 게 아니라 거목의 심장부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서 들렸다.

“어, 어어?”

“어째서 당신이?!”

“아슈리아 님?!”

심장부를 향해 들어서는 이.

그를 향한 경악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저벅-

모습을 드러낸 그는 엘프였다.

장내에 자리한 모두가 범상치 않은 위치의 이들이었지만 특히 그는 느르하 못지않은 고귀함을 뽐내는 존재였다.

“오, 아슈리아 님. 마침내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느르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엘프.

보통의 엘프와는 다르게 근육질의 거대한 체구를 지닌 그가 바로 과거 느르하 이전에 엘프 세계를 통치하던, 대장로 아슈리아였기 때문이다.

숲의 현자 아슈리아.

울퉁불퉁한 외형과는 달리 대륙에 몇 존재하지 않는 현자의 칭호를 받은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고대의 엘프였다.

추정 나이만 50,000살이 넘은, 그야말로 역사의 산증인.

느르하의 탄생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그 내부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권력 다툼.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 아슈리아와 느르하를 따르는 세력 간에 마찰이 종종 일어나곤 했다.

만약 아슈리아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거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엘프 사회는 통합되지 못한 채 내란을 거듭해야 했을 것이다.

“비록 과정에서의 가는 길은 다를 수 있지만 그 길의 끝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 이 늙은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남은 생을 다 바쳐서라도 도와야겠지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슈리아 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느르하에게 모든 것을 양보한 아슈리아는 그길로 일선에 물러난 것은 물론 완전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느르하는 현자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현명한 아슈리아를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가 은거한 ‘비밀의 폭포’를 방문하여 엘프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며 설득했고, 마침내 수백 년이 지나 그 설득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리 직접 나서신 것을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얻으셨나 봅니다?”

은근한 뜻을 담은 물음을 던지는 느르하.

“대충 실마리 정도는 붙잡았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으하하하! 과연, 과연 숲의 현자십니다!”

현명하다고 소문난 여타의 하이 엘프가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실마리를 잡았다니.

과연 숲의 현자.

과연 역사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이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 일은 안심하고 아슈리아 님께 맡기도록…….”

모처럼 유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모두에게 선언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드드드득-

세계수의 의자 뒤에 마련된 작은 세계수가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건……?”

좀처럼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느르하가 눈을 부릅떴다.

이 진동이 나타내는 바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입자가?!”

그 진동은 거목의 심장부 내부에 펼쳐진 결계가 깨어졌음을 나타내는 것.

‘도대체 누가?’

세계수의 힘을 통하여 마련된 결계가 깨어진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도대체 그 누가 있어서 세계수의 힘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쿠우우우!

그리고 그 원인 모를 불길한 기운이 거목의 심장부 내부에 모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냐!”

콰콰콰콰!

잔뜩 화가 난 느르하의 손에서부터 엄청난 기의 파동이 뿜어져 나갔다.

모든 것을 멸할 수 있는 강력한 파괴의 기운.

하지만.

파스스스-

멀쩡히 잘 나아가던 파동은 불길한 기운의 응집과 함께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기분 좋은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한데, 내가 시간이 좀 없어서 말이야.”

기운의 응집은 곧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느르하와 장내의 엘프 모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

“어찌 인간이?!”

그렇다.

그들이 하등하다 생각하는 청발의 인간이 금지인 거목의 심장부 내부로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못 올 곳 왔어? 뭘 그리 놀라고 그래?”

그리고 무엄하게도 금지에 발을 들인 인간 아서 왕자는 너무도 뻔뻔하게 자신의 할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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