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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06화 (106/161)

106화 Chapter 105

오로라 페이스민.

크루노아 제국의 황제 클리오 에스레타의 아내이자 제국의 개국 공신이었던 카르난 공작가의 여식.

‘현명한 오로라’라고 불렸을 정도로 박식함을 자랑하여 제국의 보물이라고도 불렸던 그녀는 일찍이 황제 클리오와 약혼을 발표, 후에는 황비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빛나게 하는 건 그 지혜가 아니었다.

마치 신이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듯한 절세의 미모.

제국을 방문한 엘프마저도 그 외모에 감탄했다고 알려진 미모야말로 그녀가 유명해지는 데 가장 일조를 한 요인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오로라에 황비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굴종의 종에 의해 눈이 풀려 버린 끔찍한 얼굴의 사내… 가 아니고 오로라라 주장하는 의문의 존재.

아니, 애초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굴종의 종이 지닌 권능을 생각해 보면 지금 그녀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으니까.

“거, 거짓말!”

물론 황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감히 어디라고 거짓을 고하느냐. 황비는 멀쩡히 황성에 있거늘!”

분노한 황제가 소리쳤다.

내가 알기로도 황비는 멀쩡히 황성에 있었다.

지식의 샘 안에서 기감을 펼쳐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봤으니 그것이 틀릴 리는 없을 터.

‘그런데 이 녀석은 뭐지?’

그렇기에 의문이다.

그냥 말한 것도 아니고, 굴종의 종으로 진실만을 말하게 했는데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황성의 황비는 가짜. 그녀는 나의 영혼 일부가 부여된 인형…….”

“아!”

감탄사를 내뱉은 건 내가 아니라 갈린이었다.

“그 빌어먹을 작자가 또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모양이로군요.”

그리 말하며 씁쓸히 웃는다.

그래, 상황은 명백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오로라가 진짜고, 황성에 있는 건 그녀의 영혼 파편을 심어 놓은 가짜인 것.

남편인 황제도,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건 강제로 빼낸 영혼의 일부가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라가 아니나 오로라의 일부는 분명하기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그런 일이 어찌… 스승님이 어떻게 그런 일을…….”

“참담한 심정에 이런 말 하긴 뭐해도, 자기 제자도 대역으로 쓰는 마당에 그게 꼭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짐은 다르단 말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나만은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막상 진실에 도달하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지.”

지금 녀석에게는 어떠한 말도 먹히지 않을 터.

그렇기에 고래고래 소리치는 녀석을 뒤로한 채 오로라라 주장하는 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째서 아슬론의 관찰자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

남편인 황제를 속여 가며, 아니 모든 이들을 속여 가며 왜 아슬론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일국의 황비라는 고귀한 신분의 그녀가 말이다.

“…현자님과의 계약. 미천한 존재에 불과한 내가 황비의 위에 오른 대가…….”

“응?”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

“황비에 오른 대가?”

갑자기 대가라니.

그녀는 자의로 황비에 오른 게 아니었단 말인가?

“…….”

갑자기 말을 멈춘 오로라의 시선이 분노한 황제에게 향했다.

“이럴 수가…….”

그 순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어떠한 감정을 느낀 황제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깨달았나 보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함께 살을 비비며 살아온 남편이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그녀가 자신이 아는 그 오로라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것은 제 것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현자와의 계약으로 마침내 소망을 이뤄 냈으니, 그 대가를 받는 게 당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긴 한다.

하지만 그건 확실하지 않은 가설. 그렇기에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말해라. 너와 현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이 오고 간 거지?」

“으으…….”

하지만 그 말에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이 일이 발설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언가 장치를 마련했을 터.

‘무의식에 또 무언갈 심어 뒀군.’

자주 보는 패턴이다.

아마도 의식 깊숙한 곳에 어떠한 금제를 가했을 터.

하지만 내게 그 금제는 가로막이 될 수 없었다.

「말해라!」

크허허허헝!

마수를 깨워 의지에 힘을 실었다.

“으으윽…….”

의식에 각인된 금제가 발동하려고 했지만.

「꺼져!」

나는 익숙한 금제의 힘을 한순간에 쓸어버렸다.

“커헉!”

그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오로라의 몸이 휘청인다.

“오로…….”

다급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려던 황제가 멈칫했다.

비록 본능은 그녀를 아내라고 인정하고 있었지만 이성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그녀가 오로라라고 인정해 버린다면 그는 자신의 부인조차 지키지 못한, 무능한 황제가 되고 말 테니까.

「말해라!」

부르르-

그녀의 몸이 한 차례 떨린다.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 금제로 인해 심각한 정신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어차피 나와는 관계도 없는 자.

그녀의 정신이 무너져 설사 백치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으니까.

“…현자와의 계약은 평범하고 못생긴 저의 인생을 바꿔 주는 것. 대신 그 모든 소원이 이뤄지고 난 이후 한 가지 임무를 받는…….”

“뭐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옆에 있던 갈린과 황제는 경악하여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렸다.

“거짓말, 거짓말이다! 역시 네년은 가짜였군. 오로라는 태어날 때부터 귀재라 평가받았으며 그 외모 또한 빛났으니. 네 녀석의 말은 모든 게 거짓이다!”

괜히 황제가 자신의 말이 맞다고 거짓말한 게 아니다.

내 기억에도 오로라 황비는 태어날 때부터 총명했으며 그 외모 또한 다른 여타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 자신이 계약을 통해 그 모든 걸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애초에 말이 좀 다르지 않은가.

“…현자의 능력은 상상 이상. 제국은 물론 나를 본 모든 이들의 기억을 조작…….”

“아! 대규모 기억 조작!”

그제야 나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규모 기억 조작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억 조작이라 하면……?”

“말 그대로지. 관련된 이들의 기억을 모두 조작하여 거짓된 현실을 주입하는, 금기된 마법이지.”

물론 그 금기 마법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이유는.

‘한낱 인간이 대규모 기억 조작을 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필멸의 삶을 사는 인간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규모 기억 조작 마법은 정신력과 관련한 권능이란 말이지.

한 사람의 기억을 바꾸는 것만 해도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해야만 하는데, 하물며 그 대상이 오로라 황비를 본 모든 이들이라면.

‘생각보다 꽤 한가락 하는 녀석인가 보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샘의 현자가 지닌 권능의 그릇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게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면 고개를 젓겠지만 그래도 인간의 영역 밖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샘의 현자는 계약에 따라 저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기억을 조작하였으며 외모를 바꾸는 건 물론 현명함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전해 주어…….”

“으음, 이건 예상 밖인데…….”

진중한 표정의 갈린은 고심에 빠지는 듯했다.

아마도 내심 나와 현자와의 힘을 통하여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터.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럼 내가 알고 있던 황비가, 오로라의 모든 것이 거짓된 것이었다는 말이냐……?”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건 황제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평소 황비를 끔찍이 아끼기로 소문난 이였다.

다른 황제들과는 다르게 다른 여인들에게는 일절 시선도 주지 않았으며 오로지 오로라만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을 선보였다.

그런 그의 사랑이, 그녀가 사랑했던 이가 거짓으로 만들어진 인물이었다니. 충격이 크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하지만 황제의 충격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여기 진짜 오로라를 이용하여 정보를 캐내는 것.

「그런데 왜 황비로 있지 않고, 지금 이렇게 관찰자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

못내 궁금했던 내용.

그도 그럴 게 얼굴도 망가진 데다가 고귀한 황비의 신분에서 한낱 관찰자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런 나락으로 이끌었을까?

“…현자의 계약 조건. 그것은 자신이 거둔 10명의 제자, 그리고 황제를 평생토록 감시하라는 것…….”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말이냐?”

나를 대신하여 질문한 건 황제였다.

증오와 원망의 감정은 감쪽같이 사라진 채 허망한 시선으로 진짜 오로라를 응시하고 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계약의 내용이라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낱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라니.

“…그렇지 않으면 황제를 죽이겠다는…….”

굴종의 종을 발현한 내 질문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답했다.

굴종의 권능에 굴복한 상태였지만 용케 황제를 알아보고 답을 낸 것이다.

“…….”

그 순간 황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인물이었지만 오로라는 진정으로 황제를 사랑했던 것 같다.

만약 야망을 좇는 여인이었다면 황제를 죽인다는 협박에 죽었으면 죽었지 그 모든 것을 내려놨을 턱이 없다.

진정으로 황제를 사랑했기에 그를 죽이겠다는 현자의 협박에 못 이겨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거짓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 그런… 크흐흐…….”

진실을 깨닫게 된 황제는 오열했다.

처음에는 배신감이 컸을 테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린 채 거짓된 삶을 사는 그녀에 대한 연민이 생겼을 터.

아주 신파극이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한 편의 아련한 연애 소설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말해라. 지금 샘의 현자는, 아슬론은 어디에 있지?」

대략 사정을 알았으니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아슬론, 녀석의 위치만 파악할 수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

굴종의 종에 굴복당했지만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

「말해라!」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그래서 모든 마수를 깨워 강력한 의지를 보냈다.

“으아악!”

결국 그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한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장담하는데, 이번 대면이 끝난다면 그녀는 정신적 충격에 의해 죽거나, 못해도 백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아슬론 녀석의 소재지만 파악할 수 있다면 수만 명의 목숨도 취할 수 있다.

“…그는, 현자는… 죽었습니다.”

“엉?”

그리고 오로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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