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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04화 (104/161)

104화 Chapter 103

“…….”

“…….”

침묵만이 감돌고 있는 장내.

불안한 듯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갈린.

구속으로 인해 말하고 싶어도 한마디 뻥긋할 수 없는 크루노아 제국의 황제 클리오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검은 가면.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한 것 같고.’

오늘, 자꾸 신경 쓰였던 위대한 일원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파헤칠 생각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입을 떼며 가장 먼저 시선을 준 녀석은 갈린이었다.

“일단 갈린.”

“네, 네네!”

눈치만 보고 있던 녀석이 얼른 답했다.

가장 먼저 이 녀석을 선택한 건 그나마 물리적인 행위를 사용하지 않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설마 지금에 와서 스승에 대한 예의니 뭐니를 따지는 건 아니겠지?”

많은 뜻을 담은 그 질문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그가 절 제자로 생각했다면 자신의 대역을 시키는 일은, 정신을 지배하여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진 않았을 겁니다. 그에게 지켜야 할 의리는 없습니다.”

갈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정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래도 생각이 제대로 박혀 있네.”

“감사합니다.”

“뭐, 감사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럼 슬슬 불어 봐야지?”

“알겠습니다.”

녀석은 질문한 내가 민망할 정도로 순순히 답했다.

‘뭐지? 뭐 잘못 먹었나?’

당연히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적이었던 사이인데 이렇게 순순히 나온다고?

“아마 제가 이렇게 순순히 나오니 오히려 의심이 들 겁니다.”

“부정하진 않을게.”

“하지만 지금 저는 진심입니다.”

알고 있다.

어이가 없지만 녀석은 지금 진심이었다.

말을 하는 도중에 녀석의 기세를 읽었는데, 그 어떤 부분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대단한 사기꾼이 아닌 이상에야 진실을 말하고 있는 셈.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건 인간 사이의 정이 아닙니다.”

“정이 아니다?”

“네, 제가 스승님을… 아니 아슬론을 따랐던 건 그가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서 님의 등장으로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하!

어쩐지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순순히 말해 준다고 했더니.

“자신의 욕구에 아주 충실한 성격인가 보군.”

“저 역시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함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경지에까지 오르진 못했을 겁니다. 강함, 그것을 추구하는 건 수련을 하는 모든 이들의 강렬한 바람. 게다가 아슬론은 저를 이용하여 자신의 인형 노릇까지 시켰으니 그를 믿고 따를 이유가 없어진 게 아니겠습니까.”

“…….”

나는 말없이 녀석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화르륵!

눈동자 깊은 곳, 의식 속에 숨겨진 불꽃은 분명 강렬한 힘의 열망을 나타내고 있었다.

“네 말은 즉, 샘의 현자에서 나로 적을 옮기고 싶다는 말로 들리는데?”

저 말의 핵심은 뭐다?

아슬론에서 나로, 배를 갈아타겠다는 의미다.

“받아만 주신다면야…….”

그리 말하며 슬쩍 눈치를 본다.

‘흐음…….’

솔직히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다.

욕망에 충실한 만큼 솔직한 녀석이기에 후에 배신(나보다 강한 녀석이 나타난다면야 얼마든지 배신해도 된다)하지도 않을 것 같고.

게다가 무엇보다.

‘타일로 이후에 이런 미친 재능은 오랜만이네.’

여태껏 자신을 강자라, 재능이 있다고 한 녀석 중 타일로만 한 재능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갈린이라는 녀석의 재능도 확실하다.

‘그것도 마법적인 재능이.’

물론 그 재능이라는 건 타일로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스으으으으-

내 눈에는 보인다.

녀석의 주위에서 뛰놀고 있는 마력의 근원이.

그것은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현상.

놀랍게도 녀석은 마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마력의 축복을 받고 있었다.

“글쎄, 그건 네가 전해 주는 정보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확실히 펠리드의 ‘대업’에 도움을 줄 만한 인재라 탐이 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속마음을 숨겼다.

아직은 녀석을 신뢰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일단 가장 궁금하신 아슬론의 숨겨진 제자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군요.”

그 말에 안달이 났는지 곧바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슬론에게는 저를 포함한 15명의 제자가 있다고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사실 저는 10명의 제자 이외에 나머지 5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습니다.”

“흠, 그건 좀 논란이 있겠는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것을 궁금해하면 머지않아 알게 될 거라는 말만 되풀이하여서…….”

나는 갈린을 바라보지 않았다.

구속당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황제를 응시했다.

“…….”

비록 입도 뻥긋하지 못하지만 원한과 증오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갈린을 노려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녀석도 그렇게 알고 있나 보네.’

갈린보다 서열이 높은 황제도 모르는 다섯 명의 제자라.

‘녀석들이 현자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을 것 같네.’

나머지 10명은 허수아비.

어쩌면 본인의 뭔가 다른 목적을 위해 들였을 수도 있고.

뭐, 그래도 괜찮다.

갈린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해도 황제가 있고, 그리고 아직 정체를 모르지만 중요 요직에 있을 것 같은 검은 가면 녀석이 있으니까.

“다섯 명을 제외한 10명의 제자를 말씀드리자면…….”

그리고 갈린은 조금 놀랄 만한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임펠 제국의 1왕녀 제일린, 드웨인 공작, 도리아 제국의 2왕자 칸, 제이온 공작, 크발칸 제국의 2왕자 샤렌, 3왕자 갈라툰, 그리고 보시다시피 크루노아 제국의 클리오 황제와 그의 동생인 3왕자 제레미, 저, 그리고 마지막은…….”

마지막 명단을 내뱉으려던 갈린은 잠시 말을 멈춘 채 클리오 황제를 응시했다.

“…….”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지금 갈린은 갈가리 찢겨 사라졌을 것이다.

그만큼 황제 녀석의 시선은 따가웠다.

“어쭈? 눈에 힘 안 푸냐? 이게 진짜 디질라고.”

“…….”

하지만 내 말에도 황제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내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갈린을 바라볼 뿐.

“제가 지켜야 할 의리는 없습니다. 황제 폐… 아니 클리오 님.”

갈린은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봤다.

과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녀석이라 이미 생각을 정리한 것 같다.

“아슬론의 마지막 제자는 클리오 황제의 아내이기도 한 왕비 오로라입니다.”

“오로라?”

과연 황제가 성을 낼 만한 인물이었다.

“그렇습니다. 아슬론은 대륙의 통일을 꿈꾸며 각 제국, 그리고 왕국에 자신의 제자 및 부하들을 심어 뒀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명령이 떨어진다면 얼마든지 각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는 주요 인물들이죠.”

확실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각 제국의 왕족은 물론 병력권과 권력을 쥐고 있는 공작들이 현자의 제자로 있다.

아직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원한다면 얼마든지 대륙을 제패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 목적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있냐?”

은근히 물었다.

물론 얼마 전 정보를 얻어 위대한 일원이 ‘외부의 존재에 맞설 만한 힘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녀석도 그러한 목적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슬론은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힘을 키우고 있는 건 보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작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습니다.”

역시 그렇군.

‘10명의 제자 명단 이외에는 그리 쓸모가 없겠는데.’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아슬론의 10명 제자 이외에 녀석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아슬론이 위대한 일원이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하긴, 그만큼 철저한 녀석이라면 자신의 제자라고 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진 않았겠지.’

지금까지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었던 조직이 아닌가.

제자라고 해서(그것도 다른 5명의 제자도 모르는 판국에) 그 모든 정보를 알고 있기는 힘들 것이다.

“…이것이 제가 알고 있는 아슬론의 모든 것입니다.”

갈린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전부 말했다.

“좋아, 확실히 숨기고 있는 건 없는 것 같으니 일단 대기.”

그리 중요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녀석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은 것 같다.

“자, 그럼…….”

그리고 황제를 응시했다.

딱!

그와 함께 녀석을 구속하고 있던 의지의 속박을 풀었다.

“…네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지?”

갈린과 같은 정보를 전해 주는 것.

명색이 제국의 황제인데다가 더 높은 서열의 제자이니 분명 갈린보다 알고 있는 바가 많을 것이다.

“…짐이 입을 열 것 같으냐?”

하지만 녀석은 내 기대를 무시한 채 상관없는 말을 던졌다.

“응, 열 것 같은데?”

“하하, 비록 이렇게 잡힌 신세가 되었지만 짐은 누구와는 달리 스승님을 배신할 수는 없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내뱉은 녀석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갈린을 응시했다.

물론 상당한 정신의 소유자인 갈린은 그 시선에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래?”

“목에 칼을 들이댄다 해도, 설령 내 목숨을 취한다 해도 짐의 무거운 입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갈린을 향한 시선이 내게 향했다.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짐의 목숨뿐. 후에 제국의 복수가, 그 거대한 칼날이 네 녀석에게 향할 것이다.”

쯧, 말을 빙빙 돌려서 하기는.

“아, 그러니까 나를 여기서 죽이면 제국의 복수가 시작될 테니 죽이지 말아 달라는 거지?”

“…….”

핵심을 간파한 내 말에 황제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입을 닫을 수 있는지 지켜볼게.”

하하하.

이 녀석이 누굴 호구로 아 나.

내가 어떠한 준비도 없이 납치(?)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판이다.

“자, 이걸 보실까?”

나는 마력을 발휘하여 녀석을 위한 선물을 펼쳤다.

“이건……?”

그것은 빛의 입자를 굴절시켜 만든 어떤 곳의 광경이다.

녀석이 놀란 이유는 그곳이 바로 조금 전까지 녀석이 머물던 크루노아 제국의 황성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30초. 만약 네 녀석이 내가 원하는 답변을 주지 못한다면 네가 힘들게 일궈 놓은 저 황성은 물론 제국은 멸망하게 될 거다.”

“…….”

하지만 내 협박에도 녀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내 말이라도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은 탓이리라.

믿지 못하는 녀석에게 보여 줘야 할 건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거.

“어디까지 그렇게 고고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나 보자.”

그리 말하며 마력을, 정확히는 내가 품고 있는 마기를 개발하였다.

콰콰콰콰콰!

방 안을 휩쓸고 지나가는 강력한 기운.

그리고.

“이, 이럴 수가?!”

좀처럼 반응이 없던 황제가 마침내 반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펼친 마법 영상 속 황성, 그곳에 거대한 운석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가 아니다.

황성 위를 장식하고 있는 건 수백 개의 운석.

“정확히 30초 준다. 앞으로 30초 후에도 만약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으면 크루노아 제국은 대륙에서 사라지게 될 테니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으음…….”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신음.

과연 네 녀석이 멸망을 눈앞에 둔 제국을 버리고 그 무거운 입을 유지할 수 있는지, 어디 지켜보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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