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Chapter 101
“하하하하!”
하지만 녀석은, 제국의 황제인 클리오는 내 말이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아서 왕자, 참으로 무례하구나. 그대는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건가?”
창을 거둔 채 슬쩍 뒤로 물러난 녀석이 오만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뭐? 네 안방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거야?”
“안방이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로군.”
짝!
그리 말한 녀석이 손뼉을 치자.
철컹, 철컹!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장한 많은 병력이 지식의 샘 안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너희는……?”
솔직히 조금 전까지는 크루노아 제국의 가장 강력한 병력은 검은 매 기사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들이닥친 병력들을 보니 그러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병력을 숨겨 뒀다고?’
걸음걸이 하나만으로도 주변을 포위한 병력의 수준이 보인다.
“어디 9써클 마검사 양산하는 공장이라도 차렸나. 이건, 뭐…….”
아무리 내게는 애송이 수준에 불과한 이들이라고 해도 이건 좀 놀랍다.
왜?
눈앞에 9써클, 그리고 9성의 경지를 동시에 이룩한 마검사가 한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물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적어도 대륙의 시간으로는) 나는 9써클이면 9성이면 대륙에서 최강자 반열에 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수백의 병력은 하나하나가 9써클과 9성의 경지를 이룩한 마검사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9써클, 9성을 양산하는 공장이 아니라면…….
‘응?’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과거 녀석이 클론을 생산하던 공장을 박살 냈던 적이 있다.
클론을 만드는 녀석들이니 9써클 마법사나 9성의 기사를 양성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의심을 품은 순간.
지이잉-
내가 펼쳐 낸 마기가 파도처럼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찰나간에 일어난 일로 그 누구도 내 탐색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역시!”
마기로 녀석들의 전신을 샅샅이 훑었고, 그 결과 판에 박은 듯한 육신과 그리고 그곳에 어린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클론이었네.’
녀석들은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육신과 영혼을 복제하여 만든 클론이었던 것.
단지 지난번 만났던 은빛 가면 클론 녀석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자아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
주변을 포위한 녀석들의 눈빛이 멍하다.
분명 영혼은 있으나 양산을 위해 만든 영혼이기에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들은 우리 제국이 자랑하는 제노아 기사단이니라!”
황제 녀석이 자랑스럽게 떠들어 댄다.
“쯧, 의지도 없는 양산형 인형 가지고 자랑은 무슨.”
아무리 9써클, 그리고 9성의 힘을 지닌 병력이라도 고작해야 인형.
의지를 지니지 않은 이따위 인형이 내게 위협이 될 턱이 없지 않은가.
“쳐라!”
그러나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황제는 곧장 살상 명령을 내렸고.
콰앙!
지면을 박찬, 그리고 공간을 뛰어넘은 병력들이 내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
지척으로 접근한 녀석들을 바라본다.
번뜩!
그 순간을 노려 그간 발휘한 적 없는 심안(心眼)을 펼쳤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의지의 눈으로 사물을 살피는 극의 경지.
그리고.
「으아아아아!」
「끄윽, 끄으윽!」
「제발… 제발…….」
아우성치는 영혼의 메아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불안정한 영혼인가.’
예상대로다.
비록 육신에 깃들긴 했지만 이들 병력, 클론의 영혼은 울부짖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완성되지 않은 영혼이기에 불완전함에 울부짖고 있는 것.
‘참, 같은 인간이지만 이것들의 행태는 진짜…….’
이것이 창조의 영역을 손댄 대가다.
물론 영혼을 창조한 이는 고통받지 않겠지만 불완전한 영혼을 가진 이들은 참을 수 없는 불완전함의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와라.”
나는 자애로운 편이 아니다.
1,000년 동안 오직 끝없는 전투만을 펼쳤기에 오히려 지극히 냉정하고, 피를 갈구하는 성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영혼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와중에는 ‘동정심’이란 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선사해 주마.”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중얼거린 후.
「끝이질 않는 전쟁의 섬.」
그리고 노래를, 과거 내가 행하였던 업이 깃든 칼의 노래를 불렀다.
「그곳에 갇힌 사내는 끝나지 않는 전투에 참가하여 검을 휘둘렀다.」
마계를 방랑하던 당시 가장 나를, 그리고 원정대를 괴롭혔던 마신은 67위의 권좌에 앉은 암두시아스였다.
고통과 고문, 그리고 비명을 즐기는 자.
그렇기에 녀석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기 위하여 원정대를 온갖 함정에 빠뜨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눈여겨본 녀석은 온갖 함정, 그리고 시련을 준비했는데, 그중 하나가 ‘끊임없는 전쟁의 섬’이었다.
안개가 가득한 이름 모를 섬.
그곳에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들과 전투를 벌여야만 한다.
때로는 식량을 위해.
때로는 성욕을 위해.
때로는 수면을 위해.
인간의 삼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섬에 있는 타인을 쓰러뜨려야만 했고, 그것은 무한하게 반복되었다.
강력한 권능으로 인하여 발현된 저주로 인하여 다음 날 아침에 되면 죽었던 이들이 다시금 부활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사람을 죽여 봤기에, 그리고 이미 한 번 죽어 봤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는 격렬해져만 간다.
그 전쟁터에 떨어진 나 또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진 채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행위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피의 굴레. 하지만 사내는 그 종말을 원하였다.」
이유도 모른 채 살육을 저지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내게는 목표가 있었다.
의지를 남긴 채 죽어 간 원정대원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
그렇기에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는 살육의 광기 속에서도 온전한 의지를 유지했다.
원하는 바는 하나.
이 끝없는 전쟁을 끝내는 것.
그렇기에 나는 끊임없이 정진했고, 성장하여 마침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한한 전쟁을 끝내는 검. 그의 검은 안식을 선사하니.」
그것은 굴레를 끊는 검.
「프라가라흐!」
나의 외침과 함께 환한 빛이 장내를 지배하였다.
“으으!”
그 빛에 노출된 클론 병력이 잠시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웅웅!
환히 빛나는 검, 안식을 선사하는 빛의 검 프라가라흐를 말이다.
“안식을 얻으리라.”
과거 끊임없는 전쟁의 섬에서 그들이 자유를 얻었듯 나는 녀석들을 향한 안식의 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마치 자아를 가진 것처럼 의지를 지닌 검이 클론 병력 사이를 휘저었다.
팟!
하지만 그 검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건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괜히 빛의 검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그 속도는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입신의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알아챌 수도 없다.
“……?”
하지만 프라가라흐가 한 차례 병력을 휘젓고 다녔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니, 변화가 없는 게 아니다.
“잘 가라.”
손을 흔드는 나의 인사와 함께.
털썩!
멀쩡히 서 있던 기사 하나가 쓰러졌다.
그리고.
털썩, 털썩.
마치 연쇄 반응처럼 다른 기사들도 지면에 몸을 누이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
그 광경을 확인한 황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 녀석이 자랑하던 마검사 기사들이 모두 쓰러졌기 때문이다.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다!”
이미 의식을 잃어버린, 정확히 말하면 구속에서 벗어난 병력을 향하여 소리친다.
그러나 일어날 턱이 있나.
프라가라흐의 칼날에 베인 녀석들은 사라졌다.
불완전함의 고통 속에 울부짖고 있었단 영혼들이 자유를 얻은 것.
“제길!”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황제.
그 순간 마력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어딜!”
하지만 녀석의 마법보다 내 의지의 실현이 빨랐다.
뚝!
내 의지는 주변의 모든 마력의 흐름을 끊었다.
“어어……?”
당황한 황제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저벅- 그리고 나는 당황한 우리의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꺼낼 수 있는 패는 모든 꺼낸 거야?”
녀석은 자신이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무려 9써클, 그리고 9성의 경지에 이른 수백의 기사단을 이끌고 왔는데 누군들 죽이지 못할까.
하지만 녀석의 불행이라면 하필이면 나를 만났다는 것이다.
9써클? 9성?
설혹 10써클, 10성에 이른 마검사들이 수백, 수천 명이 몰려와도 상관없을 나를 만났으니 당연히 패할 수밖에.
“이,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건방을 떠는 것이냐. 이곳은 크루노아 제국, 여기서 황제를 겁박한다는 게…….”
퍽!
“커헉!”
말없이 주먹을 뻗어 녀석의 코를 뭉개 버렸다.
뚝뚝-
지면을 적시는 피의 정체는 황제의 코에서 흘러나오는 코피였다.
“황제가 뭐 대단할 게 있다고. 어차피 같은 사람 아냐?”
“무엄하…….”
퍽!
“커흑!”
감히 무엄이라고 외치는 녀석의 관자놀이에 다시금 주먹을 꽂아 넣었다.
쿵!
그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한 녀석의 머리가 지면에 부딪혔다.
“이, 이럴 수가! 어째서…….”
“못 피하냐고?”
아마 당황스러울 것이다.
무려 10성에 이른 육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던가.
고작해야 가볍게 뻗는 주먹 따위에, 게다가 눈에 훤히 보이는 공격에 당하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거든.”
“…….”
물론 녀석은 그 말의 진의를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보다. 우리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사랑하는 사제와 함께 잠시 면담 좀 할까?”
아주 중요한 인질인 황제, 그리고 아슬론의 인형 행세를 하고 있었던 갈린을 확보했다.
비록 아슬란 본인은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수확만 해도 괜찮은 셈.
“짐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닥쳐!”
퍽!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황제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축 늘어진 녀석의 몸뚱이를 감싸 안으며.
“가자.”
멀뚱하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갈린에게 말했다.
“네, 네네. 알겠습니다.”
내 무력을 일부나마 확인한 녀석은 감히 반항할 생각도 없이 내 옆에 공손히 섰다.
그리고.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공간을 넘었다.
“…….”
“…….”
정적만이 감도는 지식의 샘 안.
“이게 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허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당황한 귀족들은 조금 전 확인한 광경을 떠올리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각자 소속된 국가로 돌아가 지금 확인한 일을 전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그것은 검은 매 기사단도 마찬가지.
어떤 다른 음모가 있는 건 사실이나 황제, 그리고 그들의 샘의 현자 역할을 하고 있던 갈린이 납치(?)당한 것이다.
당연히 이 일을 알리고 또한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했다.
“…….”
순식간에 장내에 있던 모든 이들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스으으-
수상한 검은 안개가 지식의 샘 안에 들어오더니.
슈르르륵!
곧 하나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아서 왕자라. 이거, 예상치 못한 존재의 등장이로군.”
늑대의 형상을 한 검은 가면을 쓴 회색 로브의 사내.
그는 조금 전 아서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마법을 펼쳐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음?!”
반응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충만하던 마력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것.
“이게 무슨……?”
“잡았다, 요놈!”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이.
“내가 배후가 나대는 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그는 바로 아서였다.
이동하는 척 다른 이들을 속여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그가 배후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