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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01화 (101/161)
  • 101화 Chapter 100

    녀석은 눈치채지 못할 거로 생각했겠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사실 지금 샘의 현자를 지배하고 있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녀석이 손에 쥐고 있었던 나무 지팡이였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그 지팡이는 언뜻 보기엔 그냥 평범한 나무 지팡이 같지만.

    ‘아주 강력한 정신체가 깃들어 있었지.’

    인간의 의지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쉽게 말해서 강력한 저주가 깃든 물건이었다.

    「이, 이놈…….」

    녀석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지금 당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공허의 기운에 노출되었음에도 여전히 존재를(물론 아주 희미하긴 하지만) 유지하고 있었던 것.

    “꺼져. 고작해야 정신체에 불과한 게.”

    옅은 안개와 같이 형태를 유지한 녀석에게.

    스윽!

    다시금 공허의 기운이 깃든 검격을 선물해 주었다.

    「으아아악!」

    곧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고.

    콰앙!

    폭발과 함께 나무 지팡이에 깃든 정신체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소멸해 버린 그 정신체를 잠시 응시했다.

    ‘이 정도 정신체를 만들었을 정도면 대충 상상이 가네.’

    그 배후에 있을 존재.

    정확히 말하면 ‘진짜 샘의 현자’가 지닌 힘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뭐, 그래 봐야 내 기준으로 보자면 다 그렇고 그런 놈이겠지만.

    털썩- 정신체의 지배에서 벗어난 가짜 아슬론이 쓰러졌다.

    그리고.

    츠츠츠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총명한 학자와 같은 중년인의 모습이 감쪽같이 변해 20대의 젊은 사내가 된 것.

    “맙소사!”

    “아슬론 님이 아니었어?”

    그 변화를 지켜본 귀족들과 검은 매 기사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샘의 현자라, 그리고 자신의 주군이라 생각했던 이가 전혀 안면도 없는 이가 되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하지만 진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갈린?”

    “저 모습은 분명 갈린인데…….”

    귀족들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검은 매 기사단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갈린? 그게 누구지?”

    그렇기에 곧장 물었다.

    “…….”

    하지만 녀석들은 곧 실수를 깨닫고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경황 중에 내뱉긴 했지만 아슬론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는 발언이라 생각한 것이다.

    “쯧, 또 꼴 같지 않은 충성심의 발현이로군.”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속이면서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녀석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편을 들려고 하는지.

    하지만 굳이 녀석들을 협박하여 정보를 캐낼 생각은 없다.

    ‘당사자에게 들으면 그만.’

    여기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당사자가 멀쩡히 살아 있지 않은가.

    물론 불과 조금 전에 정신체의 지배에서 벗어나 당장 의식을 회복할 힘은 없을 테지만 내가 있으면 이야기는 다르지.

    짜악!

    쓰러진 녀석의 볼기짝을 힘차게 쳤다.

    단순히 화풀이를 하고자 친 게 아니라 가라앉아 버린 녀석의 의식을 깨우기 위한, 아주 의도적인 충격 요법이었다.

    그리고.

    “헙!”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눈을 부릅뜨며 일어나는 가짜.

    “허억, 허억…….”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리 인위적으로 의식을 깨웠다지만 녀석에게 기운이란 게 있을 턱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약간’의 힘을 발현했다.

    딱!

    의지를 담아 손가락을 튕겼고.

    사라라라-

    녀석의 머리 위에서 녹색 빛의 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곧장 황홀경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급변하는 가짜.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발현한 건 ‘재생의 가루’로 영혼만 붙어 있으면 죽어 가는 이도 살릴 수 있는 절대적인 마법… 이라기보다는 권능이었다.

    치유 효과도 치유 효과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기력을 되찾아 주는 것.

    오랜 시간 동안 정신 지배를 받아 피폐해져 버린 녀석의 마른 육신에 단비가 내린 셈이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자, 이제 정신 차렸지?”

    해 줄 건 다 해 줬다.

    이만큼 해 줬으니 남은 건 녀석에게 답을 얻는 것뿐.

    “…….”

    의식을 회복한 녀석이 나를 바라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정신도 차렸고, 기력도 돌아왔을 거 아냐. 그런데도 몰라? 의식 깊은 곳에서 다 보고 있었을 텐데?”

    비록 정신체에 조종을 받긴 했지만 녀석의 의식은 사라진 게 아니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봤을 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내용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허엇!”

    내 말이 자극이 된 것일까.

    머리를 감싸 쥔 녀석이 잠깐 고통에 힘겨워하더니.

    “아!”

    뭔가를 깨달은 듯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마도 이제야 의식 저편에 있던 그 모든 기억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대,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더니 의문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누구긴. 너도 다 봤을 거 아냐.”

    “소튼 왕국의 왕자님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상식에서 일국의 왕자가 지닐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뭐, 그렇긴 한데. 세상에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그래도 이건…….”

    “이해하려고 하지 마. 이해시킬 생각도 없고. 너는 그저 네가 가진 정보를 나에게 불면 그만이야.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겠지?”

    1,000년 동안 마계에 있다고 귀환했는데 알고 보니 대륙의 시간은 1초가 지나 있었다.

    이 말을 누가 믿겠는가.

    아마 나 같아도 믿지 않을 테니 녀석을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설득할 이유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은 녀석이 정신체에게 지배당한 이유,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아슬론에 관한 정보였다.

    “후우…….”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던 녀석이 한숨을 내뱉었다.

    “저는 샘의 현자 아슬론 님의 12번째 제자인 갈린이라고 합니다.”

    마침내 떨어진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제자?”

    “제자가 있을 턱이…….”

    주변의 귀족들도 의아한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세간에 알려진 아슬론의 제자는 마계 원정대에 보낸 클랑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2번째, 3번째 제자도 아닌 무려 12번째 제자라고 말한다.

    아슬론에게 감춰 둔 제자가 그토록 많았다는 말인가?

    “다들 모르실 겁니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스승님의 제자는 클랑만 있는 게 아닙니다.”

    “클랑… 만?”

    어째 이 녀석 말하는 모양새가 꼭 아랫사람을 다루는 것 같은데?

    “네, 클랑은 스승님이 거둔 열다섯 제자 중 막내에 불과합니다.”

    “허어!”

    “그 대단한 클랑이 고작해야 막내라고?”

    클랑의 명성은 크루노아 제국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 널리 퍼져 있었다.

    고작해야 18살의 나이로 9써클에 오른 세기의 천재.

    그런 그가, 아슬론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을 거로 생각했던 클랑이 고작해야 마지막 제자에 불과하다니.

    “갈린 님,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고참으로 보이는 검은 매 기사단 중 하나가 나섰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갈린의 폭로(?)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네가 뭔…….”

    그렇기에 내가 나서려고 했지만.

    “닥쳐라!”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갈린이 알아서 정리했다.

    “내 비록 스승님의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나 그 사악한 의도를 알고도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너희의 충심은 알겠으나 내 일에 나서지 마라!”

    녀석의 태도는 단호했다.

    ‘하긴, 제자라고 했는데 정신체의 지배를 당하도록 내버려 뒀으니.’

    충분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스승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또 다른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정신을 지배하여 자신의 대리 역할을 맡게 만들었으니 그 실망감이 오죽하겠는가.

    당장 칼 들고 찾아가지 않는 것만 봐도 갈린이라는 녀석의 심성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으음…….”

    하지만 갈린의 말에도 검은 매 기사단 녀석들은 여전히 불만인 표정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스으으-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기세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봐라?”

    아주 미약한 변화였지만 그것을 눈치 못 챌 내가 아니다.

    조금 전까지 내 힘에 압도되어 기도 못 펴던 녀석들이 감히?

    “너희 지금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쳐라!”

    “우리의 목숨은 그분의 것이니!”

    “목숨을 바쳐 배신자를 처단하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져 달려들기 시작했다.

    “감히!”

    사정을 듣고서도 덤벼드는 그들을 보며 분노하는 갈린.

    고오오오!

    분노한 녀석이 마력을 발현하며 마법을 완성하려고 했다.

    비록 정신체에 지배당하여 아슬론의 인형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그 실력도 만만치 않은 듯 강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10써클의 경지로군.’

    찰나의 순간 나는 녀석의 경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인외의 경지라 알려진 10써클. 20대 초반에 불과한 녀석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경지이긴 하다.

    “하아압!”

    하지만 갈린이 발현한 막강한 마력의 폭풍 속에서도 검은 매 기사단은 살의를 줄이지 않았다.

    나를 교묘하게 피하며 갈린에게 접근한 녀석들은.

    스스스슥!

    각각 발휘할 수 있는 최후의 검격을 펼치며 갈린을 압박했다.

    그러나.

    카카캉!

    “큭!”

    “커헉!”

    갈린의 육신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을 꿰뚫지 못했다.

    ‘전에 봤던 그 마법이로군.’

    9써클 마법의 중첩.

    검왕을 궁지로 몰았던 은빛 가면 녀석이 발현했던 그 무적의 마법이었다.

    비록 내게는 형편없이 깨지긴 했지만 그 위력은 ‘일반인’ 기준으로는 절대적인 게 맞다.

    “스승님이 내게 몹쓸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히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말이냐!”

    갈린이 분노의 함성을 터뜨렸다.

    “그분의 뜻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분명 대의가 있었을 겁니다.”

    “갈린, 당신은 지금 그 숭고한 뜻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갈린의 분노는 통하지 않았다.

    녀석처럼 정신체를 통해 세뇌시킬 필요 없이 검은 매 기사단은 아슬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지니고 있었다.

    예상하건대 아마 녀석들이라면 자신이 세뇌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숭고한 뜻이 있다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이놈들!”

    슈슈슈슉!

    뒤늦게야 그 사실을 깨달은 갈린은 분노하며 무수히 많은 마력의 탄환을 생성했다.

    무수히 많다는 게 정말 가정이 아니라 지식의 샘 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어마어마한 수였다.

    “스승님의, 아니 그의 개에게 물릴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아슬론을 향한 일갈을 토한 갈린.

    그리고 그의 손짓과 함께.

    파파파파파팟!

    장내를 장식한 마력의 탄환이 검은 매 기사단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씨익- 하지만 검은 매 기사단은 날아오는 탄환을 보면서 미소를 그릴 뿐이었다.

    「죽는 건 그들이 아니라 네 녀석이다.」

    그리고 울리는 한 줄기의 의지.

    슈슉!

    마력의 탄환을 발사한 그 찰나의 순간.

    어느새 갈린의 앞에는 공간을 뛰어넘은 한 명의 존재, 화려한 왕관과 빛을 발하는 셉터를 든 미중년이 나타나 있었다.

    “클리오 폐하!”

    강력한 마력의 창으로 9겹의 보호막을 간단히 파훼하는 존재.

    그는 바로 현 크루노아 제국의 황제인 클리오 엘 그레이튼.

    “배신자는 죽어라!”

    찰나의 틈을 발하기 위하여 기사단에 공격을 지시했을 녀석이 마력의 창에 힘을 주었다.

    보호막을 두부처럼 꿰뚫어 버리는 그 강력한 창은 분명 갈린의 목숨을 취했어야 하지만.

    “응, 안 돼.”

    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꽈악!

    녀석이 발현한 마력의 창은 나의 손아귀에 잡힌 채 단 1센티도 전진하지 못했다.

    “무, 무슨?!”

    당황하는 녀석.

    “황제를, 그를 꼭 제압하십시오. 그는 아슬론의 일곱 번째 제자. 저보다 더 많은 내막을 알고 있을 겁니다.”

    어느새 내 편이 된 갈린이 말했고.

    “오호라!”

    그 말에 눈빛을 반짝였다.

    일국의 황제이면서 궁정 마법사의 제자가 된 존재.

    확실히 갈린이 말했던 대로 녀석이라면 아마 많은 비밀을 알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이익!”

    부들대며 창을 찔러 넣기 위해 애쓰는 황제.

    안쓰럽게 부들대는 녀석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일단 좀 맞고 시작할까?”

    만고불변의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폭력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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