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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97화 (97/161)
  • 97화 Chapter 96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별궁의 연무장.

    “하압!”

    그곳에 들리는 건 타일로가 내지르는 힘찬 기합성과.

    “그렇지!”

    “그 검식을 단번에 따라 하다니!”

    “허허. 정말 하늘이 내려 주신 천재가 따로 없군.”

    연신 터져 나오는 감탄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감탄사의 주인공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기고 있던 은왕림의 왕들이었다.

    “이건… 네가 말했던 재능보다 더욱 뛰어난 것 같구나.”

    특히 염왕의 놀람은 컸다.

    사실 검왕에게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은왕림에 소속된 모든 이가 ‘세기의 천재’라 불릴 만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탓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염왕의 재능은 천부적이어서 웬만한 천재는 재능이 있다고 치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보게 된 타일로는.

    ‘이런 천재가 존재한단 말인가?’

    그건 재능 하나는 최고라고 자부했던 그의 재능을 하찮게 만드는 놀라운 것이었다.

    현재 절대의 영역을 밟고 있는 그의 기준에서도 고급, 최고급이라 칭해질 만한 검식을 한번 보여 준 것만으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물론 진짜 중요한 건.

    ‘어떻게 깨달음의 영역마저…….’

    그래, 검식이야 재능이 뛰어나면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깨달음은 다르다.

    깨달음이 왜 깨달음인가. 오랜 시간을 거쳐 그 검식에 숨은 의지를 깨달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건 그것보다 이런 식으로…….”

    스윽!

    그리 말하며 펼치는 동작.

    깨달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그 동작은 조금 전 혈왕이 선보인 것이 맞다.

    다만.

    “허!”

    “맙소사!”

    혈왕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다진 검식이 펼쳐졌다.

    그것도 그가 깨달은 것뿐만 아니라 새롭게 보완된, 자신만의 해석이 들어간 채로 말이다.

    “정녕… 괴물이라 불릴 만하구나.”

    그 광경을 두 눈으로 확인한 염왕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깨달음의 영역마저 단번에 펼쳐 낼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니, 이번에는 내 차례다.”

    “무슨 소리! 엄연히 내가 먼저…….”

    그리고 사소한 다툼이 일어났다.

    보완된 검식을 본 혈왕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물론 그들의 밑천을 보여 준다고 해서 혈왕과 같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게 있지 않은가.

    서로가 타일로를 가르치겠다며 나서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만!”

    그리고 염왕이 이를 막았다.

    “우리가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이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온 입장이 아니지 않은가.”

    “…….”

    염왕의 일갈에 다들 침묵했다.

    저벅-

    침묵하는 그들을 뒤로한 염왕이 타일로에게 접근했다.

    “아이야, 너의 재능이 참으로 놀랍구나.”

    그는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본래 이곳에 오기 전까지, 너를 보기 전까지는 재능이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냐 생각했지만,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과, 과찬이십니다.”

    쑥스러웠던 타일로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은데.”

    “어떤 제안을 말씀하시는 건지?”

    “너의 그 끝없는 재능을 보고 있자니 문득 욕심이 생겨서 말이다.”

    그리 말하는 염왕의 눈동자에 불꽃이 타올랐다.

    “너라면 능히 검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와 여기 있는 전원은 네가 가는 검의 여정을 함께하고 싶다.”

    “그 말씀은……?”

    “그렇다. 은왕림으로 같이 가지 않겠느냐? 그곳이라면 능히 네가 가는 검의 길에 많은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 게다.”

    염왕은 단지 타일로를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를 림에 끌어들이고자 했다.

    ‘이 아이는 능히 대륙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고작해야 이런 작은 소국에 갇혀 있을 만한 인재가 아니었다.

    “아마 네 눈에는 나나 여기 있는 이들이 성에 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왕림은 다르다. 림주(林主)나 그를 수호하는 사방위의 검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염왕이 은왕림에서 실력자 축에 속하는 편이긴 하지만, 림주와 사방위의 검 그리고 그 밑의 24개의 별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그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이 한데 모인 곳에 소속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터.

    “그러니 함께 은왕림으로 가자꾸나.”

    검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당연히 은왕림으로 가야만 한다.

    적어도 염왕은 그리 생각했지만.

    “죄송합니다.”

    타일로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제안을 감사합니다만, 제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라서 말이죠.”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왜지? 네가 꿈을 펼치기에 이곳은 너무 좁다. 아직 네가 림주님을 뵙지 못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르신.”

    하지만 타일로는 전혀 염왕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확고한 신념이 깃든 눈빛으로 염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리 말한 타일로는 갑자기, 그리고 아주 가볍게 수직으로 검을 그었다.

    “…….”

    “…….”

    그 순간 정적이 일었다.

    “이것은……?”

    일련의 동작을 바라본 염왕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무결의 검이었다.

    검사라면 모두가 꿈꾸는, 그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

    비록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펼쳐 낸 것이다.

    염왕도 펼칠 수 없는 깨달음의 영역을 말이다.

    “제가 배울 게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고자 하는 길, 그 길의 끝에 아서 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소튼 왕국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비록 자신만의 해석으로 무결의 검을 펼치긴 했지만, 그건 완전한 게 아니었다.

    ‘과거 아서 님이 펼친 검은 정말 대단했지.’

    지금껏 많은 이가 그의 앞에서 으스대며 검식을 펼쳤었다.

    그중에는 검왕을 비롯한 대륙의 최강자라 불리는 이들이 태반.

    하지만 그에게 ‘감동’을 준 검식은 아서의 것이 유일했다.

    백날 머리를 붙잡고 몰두해도 감을 잡기 힘든, 그가 걸어가야 할 검의 끝. 아서는 그 길을 명확히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그는 소튼 왕국을, 아니 아서의 곁을 벗어날 수 없다.

    은왕림의 림주가 직접 찾아와 검식을 펼쳐 그 이상의 감동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사실 이 이상의 것은 누구도 보여줄 수 없지.’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아서의 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정말 ‘끝’에 도달한 이는 이 대륙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오직 아서 하나뿐임을 말이다.

    “으음…….”

    아서를 들먹이자 염왕은 더는 말을 잇질 못했다.

    ‘확실히 그는…….’

    그를 떠올리는 순간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뇌리 속에서 가장 강한 자는 은왕림의 림주였다.

    하지만 아서를 겪은 뒤부터는 감히 그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특히 그가 위대한 일원 12명을 처치했을 때 펼쳤던 검식.

    ‘정말 같은 인간이 맞을까 싶을 정도였지.’

    검의 끝에 도달한 이만이 펼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검식.

    그렇기에 아서를 들먹이는 타일로 앞에서 그보다 더 낫다는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렇군. 알겠다. 내가 너무 의욕이 앞서서 그를 생각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더는 제안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 또한 위대한 일원과 척을 진 것 같으니 타일로가 성장해 은왕림과 대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제안 대신에 한 가지만 물어보자꾸나.”

    “네,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아서라는 자. 정말 그자는 같은 인간이 맞긴 한 거냐? 그리고 이 나라의 1왕자였다고 하던데 혹시 신분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조금 전 아서에 대한 정보를 급하게 모았다.

    그리고 들을 수 있었던 아주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서.

    소튼 왕국의 망나니 1왕자.

    마계 원정대에 차출되었으나 1초만에 돌아와 대륙의 온갖 비난을 받은 자.

    하지만 그 이후 달라진 행보를 보이며 왕국 행정을 간섭하던 공작을 정리한 후 왕위에 올라 온갖 기행을 펼친다.

    ‘마치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혹시 다른 사람이 변장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서 님은…….”

    그리고 이어지는 타일로의 대답.

    “아마 신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하지만 그는 전혀 연관 없는 말을 던질 뿐이었다.

    *

    소튼 왕국 지하 감옥.

    “크흐흐. 나를 속박하였다고 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내 의지에 속박당한 얼음덩어리 녀석이 혀를 나불댄다.

    “너는 참 뻔뻔하기도 하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잘 나오나 보네?”

    “물론 네 녀석이 나보다 힘이 강해 내 육신을 제압하긴 했지만. 그러나 내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지금껏 본 이들 중에서 저런 식으로 말하고 굴복하지 않은 녀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네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마음대로.”

    지금이야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걸.’

    모처럼 일원 중에서 고위급 인사를 건졌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녀석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이참에 고급 정보를 얻어 큰 타격을 줘 버릴 생각이다.

    ‘그만 자고 일어나 이 녀석들아.’

    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6마리의 마수를 모두 깨웠다.

    그 순간.

    뚝!

    시간의 흐름이 정지했다.

    내가 아닌 내가 되어 버리는 아주 엿같은 과정.

    ‘그나마 지금은 정신을 조금 유지할 수 있군.’

    물론 감정이 사라져 버린 상태는 여전했지만, 예전과 같이 그 빌어먹을 기분은 들지 않는다.

    “…….”

    나는 말없이 눈앞에 있는 얼음덩어리를 응시하며.

    「내가 하는 질문에 숨김 없이 답해라.」

    의지를 전달했고.

    부르르르-

    녀석은 벼락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격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조금 전과 같은 의지가 깃든 눈이 아니다.

    내 의지에 제압당하여 완전히 자신의 의지를 상실해 버린 것.

    물론 그로 인해 나중에 큰 심적인 여파가 미치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건 녀석이 지닌 정보.

    그것을 내뱉고 난 이후에 녀석이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었다.

    「너희 위대한 일원의 수장이 누군지 말해라.」

    비록 단서를 얻긴 했지만, 아직 의혹을 거둔 건 아니다.

    여전히 의심되는 바가 있기에 그것을 물었다.

    그 말에 다시금 몸을 격하게 떠는 얼음덩어리.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의 육신에서 변화가 일었다.

    사아아아-

    기이한 기운, 안개와도 같은 것이 육신에서 뿜어져 나와 형상을, 거대한 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현상.

    「하하하. 이거 또 만나게…….」

    「꺼져라.」

    팟!

    녀석과의 만남이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곧장 의지를 전하여 녀석의 형체를 소멸시켰다.

    모든 마수를 깨운 지금의 내 의지는 고작해야 일부 파편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그 특유의 눈깔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소멸해 버렸다.

    「망설이지 말고 말해라!」

    그리고 다시금 얼음덩어리를 재촉했다.

    “크, 크으으…….”

    눈, 귀, 코, 그리고 입에서 새어 나오는 피.

    녀석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녀석의 생사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위대한 일원의 수장은…….”

    하지만 녀석은 내게 굴복하고 말았다.

    “샘의 현자라 불렸던 북부 크루노아 제국의 현자 아슬론 님입니다…….”

    마침내 입에서 떨어진 단어는 내가 줄곧 의심하고 있었던 부분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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