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96화 (96/161)
  • 96화 Chapter 95

    ‘조금 전에 공간의 일그러짐이 있었지.’

    사실 훼방꾼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었다.

    싸우는 도중에 느꼈던 공간의 파장. 하지만 그것을 말리지 않은 이유는.

    ‘익숙한 기운. 위대한 일원 녀석들이 방문해 주셨군.’

    굳이 말릴 필요가 없는 세력의 일원들, 바로 위대한 일원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본래 존재마다 각자 다른 기운이 느껴져야 정상이건만 어째선지 이 위대한 일원들이라는 녀석들에게서는 똑같은 존재가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양산해 놓은 인형을 보는 것처럼.’

    그렇기에 집중해서 탐색할 필요도 없이 그들이 방문할 것을 직감했다.

    다만.

    “허, 허업!”

    “이 음성은?”

    “일원들이로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음만 내뱉던 우리의 왕님들께서 비명과도 같은 음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왜? 아는 사람들인가 봐?”

    “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염왕의 편에 서서 내게 대들던 검왕 녀석이 다급히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면 뭐?”

    “일원들이, 게다가 이 음성과 파장은 그자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염왕, 내가 왔다!」

    쩌적!

    성벽 한 부분이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콰콰콰쾅!

    엄청난 충격으로 터져 나갔다.

    “허참. 한 놈은 불을 다루더니 이번에는 얼음이냐?”

    높은 성벽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건 가면을 쓴 12명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녀석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금빛이네?’

    12명 중 오직 한 놈이 독특한 것을 뽐내려고 황금빛 가면을 쓰고 있었다.

    “빙마(氷魔)!”

    황금 가면.

    마치 하얗게 샌 것과 같은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그는 주변으로 끊임없이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휘오오오오!

    오죽하면 그 강렬한 기운에 의해 녀석의 동료들 또한 근처로 다가가지 못하겠는가.

    「빙마, 빙마라니!」

    왜 녀석이 반응하지 않는가 했다.

    「이놈도 아는 녀석이야?」

    「물론이지요. 염왕을 안다고 한다면 빙마를 몰라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나는 둘 다 몰랐는데?」

    「하하하… 마신왕 폐하께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하찮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폐하와는 달리 대륙의 인간들은 다르지요.」

    「시간 없으니까 빠르게 읊어 봐.」

    「네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염왕에 대해 설명을 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염왕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빙마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원수지간이라도 되나 보지?」

    「과연 정확하십니다. 네, 사실 둘은 원수지간입니다.」

    둘의 살벌한 눈빛을 보고 대충 끼워 맞추긴 했는데, 그게 진짜였나 보다.

    「염왕의 스승이었던 패왕 고르간. 그를 죽인 게 빙마 에드입니다.」

    「호오. 스승을 죽인 원수라. 이거 완전 소설 뺨치는 전개인데?」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대륙의 인간들은 모르겠지만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과거 패왕과 빙마의 승부에는 아주 더러운 수작이 끼어 있지요.」

    「수작?」

    「네, 본래는 당시 넘볼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해 있었던 패왕은 고작해야 빙마 따위에 질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빙마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제삼자를 끌어들였지요.」

    확실히 일대일 승부에서 삼자를 끌어들였다면 비겁하다고 할 만하다.

    「그게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당시 최고라고 평가받던 패왕을 이길 수 있을 정도니 아주 대단한 존재임이 명백합니다.」

    「아마도 그게 위대한 일원에 소속되어 있는 누군가 중 하나겠군.」

    「예리하십니다. 본래 소속되어 있는 걸 싫어하는 빙마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아마도 그 단체에 어떤 빚을 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알겠네.」

    1,315호의 적절한 설명 덕분에 상황은 금방 파악했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지 아픈 몸을 일으킨 염왕이 강렬한 기세를 뿜어댔다.

    하지만.

    “쯔쯔. 그놈의 허세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일어설 힘도 없어 보이건만.”

    하지만 빙마, 얼음덩어리 녀석은 염왕의 허세를 곧바로 눈치챘다.

    ‘기운으로 짐작해 봤을 때는 빙마가 좀 더 높은 수준인가?’

    본래 정상에 서면 아랫것들이 잘 보이는 법.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경지의 차이기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정확히 기술의 차이는 모르겠지만, 도달한 경지, 그리고 기운으로만 힘을 나눈다면 빙마 쪽이 우위긴 하다.

    “네 녀석이 림을 떠났다 해서 부랴부랴 쫓아왔더니. 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끌끌.”

    하지만 말과는 달리 의외의 상황을 무척 즐기는 듯한 모양새였다.

    ‘확실히 악당은 악당이여. 그래도 나름 적수라고 부를 만한 녀석이 누워 있는데 저리 비웃다니.’

    물론 내 입장에서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하긴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비웃는 것을 보니 확실히 저쪽이 ‘선’이라고 부를 만한 인성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게 골머릴 썩이던 염왕과 여러 왕이라. 이거 이번 기회에 내 순위가 한 단계 오를지도 모르겠군.”

    쩌저저적!

    냉소를 지은 녀석이 집중을 시작하자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마치 왕성 자체를 얼려 버리려는 듯 녀석의 기운은 끊임없이 확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만.

    쾅!

    내가 진각을 밟기 전까지만 말이다.

    “음!”

    그제야 녀석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네 녀석, 누구지?”

    그 말과 함께.

    파파팟!

    녀석과 함께 온 은빛 가면의 일원들이 빠른 속도로 내 주위를 포위했다.

    “나?”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네가 애먹었던 이 녀석들을 줘패 버린 사람.”

    지금 있었던 일을 아주 짤막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 고맙군. 덕분에 귀찮은 녀석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구나.”

    녀석은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한 겨울에 부는 삭풍처럼 메마르기 그지없는 것.

    “그러니 죽어라!”

    그래도 염왕은 일대일 대결이라도 해보는 것 같더니 녀석은 가차없다.

    콰콰콰콰콰!

    은빛 가면을 쓴 녀석들이 동시에 달려들며 각자의 기운을, 고유의 힘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색색의 권능이 나를, 아니 알현실을 가득히 에워쌌다.

    ‘이것들이?’

    그것은 나만을 위한 공격이 아니었다.

    염왕과 왕들, 그리고 펠리드를 포함한 이곳의 모두를 죽이기 위한 살수였다.

    꿈틀.

    기분이 상하여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버릇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염왕이나 은왕림 소속 녀석들은 그래도 나쁜 짓이라고 한 게 왕인 펠리드를 무시한 정도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사람 생명을 그냥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역시 이것들과는 상종 못 하겠네.’

    과거에도 느꼈지만, 위대한 일원.

    이것들은 상종할 만한 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렇기에 나의 의지 또한 그들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기분이 무척 나빠서 다 쳐 죽이고 싶지만, 하나는 남겨 둘게.”

    아주 찰나의 순간 나는 빙마라는 녀석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일원 중에서 가장 고위의 관계자일 게 뻔하니 녀석의 목숨은 정보를 얻기 전까지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아니다.

    「와라.」

    내 의지가 움직이자.

    웅웅!

    아공간에서 나온 검, 나를 위해 탄생한 검 파멸이 검명을 토했다.

    내가 한 행동은 단지 검을 쥔 것에 불과했지만.

    스스스스-

    단지 그 행동 하나로 인해서 일원들이 발현한 권능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

    “지금 이건……?”

    얼마나 당황했는지 넋을 놓은 채 자신의 손과 나를 바라보기 바쁘다.

    “상황 파악 안 돼? 대가리가 있으면 맥락을 잘 이해해야지.”

    나는 녀석들을 향한 냉소를 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녀석들이 들을 수 있는 이 세상 마지막 말이었다.

    슥!

    그저 가볍게 검을 휘둘렀을 뿐.

    “…….”

    그리고 이어지는 건 정적이었다.

    내 주변, 12명의 일원은 눈을 부릅 뜬 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녀석의 목숨을 취해라!”

    관전하기로 마음먹은 듯 유들유들한 웃음을 지은 채 팔짱을 낀 빙마.

    “…….”

    하지만 거듭된 녀석의 명령에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 녀석들이……!”

    호통을 치려던 녀석.

    하지만 다음 순간.

    파스스-

    녀석을 보아야만 했다.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리는 부하들의 흔적을 말이다.

    “무, 무슨!”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얼음 덩어리 녀석이 경악했다.

    “맙소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이, 이게 정녕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그건 쓰러져서 빌빌대는 은왕림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조금 전 사라진 일원들처럼 자신도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단 사실을 말이다.

    “…….”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놀란 건 얼음덩어리 녀석일 것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발산하고 있던 냉기의 기운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 이건 10호 이상의 권능. 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되는 듯 내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 걸 눈치챈 것 같다.

    그리고.

    지잉-

    수상쩍은 녀석의 행동과 함께 공간의 일그러짐이 느껴졌다.

    “어딜!”

    녀석이 할 행동이야 뻔한 것 아니겠는가.

    감히 내 앞에서 도주하려는 녀석의 행동을 막기 위하여 주먹을 꽉 쥐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행동은 의지를 움직이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이럴 수가!”

    그리고 얼음덩어리 녀석은 내가 한 행동의 결과를 깨달았다.

    “마, 마력이 움직이질 않아…….”

    그래도 한가락 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곧장 그 변화를 눈치챈 모양이다.

    “맞아. 주위 마력을 통해 도주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흐름을 끊어 버렸지.”

    내가 주먹을 쥔 행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건 대륙이라면 어디든 존재하는 마력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 얼음덩어리가 있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마력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는 철저히 금지된다.

    그것은 녀석이 사용하는 갖가지 권능도 마찬가지.

    사실상 단련된 육체를 제외하면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조금 강한 인간’이 된 셈이다.

    “네 녀석들은 툭하면 뭔가를 꾸미더라고.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못 하도록 조치를 취해 놨지.”

    과거 당한 게 있어서 조금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멈춰!」

    녀석이 자결하지 못하도록 사소한 움직임 하나까지 모두 제압했다.

    웅웅웅!

    이번에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파멸의 힘까지 끌어 써 가면서까지 녀석의 행동을 속박했다.

    뚝-

    내 혼의 일부인 파멸과 함께 발현한 의지는 녀석을 속박하는 데 성공했다.

    “으으으으…….”

    그리고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황금 가면이라. 명색이 색깔이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녀석이니 지난번 잔챙이들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겠지.”

    나는 얼음덩어리 녀석을 보며 웃었다.

    위대한 일원. 그렇지 않아도 계속 내버려 두는 바람에 마음이 불편했었던 단체였다.

    하지만 좀처럼 밟히지 않는 행적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드디어 큰 꼬리를 발견한 것 같다.

    ‘이참에 아예 작살을 내놓던가 해야지.’

    숨겨진 집단, 흔히 말하는 배후라는 게 존재하는 건 딱 질색이다.

    얼음덩어리 녀석을 통하여 정보를 확보한 후 녀석들에 대한 박멸의 시간을 좀 가져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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