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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94화 (94/161)

94화 Chapter 93

별궁 연무장.

“그, 그렇다면 이 동작을 한번 따라 해 보아라.”

꽤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은 검왕이 다시금 시범을 선보였다.

슥, 스슥!

순식간에 이루어진 10번의 찌르기.

‘허초로군.’

하지만 그건 눈속임이었다.

10번의 찌르기 중 진짜 찌르기는 하나.

기세와 손동작을 이용하여 상대의 눈을 속이는, 일종의 심리전과 같은 고급 검식이었지만.

“이렇게 말입니까?”

휙휙휙!

타일로는 처음 보는 고급 검식을 손쉽게 따라 했다.

“…….”

너무 완벽한 검식에 검왕은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타일로를 응시할 뿐이었다.

“음, 뭔가 틀린 겁니까?”

머리를 긁적인 타일로가 물었고.

“아, 아니다. 잘했다. 그런데 정말 허초를 배우지 않은 게 맞는 것이냐?”

조금 전보다 더욱더 당황한 검왕.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금 전 펼쳐 보인 허초는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범재라면 최소 반년, 천재라 해도 족히 한달은 걸리는, 말 그대로 고급 검식이었던 것.

하지만 타일로는 그러한 시간을 무시한 채 한번 보자마자 따라 해 버렸다.

“네, 아서님께 조금 배우긴 했지만, 이렇게 상세히 배운 적은 처음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결점의 검식을 보여 준 것과 기본기를 다져 주는 것 이외에는 따로 가르쳐 준 게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뭘 가르쳐야 할지 몰랐으니까.’

숨 쉬듯이 검만 휘둘러도 자연스레 검식이 발현된다.

워낙 오랜 세월 동안 이 경지에 머무르고 있다 보니 과거 내가 어떻게 검을 익혔는지, 그 과정을 까먹어 버린 것.

그렇기에 가르쳐 주지 않은 게 아니라 가르쳐 줄 수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힘겹게 검술 선생을 모셔 왔는데.

“어… 음…….”

문제는 대륙에서 제일 검을 잘 쓴다고 정평이 난 검왕도 그리 좋은 선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제 뭘 하면 될까요?”

새로운 것을 습득해 가는 재미를 깨닫게 된 타일로가 기대에 차서 물었지만.

“자, 잠깐만 쉬도록 하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배우면 오히려 배우지 아니한 것보다 못할 테니. 지금은 잠깐 휴식하며 배웠던 것을 차근히 복기하도록.”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검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하다.

‘밑천이 금방 바닥날 것 같은가 보지.’

약 1시간 동안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생각보다 검왕의 밑천이 금방 동날 것이라는 것.

가르쳐 주는 족족 그것을 흡수해 버리니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만에 검왕의 모든 지식을 섭렵할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선견지명은 있네.’

조금 전 은왕림의 사람들을 불렀다.

확실히 검왕 하나만 있었다면 1년이 아니라 하루 만에 가르침이 끝날 뻔했다.

꽤 많은 이를 호출했다고 했으니 그들이 번갈아 가르친다면 그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서님.”

뜻하지 않은 휴식 시간.

나를 향해 다가온 검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도대체 저 재능은 뭡니까?”

아마 대단한 충격이었을 거다.

검왕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저 정도 경지에 발을 들인 이라면 평생 자신의 재능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테니.

그런데 나조차도 괴물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타일로의 재능을 접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부정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그냥 괴물이지 뭐.”

괴물.

타일로의 재능에 관해서 그것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괴물이라… 그렇군요. 생각한 것보다 더 놀라운 재능에 솔직히 많이 당황했습니다.”

“직접 보는 것과 조금 다르긴 하지. 그래서 감상은?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중요한 건 얼마나 녀석을 잘 가르칠 수 있냐는 거다.

“가르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마 이 대륙에 있는 어느 누가 온다고 해도 타일로를 성장시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얼마만큼 빠르게, 그리고 깊이 있는 검사로 성장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살짝 고개를 가로저은 그가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저 혼자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릇입니다.”

“잘 봤네.”

만약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했다면 검왕의 자질을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그릇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더 훌륭한 스승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림에서 초빙한 분들 중에는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검로를 걸으시는 분이 있으니 타일로에게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호라!”

검왕 스스로 자기보다 빼어나다 할 정도라 평하고 있으니 상당한 거물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내가 막 새로운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무렵.

지이잉-

영역을 확장한 내 기감에 잡히는 게 있었다.

“혹시 림에서 불렀다는 이들의 숫자가 10명?”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금 오고 있거든.”

“네?”

“이 속도로 보면 10분 이내에는 도착할 것 같네.”

“…10분 말입니까?”

놀라는 검왕.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0분의 거리라면 도무지 얼마나 먼 거리를 감지한 것인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도 느껴 보려는 듯 기감을 확장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초월의 영역이 아니라 입신의 경지에 발을 들인다 해도 나 정도의 기감을 가질 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맙소사!”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취한 듯 뒤늦게 그들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검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

소튼 왕국 알현실.

“소식은 들었다. 그대들이 은왕림 소속의 검사들이로군.”

갑자기 몰려든 10명의 검사를 맞이한 건 내가 아니라 왕국의 주인인 펠리드였다.

찾아온 손님을 환대하는 것.

그것은 주인된 도리로 당연한 절차였지만.

‘이 새끼들 봐라?’

문제는 환대를 받는 손님들의 태도가 영 별로라는 점이다.

“…….”

나이가 지긋한 10명의 검사 모두의 허리는 꼿꼿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소튼 왕국이 소국이라고 해도 왕은 왕.

마땅히 예의를 차려야 하건만 녀석들은 어디 변방의 무지렁이처럼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우리는 그대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요.”

“놀라운 재능을 지닌 싹이 있다고 하던데.”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얼른 안내를 해 줬으면 좋겠는데.”

형식상으로라도 예를 표하면 모를까, 명백히 눈앞에 있는 펠리드를, 일국의 왕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아마 이 자리에 왕국의 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면 당장 호통이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같이 자리한 검왕을 응시했다.

“설마 어르신께서 오실 줄은…….”

그런데 녀석의 반응이 가관이다.

왕에 대한 무례함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한 채 한 사람의 곁을 지키고 있다.

자연스레 시선은 검왕의 옆에 있는 이에게 향했다.

그 누군가, 붉은 머리칼과 얼굴에 온통 흉터가 가득한 중년의 사내와 시선이 부딪쳤다.

“흐음…….”

먹이를 발견한 것처럼 눈빛이 반짝인다.

“너!”

마침내 입을 연 녀석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

“…….”

그의 한 마디에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쿠쿠쿠쿠쿠-

그가 발산한 기세가 장내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드레이브에게 들은 바로는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던데. 나랑 한판 붙자.”

이 패도적인 기세에서부터 느껴지는 것.

아마도 녀석은 끊임없이 호승심을 탐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기에 한낱 인간에 불과하면서 이런 힘을 손에 쥘 수 있었겠지.

‘이 정도면 초월체들과도 겨룰 수 있겠군.’

초월의 영역을 넘어서 입신의 경지에 발을 들이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인간들 중 가장 강한 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어르신의 호승심이 또 발동하고 말았군.”

“하긴, 드레이브가 입이 닳도록 말을 전했으니.”

“확실히 경지가 측정이 되지 않는 게 쉽지 않은 상대야.”

옆에 있는 림의 녀석들이 좋다고 떠들어 댄다.

“쯧.”

그리고 나는 가벼이 혀를 차며 펠리드를 응시했다.

“펠리드.”

“네, 형님.”

“보이냐?”

“네, 아주 잘 보입니다.”

“지금의 네 위치가 이 정도다.”

“하하. 꽤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로군요.”

“그래. 아파야지. 명색이 왕인데, 투명 인간 취급을 받고 있으니.”

“…그걸 굳이 꼭 집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누가 뭐라고 해도 펠리드는 일국의 왕, 여기 서 있는 소튼 왕국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저것들은 자신들이 힘 좀 있다고 왕을 무시한 채 으스대고 있다.

“그러니까 더욱더 말해야지.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이유는 앞으로 더욱더 분발하라는 뜻이다. 힘 좀 있다고 으스대는 녀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네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

“명심하겠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지금 이 순간 펠리드의 눈동자는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녀석이 사람만 좋은 건 아니란 말이지.’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다.

녀석은 단순히 ‘사람만 좋은’ 얼뜨기와는 다르다.

누구보다 호승심도 있고, 누구보다 많은 욕심을 지닌 야심가였다.

그동안은 왕위에 올라 조금은 자만에 빠졌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을 성장시키는 데는 자극만 한 게 없다니까.

“그건 우리 보고 들으라는 소리인가?”

“하하하.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더니 이런 취급을 받는군.”

“우리가 누구에게 허리를 굽힐 만한 위치의 이들이 아니라 말이야.”

“설사 제국의 황제가 눈앞에 있다고 해도 우리의 허리를 굽히게 할 수 없으니.”

나와 펠리드의 대화에도 녀석들은 당당했다.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어서 검을 들어라.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구나.”

그리고 녀석은 금기를 범했다.

화르륵!

왕이 자리한 안전(案前)에서 검을 화염이 깃든 검을 빼어 든 것이다.

꿈틀!

그 순간 펠리드의 눈썹이 팔자를 그렸다.

그리고.

“무엄하구나!”

녀석의 호통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비록 기나 마나를 실은 건 아니지만, 왕의 기세가 담긴 호통이었다.

“…….”

쩌렁한 그 음성에 장내의 시선이 펠리드에게 향했다.

“네 녀석이야말로 무엄하구나. 일개 소국의 왕 따위가 감히…….”

하지만 녀석은 말을 잇질 못했다.

팟!

나는 지면을 박찼고, 공간을 그대로 뛰어넘었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 빨강머리에게 접근.

쉬익!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내 주먹이 그대로 녀석의 안면을 향해 쇄도했다.

퍼억!

당연히 그 주먹은 녀석의 안면을 그대로 가격했고.

콰콰쾅!

엄청난 힘에 의해 날아간 녀석은 굉음을 내며 벽에 박혔다.

“허!”

“이게 무슨!”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의 움직임은 녀석들의 경지로는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테니까.

“나는 너희 같은 녀석들을 아주 잘 알아.”

날아간 빨강머리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녀석들을 차례차례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힘 좀 쓴다고 하는 녀석들은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더라고. 그러니까 오늘 좀 거하게 맞고 정신 좀 차려 볼까?”

내 동생, 펠리드를 무시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만약 나 이외에 동생을 무시하거나 홀대한다면 당연히 나의 참견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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