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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93화 (93/161)
  • 93화 Chapter 92

    ‘재능? 감히 이 대륙에서 나 이외에 재능이라 불릴 만한 자를 본 적이 없으니.’

    검왕 드레이브.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만 번의 전투에서 불패의 신화를 써 내려갔다고 하지만, 실상 그의 결투 전적은 10만 번이 넘는다.

    물론 그 모든 전투가 승리였던 건 아니다.

    자신만의 검로를 발견하기 이전, 그러니까 애송이 때의 결투에서는 여러 번 패하기도 했었다.

    다만 그때는 드레이브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전이어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과장이 붙은 것.

    그는 약 10년 동안 무수히 많은 검사들과 겨루었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대륙에서 나 이외에 재능이라 불릴 만한 자는 없다.’

    언뜻 듣기에는 광오해 보이는 발언이나 사실이었다.

    검왕의 재능에서 보자면 다른 이들의 재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한 번 검식을 보면 그것을 대충 흉내 낼 수 있고.

    두 번 보면 검식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으며.

    세 번 보면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검식을 다룬 듯한 숙련자가 되며.

    네 번 보면 타인의 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검왕의 재능은 가히 하늘에 닿은 수준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괴력을 자랑하는 은자의 제안 같지 않은 제안을 수락한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너는 내가 가르칠 만한 수준의 재능이 지니고 있지 않군.”

    단호한 거절.

    이것으로 왕궁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스윽!

    갑작스레 펼쳐진 검.

    곧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검이 지면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부르르르-

    검왕은 전율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무, 무슨!”

    아마 어중이떠중이였다면 그 검식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왕은 다르다.

    그는 이미 초월의 영역에 발을 걸친 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검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무결(無缺)하다!’

    본래 움직임이란 것에는 반드시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너무 세게 휘두르면 자연스레 빈틈이 생기고, 그렇다고 너무 변화를 주면 힘을 잃게 된다.

    적당히 힘을 뺀 상태에서 자연스레 검이 따라가는 길을 그려야만 하는 것.

    하지만 이론은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하늘에 닿은 재능이라고 불리는 검왕 또한 그 같은 검식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녀석이?’

    눈을 부릅뜬 검왕은 뚫어지게 타일로를 응시했다.

    그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불가능의 영역이라는 무결의 검식을 펼쳤다.

    놀란 그는 뒤늦게야 심안을 펼치며 타일로의 재능을 엿봤다.

    “마, 맙소사!”

    고작해야 5성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타일로.

    하지만 그 사실이 더 놀랍다.

    고작해야 5성에 불과한 영역에 있음에도 무결의 검식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하늘에 닿았다는 자신의 재능을 한낱 반딧불에 불과하게 만드는 대단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이 녀석은… 진짜 물건이다.’

    놀란 건 검왕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 봤을 때부터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더 놀랄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설마 무결점의 검식을 자신의 검로로 만들 줄이야.’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녀석이기에 그래도 꽤 시간이 흐르면 내가 펼친 검식을 따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그건 오판이었다.

    녀석은, 이 빌어먹을 재능을 지닌 녀석은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의지에 맞게 재해석해 놓았다.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모두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넘어서서 자신의 의지에 맞는 검로를 그린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는 거지.’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릴 스치고 지나간다.

    만약 타일로가 원정대에 같이 소속되어 마계를 헤쳐 나갔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녀석으로 인해 원정대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물론 이미 지나간 과거에 상황을 대입하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괜히 상념이 떠오른다.

    그만큼 타일로의 재능은 놀라운 것이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딴 망상을 할 때가 아니다.

    “자, 그럼 대답해 볼까?”

    나는 경악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검왕을 향해 말했다.

    “저 녀석이, 타일로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재능이 없는 게 맞아?”

    “…….”

    내 말에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미간을 찡그린 채 고심에 빠져 있다.

    아마 녀석도 양심이 있으면 저 미친 재능을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겠습니다.”

    마침내 굳게 닫힌 입술을 비집고 나온 말.

    “뭐? 잘 안들리는데?”

    물론 들었다.

    하지만 녀석의 음성에는 확신이 없었기에 재차 물은 것이었다.

    “제가 1년간 그를 한번 가르쳐 보겠습니다.”

    그 음성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 수락에 가장 놀란 건 타일로였다.

    대륙에서 추앙을 받는 검왕이라는 존재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인외의 존재라 인지하고 있어도 어렸을 적부터 동경해 오던 대상의 가르침을 받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나는 검왕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거참 더럽게 요구 조건이 많네.

    그냥 화끈하게 가르친다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조건이라기 보다는 요구 사항이라고 봐야 할 것 같군요.”

    “들어줄 수 있는 거면 들어주고, 아니면 말고. 일단 말은 들어줄게.”

    혹여 되지도 않는 조건이라 단칼에 거절할 속셈이었지만.

    “이 재능은 저 혼자 감당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해서 제가 소속된 단체에서 몇몇 인원을 초빙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

    그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혼자서 가르치기 벅차니까 다른 선생들을 더 모셔 오겠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흠. 글쎄. 혹시 어중이떠중이들 모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아닙니다. 우리 은왕림(隱王林)에 소속된 이들은 그 누구도 저보다 못하지 않은, 대단한 실력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제가 그분들을 모시려는 이유도 이 청년을 확실하게 성장시킬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오. 확실하게 성장을 시키겠다?”

    “그렇습니다. 현재 대륙에 위대한 일원이라는 거대한 암운이 몰려오는바.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리더, 흔히 말하는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이가 필요합니다.”

    “아! 그러니까 너는 타일로를 영웅으로 성장시켜 그들에게 맞서게 할 생각이라는 거지?”

    “이 놀라운 재능은 필시 하늘이 내린 것. 궤를 벗어나는 재능이 나타난 건 그것을 발휘할 난세가 펼쳐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검왕이 마음을 돌린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잘 키워서 후에 요긴하게 써먹겠다는 거네.’

    물론 그 목적이 불순하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내 목적은 오직 하나.

    타일로를 빠르게 성장시켜 내가 원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안심하고 자리를 비울 수 있을 테니.’

    내 인간으로서의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대비를 해 놓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 검왕의 제안도 나쁘진 않다.

    ‘너희는 어떻게든 녀석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녀석의 재능에 흥분하여 어떻게든 잘 가르치겠다고 하니 그것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선생이 여러 명이어서 나쁠 건 없지. 자질이 없는 스승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야.”

    “그럼 지금 당장 기별을 넣어 놓겠습니다.”

    검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은왕림이라…….’

    숨은 왕들이 기거하는 숲.

    확실히 검왕도 왕은 왕이니 그와 같은 이들이 모인 단체를 뜻하는 것이리라.

    ‘과거 내가 알고 있었던 대륙은 정말 단편에 불과했구나.’

    새삼 깨닫는다.

    과거 내가 알고 지냈던 대륙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에는 제국이, 그리고 그곳에 있는 쌍룡이 최고의 실력자인 줄 알았건만, 그들을 우습게 여기는 위대한 일원, 은왕림, 심지어 법칙을 비튼 자들이 모인 미치광이 집단까지.

    어디 그것뿐인가.

    중간계와는 떨어진 다른 일곱 개의 세계,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초월체들과 그들을 암중에서 지배하고 있던 관리자, 지배자까지.

    ‘대륙에 돌아오면 모든 게 쉽게 해결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네.’

    이 정도 힘이라면 단숨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줄 알고 있었건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일단 차분하게 가자. 시일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반드시 그들의 바람을 이루어야만 할 테니.’

    과거에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신격과 고대 신을 흡수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성급해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바라는 이상 원정대원들이 남긴 그들의 바람은 반드시 이루어질 테니까.

    물론 내 동생 펠리드도, 그리고 녀석이 다스리는 소튼 왕국 또한 대륙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나라가 될 테고 말이다.

    *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밀실.

    중앙에 밝혀진 촛불로 인해 겨우 실루엣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왕들이 움직였다.”

    누군가가 말했고.

    “검왕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더라니.”

    “설마 이번에도 우리 생산 시설을 파괴하려는 것인가?”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이에 반응하였다.

    “20호. 분명히 말했을 텐데. 클론 공장을 파괴한 게 은왕림이라는 확실한 정보는 없다고.”

    처음 말했던 이가 20호에게 경고했다.

    얼마 전 있었던 클론 공장 파괴에 대해서 내부에서는 잠정적으로 은왕림의 소행으로 결론을 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보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

    내부적으로야 어떤 생각을 하던 상관이 없었지만, 그것을 이 공개적인 석상에서 말하는 건 금기해야 할 일이었다.

    “어흠!”

    그의 지적에 불편한 헛기침이 나왔고, 잠시간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비록 우리와 대적할 집단이 은왕림밖에 없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는 바. 그러니 20호는 은왕림으로 한정 짓는 일은 발언을 그만해 줬으면 좋겠소.”

    “으음. 그러지요.”

    궁극적인 목표라는 말에 20호는 더는 할 말을 잇질 못했다.

    “흠. 그런데 왕들이 몇 명이나 움직였는지요?”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다른 누군가가 물었고.

    “10명. 심지어 그중에는 염왕(炎王)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군.”

    “여, 염왕!”

    “맙소사! 그 성질 더러운 놈이 기어코!”

    염왕이라는 단어에 다들 기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염왕은 과거 있었던 전쟁에서 그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가한 바 있는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검과 함께 융합된 그 특유의 열화기는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그야말로 공포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염왕이 나섰을 정도면 실로 큰일이 아닙니까?”

    과거 일 이후 좀처럼 은왕림을 벗어나지 않았던 염왕의 움직임이라면 실로 큰일이 틀림없다.

    “걱정하지 마라. 비록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염왕이라는 거물이 움직이는 만큼 우리도 그에 맞는 대항마를 꺼냈으니.”

    “설마……?”

    “그렇다. 19호. 그가 과거 내지 못했던 승부를 내기 위하여 움직였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오!”

    “19호님이 가신다면야.”

    “암! 19호님라면 능히 염왕을 상대할 수 있지.”

    조금 전과는 달리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19호. 세상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빙극의 영역을 추구하는 그라면 염왕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확실히 전력의 추가 기울어진 만큼 은왕림의 행태를 더는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은왕림과의 전면전에 돌입. 그들이 말살하기 전까지 우리는 숭고한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격앙된 말을 내뱉는 10호.

    그토록 바래 마지 않던 1호와 ‘그분’이 돌아온 지금. 그들은 대의를 위한 일, 숭고한 전쟁을 다시금 시작할 참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은왕림의 말살로 시작될 것이다.’

    당연히 시발점은 과거 발목을 붙잡았던 은왕림.

    눈엣가시와도 같은 그 존재들을 멸하는 일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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